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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회장님
작가 : HoneyShake
작품등록일 : 20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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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 3
작성일 : 20-09-23     조회 : 348     추천 : 0     분량 : 6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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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님?”

 

 “네, 알았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줘요.”

 

 사회자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주 의원은 무슨 말을 할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결국 사회자가 나서서 정리를 했다.

 

 “그러니까 서지혜 회장님의 말씀은, 회장님께서 정치인이 된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정치를 보여줄거다, 이런 말씀이시죠?”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분명 좋은 의도를 갖고 계신 것은 알겠는데, 사실 이제까지 많은 기업인들이나 교수들이 자신이 직접 새로운 정치를 이루어 내겠다고 선언한 뒤 정치판에 뛰어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역시 기존의 정치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런 면에서, 회장님께서는 어떤 식으로 그들과 차별화를 하겠다는 건지, 그런 부분을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랑 토론하는 사람은 의원님 아니십니까? 왜 사회자가 직접……”

 

 “아, 지금 의원님께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주 의원은 사회자가 애써 웃어가며 그녀를 달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그는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인간이 로봇 따위에게 빌빌대고 있을 수 있나.

 

 “제 생각 이미 다 정리됐습니다.”

 

 주 의원이 말했다.

 

 “방금 사회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많은 정치인들이 자신만큼은 다르다고 말했지만 그 결과는 기존의 정치인들보다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가 겉보기에는 세금만 축내는 것 같아 보여도, 안 보이는 데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단 말입니다. 서지혜 회장님이 저희보다 낫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그걸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 정치 경력이 없으니까요. 다만 지금 여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기존의 정치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정치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전문가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건 좌우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 분야의 리더가 인재를 뽑을 때는 신념이나 열정이 아닌, 반드시 전문성을 가장 우선시해야 합니다. 전문성이란, 술 따르는 능력이나 아부하는 능력이 아닌 사회의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노동당과 공화당에는 엘리트들이 많지만, 정작 하나의 문제라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정당을 만든다면, 핵심 인물들은 반드시 각계각층의 전문가를 채워 넣을 것입니다.”

 

 지혜의 말에는 막힘이 없었다. 이미 방청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주 의원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과거에도 정부의 규제나 비합리적인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교수나 전문가들은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결국 한쪽 진영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래야 그 당으로부터 받는 돈으로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그녀는 굳이 누구에게 손을 빌릴 필요가 없었다. 주 의원은 어쩌면 죽은 수호그룹 전 회장이 원한 상황이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해서 여기서 물러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처음 이 토론의 참석을 제안받았을 때, 토론이 ‘노련한 의원이 기계에게 주는 가르침’으로 보이길 원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그는 이 토론을 어느샌가 ‘압도적인 능력을 지닌 기계와 인간과의 투쟁’으로 바꾸어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자신이 무척이나 숭고한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전문성의 기준이란 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동당의 경우 자신들의 전문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세금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죠. 반면 공화당이 뽑은 인재들은 몇 가지 문제는 있을지언정,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이전 노동당 정권 10년이 어땠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계시겠죠? 서지혜 회장님이 보기에는 노동당이나 공화당이나 다 똑같을지 몰라도, 실제로 하는 일들을 보면 차이가 꽤 있습니다. 직접 정치를 해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글쎄요, 한 가지 확실히 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화당 정부가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해서, 그들이 제대로 된 개혁을 이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후퇴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노동당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공화당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정말로 큰 문제죠.”

 

 “그래요? 그러면 정확히 어느 부분이, 어떤 식으로 문제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단순히 비판만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는 의원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박정석 대통령님은 노동당 정권이 북한에 굽실댄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공화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 병사의 월급은 전혀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이 여기에 대해 비판하자 대통령님께서 뭐라고 하셨죠? “의무에는 대가가 필요 없다.” 분명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누가 국가에 충성한단 말입니까? 장교, 부사관만 군인이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차라리 노동당이 낫습니다. 북한에 굽실댔지만 적어도 군인대우 만큼은 개선되었으니까요.”

 

 “징병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한국의 특성상 어쩔 수 없습니다. 모병제로는 제대로 된 국토 방어가 불가능합니다. 조금만 사회 공부를 하셔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요.”

 

 “징병제냐 모병제냐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전 하루에 300권 이상의 정치, 외교 관련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의원님, 군대 안 나오셨죠? 노동당에서 의원님 비판할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전 분명히 천식 때문에 면제를 받았고, 젊었을 적 저는 무척이나 가난했습니다. 병역비리 같은 거 저지를 만한 수준이 못 됐다고요.”

 

 지혜는 방청객들을 둘러보았다. 그녀는 마지막 펀치를 날리기 직전 관객들의 표정을 살폈다. 지혜의 예측대로, 방청객들은 로봇의 지적 수준이 어디까지인지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그 바람에 답할 수밖에.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같은 핑계를 댑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 청년들, 팔다리 한쪽이 없지 않은 이상 몸이 아파도 현역 판정 뜨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주 의원님은 지금 기준으로 확실히 현역입니다. 그리고 의원님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국회의원을 했겠죠. 그런 위치에 있으면서, 한 번이라도 군인들을 위해 무언가 해보려고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회의원 1년 연봉이 1억입니다. 여기에 각종 지원비용 다 합하면 2억이 넘어갑니다. 그 중에서 천만 원, 아니 백만 원이라도 군인들을 위해 기부한 적이 있습니까? 국회의원 같은 자리에 올라갔다면, 적어도 본인 대신 의무를 다한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그렇지 않습니다. 사무실 임대비용이나 직원들 월급으로도 상당히 많은 돈이 나갑니다. 저조차도 겨우 적자를 면할 정도입니다.”

