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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멸망 AS왔습니다
작가 : 깔루아
작품등록일 : 20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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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07. 오즈
작성일 : 20-09-14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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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즈.

 세계의 근원. 세계의 수호자. 세계 그 자체.

 이 세계 신민들의 뜻을 한데 모아 만든 고대 마법, 오즈마를 계승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한 명이었다. 대를 걸쳐 내려오는 오랜 마법은 새로운 오즈가 신민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되면 그 존재성을 흡수하여 더욱 완벽해지고,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이 스러질 때쯤, 다음 세대를 위한 한 명이 선발된다. 에메랄드 시에서 중심을 잡는 오즈의 통치 아래, 각 나라를 다스리는 마녀 네 명이 돌아가면서 미래를 예언하는 수정구를 돌보며, 적당한 시기가 될 때쯤 그 수정구가 보여주는 다음 대의 오즈 후보를 찾곤 했다. 그것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간들 중에서 말이다.

 그리고 도로시가 다음 대의 오즈로 선택되었다. 당시 수정구를 돌보던 남쪽마녀 리프는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여행하는 소녀를 쉽사리 찾기야 했으나 에메랄드 성으로 데려오는 일에 여간 애를 먹어야만 했다. 도로시와 함께 자라고 살아온 환수도 같이 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도로시 자신 스스로가 오즈의 재목이 아니라며 한사코 거절하다 못해 리프를 피해 온 세계를 떠돌며 숨어 다니느라 때 아닌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리프는 오랜 내공으로 다져진 온화한 군주라는 별명이 무색하리만치 어울리지 않는 고민을 끌어안고 한참을 끙끙 앓고만 있었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아군이 나타났다.

 

 “오스카. 전대 오즈의 아들이었습니다.”

 

 피예로는 지그시 감았던 눈을 떴다. 아직도 눈앞에 떠오르는 양 긴 세월을 살아온 정령은 설핏 그리운 미소를 떠올렸다. 전대 오즈는 조용하고 온건한 치세를 중요시하던 인물이었다.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정령의 피가 조금 섞여있던 탓에 아름다운데다가 평화를 아끼던 그녀는 오즈로 선택되기 이전에 이미 결혼하여 아들을 두고 단란한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던 인간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둔 오스카는 평범한 삶과 권력자의 삶을 동시에 지켜봐왔던 터라, 제 그릇을 애써 작게 보며 두려워하는 도로시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기꺼이 정령의 숲과 안드로이드의 거성, 환수의 초원까지 리프와 함께 하며 숨어있는 도로시를 찾아냈고 결국 도로시는 다음 대의 오즈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며 에메랄드 성으로 오게 되었다. 당연히 그들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인님. 왕이 될 운명을 타고 났다 하여 모두가 성군이 될까요?”

 “성군이 될 수 있는 왕이라면, 폭군도 될 수 있죠.”

 “정확합니다. 수정 구슬은 오즈가 될 수 있는 인물을 선별할 뿐, 어떤 오즈가 될 지는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리프님께서 도로시님을 에메랄드 성으로 모시려고 애가 타던 이유가 있었네요.”

 

 피예로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부쩍 마른 목을 축이고서 다시금 오래지 않은 기억을 더듬었다.

 꾸준한 리프의 설득과 오스카의 달변이 빛을 발해 도로시가 에메랄드 성에 오면서, 이후는 일사천리로 착착 진행되었다. 저 혼자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도로시는 성에 빠르게 적응했고, 리프를 포함한 네 명의 마녀에게 각각 교육을 받을 때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에메랄드 시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퍼진 나라는 물론, 나라라는 소속이 없는 특수 종족에 대한 기준도 명확하게 만들어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자신이 여행했을 때 만났던 이들을 주기적으로 초대하여 가르침을 청하곤 했다. 피예로도 그 중 하나였다.

 여느 오즈 후계자와는 달리 독특한 행보였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으나 피예로는 도로시에게 정령의 지식을 가르쳐 주러 들어간 서재에서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그 곳에서는 도로시 뿐만이 아니라 오스카가 함께 있었다.

 

 “오스카는 도로시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아직 전대 오즈가 승하하지 않으셨다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않나요?”

 “예. 어디에 있든 이상할 건 없습니다. 이상한 건 항상 도로시님 곁에 계셨다는 사실이지요.”

 

 카인은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빵 부스러기가 조금 묻어있는 입가를 매만지던 그는 이윽고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미소하며 피예로를 올려다보았다. 빙그레 휜 입매가 지극히 즐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사랑에 빠졌군요.”

 “……네.”

 

 그제야 카인은 모든 일들이 차근차근 순서대로 이해되었다.

