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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회장님
작가 :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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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5
작성일 : 20-09-01     조회 : 45     추천 : 0     분량 : 5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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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년 10월 25일

 

 로봇은 저녁으로 간단한 소고기 스튜와 샐러드를 내놓았다. 회장은 그것이 구내식당의 요리사들이 만든 명품 뷔페 음식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 나서 그들은 나란히 앉아 TV를 보았다. TV에서는 바다 속을 탐험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기초 교육 때는 바다가 있다는 것만 들었지 저런 건 보지 못했는데, 세상에는 정말 신기한 곳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바다 속에 가보고 싶었어. 그런데 일 때문에 계속 미뤄지다가, 이젠 영영 못 가게 됐네.”

 

 “슬프네요. 만약 회장님이 건강했다면 같이 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죽고 나면……너는 어떻게 되지?”

 

 회장은 오랫동안 감춰두었던 질문을 했다.

 

 “원칙적으로는 폐기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들어진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곳에 쓰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회장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직원들은 이 로봇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회장 본인도 연구원 중 하나로부터 주인이 사라진 로봇은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작동 기간을 무리해서 늘렸다가 명령 오류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로봇이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그것은 복잡한 기술적 대화도 자유롭게 나눌 수 있었으며,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가 대단하다 느낀 것은, 그 로봇이 자신에게 적절하게 맞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살면서 만난 인간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첫 번째는 자신을 두려워한 나머지 회의시간이나 기자회견에서 적절한 질문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두 번째는 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 뒤에서는 자신을 흉보는 사람들이었다. 회장은 두 부류 모두 좋아하진 않았지만, 겉으로는 싫은 체 한 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로봇은 달랐다. 그것은 분명 스스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생각하는 자들보다 더 사려깊었다.

 

 분명 그것은 아직 완벽한 인간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그것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아직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만약 길거리에 그대로 나선다면 어딘가 이상하다는 시선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어느 틈엔가 회장은 그것을 사람처럼 대우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회사나 사회생활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행복에 집중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설령 그 행복이 꾸며진 가짜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에 회장은 로봇이 파괴되지 않고 계속 살아가기를 원했다. 자신과 같은 돈 많은 사람의 가정부로 일하거나, 필요하다면 현재 회사에서 쓰고 있는 ‘의사 결정 인공지능’을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부탁이 있어.”

 

 회장이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살아줘. 만약 과학자들이 널 폐기한다고 말하면, 예전의 내가 지시했다고 말해. 그러면 죽지 않을 수 있을 거야.”

 

 로봇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지시는 분명 인공지능과 관련된 사내 규칙을 어기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모든 로봇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도록 설계되었지만, 로봇 3원칙을 비롯해 사내 규칙에 위배되는 명령은 거부할 수 있었다.

 

 “회장님, 전 처음부터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인권 같은 걸 적용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내 명령이라도 안 되는 거야?”

 

 “주인의 명령이라도 사규와 로봇 3원칙을 거스르면서까지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은 별 도리가 없었다. 지금의 그는 사규를 바꿀 만한 힘이 없었다.

 

 “그 대신 남은 시간동안 더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로봇의 고백에 회장은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죽음을 길어야 몇 달 앞둔 상황에서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회장은 큰 결심을 했다. 마지막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슬픈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지. 그리고.......

 

 “너도 좀 더 편하게 말해. 살날도 몇 달 안 남았는데 굳이 격식 차릴 필요 있겠어?”

 

 그녀는 회장의 지시에 당황한 듯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 그게.......익숙하지가 않아서요.”

 

 “싫으면 말고. 이제 죽어가는 주인의 명령은 어겨도 된다는 건가?”

 

 회장은 당황한 지혜의 모습이 무척이나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부러 그녀에게 자꾸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면.......반말을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응,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하는데. 거절은 없어. 최소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은 가정부가 아니라 친구로 있어 줘.”

 

 이 경우에는 회장의 명령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로봇은 그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기로 했다.

 

 “음.......그럴까, 네가 좋다면야, 그렇게 해. 친하게 지내.”

 

 “난 친하게 지내자는 말 안했는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아무튼 친하게 지내면 좋잖아.”

 

 그녀의 얼굴이 약간 빨개졌다. 아주 약간의 차이였지만 회장의 눈에는 감정의 변화가 제대로 보였다.

 

 “귀여워, 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녀가 회장의 시선을 피했다.

 

 “이만 충전하러 들어갈게. 잘 자.”

 

 “로봇은 잠을 안 자려나?”

 

 “충전 시간동안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잠자는 것과 비슷한 셈이지.”

 

 “그렇구나. 그러면 너도 잘 자.”

 

 회장은 로봇이 나간 뒤로 한참 동안 문 쪽을 바라보더니, 이내 불을 끄고 잠에 들었다.

 

 

 2028년 10월 27일

 

 임시 보고서

 받는 이 : 이주영 이사

 

 이주영 이사님, 1호의 투입 효과가 생각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장님은 로봇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것 같습니다. 그것을 완전히 사람처럼 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로봇을 자신의 잠재적 연인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에 녹화된 장면에 따르면, 회장님은 1호 로봇의 양산을 허가한다는 내용의 화상회의 외에는(이사님도 이 회의에 참석하셨으니 알 것입니다) 특별히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김학성 전무님이 후계자가 되는 쪽으로 상황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여기에 더해 지속적인 화학적 조치를 통해 회장님의 마음을 움직여보도록 하겠습니다.

