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년 2월 3일
수많은 국회의원들과 정부 관료들, 그리고 기자들이 청문회장에 모여 있었다. 이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로봇에게 재산을 상속할 수 있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성향의 집권여당인 공화당은 사람마다 의견이 조금씩 갈렸다. 아무리 상속자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해도, 자유의지가 없는 로봇이 돈을 다룬다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은 많았다. 그와는 반대로 로봇이라 하더라도 사람 수준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자본가가 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상속의 최대 수혜자는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자이기도 했다. 결국 당 내에서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 끝에, 로봇의 유산 상속을 허락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반면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인 노동당의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로봇에 대한 재산 상속을 반대했다. 그들은 이 문제를 법원으로 끌고 가는 순간 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보기에 기계에게 돈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눈속임에 불과했다. 애초에 로봇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재현 회장 역시 로봇의 관리인을 뽑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로봇의 결정은 관리인들에게 달려 있었다.
노동당 의원들은 특히나 관리자들의 대표인 김학성을 두려워했다. 그는 공화당에 가장 많은 자금을 후원하는 인물이었으며, 들리는 바에 따르면 불법적으로 당에 송금한 돈만 100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종종 직원들에게 자신의 정치 성향을 강요하기도 했다. 이대로 로봇에게 재산이 상속되면 훨씬 더 많은 돈이 공화당으로 흘러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현행법상 로봇이 돈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었다. 물론 돈을 가져도 된다는 법 역시 없었다. 이제까지 로봇은 자동차나 컴퓨터 같은 인간의 재산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법의 해석 방식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노동당 정부는 물론이고, 몇 년 전 공화당이 정권을 잡았던 직후에도 한국의 법은 ‘포지티브 규제’ 방식이었다. 이는 법이 직접 허락하지 않은 일들은 전부 금지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포지티브 규제가 시대에 뒤처진다는 여론의 비판으로 인해, 정부와 국회는 국민투표를 통해 한국의 법은 ‘네거티브 규제’의 방식을 따르도록 바꾸었다. 즉 법에서 금지하지 않은 일들은 뭐든지 해도 되게끔 만든 것이다.
즉 네거티브 규제에 따르면, 로봇에게 재산을 상속하면 안 된다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괜찮았다. 물론 법원이 최종적으로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법리적인 해석대로라면 30조원은 로봇의 것이었다.
양측은 결코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떻게 로봇한테 상속을 한단 말입니까.”
공주현 노동당 의원이 말했다.
“애초에 로봇이 돈을 가진다는 것부터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던 일입니다. 로봇은요, 감정을 느끼지도 못하고 본인 의지로 돈을 쓰지도 못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거 다 돈 떼먹을려고 이러는 거 아닙니까? 로봇한테는 반드시 관리인이 있어야 하고, 결국 그 관리인 세 명이 상속 재산을 나눠 먹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제가 몇 가지 알아본 게 있는데, 로봇이 바로 재산을 상속받는 게 아니고, 몇 단계를 걸쳐서 재산을 해외로 돌린다는데, 이거 탈세 아닙니까? 안 그래도 정권 바뀌고 상속세가 엄청 낮아졌는데, 이것마저 안 내려는 건 솔직히 말도 안 됩니다.”
청문회장에 모인 의원들이 수군거렸다. 공주현이 보기에 적지 않은 의원들이 자신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어차피 공화당 사람들은 적이고, 노동당 사람들은 아군이다. 국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양측의 숫자가 비슷한 만큼 결국 중요한 건 그 사이에 끼어있는 중도파, 무소속 인원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 사태를 자신의 유명세를 넓히려는 용도로 이용할 심산이었다. 사람에게 상속하는 것도 솔직히 아니꼬운데, 로봇에게 유산을 상속한다? 이건 누가 봐도 뒤에서 돈을 빼돌리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그녀는 이런 일에 나서는 데는 자신이 제격이라고 믿었다. 로봇 상속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일 인만큼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기만 하면 법원에서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고, 자신은 옆에서 양념을 치기만 해도 큰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저는 어디까지나 회장님의 유언을 그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만약 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정부 및 국회와 최대한 협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김학성은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겉으로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일단 그 로봇에게 상속이 완료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전부 자신이 조종할 수 있을 테니까.
“오히려 말이 안 되는 건 공주현 의원님 쪽이 아닙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한 남자에게 쏠렸다. 김학성으로부터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던 그는 홍정민 공화당 대표였다.
“사람들은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건 정재현 전 회장이 자유의지로 로봇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는 거고, 그렇다면 법은 그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만약 로봇이라는 이유로 상속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사람에 대해서도 상속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홍 대표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반드시 여기서 중도파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유재산은 신성합니다. 한국이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정부가 개인의 사유재산을 적극적으로 보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정부는 이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성공에 취한 나머지 기업가들에게 무리하게 세금을 부과하고, 쓸데없는 복지에 돈을 낭비한 결과 한국의 성장률은 끝없이 하락했습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국이 가까스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새롭게 정권을 잡은 공화당 정부가 다시금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 상속이 허가가 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분명히 자기들이 다 해먹으려는 속셈이지. 자유의지는 무슨.”