 

 “전 인간이 아니라 그런지, 적자가 난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무슨 대기업처럼 사람들을 많이 뽑는 것도 아닌데, 2억으로도 부족하단 말입니까? 제가 보기에 정치인들은 좌우 할 것 없이 남한테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습니다. 의원님은 징병제가 언제 시작된 줄 아십니까?”

 

 “그건, 그러니까……”

 

 주 의원이 버벅대자 지혜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방청객의 분위기는 이미 완전히 그녀 쪽으로 돌아서 있었다.

 

 “근대식 징병제는 프랑스 혁명 때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시민들이 왕을 죽이자 주변 유럽국가에서 프랑스를 위협으로 여겨 동맹을 맺고 공격했고, 프랑스는 이에 맞서 국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징집하게 되면서 징병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차별적’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전방에 나가 싸우지 않는다면, 후방에서 무기나 붕대를 만들어야 했고, 이런 의무에서 남녀의 구분은 없었습니다. 이후의 1, 2차대전 당시의 참전한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가 함께 싸운다는 공통된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징병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어떻습니까? 젊은 남성들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힘 있는 사람들과 여자들은 아무런 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이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북한의 존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징병제를 유지해야 한다면,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군수공장에서 일정 기간 일하거나 세금을 더 내야만 합니다. 그것이 평등이고 공정한 것입니다.”

 

 주 의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노동당의 편이 아니면서도 자신에게 매우 적대적이었고, 그러면서도 논리에 막힘이 없었다. 그가 무슨 반박을 하든 간에 회장은 그것을 이용해 의원을 더 강하게 짓눌렀지만, 그는 여기서 토론을 포기할 수는 없기에 알맹이 없는 반박을 했다.

 

 “저희 국회의원들은 이미 국가를 위해 충분히 헌신하고 있습니다. 군사분야 뿐만 아니라 경제나 사회 분야에서도 할 일은 아주 많습니다.”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화당의 의원들은 오로지 재벌 대기업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벌이 언제까지나 한국을 위해 일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중요시 여깁니다. 이는 수호그룹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이익이 되느냐에 따라 애국자가 될 수도 있고, 매국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공화당이 진정으로 기업의 자유와 발전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규제로 인해 고통받는 기업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 이제까지 전혀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의원님, 단순히 세금만 낮춘다고 저절로 경제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런 사례는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나서는 것입니다. 제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정치권력을 얻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지켜봐 주십시오.”

 

 승부가 났다. 주 의원에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수십 명의 방청객과 수만 명의 시청자들은 기계가 말로 인간을 누르는 역사적인 순간을 보고 있었다.

 

 그 뒤의 일은 너무나도 안타까워 차마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주 의원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버벅댔고, 지혜는 단 한 번의 막힘없이 자신이 만들 새로운 정치에 대해 말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의원은 약간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2030년 11월 3일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다. 민혁을 비롯한 관리자들은 이전과는 나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요 며칠 사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매일같이 그녀의 회사로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녀에게 보내지는 이메일이 너무나 많은 탓에, 관리자들은 메일 관리 소프트웨어를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토론회가 방송된 이후로, 서지혜의 이름은 온갖 포탈 사이트를 도배했다. 사람들은 집, 학교, 직장에서 하루 종일 그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녀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 로봇을 꼭두각시라고 칭할 수는 없었다.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이 워낙에 강렬했던 탓에, 그녀가 로봇이 아닌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이에 그녀는 방송에 다시 출연해 자신의 가발과 인조 가죽을 스스로 벗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몇몇 정치인들과 교수, 기업가, 시민단체의 회원들이 본래 자신이 속했던 조직에서 나와 그녀를 찾아왔다. 그들은 서지혜를 중심으로 하는 ‘전진당’ 이라는 이름의 정당을 설립하고자 했다. 그녀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관리자들은 따로 할 일이 없었다. 관리자는 어디까지나 그녀를 관리하는 사람이지, 정치 활동을 주도하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혁은 이들이 회장의 숨겨진 주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특히 젊은층, 그 중에서도 특히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한 정치평론가는 기존의 20대는 정치에서 사실상 소외되었으며, 이 때문에 청년들은 기성 정치인과 차별화를 두려는 인공지능 로봇에게 열광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젊고 힘 없는 남자들은 그녀의 어록을 커뮤니티 사이트 이곳저곳에 퍼 나르며 한국은 이제 인공지능에게 지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혁은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정신을 보호하는 사람으로서 박 부장과 함께 매우 높은 직위에 있었으나, 정치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전진당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민혁에게도 정치 참여를 제안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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