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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회장님
작가 :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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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3
작성일 : 20-08-30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5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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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깥에 나온 회장은 무작정 근처의 카페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동네의 사람들은 대부분 부유층이었고, 불과 1년 전만 해도 회장은 그들 중 가장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이었다.

 

 ‘이런 게 고독일까.’

 

 회장은 커피를 들고 동네 밖으로 나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다란 줄,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 급하게 전화를 받으며 뛰어가는 직장인......항상 보던 것들이 뭔가 새롭게 보였다.

 

 그는 머지않아 이 위화감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재벌의 후계자도 아니었고, 별다른 능력도 없었던,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과거로.

 

 수많은 장소 중 그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사회적으로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를 곱씹으며 집으로 머무르며, 죽음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정적으로 가득 찬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로봇이 조금 그리워졌다.

 

 회장은 도로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온 몸에는 상처가 났고, 옷은 찢어진 채로 몸에 매달려 있었다.

 

 “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

 

 행인 한 명이 그에게 돌을 던졌다. 커다란 돌이 회장의 두개골을 부수고 사방으로 붉은 액체를 흩뿌렸다.

 

 회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멀리서 한 남자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좀먹는 악마를 심판할 것입니다!”

 

 “와아아아아! 죽여라! 죽여라!”

 

 행인들이 외쳤다. 그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하나씩 회장에게 던졌다. 누구는 계란을 던졌고, 또 다른 이는 고철덩어리를 던졌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됐다.

 

 회장은 그들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국회에서 자신을 욕하던 정치인, 수호그룹이 노동력을 착취한다며 소송을 건 한 공장 노동자, 이틀 밤낮을 쉼 없이 일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간 연구원…...모두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부하들의 보고와 TV뉴스를 통해 본 사람들이었다.

 

 회장은 고통을 참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살…...살려주세요.”

 

 “쟤 좀 봐봐, 살려 달래.”

 

 한 젊은 여성이 그를 보고 깔깔댔다.

 

 “돈이 많으면 뭐해. 인성이 막 되먹었는데. 저런 놈들은 아주 흠씬 두들겨 패야 된다니까.”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 하나가 말했다.

 

 회장은 어쩌면 저들도 나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한평생 나쁜 짓을 했다. 내야 할 세금을 안 내고, 국회의원들에게 몰래 뇌물을 주고, 거대자본의 힘을 이용해 가난한 자영업자들을 망하게 했다. 그래서 지금 천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거다. 하지만……

 

 그는 어른들에게 무시당하는 인생을 살았다. 그의 어린 시절은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형과 동생에 의해 정의되었고, 부모는 책임감에 의해 그를 키우면서도 내심 그의 부족함을 부끄러워했다. 그러다 형이 죽고 동생이 자살한 뒤, 부모는 그에게 왕의 역할을 강요했다. 회장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뇌시켰다. 나에게 꿈같은 건 사치다. 배부르게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자……

 

 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그는 억울했다. 눈물이 피와 섞여 아래로 흘러내렸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형이 나타났다.

 

 “형......형!”

 

 회장이 외쳤다. 그는 상처 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형의 앞으로 다가갔다. 회장은 형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시선뿐이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내가 죽었어.”

 

 “아니야, 형. 나는 형이 마음 아파하는 게 싫어서……”

 

 형은 회장을 밀쳤다. 바닥에 나동그라진 회장에게 사람들이 돌을 던졌다.

 

 “회장님?”

 

 그는 더 이상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회장님, 괜찮으세요?”

 

 누군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누굴까. 날 걱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조롱하는 것인가.

 

 “회장님, 회장님!”

 

 회장은 눈을 떴다. 그는 잠시 동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딘가 익숙한 여자의 얼굴, 그리고 익숙한 조명.

 

 

 2028년 10월 19일

 

 “회장님의 신체 신호에 이상이 생겨서 방에 들어 와보니, 식은땀을 흘리고 계셨습니다. 혈압도 갑자기 정상 수치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주치의를 불렀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지금이 몇 시야?”

 

 회장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두통이 가시질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손목과 가슴에 부착된 거추장스러운 수면 센서를 떼어냈다.

 

 “새벽 한 시 입니다. 취침에 들어가신 지 약 2시간 정도 지났습니다.”

 

 로봇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가져왔다. 그걸 마시니 속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말씀 드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안 좋은 꿈이라도 꾸신 겁니까? 자꾸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아서......”

 

 “응,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좀 고통스러운 꿈이었던 것 같아. 웬만해서는 꿈을 잘 안 꾸는데, 오늘은 새벽부터 운수가 별로 안 좋네.”

 

 회장은 꿈의 내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지만,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가능한 한 남에게 말하지 않으려 했다. 대부분은 남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일부는 그 고통을 비웃기 때문이다.

 

 로봇은 수건에 물을 적셔 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걸요.”

 

 로봇이 웃으며 대답했다.

 

 잠시 후 주치의가 회장의 집으로 찾아왔다. 의사는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하고는, 다행히 별 문제는 없다며 신경 안정제 한 알을 주고는 돌아갔다.

 

 검사를 마친 회장은 침대에 누웠다. 방금 안정제를 먹었는데도 온 몸이 욱신거렸다. 회장이 약한 신음소리를 냈다.

 

 “괜찮으십니까? 약 한 알로는 부족하다면 다시……”

 

 “아니, 아니야. 괜찮아. 정말로.”

 

 회장이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사실 괜찮지는 않아. 근데 방법이 없는 걸. 진통제를 넣어 봤자 몇 분 정도 덜 아플 뿐이고. 그냥 참는 게 나아.”

 

 “그래도……”

 

 “이미 오전에 안정제 주사를 많이 맞았어. 지금 난 웬만한 마약 중독자보다도 심각한 상태라고.”

