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10월 10일
“들어오세요.”
회장이 말했다.
로봇이 문을 열고 현관으로 들어섰다. 그것은 약간 어색하지만, 별 문제없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서는 회장이 소파에 앉아 TV에서 나오는 예능 방송을 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회장님을 보살펴드리게 된 1호 로봇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저번의 그 로봇이군요. 반갑습니다.”
회장이 정중하게 답변했다.
“필요하다면 바로 지시를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회장은 일단 이주영 이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막상 그것을 만나게 되자 다소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어차피 청소 같은 건 따로 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무슨 일을 시켜야 할까.
“커피 좀 타 줄래요?”
회장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로봇은 커피를 타 왔다. 회장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TV만 계속해서 볼 뿐이었다.
회장의 외모는 그 나이 치고는 젊어 보였지만, 한편으로 거대 기업의 수장 치고는 상당히 유약해 보였다. 마른 체형이다 보니 누가 회장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면 고시생처럼 보일 정도였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지속된 투병 생활로 인해, 그의 주변에서는 무척이나 어두운 분위기가 풍겼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주방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1호 말고 다른 이름은 없나요?”
회장이 물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혹시 제 이름을 새로 지어 주시겠습니까?”
로봇이 소파에 앉았다. 구부정한 회장과는 달리 허리를 꼿꼿이 편 상태였다. 그것의 눈은 회장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낫겠네요. 1호라고 부르는 건 뭔가 어색하잖아요. 음......서지혜라고 불러도 될까요?”
“서지혜, 좋은 이름 같습니다. 이름의 지혜가 사물이나 사건을 적절하게 판단하고 처리한다는 의미가 맞습니까?”
로봇의 동공이 살짝 커졌다.
“그래요. 그게 좋겠어요.”
회장은 커피를 조금 마시고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로봇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정말 사람 같네. 신기하다니까.”
회장이 무의식중에 속마음을 뱉었다. 그는 막상 말 해놓고는 다소 쑥스러운 듯 커피를 계속 들이켰다.
“제가 예쁘단 말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회장은 로봇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 사이에 몇 초 간의 침묵이 흐르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웃었다.
“죄송합니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한 것 같습니다.”
“아니, 괜찮아요. 혹시 불쾌한 골짜기라고 알아요?”
“네, 컴퓨터 그래픽이나 인형이 사람과 어설프게 비슷하게 생기면……더 혐오스럽다고 알고 있습니다.”
“생긴 것 뿐만이 아니에요. 불쾌한 골짜기는 행동에도 적용되거든요. 사람처럼 생겨도 뭔가 어설프게 행동하면 무서운 법인데…...지혜 씨는 그런 게 비교적 덜해요. 처음 실험실에서 봤을 때는 뭔가 좀 어색해 보였는데, 지금은 되게 편하게 느껴져요. 그냥 내 눈이 이상한 걸지도 모르지만......단순히 예쁘다는 게 아니에요. 사람 같다는 말은, 그러니까, 지혜 씨는 어쩌면 스스로 생각 같은 걸 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얘깁니다.”
회장은 괜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약간 걱정이 되었다. 로봇에게는 감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자신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걱정에 부응이라도 하듯, 로봇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빈 컵을 씻어 제자리에 놓았다.
로봇은 지정 받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회장은 그것에게 약간의 관심이 생겼다.
2028년 10월 15일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회장님.”
로봇이 거실에서 공손히 인사를 했다. 회장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벌써 오전 10시가 넘었다. 진통제 때문인지 10시간이 넘게 잤는데도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너무 안 일어난다 싶으면 깨우셔도 됩니다. 의사들도 너무 오래 자면 오히려 안 좋다고 했거든요.”
회장은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는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켰다.
정치인들의 무의미한 싸움, 다른 대기업 회장의 탈세, 실업자가 벌인 살인사건……
늘 똑같은 뉴스뿐이었다. 과거의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뉴스 외에는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뉴스를 본다 해도 단지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라는 점에만 관심을 가질 뿐, 기사의 내용은 읽지 않았다. 어차피 전부 거짓말일 테니까.
