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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회장님
작가 :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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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4
작성일 : 20-09-01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6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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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년 10월 21일

 

 

 정 회장과 로봇은 함께 마을 안의 숲에서 산책을 했다. 로봇은 회장의 왼쪽 팔을 살며시 잡은 채 그를 부축하며 걸었다. 그들의 양 옆으로 수많은 나무들이 늘어져 있었고, 그 나무들의 잎은 모두 빨갛게 물들었다.

 

 “이 숲은 정말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마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 같아요. 단지 내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자연이란 건 환상이야. 엄밀히 말하면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고, 인간이 만든 것 역시 자연의 일부니까.”

 

 회장이 말했다.

 

 “이 숲도 마찬가지지. 가만히 놔두면 온갖 오물과 쓰레기, 벌레들로 가득 찰 거야. 우리가 보고 있는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인간들이 간섭이 있어야 하지.”

 

 “그렇군요. 새로운 지식을 깨달았습니다.”

 

 로봇이 살며시 웃었다. 바람이 불어 수많은 낙엽이 떨어졌다. 가을바람이 둘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여길 둘이서 걸어보는 건 처음이야.”

 

 “정말입니까?”

 

 “그래. 모처럼 밖에 나왔으니, 조금만 분위기를 잡아도 될까?”

 

 회장이 로봇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

 

 “기분이 이상해. 너랑 만난 건 한 달도 안 됐는데, 마치 오랫동안 같이 산 사람처럼 느껴져.”

 

 “가족처럼 말입니까?”

 

 “그래.”

 

 “회장님의 유일한 가족이라니, 영광입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걸었다. 어느샌가 둘은 숲의 반환점을 돌았다.

 

 “그래서 말인데,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이건 정답이 없는 문제야.”

 

 “네, 말씀하세요.”

 

 “내가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줘야 할까?”

 

 회장이 걸음을 멈추고 로봇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

 

 “그러면 결국 상속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 회장 자리에 계신 겁니까?”

 

 로봇이 물었다.

 

 “그래. 내 재산은 곧 수호그룹의 지분이고, 지분은 곧 경영권이지. 내가 제대로 후계자를 결정하지 않고서 회장직을 그만둔다면, 더러운 하이에나들이 내 눈앞에서 회사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거야. 문제는 누구에게 줄 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거야. 많은 사람들은 법에 따라 내 재산을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고 하는데, 너도 그렇게 생각해?”

 

 “정부가 전문경영인보다 회사 운영을 더 잘할 수 있다면, 그게 좋겠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정치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회사 안의 사람들 중 하나에게 물려주려고 하는데……결정하기가 무척 어려워. 사람들은 내가 이미 후계자를 결정했고 그 사실을 꽁꽁 숨기고 있다고 믿는데, 사실 난 되게 허술한 사람이라고.”

 

 “원래 사람이란 그런 법입니다. 전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 보여서 좋습니다.”

 

 로봇의 격려에 회장이 활짝 웃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언제나 겉으로 보이는 회장의 화려한 모습만을 좋아했을 뿐, 약간이라도 허술한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달려와 물어뜯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로봇은 달랐다. 그는 어쩌면 이 로봇이 정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라면 어떻게 할거야? 네가 나라면, 이 많은 돈을 누구에게 물려주고 싶어?”

 

 회장이 물었다.

 

 “솔직히 저도 잘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몇 명 있기는 하지. 확실하게 결정한 건 아니지만. 그들 모두 회사를 위해 오랫동안 희생해준 사람들이야. 그래서 더욱 고민이 돼. 저마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어.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준 들 부작용이 발생할 거야.”

 

 “가장 중요한 건 회장님 본인의 마음입니다. 한 번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해보십시오.”

 

 “그나마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은 수호전자의 김학성 전무이긴 한데……한 가지 문제가 있어.”

 

 “그게 뭡니까?”

