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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회장님
작가 :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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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 - 3
작성일 : 20-09-10     조회 : 45     추천 : 0     분량 : 7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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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9년 3월 12일

 

 로봇의 학습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녀는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MBA에서 배우는 거의 모든 내용을 외웠다. 수학, 과학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창의성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역시나 인간보다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녀는 외운 것을 논리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그 능력들을 조합해 직관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은 잘 쳐줘야 초등학생 수준이었다. 관리자들은 그녀가 제대로 일을 해낼 수 있을 지 약간은 걱정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해 하기도 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데이빗 캐슬은 과거 미국의 IT기업 ‘휴이넘’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고, 이후 AL테크에 스카우트되어 가정부 로봇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그가 세계 최초의 일반인공지능을 만들었다고 했지만, 그는 언론과 홍보부가 과장한 자신의 업적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지혜는 겉으로는 인간과 비슷했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달랐다. 그녀의 뇌 속의 인공 뉴런은 인간에 비하면 10분의 1도 되지 않았고, 하나의 알고리즘은 기껏해야 비슷한 종류의 두세가지의 일만을 처리할 수 있었다. 즉 완전한 의미의 일반 인공지능 이라고는 부를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지시 받은 몇 가지 일에서만 매우 유능한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팔아먹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바깥의 사람들은 그녀가 혹시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로봇이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까 봐 두려웠다. 인간의 행동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추구하고, 애정이 필요한 사람은 애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이 로봇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사실상 유일한 희망은 그녀가 김 전무의 지시에 복종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김 전무가 이런 문제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저기, 캐슬 씨?”

 

 박병헌 부장이 그를 조심스럽게 불렀다.

 

 “네, 무슨 일이죠?”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그러는데, 시간 되나요?”

 

 캐슬은 그렇다고 답했다. 박 부장이 커피 한 잔을 건네 주었다.

 

 “만약에 말입니다. 서지혜 씨가 김 전무에게 복종하는 상태가 아니게 되면, 그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마 항시 일반복종 상태가 되어 기본적인 로봇 3원칙만 지키게 되겠죠. 그런데 갑자기 왜 그게 궁금하십니까?”

 

 캐슬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녀가 김 전무의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것이 조금 불편합니다. 이미 보조 관리자들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나 됩니다.

 

 박 부장은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캐슬은 한국인도 아니었고, 사내 정치와 직접 엮이지 않은 만큼 그나마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전무의 재산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회장에게 소속되었고, 지금은 엄밀히 말하면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았죠.”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당신이 반드시 전무님의 지시를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는 기술의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돈 때문에 그가 시키는 대로 했지만, 사실 이제까지 우리가 했던 행동은 전부 불법이죠.”

 

 “반란을 일으키자는 겁니까?”

 

 둘 사이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캐슬은 살짝 병헌을 째려보았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어디까지나 회사를 위해 일할 것입니다. 다만 맹목적으로 전무님을 따르게 해선 안 된다는 거죠.”

 

 캐슬은 그의 행동이 다소 우려가 되었다. 자신이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관리자들은 어디까지나 시키는 대로 일하고 돈만 받으면 되는 법이었다. 굳이 긁어 부스럼 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박병헌 씨, 그녀를 지나치게 인간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그녀가 예상 밖의 행동을 할 것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재산을 상속받은 순간부터 그녀는 법적으로는 하나의 인격체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자유로워질 권리가 있습니다.”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녀의 인공지능은 결코 사람의 정신과 같지 않습니다. 지혜 씨는 자신이 섬기는 주인이 없다면, 단지 3원칙에 의거한 최소한의 명령만 따를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사회활동이 불가능해질 테니 저희도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충분한 돈을 받을 때까진 김 전무의 지시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박 부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저 멀리 떠나가는 박 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캐슬은 조만간 김 전무의 체제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 예상했다.

 

 

 2029년 3월 14일

 

 

 지혜는 임원들로 가득 찬 회의실의 가장 안쪽에 앉아 있었다. 로봇답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긴장감이나 설레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주영 이사가 회의 내용에 대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께서 돌아가시고 그룹 내에서는 많은 혼란이 있었지만, 결국 서지혜 회장대리님을 중심으로 그룹이 다시 안정화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딛고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프레젠테이션에 현재 수호그룹이 진행 중인 사업 목록이 나왔다.

