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년 3월 3일
박 부장과 데이빗 캐슬은 로봇의 개조를 시작했다. 김학성 전무는 금전적 지원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박 부장은 의사들에게 부탁해 여성의 신체 구조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 수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은 배터리와 각종 회로를 재배치해야 했다. 그래야 적절한 자리에 전무가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조 관리자 5명과 의사 1명이 박 부장의 작업을 도왔다.
재배치 작업이 끝나자 박병헌 부장은 개조 수술용 도구를 그녀의 가랑이에 가져다 댔다.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이제 성공하고 싶어. 일본에서 남 뒤치다꺼리나 하고 사는 건 이제 질렸다.”
그는 수술용 침대에 누워있는 지혜에게 말했다. 그녀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약 6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그들은 지시대로 새로운 신체 기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관리자들은 로봇이 인간과의 성관계를 맺을 시 ‘적절한’ 행동을 보일 수 있도록 추가 코드를 짜야 했다. 캐슬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모래알 하나를 깎아 조각상을 만드는 일과도 같았다.’ 약간이라도 수치를 이상하게 설정하면 그 로봇은 지나치게 높은 소리를 내거나 기괴한 자세를 취하곤 했다.
기능 향상을 위해 그는 지혜에게 몇 가지의 기본적인 지침을 내린 뒤, 그녀가 포르노 사이트를 보고 스스로 행동을 배우도록 만들었다. 포르노 영상들 중 조회수와 추천수가 높은 작품을 집중적으로 학습한 것이다. 또한 관리자들은 성인 남성 크기의 인형을 만든 뒤 지혜에게 그 인형을 가지고 연습할 것을 지시했다. 지혜는 생각보다 빠르게 관련 지식을 흡수했다. 그녀는 특수 프로그램을 이용해 영상의 재생 속도를 100배로 늘림으로써 하루에 약 10만개의 영상을 학습했다. 단 3일이 지나자 그녀의 행동은 포르노 배우와 거의 다를 게 없어졌다.
박병헌 부장은 김학성 전무에게 로봇의 개조가 끝났음을 알렸다. 그는 크게 기뻐하며, 관리자들이 추가 성과급을 받을 것이라 예고한 뒤, 그 로봇을 자신에게 데려오라 지시했다. 관리자들은 김 전무가 그 로봇으로 무엇을 하려는 지 너무나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로봇을 보내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로봇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박 부장은 김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무님, 저 병헌입니다.”
“아 그래, 박 부장, 로봇을 데려오란 얘기는 들었나?”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로봇을 데리고 뭘 하시려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하하하! 이 친구 눈치가 좀 부족하구먼. 내가 뭘 시켰는지 벌써 잊은 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겠습니다. 다만 아직 로봇의 성능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시는 것보다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한 달 정도 테스트를 시켜본 다음 사용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러면 다른 남자들이 실컷 즐긴 다음 나보고 너덜너덜해진 찌꺼기나 먹으라는 건가?”
박 부장은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가라앉혔다. 일단 그가 해야 할 일은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부작용을 예방하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정 불편하시다면 남성 형태의 안드로이드를 따로 만들어 실험하겠습니다.
“난 그걸 원하지 않아. 첫 상대는 나여야만 해.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박 부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돈만 받으면 되는 건데, 왜 나는 이리도 우왕좌왕 하는 것일까. 어차피 우리가 로봇을 지켜낸다 해도 그것이 고마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지혜의 절전 상태를 끝내고 김학성 전무에게 가서 그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전무님을 만족시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녀의 눈빛에는 일말의 망설임이나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2029년 3월 4일
학성은 회장의 죽음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느라 한동안 풀지 못했던 성욕을 지혜에게 풀었다. 그녀는 학성의 취향에 꼭 들어맞는,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뿐만 아니라 회장의 마음을 헤아려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하는 여자였다. 매일같이 지혜는 침대에서 그의 욕구를 해결해주고 있었다.