 

 “너무 강압적이야. 모든 분야 하나하나가 다 자기 뜻대로 되어야 속이 풀리지. 내 앞에서는 그래도 좀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내가 죽게 되면 회사 전체를 멋대로 주무르려 들지도 몰라. 기업에서는 민주주의보다 독재가 더 낫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재자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그 기업은 망하고 말 거야.”

 

 “만약 그렇다면 그분에게 재산을 줘서는 안 되겠죠.”

 

 로봇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분이 멋대로 행동할지 아닐지는 후계자가 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면, 적어도 본인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로봇은 매우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회장의 마음을 김 전무 쪽으로 돌리려 했다. 그것은 정교하게 짜인 알고리즘에 따라 회장을 만족시킬 만한 단어들을 선택해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순간에 김 전무를 상속자로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였다. 만약 그랬다간 회장이 로봇의 진의를 의심할 위험이 있었다.

 

 “정말로 그럴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어느샌가 숲을 벗어나 인도를 걷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누구를 선택하든 간에, 그 사람은 회장님의 기대에 반드시 부응할 겁니다.”

 

 마침내 그들은 회장의 저택 앞으로 돌아왔다. 로봇은 아픈 회장을 대신해 집의 대문을 열었다.

 

 “정말로 내가 사라져도 회사는 괜찮을까?”

 

 “네, 그럴 겁니다.”

 

 로봇이 웃으며 말했다.

 

 

 2028년 10월 25일

 

 회장은 로봇과 함께 오랜만에 회사를 방문했다. 웬만해서는 바깥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았지만, 오늘은 매우 중요한 회의가 있던 만큼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로봇의 도움을 받아 회사로 향했다.

 

 회장과 김학성 전무, 이주영 이사를 포함한 그룹의 중역들이 정기 회의를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아마도 이 회의가 회장에게는 회사에서의 마지막 일이 될 터였다. 몇 가지의 형식적인 보고가 지나간 뒤, 홍보팀의 직원 한 명이 그룹의 미래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그는 미래 기술과 국제 정치의 변화, 세대 변화에 따른 직원들의 성향 차이 등을 모두 이해할 수 있어야 수호그룹이 수십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 직원은 수호전자에서 준비 중인 신제품들을 회장에게 소개했다. 회장은 사실상 자신의 손을 떠난 회사에서 만든 물건들에 대한 설명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24시간 자동으로 작동되는 공장 기계, 서지혜를 만든 인공지능 기술, 수호재단에서 진행 중인 편부모가정 지원 등.......

 

 프레젠테이션은 계속해서 이어져, 마침내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다. 그것은 바로 그룹 경영진들의 재배치, 즉 정재현 회장 이후의 그룹의 지도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직원은 이미 각 부서에 새로운 임원들이 배치되었음을 알렸으며, 이제 그룹 전체의 미래를 누가 이끌어갈지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젠테이션의 마지막 부분은 순전히 회장을 향한 메시지였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수호그룹의 차기 총수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 얘기를 오늘 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요.”

 

 회장이 당황한 듯 말했다.

 

 “아무래도 슬슬 후계자를 결정하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주영 이사가 말했다. 다들 굳이 밝히지 않았을 뿐, 처음부터 회의의 목적은 후계자, 정확히는 회장의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에 관한 논의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회장님께서는 자식이 없으십니다. 즉 이대로 사망하실 경우, 회장님의 재산 전액은 국고로 귀속됩니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정치인들이 그룹을 멋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 있는 누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몇몇 임원들이 그의 말에 동의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 누구에게 상속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한 임원이 물었다.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김학성 전무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을 돌보고 있는 로봇, 서지혜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로봇에게 돈을 준다니?”

 

 회의실의 사람들은 저마다 뭐라고 수군거렸다.

 

 “제가 미친 것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그녀 외에 상속자로 더 적합한 사람이 있습니까? 누가 상속자가 되든 간에, 논란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차기 총수가 된다면, 저희 모두에게도 약간씩 권한이 주어지는 겁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이 가만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을 설득하는 게 이 안에서 권력 다툼을 벌이는 것보다는 더 쉬운 일입니다.”

