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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
작가 : 기옹
작품등록일 : 20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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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5
작성일 : 20-09-25     조회 : 330     추천 : 0     분량 : 4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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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일주일 뒤 505호 여자가 나를 찾아왔다. 현관을 열자 짙은 화장에 몸매가 드러나는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강한 향수 냄새에 잠시 머리가 아찔했다.

  “웬일이신지…….”

  나의 물음에 잠시 주춤하던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건넸다. 쇼핑백 안에는 롤케이크가 담겨 있었다.

  “지난 주에, 저희가 조금 무례했던 것 같아서요. 그래서 사과할 겸 잘 지내자는 인사로 내려왔어요.”

  여자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짙은 화장 너머로 앳된 미소가 보였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여자가 나의 팔을 잡았다.

  “저희 가게 오시면 잘 해 드릴게요. 안주 서비스도 드릴 테니까 자주 오세요. 그 잘생긴 오빠랑요.”

  여자가 코를 찡긋하며 웃어보였다. 나는 억지 미소를 지어보이며 나의 팔을 붙잡고 있는 여자의 손을 조심스럽게 뿌리쳤다. 여자는 민망한 듯 재빨리 복도를 벗어났다.

  안타깝게도 잘생긴 오빠는 더이상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정은 이미 캐나다에서 예전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테지.

  제임스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505호 살인사건 한 달 후였다.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인사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꽤 쌀쌀해진 10월 말의 늦은 저녁이었다. 의아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제임스와는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꽤나 오래 알고 지낸 것 같은 친밀함이 쌓여있었다. 그날도 제임스와 나는 505호 여자가 일하는 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아무 말 없이 연거푸 맥주를 들이키던 제임스는 취기가 올랐는지 그날따라 많은 말을 내뱉었다.

  ‘전에 제 고향이 거시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죠? 실은 학생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한국행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학생의 고향이 거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찾아도 그만, 만나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학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움도 잠시, 친부모를 만나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학생이 제 수업을 들은 것도, 자살한 것도 모두 저를 한국으로 이끌기 위한 운명이었다는 확신이 든 것입니다. 말도 안 되죠. 운명이라니……. 하지만 운명에 이끌려 한국에 왔습니다. 망설임으로 영원히 후회하는 것보다 가고난 뒤 후회하는 것이 훨씬 나다운 결정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임스는 몹시 진지했고, 슬퍼보였다.

  ‘한국에 와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홀트아동복지회에 찾아가 친부모의 생사여부를 알아본 것이었습니다. 학생의 유해를 호텔방에 처박아 둔 채 말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친부모의 거주지는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생부는 이미 오래 전 고인이 되었더군요. 저는 학생의 유해를 안고 거시를 찾았습니다. 생모의 집을 찾았지만, 그녀는 저를 만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 더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비어 있는 제임스의 잔에 맥주를 따랐다. 그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드디어 저는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돈을 주었습니다. 현금 백만 원을 주고 나서야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어떤 상황을 맞닥뜨리더라도 의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돈을 내고 들어간 친모의 집에서 그가 얻어낸 정보라고는 자신이 술과 도박에 찌든 부모에게 버려진 자식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제임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던 것일까?