학성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최소 한 번 이상은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 그는 성행위 도중의 자신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제3자가 그 모습을 본다면 참으로 우스꽝스럽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그에게서는 상대 여성을 배려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종종 자신이 조선시대 왕이 된 것처럼 상황극을 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을 질러댔다. 심지어 그는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지혜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이 모든 추태에도 불구하고, 지혜는 헌신적으로 임무에 임했다. 그를 만족시키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으며, 학성의 이기적인 행동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그와 함께 있는 다른 시간에도 최대한 학성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과거 정재현 회장과의 시간에서 배웠던 기술들을 총동원하여 학성의 연인 노릇을 해냈다.
그녀의 헌신 덕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진 김 전무는 로봇 연구소를 방문해 관리자들의 공을 치하했다. 관리자들은 애써 웃으며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내가 박 부장 덕에 아주 호강하고 있어. 하하하하.”
“다 전무님 덕분입니다.”
김 전무는 그들에게 추가 보너스를 약속함과 동시에 이런저런 추가 지시를 내렸다. 그 중 하나는 그녀가 비즈니스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추가 데이터를 습득시키라는 것이었다. 비록 그룹의 실권을 지닌 건 김 전무였지만, 공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관리자의 대표일 뿐이었다. 안 그래도 로봇은 단지 꼭두각시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자들은 지시에 따라 알고리즘을 개선한 뒤 복잡한 수학과 경영학 능력을 학습시키기 시작했다. 한편 김 전무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할 무렵, 그동안 그의 방침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었던 캐슬이 처음으로 그를 불러 세웠다.
“전무님, 잠시 할 말이 있습니다.”
“아, 캐슬 씨. 설마 뭐 필요한 거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설마 제가 이 로봇이랑 자는 걸 반대하시는 건 아니겠죠?”
김 전무는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지혜와의 둘만의 시간으로 가득 찼다.
“예전부터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는데, 저는……주인이 사망한 로봇을 계속해서 활용하는 게 조금 꺼림칙합니다.”
“왜 꺼림칙하다는 거죠?”
“저희가 만든 가정용 안드로이드의 인공지능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돌보고 청소를 하는, 말 그대로 가정용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나의 지식을 배우면 그것을 여러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인간과는 달리, 로봇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저희는 아직 일반인공지능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휴이넘에서 일했을 당시 이 인공지능의 초기 버전을 가지고 여러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실험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잘 배우는 듯 했지만 본격적으로 지식을 활용하는 단계에서 심각한 오류를 내뿜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휴이넘에서는 비즈니스용 인공지능과 가정용 로봇에 쓰이는 인공지능을 구분해서 판매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로봇을 복잡한 업무에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건 위험한 행동입니다.”
캐슬은 그 로봇을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김 전무는 이 외국인이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건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로봇이 저에게 복종하도록 코드를 바꾼 건 당신들입니다. 설마 스스로의 능력을 못 믿는 건 아니겠죠?”
“그래도 어디까지나 전무님이 시키는 최소한의 일만 하도록 하십시오. 너무 많은 자율권을 부여해선 안 됩니다.”
김 전무는 건성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관리자들의 능력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자신의 방침에 태클을 거는 것이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2029년 3월 9일
앵커 : KBC 8시 뉴스 첫 소식입니다. 한동안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고 정재현 회장의 서지혜 씨에 대한 재산 상속 문제가 결국 상속 허가 판결로 마무리되면서, 한국은 세계 최초로 로봇이 사유 재산을 갖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지영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 어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가사로봇 서지혜의 재산 상속 가능 여부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피고 서지혜 씨 측의 변호사는 “로봇에 대한 상속은 제대로 된 사유재산 보호의 시발점” 이라고 주장하면서, 돌아가신 회장님의 마지막 유지를 무시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편 원고 경제정의연대 측의 변호사는 “로봇의 재산 상속은 역사적으로 유래가 없던 일” 이라고 말하며, 자유 의지가 없는 로봇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사실상 그 뒤에서 로봇을 조종하는 소수의 권력자들에게만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치권과 몇몇 법조인들이 사건의 특수성을 감안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치열한 논쟁 끝에 최종적으로는 재산의 상속 허가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이로써 서지혜 씨는 상속세를 제외하더라도 전 재산이 20조원이 넘는 한국 최고의 부자로 등극할 예정입니다.
