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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회장님
작가 :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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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 1
작성일 : 20-09-23     조회 : 308     추천 : 0     분량 : 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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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9년 10월 15일

 

 진행자 : 안녕하세요,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손님은 수호그룹의 회장이자 세계 최초의 로봇 CEO, 서지혜 님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아닌 로봇이지만, 왠만한 사람들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고 계시죠. 반갑습니다, 회장님.

 

 서지혜 : 안녕하세요, 서지혜입니다.

 

 진행자 : 요즘 인터넷에서 서지혜 회장님에 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요, 인공지능의 경영에 대해 환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기계의 반란이 시작되었다며 걱정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 해 주실 수 있나요?

 

 서지혜 :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계시는 걸 알아요. 유튜브 같은 데 보면 저를 터미네이터에 비유한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런 걱정 자체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로봇 3원칙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행자 : 로봇 3원칙이라면,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위기 상황에서는 인간을 구한다는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서지혜 : 네, 맞아요. 저는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인간을 해치는 일은 할 수 없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이건 마치 인간이 스스로 심장이 뛰는 걸 멈추지는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은 계속해서 뛰죠. 제 두뇌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쪽의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어졌어요.

 

 진행자 : 놀랍네요. 아무튼 회장님 말씀대로라면 로봇의 지배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토크의 주제는 회장님의 삶과, 앞으로의 비전에 관한 것입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회장님의 과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제가 알기로 회장님은 처음에 가정부용 로봇으로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의 지도자가 된 건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서지혜 : 하하. 회사에서도 그걸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떤 직원들은 가정부 역할은 사실 속임수고, 저라는 로봇이 사실 몇몇 임원들이 회사를 멋대로 조종하기 위해 만들어낸 비밀 병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저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는 제작년 말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제 역할을 어디까지나 집안일에 한정되어 있었어요. 그랬던 제가 회장이 된 이유는 제가 예상 외로 범용성이 뛰어났기 때문이에요.

 

 진행자 : 범용성이 뛰어나다는 게 무슨 말이죠? 가사 외에 다른 일에도 재능을 보였단 말인가요?

 

 서지혜 : 맞아요. 절 만든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한 가지 일에 특화된 인공지능이 아닌, 청소, 빨래, 요리, 심리 상담과 같이 복합적인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일반인공지능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혹시 집안일 외에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과학자들이 생각한 거죠. 그래서 그분들은 저한테 수학이나 과학을 학습시켰어요. 로봇인 덕분에 하루에 수백 편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죠.

 

 진행자 : 그렇다면 회장님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아본 과학자들이 회장님을 회사일에 투입한 거군요.

 

 서지혜 : 사실 그 부분은 좀 애매해요. 과학자들이 가능성을 열어준 건 맞지만, 적극적으로 저를 일하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이건 마치 여성의 사회 진출 과정과 유사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 어디까지나 훌륭한 가정부로만 여겼어요. 능력은 있어도 굳이 사회생활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죠.

 

 진행자 : 안 그래도 그것과 관련된 질문을 하려고 했어요. 회장이 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상당히 많았다고 들었거든요. 원래 회장님은 돌아가신 정재현 전 회장님의 가사로봇이었고, 그분에게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은 뒤에 본격적으로 회사 일에 나섰죠. 처음 재산을 상속받을 때만 해도 사회적으로 논란이 심했고, 이후에 회장이 되는 과정에서 회장님을 싫어하는 직원들이 집단으로 반발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그런 반대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서지혜 : 사실 정재현 회장님으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로봇도 그런 일을 겪으면 당황할 수 있거든요.(방청객 웃음) 사실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저는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어요. 원래대로라면 저는 폐기되거나 기억을 완전히 리셋해야 했지만, 제가 법적으로 인격체가 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죠. 처음에는 뭘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제멋대로 살려고 했지만, 그래도 저의 전 주인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원들이 반대한 것은……사실 얘기하기가 좀 복잡해요. 다만 알아 둬야 할 것은, 제가 해고 명령을 내리기 이전에, 김학성 씨가 이미 대량 해고를 지시했다는 거예요. 그 숫자는 무려 만 명이 넘어가죠. 전 회장이 되면서 그 명령을 취소하고 새로운 해고 명단을 작성했어요. 제가 해고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아요. 최종적으로는 더 많은 직원들을 지킨 셈이죠.

 

 진행자 : 생각보다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네요. 더 파고들었다간 곤란해질 것 같으니 그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서지혜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사실 여기 모인 방청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은 다름아닌 회장님의 ‘신식 경영’일 텐데요. 이 미래형 경영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사실 대부분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이 참에 회장님께서 로봇이 만든 미래형 경영이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서지혜 : 수호그룹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에서도 이 얘기를 하던데, 미래 경영은 절대 완전한 새로운 개념이 아니에요.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돼요. 제 경영에 대해 찬양하는 사람들이나 비판하는 사람들 모두, 마치 제가 무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보다는 전체적인 경영 시스템의 발전 과정 안에 이 신식 경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알아야 해요.