 

 김 전무의 말에 몇몇 임원들이 동의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그건 아니지, 당신들이 수호그룹을 먹으려고 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다 모를 줄 알았습니까?”

 

 한 임원이 직접적으로 전무를 비난했다. 그는 예전부터 김학성 전무의 파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강재욱 상무였다.

 

 “회장님, 단순히 그룹의 총수 자리를 물려주는 거라면 몰라도, 전 재산을 자식도 아닌 사람에게 주는 건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던 일입니다. 분명 반대 여론이 심할 겁니다. 가뜩이나 상속세가 줄어서 빈부격차가 커졌다고 다들 불평하는 상황인데....... 저희가 기름을 붓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여론 얘기가 왜 나옵니까? 결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회장님의 몫이지, 정부나 여론 눈치를 볼 건 없습니다.”

 

 이주영 이사가 그 임원의 말에 다시 반박했다.

 

 “솔직히 말해서 재산은 곧 주식이고, 주식은 곧 의결권입니다. 재산이 분산된다는 건 곧 의결권이 이리저리 나누어진다는 의미고, 그것은 탐욕스러운 정부와 해외의 헤지펀드들이 그룹을 먹으려 든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재산을 김 전무님께 물려준다고 해서 그 재산의 활용 권한까지 전부 물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적절한 형태로 지주회사를 만들어, 회장님의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할 계획입니다. 강 상무님, 상무님께서는 더 나은 계획이 있으십니까? 설마 정치인들의 손에 그룹의 미래를 맡길 생각은 아닌 거겠죠?”

 

 김학성 전무와 그의 부하들은 회장의 답변을 기다렸다. 결국 몇 명이 자신들의 의견에 찬동하는 가와 상관없이 재산의 상속은 오로지 회장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어.......지금 바로 결정하기에는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

 

 회장이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회장님,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회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로봇의 옷깃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겪었던 배신과 무의미한 싸움의 냄새들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회장은 자신이 살아있는 한 권력 투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호흡이 가빠지고 머리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회장님께서는 현재 많이 아프신 상태입니다. 골치 아픈 결정을 재촉해서는 안 됩니다.”

 

 로봇이 입을 열었다. 임원들의 눈이 모두 그것에게 쏠렸다.

 

 “아, 거기 로봇은 신경 끄고 계시죠. 지금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임원이 그것의 발언을 제지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회장님의 안정입니다. 그리고 제 임무이기도 합니다. 부디 그룹의 임원다운 행동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로봇은 전혀 겁먹은 기색 없이 오히려 임원들을 압박했다. 임원들은 더 이상 나서는 것은 어렵다고 느꼈다. 만약 회장이 여기서 기절하기라도 하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김 전무는 이쯤에서 잠시 물러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로봇의 지시를 따르는 게 좋겠습니다. 현재로서는 회장님의 안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 회장님, 혹시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저는 그저……”

 

 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이 상황이 못마땅하던 강 상무가 끼어들었다.

 

 “김 전무님, 그 로봇도 애초에 전무님이 만들라고 시킨 거 아닙니까? 굳이 간호사나 요양보호사가 아닌 로봇을 회장님 옆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로봇을 배치한 건 휘하 직원들의 결정입니다. 만약 회장님께서 불편해 하신다면, 언제라도 로봇을 빼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회장님.”

 

 “전 괜찮아요. 정말로요. 로봇은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

 

 김 전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로봇이 정말로 효과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강 상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회장이 로봇에게, 정확히는 로봇의 주인으로 보이는 김 전무에게 속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홍보팀의 직원이 사태를 수습했다.

 

 “자,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들은 오늘 안으로 참석하지 않은 관련 직원들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임원들은 불편한 인사와 함께 회의실을 나갔다.

 

 “회장님, 다 끝났으니 이제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로봇이 회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응.......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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