한편 노동당에서는 오늘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당 의원들은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억지 판결’ 에 저항할 것이며, 국민참여재판을 기반으로 한 항소를 진행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김민지(노동당 대표) : 로봇의 재산권 보호라는 어처구니 없는 미명 하에 국민들을 농락한 이번 재판을 저희 노동당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법적 원칙에 따라 고 정재현 회장의 재산이 국가에 귀속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로봇 뒤에 숨어서 부당 이익을 챙기는 김학성 전무와 홍정민 공화당 대표를 규탄하는 바입니다.
기자 : 한편 공화당 측 역시 비슷한 시간 논평을 통해 ‘법치주의에 따른 판결’을 환영하며, 앞으로 정부와 수호그룹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홍정민(공화당 대표) : 불법적인 국민정서에 휘둘리지 않고 법치에 따른 합리주의적 판결을 내린 법원에게 감사를 표하며, 공화당은 앞으로도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힘쓸 것을……
기자 : 판결을 통해 상속 논쟁은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는 로봇의 재산 상속에 관한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KBC 이지영 기자였습니다.
2029년 3월 10일
“로봇을 회의에 부른단 말입니까?”
반 김학성 파의 대표인 강재욱 상무가 이 기이한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김 전무는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법적으로 그녀는 우리 수호그룹의 리더입니다. 비록 로봇이지만, 판단력은 웬만한 인간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경영과 같은 복잡한 일을, 슈퍼컴퓨터도 아니고 일개 안드로이드 하나에 맡기다니요.”
임원들이 저마다 뭐라고 수군거렸다.
강재욱 상무는 수호전자에 처음 입사한 뒤부터 김학성 전무와 마찰을 빚어 왔다. 강 상무는 김 전무의 열정과 추진력을 인정했지만, 직원들을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대하는 그의 스타일이 결국 회사에 피해를 끼칠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하게도 김 전무는 틈만 나면 강 상무를 비난하며 그를 내쫓으려 했으나, 둘 다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기 때문에 정재현 회장은 살아있을 적 둘의 싸움을 중재하면서 그룹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는 죽었고, 둘은 서로를 향한 적개심을 여과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 전무님, 저희는 로봇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존재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애초에 그건 가정부용 로봇이 아니었습니까? 만약 그것이 회의에서 한 표를 행사한다면, 결국 김학성 전무님의 편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것 뿐 아니겠습니까?”
강 상무의 파벌에 속한 임원 한 명이 말했다.
“이런,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계시는데, 저는 절대로 그룹의 지배자가 아닙니다. 이거 참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시제품 1호, 그러니까 서지혜에 탑재된 인공지능은 일종의 ‘일반 인공지능’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반 인공지능은 우리가 알고 있던 한 가지 분야에 특화된 인공지능과는 다르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느냐는 다른 문제겠지만, 적어도 경영 분야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사례가 있습니다.”
다른 임원이 김 전무의 말에 동조했다.
“미국의 한 자동차부품회사에서는 비즈니스 업무에 특화된 인공지능을 도입한 뒤, 회의 시간마다 그것에게 자신들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는답니다. 실제로 그 인공지능을 도입한 후 매출이 늘었습니다.”
“그래. 내가 뭐랬어요.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다 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만 뒤쳐질 수는 없단 말입니다.”
김 전무의 말에 자신감이 붙었다.
“한 번 거수투표를 해보죠. 저를 포함해서 서지혜 씨의 회의 참석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손을 들어 주세요.”
회의실에 있던 약 20명의 사람들 중 14명이 손을 들었다. 어차피 김학성 전무 밑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그의 편을 들어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나머지 임원들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형식적으로 나마 그 로봇은 수호그룹의 리더였고, 그렇기 때문에 경영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여론을 어느 정도 환기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몇몇 직원들은 지혜가 경영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안 뒤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더 합리적으로 회사를 이끌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