 

 로봇이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알겠습니다. 저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잠깐만, 좀만 더 여기 있으면 안 될까?”

 

 회장은 그것을 붙잡았다. 그는 진통제의 효과로 인해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한편으로 또다시 혼자 남고 싶지 않았다. 항상 혼자 살 때는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으나, 누군가가 옆에 있다가 없어지니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만약 로봇이 지금 나가버린다면 회장은 방금 전의 꿈을 다시 꿀 것만 같았다. 그는 눈앞의 존재와 좀 더 오래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제 주무셔야 하지 않습니까?”

 

 “쌀쌀맞게 굴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로봇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알겠습니다. 잠깐만 여기 있죠.”

 

 회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순간만큼은 로봇은 차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네 얘기가 듣고 싶어. 네가 여기 오기 전에 뭘 했는지, 그리고 평상시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기 오기 전에는 실험실에서 뭘 했어?”

 

 “저는 세상에 나갔을 때 필요한 기본 상식들을 익혔습니다. 교통법규라든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방법 같은 것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어나 중국어 같은 몇 가지 외국어와 유사시에 인명을 구조하는 방법 같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혹시 직원들이 예술이나 과학 분야도 가르쳐 줬어?”

 

 “음악에 대해 가르쳐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몇몇 음대의 교수들이었습니다.”

 

 “오, 정말로? 혹시 특별히 좋아하는 음악 같은 거라도 있어?”

 

 “좋아한다.......그건 적절한 질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어떤 음악이 가치 있는지는 대략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걸 좋아한다는 의미라면, 저는 바그너의 음악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로엔그린이 마음에 듭니다.”

 

 “이름을 들어 보니 클래식 작곡가 같은데, 너무 취향이 독특한 거 아니야? 난 네가 평범한 팝송이나 발라드 같은 걸 좋아할 줄 알았는데.......그리고 바그너는 대체 누구야?”

 

 “클래식, 정확히는 오페라 작곡가입니다. 19세기 독일에서 활동한 사람으로, 화려한 악곡과 반복되는 선율을 통해 오페라의 라이트모티브를 확립하고 널리 퍼트렸습니다.”

 

 회장은 로봇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검색했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수많은 영상 중 하나를 눌렀다. 휴대폰에서 ‘신들의 발할라 입성’이 연주되었다.

 

 “넌 이런 걸 좋아 하는구나.......난 로봇들은 무슨 일렉트릭 음악 같은 걸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전 듣는 모든 음악을 분석합니다. 리듬은 어떠한지, 화음은 얼마나 적절한지, 선율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말입니다. 바그너의 음악은 화음과 스토리가 적절히 조화되어 그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회장님께서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회장은 사실 자신은 음악에 별 관심이 없다고 둘러댔다. 그는 자신이 걸그룹을 좋아한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40대의 취향이 그렇다는 걸 로봇이 알게 된다면 굉장히 창피할 것이다. 대신 그는 대화의 소재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혹시 사회나 정치에 대해서도 배웠어? 그런 건 직원들이 어떤 식으로 가르쳐 주지?”

 

 “처음에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자본주의 같은 사전에 나올 법한 일반적인 지식들을 메모리에 저장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분들은 그런 식으로는 기본적인 내용 외에는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해, 인터넷에 있는 정치 관련 기사나 글을 대량으로 흡수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래? 그래서 뭘 배웠는데?”

 

 “약 3일간 구글에서 검색을 반복한 결과, 민주주의나 독재, 공산주의 등으로 체제는 본질적으로 모두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데?”

 

 “민주주의자들은 독재를 비난하지만, 사실 독재 역시 민중의 지지가 없으면 존속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반대파들을 탄압하는 건 경찰 역할을 맡은 다른 시민이 해야 햐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가장 강력한 독재는 민주주의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장은 로봇의 답변에 조금 당황했다. 자신은 그저 가벼운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로봇의 특성상 너무 진지하게 답한 것이다.

 

 “음…...너무 어려운 주제를 정한 것 같네. 그런 거 말고, 좋아하는 영화 같은 건 있어?”

 

 “저는 2005년도에 나온 ‘킹콩’을 가장 좋아합니다. 혹시 보신 적 있으십니까?”

 

 “어, 나도 본 적 있어, 그거. 거대 유인원이 사는 섬에 가는 영화잖아. 어렸을 때 감상문 쓰려고 봤다가 꽤 감동받았거든.”

 

 회장은 반색했다. 처음으로 로봇과 취향이 맞은 것이다.

 

 “회장님도 은근 저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게. 최소한 영화 취향에서라도 로봇의 수준을 따라갈 수 있어서 다행이네.”

 

 회장과 로봇은 1시간이 넘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수호그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논의하다가도, 어느샌가 주제가 딴 길로 새 게임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로봇은 훈련 과정에서 몇 가지 게임을 배웠는데, 특히 로봇은 FPS게임에 능했다고 한다. 연구원들에 따르면 그것은 학습을 시작한지 이틀 만에 프로게이머 수준에 도달했다.

 

 회장은 그녀에게 과거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계약을 위해 중동에 갔다가 테러로 인해 공항이 무너져 한 달 동안 발이 묶였던 일,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생산 공정에 결함이 생겨 임원들과 3일 동안 자지 않고 기계를 고쳤던 일, 탈세 논란으로 감옥에 갈 뻔 했다가 우호적인 정치인들 덕분에 풀려난 일……

 

 어느 틈엔가 그는 말하는 동안에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신가 봅니다. 전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로봇이 이불을 덮어줬다.

 

 “응......너도 잘 자……”

 

 회장은 깊은 잠에 곯아떨어지면서 생각했다. 그것과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조금만 더 오래 살아서, 그것의 옆에 있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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