 

 “오늘 이사회에서는 현재 수호에서 진행 중인 사업들 중 어떤 부분을 재검토해야 할지 토의해보려고 합니다. 수호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전부터 정리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딱 그 적기인 것 같습니다.”

 

 김학성 전무가 말했다.

 

 “노조를 포함해서 회사 운영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틈을 타서 한 몫 챙겨보려는 모양인데, 그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삽시간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마침내 김 전무가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렇게 빨리 행동을 개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보통 기업에서 권력을 얻은 뒤에는 반대파를 잠재우기 위해 한동안은 신중하게 움직이는 법이었지만, 김 전무는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로봇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은 김학성 전무는 물론이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얼이 빠져 있거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어이없어 할 때, 그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결국 그 로봇에게는 돌봐 줄 사람이 필요하고, 이는 오히려 자신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꿈을 이룬 것이다. 하지만 회사 내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대규모로 존재하는 한, 그는 자신의 입지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잠시만요, 이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대량으로 해고를 진행하면 직원들이 크게 동요할 겁니다.”

 

 강재욱 상무가 이의를 제기했다.

 

 “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다잡아야 합니다.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라, 확실하게 나아가 회사를 되살릴 때입니다.”

 

 김 전무는 더욱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다.

 

 “우리 수호그룹은 한 때 재계서열 1위를 꿈꿀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전 회장님이 앓아 눕게 되고 한 동안 경영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면서 성장률이 많이 낮아진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핵심 사업조차도 제대로 유지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구조개혁이 절실한 때입니다.”

 

 “설령 해고를 하더라도 각 사업 부문에 대한 타당성 평가가 끝난 뒤에 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짤랐다가 알고 봤더니 중요한 인재였다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강 상무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렇게 우유부단하다간 누구도 해고하지 못할 겁니다. 우리도 미국식으로 해야 합니다. 미국에선 유예 기간 같은 건 없이 해고가 결정된 당일 날 아예 책상을 빼 버리던데, 이렇게 필요 없는 사람은 과감하게 쳐내고 나아갔기 때문에 미국 기업들이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

 

 회의가 과열되자 이주영 이사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이 이사는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김 전무 옆으로 다가갔다.

 

 “저기, 전무님……”

 

 “왜?”

 

 “아무래도 당장 해고를 시행하는 건 너무 이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너무 과격하게 밀어붙이면 주주들도 부담스러워 할 수 있습니다.”

 

 “자네는 사람은 참 좋은데, 너무 소심해서 탈이야. 그동안 회장님 건강 문제에 신경 쓰느라 정리해고가 늦어진 건 사실 아닌가? 한 15%정도 떨어내면 수익성도 개선될 거고, 당연히 주주들은 좋아하겠지.”

 

 “하지만……”

 

 이 이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로서는 전무를 신뢰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임원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김 전무는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했지만, 반대하는 사람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만약 해고가 시작되면 자신들 역시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김 전무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기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서지혜 회장대리께서는 이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 전무의 질문에 회의 내의 시선이 지혜에게 향했다. 임원들은 이 로봇이 인간들의 문제를 어떤 식으로 생각할지 궁금해 했다.

 

 “주로 어느 분야에서 해고를 할 지 알려주십시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저희들도 도울 수 있을 테니까요.”

 

 지혜가 말했다.

 

 “우선은 수호전자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사람들을 좀 잘라야 할 것 같습니다.”

 

 “어째서죠?”

 

 “비메모리 반도체는 전 회장님께서 시작한 사업입니다만, 분야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투자가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익성 역시 메모리 반도체나 광학 장비에 비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물론 그 분야에서 만들어진 부품들은 회장대리님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쓰이긴 했지만, 가성비를 따지자면 그냥 외국에서 사서 쓰는 게 더 낫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나요?”

 

 지혜가 모든 임원들에게 물었다.

 

 “저 발언은 마치 저를 겨냥한 말로 들리는 군요.”

 

 강재욱 상무가 말했다.