 오늘 이 세계로 떨어진 카인이 대충만 훑어보아도 도로시는 분명 군주의 자격을 갖춘 인물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이 생각한 바가 맞다 확신한다면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직한 군주의 표본이나 다름없는 도로시가 작정하고 여러 나라와 오지에 숨으며 리프를 피해 다녔던 과거를 말끔히 잊어버리고, 오스카와 몇 번의 만남으로 인해 마음을 바꾸었다. 오스카가 어지간한 달변가이거나, 아니면 도로시에게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변화가 생겼거나. 그리고 진실은 후자였다.

 리프는 물론 에메랄드 성, 더 나아가 그들을 본 모든 이들은 바로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며 다음 대의 오즈 역시 평탄한 치세를 이끌어 주리라는 또렷한 희망을 말이다.

 카인은 피예로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상상해보았다. 어엿한 숙녀와 청년이 되어가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앞으로 자기네들이 이끌어 갈 나라를 위해 하나씩 포부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위로 익숙한 모습이 겹쳐지려는 순간, 카인은 눈을 뜨고서 어느덧 희망만 가득하던 과거에 심취해버린 피예로를 바라보았다. 문득 자신 또한 그와 같은 눈을 했던 적이 있다는 기억을 떠올리던 그는 싸늘한 비소 대신 예의 나른한 미소를 걸쳤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다른 세계를 즐기느라 사용하지 않았던 제 능력을 떠올렸다. 이어서 목적을 떠올렸다.

 그랬다. 카인은, 카인과 엘란츠는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왔다.

 자신들과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는 이가 없도록 멸망을 회수하기 위해 왔다.

 이 이야기는 구원받아야만 한다. 그리 각오하며 카인은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창조자의 눈.’

 [스킬 창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이 세계와는 이질적인 화면이 카인의 시야에 생겨났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보이는 화면을 카인은 머릿속으로 능숙하게 다루었다.

 

 ‘인물 정보 확인.’

 [피예로.

 종족 : 버드나무 정령. 지고의 현자.

 스테이터스 : 체력-C. 마력-A. 존재력-A.

 상태 : 피로-C. /무구한 축복-A(발동 중)

 소유 스킬 : 고목의 혜안-S(상시 발동). 매료-A(상시 발동). 리프레쉬-A. 무구한 축복-A(발동 중). 기억의 궁전-B(발동 중).]

 

 은은한 금빛 테두리로 반짝거리는 상태창을 지그시 바라보던 카인은 유독 눈길을 끄는 스킬명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무구한 축복?’

 

 무릇 축복이란, 힐러에 특화된 소수의 인물 혹은 종족에게 주어지는 자그마한 특권이나 다름없었다. 인력으로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전투나 마법과는 달리 이는 선택받은 자만이 이용할 수 있었기에, 축복의 효과가 크면 클수록 그 조건은 까다로워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피예로가 가진 축복 역시 이름부터 까다로운 조건을 나타내며 위풍당당한 빛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무구한 축복-A(발동 중)

 발동 시간 1일. A급 이하의 모든 상태 이상을 치료합니다. 스킬 발동 중에는 체력 스테이터스가 1급 증가합니다. 모든 세계를 통틀어 깨끗하고 순수한 존재만이 시전할 수 있습니다. 시전자가 자연과 동화될수록 축복의 힘은 증폭됩니다.]

 

 “…피예로님.”

 

 스킬에 대한 상세 설명을 훑어 내린 카인이 문득 그를 불러 세웠다. 이유야 간단했다. 피예로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기에 굳이 빙빙 돌려서 여러 가능성을 가늠해 둘 필요를 느끼지 못한 탓이었다. 오랜만에 꺼내보는 추억에 흠뻑 젖어서는, 한창 명석한 도로시와 누구보다 완벽하게 그녀를 보좌하던 오스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던 피예로가 민망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너무 신난 나머지 주체하지 못한 자신이 불쾌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어지간히 카인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 그에게 카인은 여상 가벼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도로시님은 아직도 오스카님을 사랑하나요?”

 “……네. 분명히.”

 “그렇군요.”

 “하지만.”

 

 뒤이은 반론은 절박한 심정에 이끌려 무심코 튀어나온 것이 아니었다. 피예로는 그 어느 때보다 또렷이 확신했다.

 

 “그렇기에 오직 도로시님만이 오스카님을 죽일 수 있습니다.”

 

 퍽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목의 정령의 푸르른 눈을 마주하고서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모두가 진실이었기 때문에 구태여 두 번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생각한 카인은 즉각 다음 할 일을 떠올렸다. 엘란츠가 돌아오려면, 한참 더 걸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월요일이니까 고기를 먹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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