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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
작가 : 기옹
작품등록일 : 20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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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2
작성일 : 20-08-20     조회 : 323     추천 : 0     분량 : 5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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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이러니하게도 죽으러 온 이곳에서 나는 층간소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정말 죽고 싶은 것인지, 살고 싶은 것인지. 분명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니 죽음에 더 가까운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을 용기는 없었다. 나에게는 죽음에서조차 간절함이 없었다.

  나를 스쳐간 사람들은 마치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말했다.

  ‘너에게는 간절함이 없어.’

  간절함. 너무 구질구질하고 치욕적인 단어였다. 아쉬움과 미련에 집작하는, 졸렬한 이들이 갖는 감정이었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애원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과 상처뿐이었다. 관계에 있어서 간절함은 약점이었고, 쿨함은 비인간성이었다. 사람들은 양자의 공존을 허용하지 않았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제임스를 따랐던 것은 그에 대한 신뢰와 믿음 때문이 아니었다. 믿도끝도 없는 쿨함 때문이었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는 나와는 다른 세상의 쿨함. 그것은 뒤끝 없는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나에게 연립을 소개시켜 준 것은 제임스였다. 학원을 그만두기 보름 전쯤, 제임스는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외국인 강사들은 주로 강사 전용 휴게실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인 강사들과 마주칠 일은 드물었다. 한국인 영어 강사들과의 교류가 있기는 했지만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인 강사는 드물었다. 그래서 제임스가 나를 찾아온 것은 의외였다.

  지나치며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한국계 캐나다인이었던 그는 한국인이었지만 외국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한국인 같은 인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를 찾아온 그는 다짜고짜 옆자리의 의자를 바짝 끌고 와 앉았다. 거침없는 그의 행동이 왠지 위압적으로 느껴졌다.

  “송 선생님, △△고시원에 사시죠?”

  그는 꽤 능숙한 한국어로 대뜸 내가 사는 고시원 이름을 댔다.

  “실은 그 동네에 외국인 친구가 자취를 하고 있어서 몇 번 놀러가다가 고시원으로 들어가시는 송 선생님을 본 적이 있어요.”

  최대한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얼굴과 목이 뜨거워졌다.

  “아실지 모르겠는데 제가 이번 달까지만 근무합니다. 다시 캐나다에 들어가는데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월세 계약이 반년이나 남았지 뭡니까. 혹시 괜찮으시다면 집 구하실 때까지 임시거처로 사용하시면 어떨까 해서요.”

  그 당시 나는 갈림길에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단 두 개의 선택지 밖에 없었다. 매일 밤 고시원에 앉아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도 사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생산성 없는 나날들 속에서 마음만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막상 학원을 그만둔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어디로 갈지, 어디 가서 죽을지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의 제안이 솔깃하게 다가왔다. 그는 마치 이승과 저승 사이에 서 있는 사자(使者) 같았다.

  “별 뜻은 없습니다. 우연히 선생님께서도 이번 달까지만 근무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고시원을 떠나지 않을까 싶어 제안한 겁니다. 혹시, 이사 갈 곳이 정해지셨나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번호 입력해 주세요.”

  망설임 없이 대답하기는 했지만 너무 경솔했나를 생각하고 있던 찰나, 그 생각조차 무의미하다는 듯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아무렇지 않은 척 그의 휴대전화에 내 번호를 입력했다. 쿨내 진동하는 외국인 앞에서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싶지 않아 최대한 쿨한 척을 했지만 빨라지는 심장 박동은 내가 쿨한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친분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그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런 것이 외국인의 쿨함이라는 것인가 생각해보고 생각했지만 쿨함의 영역은 아닌 것 같았다. 대화하는 내내 나를 바라보고 있던 그의 선명한 눈동자가 나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이 더욱 강렬해진 건 그와 함께 연립을 보고 온 뒤였다. 연립의 외관을 보고 나서 그의 제안이 호의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 같다는 생각은 더욱 강렬해졌다.

  제임스가 소개한 연립은 학원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서울 외곽에 자리한 거시(巨視)라는 작은 소읍이었다. 마을 입구 도로 한 켠에는 한자로 ‘거시’가 새겨진 표지석이 서 있었다. 세워둔 지 오래된 표지석은 한 번도 닦인 적 없는 듯 누적된 얼룩으로 떼에 절은 노숙자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巨視’라고 새겨진 한자 옆에는 빨간색 락카 스프레이로 ‘거시기’라는 단어가 불균등한 선으로 이어져 흉물스러워 보였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울퉁불퉁한 일차선의 콘크리트 도로가 펼쳐졌다. 도로에는 가로수가 한 그루도 서 있지 않았다.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밭들은 밭갈이를 하지 않아 불모지와 같이 방치되어 있었다. 창 밖 풍경만 본다면 봄인지 겨울인지 계절을 구분할 수 없는 살풍경이었다. 그래서인지 건조한 바람이 지날 때마다 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황무지 같은 밭에서 날아오는 흙먼지가 콘크리트 도로를 재포장하고 있었다. 차로 오 분을 달리자 마을의 번화가가 모습을 나타냈다. 번화가라고 해봤자 오 층을 넘지 않는 낡은 건물 네 채가 사이좋게 도로 양 옆에 두 채씩 세워져 있었고, 건물 뒤편으로는 주택들이 말라붙은 게딱지처럼 엎드려 있었다. 건물들은 하나같이 낡고, 후락했다. 빛바랜 페인트칠과 건물에 생긴 균열들, 엉성하게 서 있는 건물들에는 병원과 슈퍼, 옷가게와 PC방, 편의점 등이 있었지만 어두웠고, 인적이 드물었다. 20분 거리에 있는 서울에 비한다면 영락없이 퇴락해 가는 시골의 음울한 풍경이었다. 마을에 들어선 것도 잠시, 어색하게 불뚝 솟아 있던 건물 네 채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시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콘크리트 도로가 펼쳐졌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신기루처럼 5층짜리 건물 하나가 신기루처럼 서 있었다. 흙먼지에 가려져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서울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곳에 이런 마을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는 것도 의문이었다. 투기꾼들이 이곳을 그대로 방치했을 리가 없었다.