공주현 의원은 청문회장을 나가면서도 끊임없이 투덜댔다. 그때 기자 몇 명이 그녀 앞으로 달려들어 마이크를 내밀었다.
“공주현 의원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 정재현 회장님의 상속 결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셨던데, 혹시 상속을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해야 할 말은 청문회장에서 전부 했다고 생각합니다. 전 절대로 이 한심한 코미디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습니다. 정 회장님의 재산은 법에 따라 국가에 귀속시켜야 합니다.
공 의원은 귀찮은 듯 자신을 겹겹이 둘러싼 기자들을 헤치고 나갔다. 기자들은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대한신문 칼럼 : 발전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요즘 로봇의 재산 상속에 대한 이야기로 세상이 상당히 시끄럽다. 수호그룹의 전 회장이 자신을 보살피던 가사 로봇에게 거액의 재산을 물려주기로 한 것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30조원에 달하는 큰 돈이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상속 법원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나는 이것이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 로봇에게 사람처럼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면, 마땅히 돈을 벌 수 있는 권한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상속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한결같다. 로봇이 인간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인간만의 권리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설령 로봇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복종하게끔 강요하는 것이 옳은가?
서지혜는 이제 육체는 로봇일지라도, 정신은 인간과 같다고 간주해야 한다. 즉 그녀 역시 인간에게 부과되는 권리와 의무가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녀가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봇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로 결정한 것은 고 정재현 회장의 ‘자유’이고, 우리들은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약 상속을 막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고인을 모독하는 일일 것이다.
로봇이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불만스러운가? 그렇다면 수호그룹에서 나와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면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곳이다. 그럴 자신이 없어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로봇에게 지시를 받는 것이 불만이 있다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능력 있는 직원이라면 오히려 로봇의 경영을 더 바람직하게 여길 수도 있다. 인간과는 달리 인공지능은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으로 변화를 거부하기보다는,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대한신문 칼럼니스트 송지수
2029년 2월 25일
그녀가 수호그룹의 ‘회장대리’가 되고 몇 주일 동안, 박병헌과 데이빗 캐슬을 비롯한 로봇의 관리자들은 혹시나 로봇에게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코드를 재검토했다.
관리자들은 회장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김 전무가 그녀의 주인으로 남아 있도록 했다. 정확히는 그가 ‘유일한’ 주인이 되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그들은 지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스스로를 ‘주체적인’ 존재로 말하게끔 만들었다.
노동당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그래머들이 파고들만한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됐다. 설령 그들이 로봇의 자아를 의심한다 하더라도, 보안을 이유로 코드를 공개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김 전무가 주인으로 있는 이상 지혜는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무의 욕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캐슬은 그녀의 정신을 구성하는 수많은 코드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한편 그의 옆에서는 박병헌 부장이 그녀의 감각 센서에 이상이 없는지 검사하고 있었다. 그때 실험실의 문이 열리더니 김학성 전무가 들어왔다.
“고생이 많구만. 로봇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가?”
“신체 기관에는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습니다.”
박 부장이 대답했다. 김 전무는 천천히 로봇의 몸을 살펴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그 로봇은 그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단순히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여성스럽게 가냘픈 듯 하면서도 적절하게 근육이 잡혀 있는 팔과 다리, 너무 크지 않고 적당하게 솟아나온 가슴, 예술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유선형의 몸매……
김 전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처음 로봇의 개발을 지시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 결과물이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회장은 이 여자를 데리고 무슨 짓들을 했을까? 그는 상상만 해도 몸이 달아오르는 듯 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박 부장이 물었다.
“그 부분은 만들지 않은 건가?”
김 전무는 로봇의 가랑이를 가리켰다.
“어딜 말씀하시는.......설마 여성의 그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박 부장은 기겁했다.
“솔직히 터놓고 말하자고. 이런 인간 형태의 로봇이 제일 많이 쓰이는 분야가 어디겠어. 단순히 비즈니스에만 쓸 거면 굳이 육체를 따로 만들 필요도 없었겠지. 인간형 안드로이드는 성적 만족을 줄 때 그 가치가 가장 높아질 수 있는 법이야.”
“전무님, 하지만 그건......”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자네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일본에서 파는 리얼돌 같은 거. 그것의 최종 진화 버전이 이 로봇이야. 그야말로 완벽한 애인이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잖아. 매춘은 최근 들어 합법이 됐지만 아직까지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고. 그런 것 보다는 이게 훨씬 낫지. 로봇에겐 강제라는 개념이 적용되지 않을 테니까.”
학성은 한동안 병헌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박 부장은 전무에게 맞설 자신이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는 원래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돈만 제대로 받으면 그만이라고 스스로를 애써 설득했다.
“개발에 자금이나 인력이 더 필요하면 바로 말해주게. 가능한 한 빨리 완성됐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