그런데 일을 그만두고 환자 신세가 되고 나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뉴스에 달린 댓글을 읽는 것도 재밌었다. 왜 사람들은 저런 바보같은 생각을 할까? 왜 사람들은 별 이유 없이 서로를 죽이는 걸까? 바보들의 오케스트라를 보고 있자니 자신이 왜 종종 경영에 실패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회장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현명할 것이라 생각하고 제품 전략을 짜고 인사 시스템을 정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수호그룹의 직원이라 할 지라도, 그저 운 좋게 문명의 혜택을 입었을 뿐인 야만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식사 준비를 하겠습니다. 국수와 샐러드 중 어느 걸 드시겠습니까?”
로봇이 어느새 앞치마를 두른 채 회장 앞에 섰다.
“요리도 할 줄 아세요?”
“기본적인 기능 중 하나입니다.”
회장은 잠깐 고민하더니 국수를 먹기로 했다. 그가 뉴스를 마저 보는 사이, 로봇이 국수 한 그릇을 회장 앞에 가져다 놓았다.
“멸치와 새우 육수로 맛을 낸 국수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회장님.”
회장은 먼저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살짝 얼큰하면서도 은은한 해산물의 향기가 났다.
“오, 이거 맛있네요. 직접 재료를 일일이 손질한 거에요?”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진 못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완성된 재료를 시켜서 끓인 것일 뿐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잘했어요. 로봇치곤 대단하네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 이후 회장은 아무 말 없이 국수를 먹었다. 로봇은 그동안 바른 자세로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회장은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저기, 서지혜 씨, 계속 거기 서 있지 않아도 됩니다.”
“아, 죄송합니다. 다 드실 때까지 주방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로봇은 주방으로 돌아갔다. 회장은 잠시 태블릿을 들어 다른 뉴스를 봤다.
<정재현 회장의 투병, 후계자는 이미 결정?>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회장은 자신이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그 기사를 확인했다.
<정재현 회장의 투병, 후계자는 이미 결정?>
수호그룹의 정재현 회장(41)이 희귀병인 분해 증후군에 걸려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정 회장은 회사 경영도 그만 두고 투병에 집중했으나, 병의 차도가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의 가족이 전혀 사망했고 결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가 사망할 경우 누구에게 재산이 상속될지가 세간의 관심사다.
일단 법적으로 그와 가장 가까운 친척은 사촌인 하늘대학교 정윤호 교수이지만, 그는 언론을 통해 자신은 그의 유산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여러 번 밝혔다. 만약 이대로 정재현 회장이 사망할 경우, 그가 보유한 재산은 전액 국고로 환수된다. 이는 한국 경제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로, 만약 정말로 실현된다면 정부는 한 번에 30조원에 달하는 주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한편 유산 상속자로 수호그룹의 전무인 김학성 전무(55)가 거론되기도 한다. 그는 선대 회장 시절부터 수호그룹에 몸담아온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족이 아닌 사람이 수십조원의 재산을 상속받는 경우 역시 유래가 없던 일이다.
회장이 어느 쪽을 택하든 논란이 일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차후 수호그룹의 행방이 어떻게 될지 다들 주목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식도 아닌 사람한테 주식을 물려주는 건 아닌 것 같다. 국고로 환수시켜야 한다
-정부가 하는 거 못 봤냐? 보나마나 자기 잇속만 챙기는 국회의원 새끼들이 이 기회에 한 몫 챙기려고 달려들겠지. 꾸준히 회사에서 일해온 임원한테 주는 게 맞다
-정부 욕하는 것들은 다 불평불만만 가득한 놈들이지. 세금으로 거둔 다음 올바른 일에 쓰는 게 맞다
-ㄴ노답 인생. 얼마나 꼰대에 무능하면 자기 인생이랑 정부를 동일시하냐
-ㄴ무능한 건 너지. 우리 같이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너처럼 정부 욕하면서 인생 낭비하지 않는다.
-그나저나 회장새끼는 고자인듯. 그 돈을 가지고 연애 한 번 못해봤다는 게 말이 되냐
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중이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데 인생을 낭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그는 아직 누구에게 주식을 물려줄지 결정하지 못한 것이었다.
