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11월 6일
안녕하세요? 가짜 뉴스 잡는 자경단, 더노즈TV입니다. 오늘 영상에서는 새로이 등장한 정치계의 다크 호스, 서지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토론회에서 로봇이 정치를 해도 되냐는 주제를 가지고 수호그룹의 서지혜 회장과 공화당의 주동원 의원이 열띤 대결을 펼쳤는데요, 토론이 끝나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지혜 회장을 찬양하는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알파고의 시대가 도래했으며, 이기적인 인간 정치인들을 버리고 인공지능이 한국을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로 로봇이 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냉정하게 말해 이들은 지금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착각은 바로 서지혜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휴이넘 사의 로고가 나타난다>
서지혜의 인공 뇌에 탑재된 인공지능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게 아닌, 미국 기업 휴이넘에서 만들어진 것을 적당히 개조한 것입니다. 휴이넘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그들이 만든 인공지능은 절대 인간과 동등한 수준이 아닌, 어디까지나 인간을 돕는 데 특화된 인공지능에 불과합니다.
<자료 화면>
기자 : 당신은 사람들이 휴이넘에서 만든 인공지능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항상 경계하지 않았습니까?
휴이넘 CEO : 네, 그렇습니다. 저희 회사의 제품을 높게 평가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을 왜곡하면 안 됩니다. 저희 인공지능은 감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아 역시 존재하지 않고요. 만약 이러한 사실을 망각한 채 인공지능을 인간처럼 대한다면, 심각한 혼란이 생길 겁니다.
보셨죠?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서지혜는 절대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로봇입니다. 그렇다면 왜 국민들은 서지혜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그건 바로 그것이 정치인을 비판했다는 이유입니다. 주동원 의원님은 항상 논리와 이성에 근거해 탐욕스러운 노동당 정치인들과 맞서 싸워왔습니다. 노동당 지지자들은 억울해 하면서도 확실한 근거를 갖고 말하는 주 의원님에게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로봇이 나타나면서 달라진 겁니다. 서지혜는 화려한 입담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겉보기에는 분명 주 의원님에게 승리한 것 같습니다.
<서지혜를 지지하는 모임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매우 불길한 BGM이 깔린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서지혜는 일부러 자극적인 말을 선택해 인기를 끈 것이고, 이에 논리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 주 의원님이 마치 패배한 것처럼 보이는 것 뿐입니다. 조금만 생각할 줄 안다면 서지혜의 논리는 허점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전 여전히 민주주의를 신뢰하지지 않습니다만, 한국의 통치는 올바른 사고방식을 지닌 박정석 대통령님 같은 철인에 의해 이루어져야지, 슬픔이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로봇의 의한 통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사람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 영상은 여기까지 입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 눌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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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9년 11월 9일
대한신문 칼럼 : 기술을 앞세워 자유를 무시하려는 자들에게
요즘 우리나라가 시끄럽다. 다름 아닌 ‘로봇 정치가’ 때문이다.
얼마 전 있었던 토론회에서 가정부 로봇 서지혜가 공화당의 주동원 의원과 붙어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확실히 겉으로 보기에는 서지혜의 입담이 더 뛰어나 보인다. 인터넷 등지에는 벌써부터 그녀를 대통령으로 추대하겠다는 글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겉모습에만 치중할 뿐 사람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로봇에게 내면이 존재할 수는 없다.
서지혜 회장은 토론회에서 자신이 정치에 나서기만 한다면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전부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것은 이제까지 저런 소리를 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교수나 시민단체의 수장들이 서지혜와 같은 말을 하며 정치에 나섰지만, 그들은 기존의 정치인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일본과 독일의 예시를 들며 다른 나라에서도 인공지능 정치가가 등장했는데, 한국이 안될 이유가 없지 않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정치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올바른 민주주의가 먼저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우루루 몰려다니는 군중 민주주의 안에서는 인공지능 역시 제 역할을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서지혜의 능력을 제대로 살펴보는 대신, 그녀의 말 몇 마디만 듣고 열광한다. 그 사람들은 단지 분노를 해소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뿐이다. 반면 일본과 독일의 경우 성숙한 시민의식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서지혜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지방 의원 정도가 아닌, 국회의원 내지 대통령이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애초에 인격체가 아닌 존재가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그냥 놔두는 사회가 문제다.
정치인은 그런 식으로 뽑아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정말로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주동원 의원이야 말로, 겉으로는 조금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속은 꽉 찬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일개 로봇 따위에게 나라를 넘기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공지능의 지배를 통해 보상받으려는 것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세워진 나라이고, 당연히 자유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정치에 나서야 한다. 부디 정부와 국민들이 그녀의 사탕발림에 속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신문 칼럼니스트 송지수
2029년 11월 15일
정당 설립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불과 일주일 만에 당원의 숫자는 50,000명이 늘어났고, 어느샌가 지역구에 출마할 의원들의 선정까지 끝났다. 그녀를 지지하는 당원들은 자신들이 기존의 정치와는 다른 진정한 새정치를 한다고 믿었다.
인공지능이 이끄는 정당답게 전진당은 SNS를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인터넷을 쓸 줄 아는 건 다른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전진당은 그 규모에 있어서 다른 정당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혜의 충실한 추종자들은 신속하게 전진당을 찬양하는 글들을 이곳저곳으로 퍼 날랐다.