  “놀랐죠? 서울에 아직도 이런 동네가 있을까 싶게.”

  차를 세운 제임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동네는 경기도에 속해 있습니다.”

  제임스가 차 문을 열며 말했다. 나도 제임스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막상 실물로 마주한 연립은 더욱 괴괴하고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지어진 지 삼십 년이 넘은 거시연립은 흡사 철거된 서울의 스카이 아파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흉물스러운 외관에 잿빛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디귿자 구조의 5층 연립은 시공된 이후 한 번도 페인트칠을 하지 않았는지 군데군데 남아 있는 회색빛이 시멘트와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거기에 벽마다 불균질하게 난 균열 때문에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았다. 마흔다섯 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연립의 거주자는 지금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시공사는 부도가 나 공중분해 된 지 오래였고, 주인 없이 남겨진 빈집에는 노숙자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전기와 물이 끊긴 집에서 기생하고 있었다. 그나마 부동산에서 매입한 몇 채의 집들이 헐값에 거래되고 있었다.

  연립 앞에서 잠시 망설이던 내게 제임스는 말했다.

  “내키지 않으면 굳이 머무실 필요는 없어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는 연립 안으로 안내했다. 계단을 올라 4층 405호에 들어서니 낡은 외관과 달리 스무 평 남짓 돼 보이는 내부는 깔끔했다.

  “다달이 관리비와 기타 공과금만 내시면 됩니다. 저는 공과금으로 한 달에 십만 원 정도 지출했어요.”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잔뜩 울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은 연립의 답답함이 마음에 들었다. 스산한 기운으로 가득한 이곳이 썩 나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제임스는 부동산 중개소에 들러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중계업자와 제임스 간에 이야기가 오간 듯 했다. 6개월의 시한부가 담보되었다. 부동산 중개소를 나와 제임스와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나와 동갑인 제임스는 두 살이 되던 해인 1985년 캐나다로 입양을 간 입양아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강의를 하던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급히 한국에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강의를 듣던 한국인 학생의 자살 때문이었다.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그의 영문학 강의에서 그는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다수의 중국인과 다섯 명의 일본인이 수강하고 있던 수업에서 유독 그 학생에게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실 제 수업을 수강하지 않아도 될 친구였습니다. 영어도 잘했고, 문학적 소양도 있는 학생이었죠. 다만 제 수업이 유학생들을 위한 필수과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강하고 있었습니다.”

  운전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제임스는 아쉬운 듯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무척 조용한 친구였습니다. 사교적이지도 않았고. 그러다가 종강 무렵에 학생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그 학생을 발견했습니다. 그 학생과 대화하다가 그 학생의 고향이 거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시. 그곳은 제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 학생 때문에 아주 잠깐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일었지만, 그냥 그 순간뿐이었습니다.”

  그때 그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저 막연히 캐나다로 이민 간 한국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감이 조금 좁혀진 듯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그 한국인 유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전 그 학생 때문에 한국행을 선택했고요.”

  “다른 이유도 아니고 자살한 한국인 유학생 때문에 한국행을 택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한국행의 이유가 고향이 같은 학생의 죽음 때문이라니, 다소 황당했다. 책임감, 연민 때문이라면 학생과의 연결고리가 너무 미약했다.

  “그렇다면 그 학생의 가족들을 찾았나요?”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실은 그 집, 그 학생이 살았던 집입니다. 제가 이 집을 찾았을 때 이미 가족은 사라진지 오래였고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의문 투성이었다. 이곳에서 인생을 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이내 미궁 속에 빠진 듯 혼란스러움으로 바뀌고 있었다. 뭔가 마수에 걸려든 것 같았다.

  거시에 다녀온 그 밤, 꿈에 어머니가 나타났다. 고시원 침대에 앉아 있는 어머니는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원망 섞인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눈을 부릅뜨고 있던 죽은 어머니의 얼굴이 겹쳤다. 어머니의 장례 후 어머니의 환영을 마주했던 그 밤의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어머니에게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소리칠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거시연립에서의 삼 개월이 지나고 있었지만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였다. 이제 남은 기간은 삼 개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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