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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
작가 : 기옹
작품등록일 : 20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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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죽음-8
작성일 : 20-09-25     조회 : 336     추천 : 0     분량 : 4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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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집은, 결국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살아 있었다.

 

  집에 붉은 딱지가 붙은 날, 어머니는 내 멱살을 잡고 말했다.

  ‘쓰레기 같은 놈. 그때 널 죽였어야 했는데…….’

  눈앞이 아찔했다. 원했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결말이기도 했다. 중학교 때 가출 이후 처음으로 마주한 어머니의 분노였다. 가녀린 팔목으로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어머니의 떨림이 전달됐다. 몇 년 만에 가까이에서 제대로 마주한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눈가의 주름이 늘어 있었다. 깊게 패인 팔자주름 역시 시간의 흐름을 짐작케 했지만 고운 얼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분명 선했을 눈빛은 독기로 단련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 본 어머니의 눈빛은 처연함 그 자체였다. 그런 어머니와 마주 서 있는 것이 두렵고, 슬펐다. 거짓말이라고, 화가 나서 홧김에 그런 거라고 말하기에는 강한 떨림과 살기어린 눈빛이 거짓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빚은 금방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치기와 자만으로 시작한 학원은 개원 일 년 만에 빚만 남겼다. 일 년만 더 버텨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또다시 대출을 받았다. 무담보 대출은 불가능하다는 은행의 안내에 어머니 몰래 인감도장을 가져가 주택담보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학원은 개원 3년 만에 폐업하고 말았다. 일 년만, 일 년만 더가 결국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강남에, 학원 규모를 크게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학원강사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학원은 안정적 직장이 되어 갔다. 지방대 출신이었지만 인서울 출신의 강사들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학원강사로 자리잡게 한 원동력이었다. 물론 자신감은 거기에서 고개를 숙였어야 했다. 늘어나는 원생에 비해 늘지 않는 급여에 뭔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억울함에 학원을 나왔다.

  차압 딱지가 붙은 날, 집이 경매에 넘어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 변제되고 남은 금액은 2억 정도가 됐다. 나는 문 앞에서 그 돈으로 지방에 작은 아파트를 사자고 말했다. 아파트를 사자는 말보다 죄송하다는 말이 앞서 있었지만 억지로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거실 창문 너머 목련나무에 목을 맨 어머니가 흔들리고 있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어머니의 시체 곁으로 벚꽃잎이 흩날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두 눈을 부릅뜬 시체 곁으로 흩날리는 4월 말의 벚꽃잎이 애처로워 보였다. 이런 결말을 바랐던 것이 아니었다. 죄송하다는 말이 가슴을 치고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제가 진짜 왜 그랬는지 정말 모르시겠어요?’

 

 

  남자의 다리가 천장을 뚫고 내려왔을 때 우습게도 광고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2000년대 중반쯤 미국의 팝그룹 블랙 아이돌 피스가 출연한 펩시 광고였다. 광고는 멤버들이 펩시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바닥을 뚫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는 내용이었다. 순간 이동 같은 짜릿한 쾌감을 주는 광고였다. 하지만 역시 광고는 광고일 뿐이었다. 현실은 공간 이동에 실패한 다리가 민망하게 천장에서 발버둥 치고 있을 뿐이었다.

  천장은 어느 순간부터 과식한 배처럼 볼록 내려앉기 시작했고, 가장자리에는 미세한 균열이 생겨나 있었다. 위층 남자가 거실을 활보할 때면 천정에서 미세한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기도 했다.

  그날은 이주일만에 남자가 집에 온 날이었다. 그날따라 남자와 여자가 심하게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누군가 바닥에 쓰러진 듯 쿵하는 울림이 발걸음보다 크게 전달됐다. 거대한 바위가 떨어진 듯한 거대한 울림에 나는 티브이를 끄고 윗집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이내 여자의 흐느낌에 남자는 발광하듯 고함을 치며 거실 이곳저곳을 활보했다. 그런데 갑자기 천장이 우지끈하면서 펑하는 소리가 집안 전체를 울렸다. 순식간이었다. 거실에는 자욱한 안개처럼 먼지가 가득했다. 눈앞에는 티브이 화면 대신 천장을 뚫고 나온 남자의 다리가 화면을 가리고 있었다. 남자의 고함은 119가 출동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발버둥 치는 남자의 다리가 이틀 전 월세 계약을 반년 더 연장한 나를 조롱하는 듯했다.

  계약을 연장한 다른 이유는 없었다. 거시에 온 지 반년이 되었지만 죽지 못했다. 그렇다고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다만 뚫린 천장이 이곳을 떠나라는 압박처럼 다가왔다. 제임스의 말처럼 운명이나 계시가 정말 있는 것일까.

  연립 시공사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천장의 수리는 각자의 몫이었다. 위아래층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연립은 낡고 후락했다. 다행히 사내의 다리는 가벼운 타박상이었다. 남자와 나는 바닥과 천장에 합판을 대는 것으로 수리에 합의했다. 부동산 중개소에서는 한 달 치 월세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그래 봤자 한 달 치 월세는 십오만 원이었다. 급한대로 합판을 사다가 뚫린 천장을 막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었다. 천장에 합판을 대는 도중에도 천장의 균열된 틈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졌다.