  한국에 와 한 달 동안 방치되었던 학생의 유해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제임스가 가족에게 유해를 전달하려 학생의 집을 찾았을 때,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동산과 이웃에 수소문했지만 그들이 언제, 무엇 때문에 마을을 떠났는지 알지 못했다. 사채빚을 갚지 못해 야반도주했다는 말도 있었고, 사채업자들에게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장기를 털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던 형은 앵벌이로 끌려가 지하철 어디선가 앵벌이를 하는 형을 보았다는 사람까지, 사라진 학생의 가족에 대해서는 추측과 소문만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솔직히 가족들이 사라진 마당에 학생의 유해를 개천에 뿌리든, 야산에 뿌려버리든 그냥 화장실 변기에 내려보내든 그 누구도 저를 비난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유해는 그냥 제 마음대로 처리하고 떠나버리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한 줄 아십니까? 학생의 집을 찾은 그 날, 벨을 누르지도 못하고 저는 복도에 서서 개천 건너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연립 5층에서 생모의 집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거시연립과 생모의 집은 고작 300미터 거리였습니다. 빌라 옆을 흐르는 개울 건너 생모가 살고있는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이 보였습니다. 운명의 장난이었던 것일까요? 정말 운명이 있는 것일까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습니다. 저는 매일 밤 복도에 서서 불켜진 생모의 집을 하염없이 바라았습니다. 삼십 년 치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제임스는 결국 미련 때문에 거시를 떠나지 못했다. 학생이 살던 집에 머물며 매일 밤 생모의 집을 바라보았다.

  ‘왜 나를 버린 것인지, 사랑하기는 했던 것인지부터, 미움과 원망, 아쉬움과 미련, 그리움까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밀려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복도에 서서 생모의 집을 바라보는 것만이 혼란을 잠재우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올봄, 퇴근길에 학원 근처 고시원으로 들어가는 송 선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었죠. 저는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던 걸까요. 제 눈에 비친 송 선생의 모습에서 제가 오버랩되었습니다. 위태로움으로 가득한 송 선생의 표정이 제게 다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보다는 송 선생이 이곳 거시연립에 머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 선생을 보는 순간 한국을 떠나도 될 것 같은 운명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제임스의 말에 빈 웃음을 지어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세상 쿨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그가 운명 따위에 경도된 나약한 이였다니 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이제 곧 떠날 사람에게 정신차리라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을 듯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벌을 받겠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판도라의 상자에는 희망이 남아 있으니까요. 송 선생도 반드시 희망을 남겨두길 바랍니다.’

  그렇게 제임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낸 뒤 한국을 떠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희망이라는 단어가 간절함이라는 단어처럼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희망, 헛된 망상일 뿐이었다.

  505호 여자가 다녀간 뒤 왜 그랬는지 나는 여자가 일하는 술집을 두 번이나 찾았다. 여자 역시 우리 집에 두 번 다녀갔다. 한 번은 파전을 들고, 다른 한 번은 맥주와 치킨을 들고 왔다. 맥주와 치킨을 먹으며 야구 중계를 보던 그녀와 나는 함께 밤을 보내고 말았다.

  분명 여자는 사는 이도, 오는 이도 없이 떠나는 이만 존재하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나를 찾아왔던 것이리라. 그 간절함을 다시금 이용하고 싶었다. 어차피 나 역시 떠날 이였으니까.

 

  잠든 여자를 뒤로 하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복도로 나왔다. 5시를 향해 가고 있었지만 사위는 칠흑같았다. 거시의 어둠은 도시의 어둠처럼 빛이 존재하지 않았다. 멀리 제임스의 생모가 살고 있다는 파란색 지붕집을 바라보았다. 제임스 생모의 집만이 등대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에 손이 시렸지만 담배 연기에 온몸은 되려 나른해지고 있었다.

  난간에 불씨가 남은 꽁초를 비벼 던졌다.

  ‘차라리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쉽게 열리기라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지막 술자리를 파하기 전, 답답한 마음에 흘리듯 던진 말이었다. 제임스도 그랬고, 나 역시 어머니들의 진실 혹은 진심을 알지 못해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희망이라는 가능성조차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 테지요.’

  그때 점퍼에 있던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주머니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액정에는 발신번호 표시 제한이 떠 있었다.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몇 주 전에도 새벽녘 발신번호 표시 제한이 뜬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잠결에 무심코 받은 전화 너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처럼 그냥 끊어버릴까 하다가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다. 발신자의 숨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했다.

  “제임스?”

  발신자가 왜 제임스라고 생각한 것일까? 제임스처럼 나에게도 운명을 감지할 순간이 찾아온 것일까?

  얼마간의 신경전 끝에 발신자가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정말 제임스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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