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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
작가 : 기옹
작품등록일 : 20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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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4
작성일 : 20-09-18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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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고 일주일쯤 뒤 어머니의 끔찍한 환영을 마주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나는 밤손님이 된 듯 현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집에 들어서고는 했다. 그날도 현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현관의 센서등은 오래 전부터 작동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 잠깐의 어둠이 동공을 확장시켰지만 이내 수축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동공이 수축되기 시작한 그 시점. 현관을 열면 정면에 보이는 안방 문 앞에 하얀 무언가가 획 하니 지나갔다. 순간 가위에 눌린 듯 몸은 경직돼 돌처럼 굳어 버렸고 입은 굳게 닫혔다. 그저 어둠 속에서 흰 물체와 정면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금방 공포와 두려움, 불쾌와 짜증이 뒤엉켰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르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흰 물체가 정체를 드러냈다.

  어머니였다. 밝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분명했다. 숱 많은 백발은 풀어헤쳐져 산발이 되어 있었고, 검게 탄 얼굴은 쪼그라들어 거죽처럼 뼈에 붙어 있었다. 검정 크레파스로 마구 칠해버린 듯 새카만 두 눈과 보랏빛 입술, 누렇게 변색된 치아는 검게 썩어 버린 채였다. 마치 무대 효과와 같은 푸른빛의 연기가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었다. 쿰쿰한 냄새가 몸속으로 잠식해 들어와 몸은 무거워졌다. 쿰쿰한 냄새는 차고 눅눅한 공기에 뒤섞여 두려움과 공포는 불쾌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고 나를 알아채기라도 한 듯 흉측한 모습의 어머니는 한쪽 입을 비죽이 올리며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 나를 향해 날리는 그 비웃음, 거친 쇳소리처럼 기분 나쁜 그 웃음소리……. 흐흐흐흐…….

  혼절한 것이었는지 다음 날 집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현관 앞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나는 더 이상 이 집에, 서울에 머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기까지 한 달의 유예 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뒤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거시에 다녀온 뒤 마주한 어머니의 환영은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도망쳐 봤자 소용없다는 경고 같았다. 나도 모르게 용서를 빌고 있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죽은 척 연기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진공 속에 갇힌 듯 울부짖음은 가슴 속을 헤집고 다닐 뿐이었다.

 

  어머니를 향한 복수심이 삶의 목표였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어머니가 남자와 함께 산다며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그때부터 나의 복수는 시작되었다.

  ‘이제와서, 무엇 때문에’가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물을 수 없었다. 어차피 돌아오는 것은 침묵일 테니까. 십삼 년을 혼자 잘 버텨왔으면서 이제와 무엇 때문에 남자와 함께 살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어머니는 남의 그늘에서, 자존심을 굽히며 살 사람은 아니었다. 더욱이 어머니의 나약함, 어머니를 향한 동정이 허용되는 공간은 K읍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를 동정녀라 불렀다. 198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머니는 마을 성당 앞에서 발견되었다. 가슴부터 무릎까지 덮여 있던 군용담요는 밧줄로 동여매 있었고, 붉은색 목도리로 가려진 얼굴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맨발이었던 어머니는 얼마나 걸었던 것인지 발바닥은 엉켜버린 피와 피딱지 투성이었고, 양쪽 새끼발가락을 제외한 발톱 여덟 개는 모두 빠져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행사를 마치고 나오던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된 어머니는 마을 의원으로 옮겨졌다. 의원으로 옮겨져 감겨진 목도리와 담요를 풀어내자 만삭의 임산부가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미 양수가 터진 상태였다. 어머니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이 상태로는 자연분만을 할 수 없었다. 수녀님들은 어머니의 옷을 벗겨 뜨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연신 몸을 닦아냈다.

  수액을 맞고 의식을 찾은 어머니는 지속되는 고열과 진통 속에서 의식을 잃지 않으려 했다. 마을 사람들은 성당에 모여 기도로 크리스마스 행사를 대신했다. 기도의 영향이었을까. 크리스마스가 지나가기 두 시간 전, 뱃속의 아이는 세상으로 나왔다. 기적적으로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했다.

  그날 이후 어머니를 처음 발견했던 베드로 신부는 어머니를 동정녀라 불렀고, 마을 사람들 누구도 어머니와 나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신부님과 수녀님, 마을 사람들은 동정녀를 살려낸 동방박사였고,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던 나는 예수의 재림으로 신격화되었으니 말이다. 어머니와 나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에게는 신화가 되어 살아갔다.

  어머니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최소한의 대답과 질문이 전부였다. 원래 말이 없었던 것인지, 신화화에 대한 보답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결의에 찬 듯한 침묵은 고집스러웠고, 지독하게 모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들인 나에게 조차도 침묵했다. 안아 달라, 말해 달라 보채던 유년의 투정도 열 살 즈음 끝나고 말았다. 보채는 내게 어머니가 던진 서늘한 눈빛과 냉정한 침묵은 나의 말문을 닫게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무관심과 침묵은 오히려 어머니가 강인한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정체불명의 미혼모에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은 채 집과 일할 곳을 내어주었다. 심지어 어머니에 대한 험담을 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꾸지람을 들었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말을 안 한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야.’

