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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밀렵꾼 : 비존재
작가 : 날개이름
작품등록일 : 202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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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존재_ 01
작성일 : 20-08-20     조회 : 576     추천 : 0     분량 :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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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그녀를 쫓는다

 자신의 심장을 안고 도망가는 그녀.

 

 필사적으로 발을 구르지만

 무게 없는 뜀박질은 너무도 어색하다.

 

 그녀의 붉은 발자국을 터트리는

 그가 남기지 못한 발자국들.

  

 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철퍽-

 “허억허억허억허억허억허억허억허억-“

  

 전철이 선로를 덜컹이며 두들기는 소리와 핏방울이 짓밟혀 터지는 소리 위로

 헐떡이는 그와 그녀의 숨소리가 불규칙하게 덮여 울린다.

 그녀가 뜀박질을 멈추자 그녀의 발밑에 위치해 있던 피 웅덩이가 일렁인다.

  “가까이 오지 마!”

 그녀는 그렇게 외치며 그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의 심장을 두 손으로 움켜쥔 채 자신의 머리 위로 치켜 올린다.

 팔을 타고 내리는 선혈에도 아랑곳 않으며, 달리는 전철의 상판을 꼿꼿이 디디고 선다. 그녀의 동공은 정확히 그에게로 향하지 못하고 약간 옆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마 그가 있을 곳을 어림짐작한 것이리라. 그녀는 떨리는 숨을 담아둔 채 최대한 담담한 어투로 말한다.

 “곧 터널이야.”

 고층 빌딩이 가득한 시내를 가로지르는 전철의 상판. 그 위를 밟고 서있는 그 둘에게 있어 그녀의 말은 위협에 가까운 것이었다.

 [어째서 그러는 거야…?]

 그가 물었다.

 “말했잖아. 이것만이 우리가 영원히 이어질 수 있는 길이라고. 겉치레뿐인 가짜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심장을 내어주고서, 영원히 영속될 수 있어.”

 분명 들리지 않을 터인데, 그녀는 그가 뭐라고 말하는지 다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정확히 그의 목소리에 답한다.

  

 [그만둬…!]

 “들리지 않아.”

 [다른 방법도 있을 거 아냐!]

 “아니, 이것뿐인걸.”

 [알았어.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어서 거기서 나와!]

 “행동으로 보여줘”

  

 터널이 다가오고 있다. 아마 10초도 남지 않았으리라. 자신이 처참하게 짓눌려버릴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그녀는 아랑곳 않고 서있다. 그가 그녀의 바람대로 행하지 않는 한 그녀는 물러서지 않으리라. 그런 눈동자다.

 그런 그녀의 의중을 알았는지, 그는 결심한 듯 상판 위에 고인 피 웅덩이에 떨리는 손바닥을 담근 다음, 전신에 펴 바른다.

 5초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피로 칠갑을 한 채, 그는 상판의 가장자리에 발끝을 맞춘다.

 4초

 그는 몸을 기울였다

 3초

 [자, 떨어진다. 네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기울고 기울어서. 추락 직전까지 치닫음에도

 그녀는 그의 추락을 확실히 확인한 후 피신하겠다는, 그런 확고한 의지를 내비치며 그의 자취를 눈으로 따를 뿐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우연히, 그와 그녀의 동공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바로 그 순간.

 2초

 그는 돌연 변심한 듯 그녀를 향해 발을 박찬다.

 1초

  “뭐, 뭐하는 거야?! 하지마, 가까이 오지…윽?!”

  

 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쿠궁-!

 

 “안 돼! 안돼애애!!!”

 

 -0.

  

 전철의 우렁찬 경적에 묻히어, 그 장렬한 충돌은 소리소문 없이 이루어졌다.

 

 

 

 

 전철이 뒷모습이 터널 저편의 어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텅 비어버린 철도에

 더 이상 남아있는 소리며 인기척은 없었고

 두 개의 존재가 소멸된 그 자리에는

 터널 위. 가만히 걸터앉은 한 남자만이

 충돌 직전 건져낸 심장을 담은 뜰채를

 천천히 어깨에 걸머지고는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다가

 등을 돌려 안개 속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비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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