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꼭두각시 회장님
작가 :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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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 2
작성일 : 20-09-08     조회 : 43     추천 : 0     분량 : 5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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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년 12월 6일

 

 앵커 :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사망한 고 정재현 수호그룹 회장이 죽기 전 자신의 가사로봇에게 재산을 상속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수호그룹의 긴급 이사회에서는 로봇의 관리자를 누구로 정하느냐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고갔다는데요, 자세한 소식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자 : 오늘 강남구에서 열린 수호그룹의 이사회에서는 회장의 상속 문제에 대한 토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장에서 한때는 관리자의 선정 문제로 인해 고성이 오가기도 했으나, 이후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관리자를 결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현재 관리자로 임명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는 사실상 그룹의 2인자인 김학성 전무, 또는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수호전자에서 근무해온 강재욱 상무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앵커 : 아무래도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권력의 중심부로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경쟁이 치열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누가 관리자가 되느냐 보다 더 궁금한 문제가 있는데요, 로봇이 재산을 상속받는게 가능할까요?

 

 기자 : 아직까지는 그런 선례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확답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선 법적으로는 ‘무생물에게 상속을 해선 안 된다’라는 규제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국민정서상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수도 있고, 국제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이지영 기자였습니다.

 

 앵커 : 정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평화롭게 해결됐으면 좋겠습니다.

 

 

 2028년 12월 7일

 

 보내는 이 : 이주영 이사

 받는 이 : 김학성 전무

 

 어제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무님 말씀대로 권력싸움을 싫어하는 임원들은 회장의 결정을 환영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상당합니다. 이 사람들의 반대를 뚫고 전무님께서 관리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상하셨겠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재산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말이 나오는 중입니다. 이미 노동당에서는 로봇에 대한 상속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며칠 전 몇몇 대학가에서도 무생물의 재산 상속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고 합니다. 물론 상속의 가능 여부는 궁극적으로는 법리적 문제이지만, 아무튼 반발이 심해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희들은 지시대로 전무님을 포함한 3인의 관리자를 뽑는데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언론 문제는 전무님께서 맡아서 해결해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2028년 12월 18일

 

 보내는 이 : 이주영 이사

 받는 이 : 김학성 전무

 

 저번에 예고 드렸던 대로 하드웨어 관리자와 소프트웨어 관리자가 될 후보를 몇 명 정도 뽑아보았습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서지혜를 직접 개발한 사람들 중에 선정하는 것이지만.......문제는 그들 대부분은 원래 수호그룹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아닌, 다른 대학교나 연구소에서 일시적으로 협력해준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사실 그 로봇 자체가 이곳저곳에서 기술을 가져온 뒤 저희가 조립만 한 것인 만큼, 개발자들의 지속적인 협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부문에 경우 처음에는 수호전자 또는 AL테크의 프로젝트 디렉터, 시니어 프로그래머들 중에 선정하려 했으나, 그들 대부분이 실력은 부족한데 권력 욕심은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 관리인을 뽑는다면 분명 전무님께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관리인을 AL테크의 미국 지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서 뽑을 계획입니다.

 

 특히나 저희는 외국인이 그 일을 담당했으면 합니다. 일단 한국말을 잘 모르니 사내정치에는 덜 엮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들 중에서는 과거 휴이넘 컴퍼니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꽤나 있습니다. 서지혜의 정신은 휴이넘 컴퍼니에서 만든 업무평가용 인공지능을 사와서 재설계한 것이니만큼, 실력에 있어서는 그들이 한국인보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하드웨어 담당의 경우 마찬가지로 몇 명의 후보를 뽑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박병헌 부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는 현재 일본 지사에서 로봇공학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으로, 과거 우리가 일본 기업으로부터 제어공학 및 소재 관련 기술을 사와서 로봇을 개발할 때 골격 부분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인재입니다. 후보들에 대한 정보는 첨부 파일로 같이 보낼 테니, 확인하시고 다음 정기 회의 때 누구를 관리자로 삼을지 미리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8년 12월 30일

 

 보내는 이 : 이주영 이사

 받는 이 : 박병헌 부장

 

 연말인데 일본에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소식을 들었겠지만, 회장님께서 유산 상속인으로 수호전자에 실험적으로 만든 가정부용 로봇을 지정했습니다. 유언에 따라 로봇의 관리인을 총 3명 고용해야 합니다. 관리인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곧 퍼질 것이라 예상됩니다. 이들이 사실상 재산을 상속받는 사람들입니다.

 소프트웨어와 재무 관리를 담당하는 사람은 각각 미국 지사의 데이빗 캐슬과 김학성 전무님으로 이미 정해졌지만, 하드웨어 담당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김 전무님께서는 부장님을 고려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내 정치에도 엮이지 않고, 실력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분이니까요. 관리인이 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속에 관한 첨부 파일을 같이 보냅니다.

