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푸른 녹읍이 우겨진 정원 입구에서 남편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의 미소는 한여름의 태양보다 밝았고 순수했다. 나는 한 손을 들어 흔들어줬다. 그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허둥지둥 하녀가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새하얀 솜뭉치 하나와 검은 솜뭉치 하나였다. 살아있는 생명체인지 꿈틀거리며 삐약거리는 소리를 냈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솜뭉치들을 품에 안고 내게 다가왔다. 그늘진 나무 아래, 바로 내 앞에서 남편이 멈췄다. 나는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다.
“부인, 부인께서는 고양이랑 강아지 중에서 뭐가 좋으세요?”
남편이 은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반짝이는 진한 금발과 달아오른 복숭아 빛 뺨. 앙증맞은 입술에 곧은 콧날, 부드러워 보이는 얼굴선까지. 내 남편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귀여웠다.
남편은 품에 새끼 고양이와 새끼 강아지 한 마리씩 품에 안고 내게 물었다. 그는 태양을 등지고 있었기에 눈이 부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남편은 화들짝 놀랐다. 내 손에 책이 들린 것을 보자 그의 은색 눈은 놀란 듯이 커졌다. 그리고,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이며 내 눈치를 봤다.
“남편님, 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어요.”
“하, 하지만 부인. 제가 부인의 독서를 방해했잖아요.”
그가 소심하게 대답했다. 제국의 황태자임에도 불구하고 내 남편은 소심하고 과할정도로 타인의 눈치를 봤다. 행동 하나 하나에 조심을 하며 그는 주변 사람을 두려워했다. 정확히는 상처를 입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내 남편이 제국의 황태자여도 한낱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이기 때문이다.
“괜찮아, 지그프리트.”
나는 두려움으로 움츠려든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 안심시켰다. 남편은 내가 괜찮다고 하자, 하얗게 질린 얼굴색이 돌아왔다. 나는 내 남편이 너무나 안쓰러워 껴안아줬다. 그는 말없이 내 위로를 받았다.
남편은 얼굴을 붉히며 내 품에서 벗어났다. 남편은 수줍게 고양이와 강아지를 내게 건내며 물었다. 새하얀 고양이는 푸른 눈동자를 지닌 붙임성 좋은 순한 인상처럼 보였다. 핑크빛 혀를 내밀며 우아하게 뻗은 몸을 그루밍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검은색 강아지는 노란색 눈동자를 가졌다. 눈매가 사납게 생겨 한 성격을 할 것처럼 보이나 쉬지 않고 흔들리는 꼬리는 강아지가 기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글쎄. 나는 둘 다 좋은데요.”
나는 한 손으로 턱을 쓸며 고민하는 척 말했다. 내 옆에 앉은 남편이 긴장한 듯 꿀꺽 침을 삼켰다. 아이는 초조한 모습으로 나와 귀여운 동물들을 번갈아봤다. 남편은 확실히 무언가 불안해하고 있었다.
지그프리트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제국의 하나뿐인 후계자임에도 불구하고 황제와 황후는 그를 멀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후는 지그프리트를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부모와 유모, 그리고 수많은 대신들의 온기 대신 이 아이는 맹목적으로 나 하나만을 올려다봤다. 지그프리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선택해줄거라는 확답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저는 이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남편이 더 좋아요.”
“정말요?”
남편의 얼굴은 활짝 폈다. 아이는 정오의 태양보다 밝게 웃었다. 곱게 접힌 은색 눈은 기쁨에 차 있었다.
“정말이지요. 부인이 남편에게 거짓말 하는 거 본 적 있나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내 말에 동의했다. 남편은 나를 좋아한다. 나도 그런 남편을 좋아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갖는 감정은 이성적인 성애가 아니지만 한 가족, 그 이상 세상에서 서로를 유일한 존재로 인식하는 소중한 감정이었다.
아이는 확신을 받자 기쁜지 웃음을 터트리며 내 품에 안겼다. 아이는 익숙하게 내 품에 들어왔다. 벌써 그와 공식적으로 부부가 된 지 오 년이 되었다.
‘재앙의 별’ 아래 태어나 상처투성이의 불행한 아이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여전히 안쓰러울 정도로 과하게 주위의 눈치를 살피는 습관이 남아있었지만 그림자 없이 밝게 자랐다.