한편 지혜는 토론회에서의 유명세를 이어가기 위해 자신이 받는 배당금의 절반을 부상당한 군인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법적으로 군인들은 임무 중 부상을 당해 전역을 할 경우 자비로 치료를 해야 했는데, 이 비용 부담을 줄여주기로 한 것이다. 모든 것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SNS에서는 매일같이 그녀의 미담을 이야기했고, 만들어진 지 1달도 안 되는 정당의 지지율이 무려 20%에 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민혁은 이러한 분위기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장의 활동을 어느 정도 옆에서 볼 수 있던 그는 전진당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그림자를 알고 있었다. SNS에 올라온 글들 중 상당수는 진짜 지지자들이 아닌, 여론조작용 소프트웨어에 의해 만들어진 글이었다. 이 소프트웨어는 실제 지지자들과 협동 작전을 펼쳐, 인터넷에서 지혜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을 순식간에 매장했다. 인공지능의 정치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은 시대에 뒤처진 꼰대로 여겨졌다.
여기에 더해 전진당이 더욱 유명해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서지혜의 발언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강남역 근처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지혜가 군인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쓰려 한다며 그녀의 정책이 보여주기 식이라는 비판을 가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위대가 그들에게 역으로 비판을 하는 시민을 폭행하려 들자, 그 시민이 주변의 사람들과 힘을 합쳐 오히려 시위대를 구타한 것이다. 약 10명 정도의 시위대원들은 얼굴이 완전히 찢겨지고 뼈가 한 군데 이상 부러졌다.
이 사건은 ‘강남역 폭행사건’이라 불리며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시위대를 폭행한 시민들을 응원하며 그들을 정의의 사도라고 불렀고,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구속되자 그들을 풀어 달라는 청원에 10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민혁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시위대 측에서 먼저 잘못을 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는 사회적인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다. 지혜는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었는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언제까지 불합리한 법에 복종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며, 지금이야말로 잘못된 법과 규칙을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외친 것이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곳곳에서 폭행 사건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의 범죄 행위는 지혜에 대한 지지율을 오히려 높일 뿐이었는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폭행은 가해자가 먼저 공격당한 상태에서 과잉방어 내지 사적 제재의 형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서지혜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법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스스로의 몸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혁은 자신의 눈앞에서 그런 종류의 폭행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한 노년의 남성이 지하철에서 전진당 당원을 상징하는 옷을 입은 청년을 보고 재수 없다며 비난했다. 남자가 무시하자, 그는 젊은 것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정강이를 걷어찼다. 예전이었다면 오히려 청년이 미안하다며 사과했겠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젊은 청년은 노인의 안면을 수차례 구타한 뒤 쓰러진 여성을 잔인하게 발로 밟았다. 결국 보다 못한 민혁이 그를 말렸다. 청년은 처음에는 민혁에게도 적대적이었으나, 민혁의 얼굴을 알아본 뒤 폭행을 그만두었다. 민혁은 지혜의 관리자로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당의 간부 취급을 받았다.
회사로 온 민혁은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회장에게 들려주었다. 회장은 최근 벌어진 일들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요즘 곳곳에서 회장님 얘기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인기가 굉장한 것 같네요.”
“그래요? 잘 됐네요.”
“회장님, 만약 정치를 한다면……국회의원에 출마할 생각이십니까?”
민혁이 물었다.
“일단은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두려고요. 가능하면 국회의원보다는 대통령 선거에 나가는 게 좋겠네요.”
“정치를 한다면 당연히 사업은 그만둬야 할 겁니다. 김 전무님이 다시 회사를 장악할 수도 있어요.”
“필요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둘 다 못하리란 법은 없죠. 물론 두 개를 동시에 할 수 없게 만드는 공직자법이 있지만, 법이야 바꾸면 되잖아요.”
민혁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는 회장을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장님, 역시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뭐가 문제라는 거죠?”
회장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저 표정. 민혁이 두려워했던 표정이 저것이었다. 회장은 자신의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자신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순간 태도가 180도 변했다. 과거에 김 전무가 그녀에게 맞서다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민혁은 그녀가 자신 곁에 있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역시 위험해 처했다.
“회장님, 저 사람들을 보세요. 스스로를 이성적이고 선하다고 외치고 있지만, 저렇게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어떻게 이성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회장님의 위세를 빌어 나쁜 짓을 벌일 겁니다.”
“시위를 벌이는 건 민주 시민의 자연스러운 행동이에요. 물론 범죄를 저지른다면 저지해야겠지만……민혁 씨는 제가 정치에 나서는 게 마음에 안 드나요?”
“걱정돼서 그럽니다. 회사 경영은 그래도 회장님이 수호그룹에서 만들어진 로봇이니까 가능했겠지만……정치판에 나서게 되면 사소한 문제 하나로도 무너질 수 있잖아요.”
“제가 직접 해결하면 되죠. 민혁 씨는 옆에서 제가 해킹 당하지만 않게 도와주면 돼요. 그리고 가끔씩 날 위로해주는 것도 잊지 말고.”
민혁은 회장이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직접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회장과 갈라서기에는 너무 가까웠고, 그녀와 끝까지 함께 가기에는 용기가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