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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
작가 : 기옹
작품등록일 : 20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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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6
작성일 : 20-09-25     조회 : 315     추천 : 0     분량 : 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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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이번 달이면 이 집 계약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런데 오빠, 그 학생 화장한 가루 있잖아요, 그건 어떻게 됐어요?”

  곁에 누워 있던 여자가 나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졸려요? 하던 얘기 마저 해줘야죠. 궁금하게…….”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묻는 여자에게 제임스의 이야기까지 꺼내 놓고 있었다. 제임스의 이야기하다가 며칠 전 새벽에 걸려온 전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정말 제임스였을까…….

  “그 오빠 설마 그 가루, 다시 캐나다로 가져간 건 아니겠지요?”

  그러고 보니 제임스가 학생의 유해를 어떻게 했는지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여자는 웃으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여자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있던 나는 여자를 더욱 힘주어 껴안았다. 학생의 유해는 어떻게 된 것일까.

  “오빠, 그거 알아요? 이 마을에 유명한 공식이 하나 있는데, 들어올 때는 살아왔지만 나갈 때는 죽어 나간다. 무섭죠?”

  소름 돋는 이야기였지만 여자의 말투는 해맑았다.

  “그래서, 죽을까봐 너도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거야?”

  “어떻게 알았어요?”

  여자의 해맑음에 장난스레 반응한 것뿐이었는데 여자의 대답은 자못 심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혼자인 게 두려워요. 그렇다고 저 남자랑 살고 있는 게 좋은 것도 아니에요. 그냥, 혼자는 못 사니까, 그러니까 사는 거에요. 엄마가 그랬거든요. 여자는 돈 많은 남자 그들에서 살아야 한다고요. 돈 없는 남자 만나면 자기처럼 지지리 궁상떨며 산다고. 사랑으로 사는 부부가 몇이나 있겠냐, 조건 맞아 살다가 자식 낳아 지지고 볶고 살다가 가면 된다고.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여자 우습게 보니까 저처럼 배운 거 없고 가난한 집 자식은 돈 많은 남자 만나서 사는 게 장땡이라고 했거든요. 지긋지긋한 집구석이 싫어 가출해 막상 후진 동네 술집까지 굴러들어오고 나니 엄마 말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혼자 살아보려는 노력은 안 해 본거야?”

  “오빠, 사람이 어떻게 혼자 살아요.”

  여자는 내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살기 위해 함께 사는 걸까, 함께 살기 위해 사는 걸까. 갑자기 헷갈렸다.

  “만약에 제가 이 마을을 떠나게 된다면 그날이 아마 제 제삿날이겠죠? 아니면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에요.”

  그 뒤로도 여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종알거렸다. 여자의 목소리가 가까이 있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여자의 이야기들이 꿈처럼 펼쳐지는 듯했다.

 

  거시에 연립이 들어선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산을 깎아 세워진 대부분의 신도시나 학교 등이 그러하듯 낮은 구릉 위에 세워진 거시연립 역시도 건물에 얽히 괴담이 존재했다. 과거 거시의 산은 외부에서 유입된 부랑자들의 연고 없는 시신들의 무덤으로 가득했다. 1980년대 초, 도시 개발의 붐을 타고 거시도 정비에 들어가면서 세워진 것이 거시연립이었다. 거시 자체가 연고 없는 이들의 터전이었기 때문에 도시 개발에 부랑아와 노숙자들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무임금에 무리한 노동을 강요받았고, 그 과정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랑아나 노숙자의 죽음은 하찮은 것이었다. 진위여부는 판가름 할 수 없었지만 마을에 떠도는 풍문에 따르면 죽은 노동자의 시체는 시멘트 반죽 더미에 묻어버렸다고 했다. 한 명이 죽으면 묻고, 또 죽으면 거기에 다시 시멘트 반죽을 채워버렸다는 말도 안 되는 풍문. 그래서 사람들은 한층 한층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매장된 거시연립을 죽은 자들의 집이라 불렀다.

  그런 괴소문과 풍문 속에서 세워진 거시연립은 그것이 풍문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립이 들어서고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연립에 거주하던 소녀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학교 3학년이었던 소녀는 마을 사내 3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연립 옥상에서 투신하고 만 것이다. 그 뒤로 연립에는 살인사건, 폭행, 강도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죽었다. 죽은 자들의 혼령이 정말 떠돌기라도 하듯. 그렇게 거시는 1990년대 신도시 개발 붐이 한창이던 그때 폐허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4시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를 받은 뒤로 기상은 늘 4시 반 언저리가 되었다. 여자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곤히 자는 여자의 고개를 들어 팔을 뺐다. 팔이 저렸다. 여자와의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싶었다. 여자와 동거 중인 남자에게 여자와의 관계가 들통나지 않으란 법도 없었고, 둘 중 한 명의 마음이 변해 헤어질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니면 여자의 말처럼 이 마을을 떠나려는 자가 이 관계를 끝맺게 될지도 몰랐다.

  자고 있는 여자가 깨지 않게 점퍼를 걸치고 조심스레 복도로 나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파란색 지붕집의 불이 켜져 있었다. 문득 제임스의 가족이 언제부터 여기에 살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전부터였을까? 제임스가 입양된 1983년 주소지가 거시라고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1980년 이전부터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제임스의 생모는 마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담배에 불을 붙였다.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를 받은 이후 줄곧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혹 제임스의 전화라면 물어보고 싶었다. 학생의 유해는 어떻게 했는지.

  그때, 타들어 가는 불씨 너머 둑방에서 검은 물체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너무 어두워 사람인지 짐승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제임스?’

  제임스일까? 담배 연기 너머 어두운 형체가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저 검은 형체가 왜 제임스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제임스는 정말 캐나다로 돌아갔을까? 제임스는 나에게서 죽음을 본 것일까, 아니면 희망을 본 것일까. 다음에 또 전화가 온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이 몇 가지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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