현재 기준으로 약 30조원, 수호그룹 전체 주식의 약 28%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상속세를 제외한다고 가정해도, 누구든지 간에 그 돈을 받는 사람은 한국 최고 수준의 부자가 될 것이 분명했다.
김학성 전무, 키 190cm의 장신에 온몸에 근육이 붙은 상당한 거구였던 그 남자는, 처음 수호그룹에 입사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회사를 위해 일해 왔다. 그에게 있어 휴가나 취미생활, 가족은 회사의 성공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일이었다. 수호그룹의 성공에 기여한 사람을 10명만 뽑는다면, 누가 선정하더라도 그는 분명 열 명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회장은 자신이 병에 걸려 경영을 그만둔 이후로 김 전무가 자신이 아끼던 사람들을 한직으로 밀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는데, 아파서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없었거니와, 이제까지 김 전무가 이룬 성과를 무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산 문제는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그 재산은 증조할아버지 시절부터 모아온 돈이었고, 쉽게 넘겨줄 만한 액수도 아니었다.
김 전무 외에도 그가 점찍어둔 사람은 몇몇 있었지만, 그들 역시 수호그룹 전체를 이끌어 가기에 적합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재산을 분할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심각한 수준의 분쟁이 벌어진 끝에 회사가 산산조각 날지도 몰랐다. 죽은 회장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기업에는 민주주의보다는 독재가 더 어울렸다.
그렇다면 정부에게 줘야 하는가? 이 역시도 답하기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분명 회장의 성공은 회장과 직원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원해준 정부의 덕도 있었다. 하지만 수호그룹은 꼬박꼬박 세금을 내 왔다. 충분히 대가를 치룬 셈이다. 무엇보다 갑자기 거액의 재산이 정부에 귀속된다면, 분명 거기에 빨대를 꼽으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벌써부터 몇몇 의원들은 회장의 재산으로 범죄자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소리를 했다. 그는 이쯤 되면 모든 사람들이 혐오스러워 질 지경이었다.
“회장님?”
정부가 아니라면 자체 재단을 만들어 기부하는 건 어떨까? 회장은 미국의 몇몇 부자들이 자체 재단에 전 재산을 기부한 뒤 관리인을 둬 경영권이 유지될 수 있게끔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회장님?”
그제서야 회장은 로봇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다 드셨으면 설거지 하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회장은 멀리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는 로봇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잊고 있었다. 그의 집에 누군가가 계속 머무르고 있는 것은 성인이 된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 저택에 살고부터는 종종 청소를 담당하는 가정부가 집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자신의 일이 끝나면 돌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처음 비서가 그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로봇을 집에 들여놓는 것을 제안했을 때는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었다. 만약 서지혜가 로봇이 아닌 인간이었다면 아마 그는 거절했을 것이다. 지금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것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이기 때문에, 회장은 서지혜를 집으로 들여와도 좋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로봇이 아니었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했다. 만약 그것이 인간이라면......과연 진심으로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줄 수 있을 것인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겉으로는 아부를 떨면서 뒤에서 날 비난할 것인가? 이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가 않았다. 그것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회장에게 진심을 다할 수 있었다.
그가 의사가 알려준 대로 몇 가지 간단한 운동을 하는 사이, 그것이 정장을 차려 입고 회장 앞으로 다가왔다.
“회장님, 죄송한데 오늘은 잠시 집에서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요?”
“정기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몇 시간 정도 걸리는데, 담당자를 집으로 부르는 것보단 제가 가는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아, 그렇겠네요. 다녀오세요.”
로봇이 신발을 신었다. 그것의 한쪽 손에는 보조 부품이 담긴 가방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저기 회장님, 그리고……”
로봇이 문을 나가다 말고 회장을 불렀다.”
“네?”
“회장님께서는 제 주인이시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그래도 될까?”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회장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다.
로봇이 나가게 되니 회장의 집은 언제나처럼 조용해졌다. 회장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편안해야 했다. 이제까지,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는 이 정적이 어딘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그는 나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