  벙어리 아들이라는 마을 아이들의 놀림에 눈물을 쏟으며 성당으로 뛰어들던 아홉 살 무렵, 베드로 신부님은 우는 나를 앉혀 두고 말했다. 어린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신부님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늘 큰 위안이 되었다.

  어린 나에게 세상은 도통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지만 나는 어머니를 믿기로 했다. 분명 침묵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어머니를 보며 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어머니는 혼자가 아니었다. 풍채 좋은 중년의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그는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의 단골손님이었다. 공사 현장을 떠돌아다니는 건설기사인 남자는 서울로 가는 길에 무조건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에 들렀다. 술에 떡이 될 때까지 마시다 어머니와 내가 머무는 쪽방에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던 남자는 무례하고, 거칠었다.

  ‘사내 자식이 그렇게 소심하면 쓰나. 자고로 남자는 나처럼 강해야 하는 거다.’

  술이 깬 아침이면 어머니가 끓여 준 해장국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며 그는 아버지라도 된 양 훈계를 했다. 그 모습은 역겨웠다.

  졸업식이 끝나고 중식당에서 어색한 점심 식사를 했다. 아무 말 없이 짜장면을 먹는 내게 어머니가 말했다.

  ‘앞으로 이분 집에서 함께 살 거다.’

  호탕한 척 웃어대는 남자의 입안에는 씹다만 탕수육이 역겹게 뒤엉켜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짜장면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했다. 그 밤, 먹은 것을 모두 개어냈다.

  그런 상상을 하고는 했다. 인적 드문 산 아래 놓인 작은 식당 하나. 혹여 길을 잃고 헤매는 이가 있다면 누군가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잠든 엄마의 등에 기대면 머리카락에서 베어 나오던 술 냄새, 담배 냄새, 기름 냄새, 온갖 음식 냄새가 뒤섞인 쾌쾌하고 텁텁한 냄새는 나를 잠으로 이끌었다. 그 냄새는 나를 어느 산골 마을 겅성드뭇한 집들 사이에 놓인 작은 식당에 데려다 놓고는 했다. 산골짜기, 인적 드문 어느 곳에 작은 불빛 하나 내뿜으며 서 있는 작은 식당 하나. 계절은 언제나 겨울이었고, 그것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추운 날이다. 사위는 칠흑같이 어둡고 칼자루를 휘두르는 듯한 매서운 바람소리가 들리는 한겨울의 산골짜기. 안식과도 같은 불빛과 난로의 훈김을 내뿜고 있는 식당. 떠도는 이들을 위해 켜 있는 표지와도 같은 불빛.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그 불빛. 식당 안에는 연통이 달린 낡고 오래된 철난로에 땔나무를 넣고 있는 엄마. 양철주전자에서는 보리물이 끓고 있고, 식당에 달린 온돌 마루에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 나. 이내 주방에서는 도마질 소리가 들려오고, 밥 짓는 냄새가 식당 안에 가득하다. 잠시 뒤, 나무로 만든 오래된 미닫이문이 덜그럭 거리며 열리고 머리 위에 한가득 눈을 안고 들어오는 어떤 이.

  누구였을까. 아빠였을까. 언제나 어떤 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뿌연 김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확인해 보기도 전에 꿈에서 깨고는 했다. 꿈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의 머리카락에서는 밤사이 베어든 식당 안의 온갖 욕망들이 수근대고 있었다.

  가끔씩 작은 창으로 달빛이 새어들 때면 나는 기도 했다. 진짜 아빠와 엄마를 만나게 해달라고, 나를 데려가 달라고. 기도의 내용이 잘못 전달 되었던 것일까. 아빠가 생겼고, 새집이 생겼지만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졸업식이 끝난 며칠 후 파란색 트럭이 좁은 시장통을 무법자처럼 헤집고 들어왔다. 트럭에서 내린 그가 내게는 슈퍼히어로보다는 악당에 가까워 보였다. 뭐가 됐든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어머니의 등쌀에 떠밀려 나는 트럭 앞자리에 몸을 실었다. 앞자리는 높고 무서웠다. 하지만 아무도 무서워하는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어머니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트럭에서 내려 이제껏 보지 못한 커다란 이층집 대문 앞에 선 채 바짓가랑이 사이로 새어 나오는 오줌을 막을 사이도 없이 두려움과 수치심 속에서 울며 두 주먹을 쥐었다. 두려워하는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은 죄, 나를 태어나게 한 죄, 무시하고, 방치한 죄, 그로 인해 상처입힌 죄를 톡톡히 묻겠다고.

 

  복수는 성공한 것일까.

  그냥 알고 싶었다. 진실을.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원했던 결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단지, 알고 싶었다. 진실을.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라도 듣고 싶었다. 무엇이 어머니를 침묵하게 만들었는지. 하지만 나의 계획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머니는 알지 못하는 복수극의 승자는 결국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끔찍한 환영을 마주한 이후 시시때때로, 언제 어디에서나 정체불명의 움직임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홀로 있는 조용한 시간이면 언제 어디서든 귓가에는 희미한 웃음소리가 이명처럼 맴돌았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지만 막연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내 주위를 맴돌았다.

  보이지 않는 실체에 감각의 촉수가 곤두세워진 후로 작은 스침에도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거시연립으로 이사 와 처음으로 어머니의 흉측한 환영과 마주한 그 날, 위층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교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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