 

 

 2028년 11월 3일

 

 회장은 방 안에서 컴퓨터로 자신의 치료 내역을 보고 있었다.

 

 그의 질병인 ‘분해 증후군’은 1000만 명 중 한 명 꼴로 발병한다는 희귀병이자 불치병이었다. 원인 역시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몇몇 의사들의 추측에 따르면 환경오염으로 인해 생긴 신종 질병이라 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유전적 문제로 인해 생긴 병이라 했다. 이 병에 걸리면 적혈구로부터 뇌세포, 간, 대장이 제대로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설령 공급받는다 하더라도 작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겉은 40대 초반이지만, 속은 100살 넘은 노인이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많은 돈을 들여 그의 병을 치료하려 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모였다. 하지만 그들은 병을 고치는 것은 고사하고 정확히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혹시나 일을 쉬면 나아질까 싶어 실무를 김 전무를 비롯한 다른 임원들에게 전부 맡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가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의사들의 그의 몸 안에 끝없이 모르핀을 비롯한 의료용 마약을 집어넣기 때문이었다. 고통과 노화로 인해 죽거나, 아니면 마약 중독으로 인해 죽거나.

 

 “뭘 보고 있어?”

 

 어느 틈엔가 지혜가 회장 곁으로 와 있었다. 그녀는 홍차를 타 왔다. 회장은 홍차의 향을 천천히 음미했다. 라벤더 향기가 났다.

 

 “이건 어디서 난 거야? 향이 좋네.”

 

 “이번에 세리아몰에서 새로 파는 프리미엄 차야. 가장 평가가 좋다길래 한 세트 사봤어.”

 

 “오.......새로운 사장이 일을 잘 하나 보네.”

 

 그는 홍차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 찼다.

 

 “이건 네 치료 기록인거야?”

 

 지혜가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응. 다 의미 없는 일이긴 한데, 뭔가 보고 있으면 투병 생활도 추억이 되는 것 같아서.”

 

 “많이 힘들었겠다……”

 

 그들은 회장이 병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한 달이면 낫는다고 했어. 너무 많이 일한 탓에 몸에 독소가 쌓인 거라고 했었지. 그러다가 토하거나 쓰러지는 날이 계속 늘어나니까, 결국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하필이면 희귀병에 걸렸다는 거야. 치료를 위해 수십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의미가 없었어. 애초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치료제가 만들어지지 않았거든.”

 

 “정말로.......방법이 없는 거야?”

 

 “그래. 내가 죽은 뒤에는 치료제가 나올지도 모르지. 하지만 환자 수가 극히 적은 병을 치료하려는 의사는 거의 없을 거야.”

 

 지혜는 말없이 회장을 안아주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었다.

 

 

 2028년 11월 7일

 

 회장과 그의 가정부는 의사가 허락하는 한에서 이제까지 못해본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그들은 영국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에 가보았고, 지혜의 제안에 따라 클래식 공연을 관람했다. 회장은 아파 보이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썼고, 지혜는 아직까지도 완전히 사람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거리의 사람들 중 그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자는 없었다.

 

 그들은 회장이 유품으로 남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지혜는 어디선가 커다란 도화지를 구해왔고, 둘은 그 도화지에 각각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회장은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한 호랑이 그림을 그렸다. 지혜는 자신의 인식 알고리즘에 따르면 그것은 호랑이보다는 고양이에 가깝다며 놀렸지만, 회장은 꿋꿋하게 그것이 호랑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혜는 날아다니는 새를 그렸다. 얼핏 보면 독수리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비처럼 생긴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은 그 그림을 액자에 넣은 뒤 회장이 죽은 다음에 자선 경매에 내놓기로 했다.

 

 한편 지혜는 종종 회장에게 회사에서 생긴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회사 이야기의 핵심은 보통 김학성 전무를 향한 칭찬이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지만 확실히 그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고, 무엇보다도 그가 없었다면 자신의 탄생에 필요한 자금을 결코 조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룹의 미래에 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뉘앙스의 말을 자주 했다. 원래의 회장이었다면 그녀의 행동을 경계했겠지만, 당시의 그는 완전히 지혜를 신뢰한 나머지, 김 전무에 대한 칭찬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갈수록 쇠락해가는 그의 신체 역시 김 전무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원인이 되었는데, 회장이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지혜는 김학성 전무가 수십 년 전 신입사원 시절 회사를 살리기 위해 했던, 경찰이 흔히 청부살인이라 부르는 영웅적인 행동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회장은 그 말을 듣고는 회사의 미래가 기대된다며 안심하는 표정을 짓곤 했다.

 회장은 예전보다 더 자주 잤다. 8시간, 10시간, 11시간.......회장이 보기에 언젠가는 24시간 내내 잠만 자게 될 터였다. 그는 만약 자신이 죽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조용히 잠을 자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종종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 관한 영상이나 글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덤덤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지만, 다른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이 세상에 남아있기를 원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죽어버리기도 했다.

 

 사신의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는 점점 더 지혜에게 의존했다. 의존증은 점점 더 심해져, 그는 매일같이 그녀와 가족을 이루는 상상을 했다. 만약 조금만 더 몸이 건강했더라면, 그녀에게 청혼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차피 죽음이 확정된 이상, 지금 있는 시간을 더 소중히 보내자고 그는 다짐했지만, 막상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삶에 대한 의지가 자꾸만 더 강해졌다. 그는 차라리 그녀를 몰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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