처음 만났을 때 난폭하고 폭력적인 성향은 많이 사라졌다. 이게 바로 교육의 힘이었다. 혀 짧은 소리로 살벌하게 ‘죽을래?’라고 물어보던 아이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이제는 작은 생체기 하나에 울먹이며 마음 여리 아이가 되었다.
남편인 지그프리트는 유독 나를 잘 따랐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그프리트 옆에 가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나는 ‘재앙의 별’의 효과를 상충시키는 ‘행운의 별’의 가호를 받고 있으니깐.
“부인, 저는 부인이 정말로 좋아요.”
지그프리트가 내 품에 기대며 말했다. 나는 아이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저도 남편이 좋아요.”
아이는 어둠 없이 자랄 것이다. 그리고 ‘재앙의 별’의 운명을 내가 막을 것이다. 다른 건 다 괜찮고 내가 말도 안 되는 이 소꿉놀이에 동참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지그프리트를 교화해 성군으로 만들기. 황태자비가 되는 계약서를 작성을 하기 앞서 나는 수명을 대가로 예지능력을 사용했다.
그 미래에 나는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지그프리트도 있었다. 황제가 된 지그프리트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황좌에 앉아 웃고 있었다. 나는 단상 아래 무릎을 꿇고 울부짖고 있었다. 지그프리트은, 폭군이 될 미래를 갖고 있었다. 재앙이 될 운명에서 폭군이라니.
“부인.”
지그프리트가 내 턱에 걸린 푸른 색 리본을 살짝 잡아 당겼다. 리본은 모자랑 연결이 되어있어 나는 고개 채 움직였다. 지그프리트는 살짝 몸을 들어 내 뺨에 쪽 입을 맞췄다. 부들거리고 다정한 입맞춤이었다.
아이는 얼굴을 붉히며 다시 내 품에 안겼다. 나는 아이를 마주 껴안았다. 미래에서 본 운명과 현재 아이의 모습에 괴리감이 있었다.
저리도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폭군이 되다니!
나는 미래를 바꿀 것이다.
****
멸망의 별 아래, 제국의 황태자인 지그프리트가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크게 논란이 되었다. 제국을 수호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야 하는 황태자가 멸망의 별의 가호를 받다니. 황제와 황후는 한낱 미신이라며 이를 믿지 않았다. 사제들도 괜찮을 거라며 축복을 내리기만 했다.
황태자가 태어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아, 멸망의 별의 가호 아래 제국에는 재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풍요로운 곡식의 저장소인 남부에는 알 수 없는 병충해가, 여름에는 눈이 오지 않았던 북부에는 폭설이 내렸다.
황제와 황후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이 둘은 제국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했으나, 날이 갈수록 제국의 상태는 처참해졌다. 마침내 황제와 황후는 신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간절한 기도 끝에, 신전은 해결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황태자의 혼인이었다.
정확히는, 멸망의 별과 대척하는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난 아이를 찾아 멸망의 기운을 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었다. 그러나 멸망의 별 모지 않게 행운의 별의 가호를 받은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둘 다 천 년에 한 번 나타나는 별이었기 때문이다.
대신들은 황태자비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아무리 제국을 위해서지만 근본도 모르는 여인을 황태자비로 앉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운의 별의 가호를 받은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모두 허탕으로 돌아갔다. 초조해진 황제와 황후는 비밀리에 사제에게 황태자비를 찾아 달라 요청했다.
사제들은 비밀리에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난 사람을 찾는 여정을 떠났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더욱 초조해진 황제와 황후는 황태자비의 조건을 없앴다. 평민 이상의 신분, 10세 미만, 여성. 이 세 가지 조건을 없애 신분의 귀천, 남녀 성별 그리고 연령의 제안 없앴다.
공식적으로 황태자비 자리에 앉히고 첩을 들이면 되었다. 황제와 황후는 누구든 상관없으니 제발 황태자와 제국을 구해줄 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마침내, 사제들은 황태자비를 찾아냈다. 황태자가 지닌 멸망의 기운을 행운의 축복으로 상쇄시켜줄 자를.
다행히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니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노예나 미천한 신분을 지니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와 황후는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황태자비를 찾은 사제에게 큰 포상을 내렸고 사람을 불러 황태자비를 데려오라 명령을 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황태자비를 본 황제와 황후는 머리를 짚었다. 그녀는 이종족의 피가 섞인 백년 넘게 산 요정족 혼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