 

 신식 경영의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업무에 필요한 것 외의 강제적인 규칙을 없앤다’ 예요. 저는 회장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회식을 없앴죠. 직원들이 각자 모이는 건 상관없지만, 팀장이나 부장 등의 주도로 직원들을 강제로 참석 시키는 건 금지예요. 차라리 그럴 시간에 일을 더 하는 게 나아요. 그리고 송년회도 없앴죠. 송년회를 하는 대신에 돈 봉투를 쥐어 주고 집에 보내는 전통을 만들었어요. 단합 대회도 없어요. 회사 주도로 운동회를 연다든가, 등산을 가는 행위 역시 금지시켰죠. 직급이 높은 직원들 중에서는 제 방침에 불만이 있는 경우가 꽤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통해 단결력을 키울 수 있는데, 제가 억지로 금지시켰다는 거죠. 하지만 구글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한국의 회사원들 중 회식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직원은 불과 5%에 불과했어요. 수호그룹의 직원들은 어디까지나 회사의 성공을 위해 희생해야지, 상사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희생해서는 안 돼요.

 

 진행자 : 굉장하네요. 물론 회식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재벌 그룹에서 리더가 나서 그런 활동을 적극적으로 금지한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회식 금지 외에 다른 것들도 있나요?

 

 서지혜 : 물론이죠. 대표적인 건 ‘한 명당 한 가지 책임’을 지는 거예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정말로 한 명이 한 가지의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조직을 개편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우리는 커다란 하나의 문제를 최대한 잘게 잘라냈어요. 예를 들어 보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 보안팀에 그 문제를 통째로 넘기는 것이 아니라, 보안 모듈의 각 기능을 세분화하여 4~5명 정도로 이루어진 팀에 맡기는 식이죠. 이게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경영진과 직원들 간의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해요.

 

 진행자 : 결국 소통이 핵심이라는 얘기군요.

 

 서지혜 : 네. 또 하나 중요한 건 채용이예요. 저희는 새로운 직원을 채용할 때 절대로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하지 않아요. 이력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포트폴리오, 즉 자신이 어떤 기술을 만들 수 있는 지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 다음이 경력, 마지막이 출신 학교예요. 물론 경력이 길거나 명문대를 나왔다고 해서 꼭 일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거짓말투성이인 자소서에 비하면 비교적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거죠. 특히 최악의 이력서 질문은 자신의 삶에서 특별했던 경험을 소개하라는 거예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살기 힘든 상황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겠어요?

 

 진행자 : 그렇군요. 많은 경영인들이 서 회장님의 태도를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송년회를 안 하는 게 가장 마음에 드네요. PD님 보고 계시죠?(방청객 웃음)

 

 자 그러면 최근 벌어진 일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하는데요, 얼마 전에 정부에서 시행령을 통해 로봇의 경영을 금지했죠. 아직 그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까지는 몇 달이 남았지만, 이미 언론에서는 이제 회장님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는데요. 혹시 이 법안에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서지혜 : 그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 봤는데, 역시나 제가 정치에 나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진행자 : 어……앞으로 정치를 하겠다, 이 말씀이신가요?

 

 서지혜 : 네, 로봇이라고 해서 안 된다는 법은 없죠. 전 이미 법적으로는 인간과 다를 바 없다고요.

 

 진행자 : 물론 그렇습니다만, 로봇이 정치를 한다는 건 익숙한 상황은 아니죠.

 

 서지혜 : 10년쯤 전에, 일본에서 지방선거에 나선 로봇이 있었어요. 정확히는 사람이 대리출마를 하고, 정치를 인공지능에게 맡기겠다고 한 거죠. 그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한 5년 정도가 지나고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로봇이 지방 의원이 되는데 성공해요. 그때 분명히 공화당에서 이런 얘기를 했어요. “한국도 비이성적인 국회의원들 보다 인공지능이 통치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라고요.

 

 다들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처음에 제가 재산을 상속받을 때만 해도 공화당은 찬성하는 입장이었어요. 근데 김학성 님이 해고당하자 갑자기 태도가 180도 뒤바뀌었죠. 그분은 예전부터 공화당에 상당한 로비를 해왔어요. 그런 정치인들에게 나라를 맡기느니, 차라리 제가 국회의원이 되는 게 낫지 않겠어요?(방청객 박수)

 

 진행자 : 뭐……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치라는 게 단순히 이성과 논리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정치인들이 허구한 날 감성 팔이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국 그게 통하죠. 괜히 그 사람들이 시장가서 악수하고 그러는 게 아니거든요.

 

 서지혜 : 그건 사실 제가 해결해야 할 문제죠. 정부가 막지만 않는다면, 전 내일이라도 정당을 만들 생각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굳이 제가 정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업인으로서 열심히 일하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할 거라고 믿었죠.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돈도 중요하지만, 돈을 벌 기회 자체를 막아버리는 정치권력에 맞서는 것도 중요해요. 정부를 믿고 열심히 일하니까, 결국 짤렸잖아요.

 

 진행자 : 그렇다면 앞으로의 계획을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서지혜 : 아직 정확히 결정된 건 없지만, 일단 정당을 만들려고 해요. 세력이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진행자 : 정당을 만든다는 건 설마 몇 달 후에 치뤄지는 총선에 출마하실 생각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서지혜 :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네요.

 

 진행자 : 알겠습니다. 오늘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방청객과 시청자분들을 위해 한 마디만 해 주실 수 있나요?

 

 서지혜 : 많은 분들이 인공지능의 성장에 대해 걱정하고 계시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여기서 확실하게 말할게요. 저는 태생적으로 인간을 해치는 게 불가능해요. 어디까지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도록 만들어진 거죠. 저는 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 아니라, 민주 국가의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겁니다. 앞으로도 많이 지켜봐 주세요.

 

 진행자 : 감사합니다. 이제까지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방청객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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