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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회장님
작가 :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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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 1
작성일 : 20-09-08     조회 : 41     추천 : 0     분량 : 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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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년 11월 29일

 

 앵커 : KBC뉴스 긴급속보입니다. 재계서열 2위 수호그룹의 회장이자 한국 최고의 부자로 알려졌던 정재현 수호전자 CEO가 오늘 새벽 5시경 병원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 네, 저는 지금 정재현 회장의 장례식장에 와 있는데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 회장의 장례식장에 찾아왔습니다.

 

 앵커 : 정재현 회장이 어떻게 사망했는지에 대한 소식은 있습니까?

 

 기자 : 수호그룹 공식 발표에 따르면, 정 회장은 어제 저녁 9시쯤부터 평소 앓고 있던 희귀병인 분해 증후군이 심해지면서 호흡곤란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기 중이던 주치의가 정 회장에게 긴급조치를 시행하고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8시간 만에 결국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 알겠습니다. 이 기자, 지금 현장의 분위기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자 :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한 상태입니다. 오늘 아침부터 여러 기업인들과 박정석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정 회장을 추모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방문했습니다. 정 회장의 사촌인 정윤호 교수는 장례식장을 찾아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수호그룹을 이끌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회장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는 내용의 추도사를 발표했습니다.

 

 한 때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큰 기둥이었던 그가 사망하면서, 한국 산업에 큰 변화가 일어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이지영 기자였습니다.

 

 앵커 :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 경제의 큰 별이 졌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회장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재산이 어떻게 될지가 벌써부터 큰 관심사입니다. 정재현 회장은 수호전자의 CEO직을 맡은 이후로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하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요, 정 회장이 분해 증후군을 앓게 된 이후로는 정 회장이 사망할 시에 그의 재산이 누구에게 상속될지에 대해 상당한 관심이 쏠렸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정 회장은 상속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은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요, 현재 기자회견장에 나가있는 이민준 기자를 불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민준 기자?

 

 기자 : 네, 저는 지금 수호그룹 기자회견장에 나와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전 수호그룹에서는 “유산 상속에 관한 것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라며 추측성 기사를 함부로 내지 말아 달라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수호그룹측은 유언장을 확인하는 대로 그룹 후계자에 대한 발표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주영(수호전자 이사) : 그룹의 임직원 모두가 안정적인 기업 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혹시나 실수로라도 승계 과정에서 범법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 기관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기자 : 정재현 회장은 살아있을 때 재산이 약 30조원에 달하는 한국 최고의 부자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회장의 재산을 그대로 상속하게 될 경우 상속세만 무려 5조원에 달합니다. 원칙적으로 자식이 없는 상태에서 상속인을 결정하지 않고 사망할 경우 그 재산은 국가로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정 회장의 뜻이 밝혀지지 않은 이상 속단하는 것은 이를 것 같습니다.

 

 앵커 : 그렇군요, 아무쪼록 별 탈 없이 승계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회장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서울에서는 추모 집회가……

 

 이주영 이사는 TV를 끄고 와인을 따랐다. 그는 승리를 기념하며 값비싼 술을 들이켰다. 그는 살면서 이토록 기뻤던 적이 없었다.

 

 

 유언장

 

 2028년 11월 20일

 

 작성자 : 정재현

 010-XXXX-XXXX

 서울특별시 XX구 30번로 11 23호

 

 안녕하십니까, 수호그룹의 모든 임직원, 주주,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 여러분, 그동안 정말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습니다. 제가 서른 살 때 AL테크를 시작으로 그룹 회장의 길을 걸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지금 봐도 정말 철없고 어리버리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수호그룹을 재계2위로 끌어올릴 수 있던 것은 모두 임직원 여러분 덕분입니다. 회장으로 있던 동안 힘든 일도 슬픈 일도 많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쩔 수 없이 나쁜 짓도 해야 했지만, 그래도 수호그룹의 리더로 살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임직원 여러분, 제가 없더라도 한결 같이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창의성과 근면 성실함을 통해 수호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앞으로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재벌 기업의 수장으로서,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켜 보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행동을 했던 적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변명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앞으로 수호그룹을 이끌어 나갈 분들은 적어도 저보다는 더 깨끗한 사람이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수호그룹을 응원해주시는 주주 여러분, 제가 사라지면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부디 이익 못지 않게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익과 회사의 존속은 얼핏 보면 다른 문제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두 가지는 모두 같은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제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된 데에는 묵묵히 한국을 지켜낸 여러분의 공로 역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유산 상속에 관한 부분은 무엇보다도 국가의 이익을 생각한 결정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제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들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가사로봇 서지혜에게 다음의 재산을 상속한다.