  “이거 조만간 천장이 다 뚫릴 것 같은데요?”

  합판을 대던 인부는 걱정스레 말했다. 천장 전체가 뚫리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천장 한 켠이 뚫린 후 미친놈처럼 거실을 활보하던 남자의 쿵쿵대는 발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그 밖의 소리들이 더욱 생생해지는 부작용을 낳았다. 남녀의 싸우는 소리, 웃는 소리, 밥 먹는 소리, 은밀한 교성까지 위층의 소리들이 생생해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미세하게 고막을 파고드는 층간소음이 잠자고 있던 살기를 불러일으켰다. 솔직히 살기(殺氣)인지 살기인지 모를 감정이었다.

 

  층간에 합판이 생긴 이후 여자는 휴대전화 대신 합판에 대고 말을 하거나 신호를 보냈다. 남자가 있을 때는 합판을 두드렸다. 한 번은 잘 자라는 신호였고, 두 번은 다음 날 내려가겠다는 신호였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신호가 들려오지 않으면 섭섭하기도 했다.

  여자와 특별히 하는 일은 없었다. 여자가 퇴근하고 오면 배달음식을 시켜 먹다가 잠이 들거나 날이 밝아질 때까지 게임을 하다가 잠에 드는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여자는 즐거워 보였다.

  “그런데 오빠, 제임스 오빠랑은 연락해요?”

  그날은 여자와 치킨을 시켜 먹으며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여자는 분명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었지만 뭔가 치부를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왜?”

  나는 대수롭지 않은 양 대답했다. 여자 역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니, 그냥. 갑자기 잘 지내나 궁금해서요.”

  여자는 기름 묻은 손가락을 빨며 말했다.

  “제임스 오빠 번호는 알아요? 혹시 모르니까 한번 연락 해봐요. 내가 전에 말했죠. 이 동네는 살아서는 못 나간다고요. 연락이 되면 모를까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잖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통화했어.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파되지 않은 이상 잘 도착했겠지.”

  장난기 가득한 여자의 웃음이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보지 않는 이상 믿지 못하는 거에요. 그냥 그럴 거라고 믿는 거지. 내가 저 그지같은 새끼랑 살면서도 이 동네를 못 떠나는 이유가 뭔데요. 죽기 싫어서에요.”

  나야말로 여자의 말을 실없는 농담으로 치부해버렸지만 마음 한 켠에는 제임스가 했던 말이 멍처럼 남아 있었다. 과거를 모르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는 말……. 보지 않았으니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겠지. 그러니 그냥 믿는 것이다. 그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지금도 새벽에 담배를 피우기 위해 복도에 서 있을 때면 제임스가 둑방에 서서 이곳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혹시 개천 건너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집에 사는 사람 알아?”

  “아뇨? 왜요?”

  “아니, 그냥.”

  “이 동네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갈 데가 없어서 살고 있는 것도 있겠지만 나처럼 죽기 싫어서 그냥 눌러 살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어느새 여자는 치킨 먹은 자리를 치우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베란다로 나갔다.

  “막혀 있다.”

  “뭐가?”

  “우리 주인 언니가 그러는데요, 연립 베란다 창고가 막혀 있는 집이 있고, 아닌 집이 있대요.”

  “그래서?”

  여자는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하려는 듯 휴지로 손에 묻은 기름을 닦아낸 후 내게 바싹 다가와 앉았다.

  “지금부터 잘 들어요. 이 얘기 들으면 아마 오빠 잠 못 잘 수도 있어요. 저렇게 창고가 막혀 있는 건 거기에 시체를 묻었기 때문이래요. 예전에 지금보다 더 뒤숭숭하던 시절에 이 연립에 별별 사람이 다 살았는데 별별 사람이 사니 사건 · 사고가 끊이지 않았대요. 사람이 죽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동네라는 소문이 실은 사실이라는 거에요. 무섭죠?”

  여자는 놀라게 하려고 했는지 손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해맑은 여자의 표정에 무섭기는커녕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나의 반응에 실망했는지 금방 토라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금이야 웃고 있지만 나 가고 나면 무서워질 걸요?”

  여자는 입을 비죽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 자고 갈 거야?”

  “오늘은 할 일이 있어요. 다음 주에 올게요.”

  “무슨 할 일?”

  “그런 게 있어요. 왜요? 내가 뭐하는지 궁금해요?”

  나는 그냥 피식 웃었다. 나의 웃음에 여자도 웃었지만 쓸쓸함이 보였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잘 자요.”

  닫힌 현관 틈으로 여자의 인사가 끼인 듯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여자가 가고 난 뒤 티브이를 껐다. 위층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여자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청각은 여자의 움직임을 따랐다. 무너져 내린 것은 천장만이 아닌 것 같았다. 무너진 천장으로 나와 여자 사이에 난 균열이 보였다. 둘 중 한 명이 멈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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