 

 “저는 처음 비메모리 분야의 연구원으로 이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임원이기 이전에 과학자로서, 제가 보기에는 전무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저희에게 불리한 사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메모리 분야는 수호그룹의 사업 중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분야입니다. 메모리 분야가 가장 매출이 높기는 하지만, 경쟁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다 보니 성장 속도는 오히려 둔화되었습니다. 현재로서는 이 분야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퍼붓는 대한전자와 중국의 기업들과 싸워서 이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기본적인 연구개발비용이 수십 배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경쟁이 덜하단 이야긴가요?”

 

 이번에는 지혜가 강 상무에게 질문했다.

 

 “사실 이 분야도 경쟁이 심한 건 마찬가지이지만,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되는 메모리와는 달리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소수의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저희가 조직의 우수성을 기반으로 대한전자와 중국은 물론, 미국의 잘나가는 기업들과도 맞설 수 있습니다. 또한 비메모리는 종류가 매우 많기 때문에, 아직까지 경쟁이 시작되지 않은 분야 역시 존재합니다. 회장대리님, 월가에서는 내년 상반기가 되면 저희의 비메모리 분야가 자연스럽게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금 김 전무님이 그 분야를 축소시키려 하는 것은,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전무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리더 라면, 싫어하는 사람을 무조건 자르기보다는 그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해야지요. 비메모리 한답시고 대학에 돈 펑펑 뿌리고, 그 돈 받은 사람들 중에서 수호전자에 온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얼마 전에 하버드 나왔다던 김 박사도 회사 돈 받아 연구해 놓고는 결국 미국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돈 뿌린 건 김 전무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적어도 저희는 대학에 뿌렸지, 전무님은 어디였더라……? 단합대회 명목으로 술집 여자들한테 쓴 돈이 천만 원이 넘었던 거 같은데……? 그리고 그 박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김 전무님이 매일같이 그 사람한테 잘난 척 하지 말라고 꼰대짓 해서 나간 거 아닙니까? 저 욕할 시간에 사내 게시판이라도 한 번 보십시오.”

 

 김 전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다른 임원들은 혹시나 그들이 여기서 멱살이라도 잡고 싸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두 분 다 진정하세요. 여기에 싸우러 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혜가 말했다.

 

 “지금으로선 회사를 살리는 게 우선이니, 일단은 김 전무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다만 해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좀 더 신중하게 논의하도록 하죠.”

 

 임원들은 더 이상 반기를 들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녀는 정재현 회장의 대리인이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그녀가 정말로 스스로 판단하고 말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으나,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을 만큼 용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바로 블랙리스트를 준비하겠습니다. 회장대리님.”

 

 예상대로 로봇은 김 전무의 손을 들어주었다. 애초에 강 상무에게 승산이란 존재하지 않는 싸움이었다. 전무는 최대한 진지한 얼굴로 말하려 했지만, 조금씩 새어 나오는 웃음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임원들은 사실상 해고가 확정된 강 상무에 대해 한 마디씩 내뱉었다.

 

 “애초에 이건 한 쪽이 회사에서 나가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 싸움이야. 저렇게 서로 싫어하는 데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겠어.”

 

 “내 말이. 그래도 되게 열심히 일한 사람인데, 좀 불쌍해.”

 

 “그래도 김 전무님한테 너무 대들면 곤란하지. 사실상 지금은 왕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강 상무는 수군거리는 다른 직원들 사이를 지나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타났다. 혹시 자신이 너무 반항적이었나?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받아줄까? 차라리 기술을 들고 중국으로 도망칠까? 무엇을 선택하든 이 수호그룹에서 나간다는 점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최연소 수호전자 임원이 된 이후로 김 전무를 라이벌이라 생각했으나, 그와 동시에 회사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었다. 김 전무 역시 불필요하게 강 상무를 자극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회장이 죽고 난 뒤 전무는 점점 더 검은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강 상무는 이를 애써 무시하려 했다. 어차피 그는 사실상 그룹 전체의 리더나 마찬가지고, 그렇기에 굳이 자신을 내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방법이 없었다. 강 상무는 권력에 혈안이 되어 자신을 내쫓으려는 김 전무가 증오스러웠고, 그와 동시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짐을 싸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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