 

 수호전자 보통주 12500주

 AL테크 보통주 350주

 수호케미컬 보통주 2509주

 세리아몰 보통주 122주

 고려은행 예치금 전액(3,500,250,313,400원)

 

 로봇을 관리할 주 관리자를 3명 선정한다. 육체와 정신을 담당하는 기술자를 주주총회에서 1명씩 선정하고, 수호전자의 CEO가 서지혜의 재산 관리인을 겸한다. 관리인들은 수호그룹 주식 배당금의 일부를 성과급으로 받거나, 자사주 매입 시 주식의 일부를 팔아 가질 수 있다.

 

 관리인들은 서지혜로부터 급여를 받을 때 일차적으로는 국내법에 따르며, 두 번째로는 사내 규정에 따라야 한다. 관리자는 기본적으로 5년을 임기로 하며, 임기는 총 2번 연장할 수 있다. 관리자의 능력이 로봇을 살피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이사회에서 투표를 통해 관리자의 권한을 박탈할 수 있다.

 

 최종 관리인은 자신을 보조해줄 관리인들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으며, 그들은 모두 배터리의 관리나 보안 업데이트 같은, 그녀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일들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지혜가 기업의 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최종적으로 주 관리인 3명이 다수결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단, 그녀를 폐기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행위는 관리인들의 재량으로 실행할 수 없다.

 

 위에 명기되지 않은 기타 재산은 전부 국가에 귀속시킨다.

 

 

 2028년 12월 1일

 

 <충격! 회장의 유언장 공개…로봇에게 재산을 상속한다고?>

 

 안녕하세요~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루나허니TV입니다.

 

 최근 날씨가 참 춥죠? 저도 밖에 나가기가 너무 추워서 하루 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요, 요즘 수호그룹의 회장 정재현의 사망으로 인해 세간이 떠들썩해졌습니다.

 

 <화면에 정재현 회장의 사진이 나타난다.>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던 기업인이 죽으니 저도 가슴이 참 아픕니다.

 

 <대학 졸업생이 가고 싶은 기업 순위표가 나타난다.>

 

 수호전자가 대학생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 1위를 차지했던 만큼 많은 분들도 같은 심정일 텐데요. 그런데 얼마 전 회장의 유언장 공개로 전국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자기 재산을 전부 가정부 역할을 하던 로봇에게 주기로 했기 때문인데요, ‘서지혜’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회사에서 비밀리에 개발하던 돌보미 로봇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복사해온 로봇 사진이 나타난다>

 

 로봇에게 재산을 상속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한편, 법적으로 무생물에게 재산을 상속한다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수호그룹의 임원들이 회장의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유서를 꾸민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 역시 과연 최초로 돈을 가진 로봇이 탄생할지 궁금합니다. 그럼 다음에도 재미있는 소식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재밌게 보셨으면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세요! 이만 루나허니TV였습니다! 안녕~

 

 

 2028년 12월 5일

 

 보내는 이 : 이주영 이사

 받는 이 : 김학성 전무

 

 성공입니다. 일단 회장님이 그 로봇을 상속자로 삼았다는 것은 이걸로 확실해졌습니다. 하지만 역시 정치권의 반발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애초에 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던 일인 만큼, 지나치게 언론의 이목이 쏠렸다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벌써 미국에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인공지능의 원천기술은 미국에서 왔으니 그렇겠죠.

 

 몇몇 사람들이 벌써 수호전자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뭐 숫자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2028년 12월 5일

 

 보내는 이 : 김학성 전무

 받는 이 : 이주영 이사

 

 우선 정말 고생 많았네. 자네들 덕분에 마침내 회사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어.

 

 물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지. 일단 정부와 공화당은 우리 편이 되어줄 거야. 이 날을 위해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에게 돈을 먹여 왔으니까.

 

 다만 역시 노동당 녀석들이 문제야. 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어. 이제부터 우리들은 로봇을 상속자로 인정될 수 있게끔 적절한 로비를 함과 동시에, 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을 만한 사람들이 나머지 두 관리자에 선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

 

 여기에 더해, 로봇의 통제 역시 확실히 해야 해. 결코 우리가 그녀의 주인인 것이 세상에 밝혀져서는 안 되니까 말이야. 뿐만 아니라 해킹의 위협 역시 존재하지. 즉, 우리들은 두 가지의 어려운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거야.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100%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팀을 구성하도록 하게. 내일 회의에서 자세한 내용을 마저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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