 

 

 2029년 1월 2일

 

 보내는 이 : 박병헌 부장

 받는 이 : 이주영 이사

 

 이사님께서 알려주신 유산 상속 건에 관해서는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다 살펴보기도 전에 관리인 얘기가 퍼진 건지 뉴스에 제 이름이 떴더군요. 로봇의 관리인이 된다는 건 확실히 제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일이긴 합니다만, 기계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건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관련법이 아예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다 보니까 언론의 관심도 지나치게 심하고, 정부에서도 한몫 챙겨 보려고 나서는 것 같습니다. 이미 외신에도 퍼졌고요. 그래서 일단 기자들의 질문에는 결정된 게 없으며, 설령 관리인이 된다 하더라도 주식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하드웨어 관리 부분에만 집중하겠다고 말을 해뒀습니다. 원론적인 입장이긴 이정도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상속 관련하여 새로운 말이 나오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9년 1월 3일

 

 보내는 이 : 이주영 이사

 받는 이 : 박병헌 부장

 

 우선 부장님의 관리자 선정 건에 대해 보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제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신다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김학성 전무님께서는 부장님께 많은 기대를 걸고 계십니다. 저희는 이틀 뒤 오후 12시에 수호전자 파티룸 내에서 만남을 가질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로봇의 관리자 세 분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비밀리에 사용할 수 있는 사내용 메신저 그룹을 만들었으니, 초대에 응해 주시기 바랍니다.

 

 

 2029년 1월 8일

 

 김학성과 데이빗 캐슬, 박병헌, 그리고 수호그룹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직원들과 주주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김 전무였다.

 

 “우선 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제까지 열심히 회사를 이끌어주신 고 정재현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회장님께서는 로봇의 관리를 위해 3명의 관리자를 선정하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로봇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까지 모두 3명이 필요합니다. 이사회에서는 약 한달 간의 토의 결과, 저를 비롯한 3명의 사람들을 로봇의 관리자로 세우는 데 동의했습니다.”

 

 박병헌과 데이빗 캐슬이 연단 앞으로 걸어 나왔다.

 

 “첫 번째는 로봇의 하드웨어를 담당할 박병헌 씨입니다. 그는 AL테크 일본 지사에서 약 8년간 근무했으며, 로봇의 골격을 설계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박병헌 부장이 허리를 굽혀 연회의 참석자들에게 인사했다.

 

 “다음은 소프트웨어 담당의 데이빗 캐슬입니다. 과거에 휴이넘에서 약 5년간 근무했으며, 이후에는 AL테크 미국 지사의 인공지능 개발 담당을 맡아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캐슬은 외국인 치고는 한국어가 꽤나 능숙했다.

 

 “마지막으로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은 바로 접니다. 저를 뽑아 주신 이사회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수 소리가 연회장 안을 가득 채웠다.

 

 “많은 분들이 3인 관리 체제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계신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저희가 로봇의 재산을 빼앗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하지만 저희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관리 부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저희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서지혜 회장대리님의 재산을 함부로 가져간다면 곧바로 경찰에 잡혀 들어갈 겁니다. 자 그럼 이제, 수호그룹을 위해서 건배하겠습니다. 수호그룹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여!”

 

 그가 와인잔을 높이 들었다. 참석자들도 모두 그를 따라했다.

 

 “위하여!”

 

 신입사원 민혁은 연회장에 찾아온 사람들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대한그룹 등 다른 재벌들의 회장들, 국회의원과 과학기술부 차관, 심지어는 세리아몰의 홍보 모델을 맡은 연예인들까지. 모두 TV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이었다. 일개 사원에 불과했던 그에게는 하나같이 부담되는 사람들이었다.

 

 “아, 저기 있네. 조민혁 군!”

 

 박병헌 부장이 그를 보고는 손을 흔들며 반겼다.

 

 “앗, 안녕하세요, 부장님.”

 

 “소개할게. 이쪽은 김학성 전무님이랑 데이빗 캐슬 시니어 엔지니어야. 이번에 새로 뽑힌 회장대리의 관리자들이지. 김 전무님, 이쪽은 제가 굉장히 아끼는 친구입니다. 원래 미국 대학에 다니던 녀석인데, 그곳에서 아예 눌러 살겠다는 걸 제가 가까스로 말려서 이리로 데려왔죠.”

 

 “아, 안녕하십니까! 조민혁입니다.”

 

 민혁은 잔뜩 긴장한 채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반가워. 김학성이라고 한다. 나에 대해선 알고 있겠지?”

 

 “네, 전무님이 쓰신 자기계발서를 봤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김 전무가 크게 웃으며 좋아했다.

 

 “이 녀석 마음에 드는 친구구만! 그래, 앞으로 잘해 보자고.”

 

 민혁은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던지 한쪽 구석에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박병헌 부장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웨이터의 접시에서 미니 케이크 두 개를 꺼내더니 하나를 그에게 주고 나머지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네가 앞으로 알아 둬야 할 사람들이야. 너 역시 캐슬 씨 밑에서 로봇을 업데이트하는 역할을 맡게 될 거다. 즉 회장대리의 보조 관리자가 되는 거지.”

 

 “제가 말입니까?”

 

 민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너 역시 서지혜 클럽의 일원인 셈이다. 회장님께서 너를 스카우트하라고 지시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 이제부턴 인공지능의 시대이고, 우리가 로봇을 사장으로 만들지 않아도 다른 기업에서 언젠가는 할 거야. 그렇다면 우리가 선수를 치는 게 낫겠지.”

 

 신입사원인 민혁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낯설었다. 박 부장이 그에게 수호전자 입사 제안을 할 때만 해도 그는 단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일본 생활의 불편함과 수호전자의 더 높은 연봉만을 생각하고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난데없이 거대한 사회적 변화의 흐름의 중심부에 서게 된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거야. 너에게 기대하는 바가 많다.”

 

 박 부장은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술을 얼마 마시지 않았는데도 약간 취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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