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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멸망 AS왔습니다
작가 : 깔루아
작품등록일 : 20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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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10. 집결
작성일 : 20-09-18     조회 : 313     추천 : 0     분량 : 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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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돌이 만들어낸 파동은 당장의 위력은 없어 보일지라도, 넓게 퍼져나가기 마련이었다. 카인의 등장이 딱 그러했다.

 전쟁 중이라서 더욱 쏟아지다시피 하는 보고와 서류에 그와 관련된 내용이 가득했고, 잠시 숨을 쉬러 나온 산책 겸 시찰에서도 그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도로시는 고작 하루 만에 반오즈군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분위기로 뒤바뀐 것이 반가우면서도 못내 아쉬웠다. 길어지는 전쟁이 지쳐가기만 하는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지만 지금 같은 효과는 없었다. 아니, 바라지도 못했다.

 다들 활기가 넘쳤고 희망이 넘쳤으며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 새로운 전쟁을 앞둔 사람들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가 건네준 작은 포션 한 병의 기적이 이리도 컸다. 그렇게 느낀 도로시는 씁쓸해지려는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군단장.”

 “보크? 정말 보크에요?”

 

 거기다 몸이 반파되어, 사람으로 치면 빈사 상태나 다를 바 없던 동료까지 너무나 멀쩡한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도로시는 반가움으로 제 앞에 선 보크에게 한 발자국 가까워져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표정이라곤 없는 은회색 눈과 파리한 얼굴이 그런 도로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가 손을 뻗어 머리를 토닥토닥 쓰다듬어 주었다. 당연지사 손길은 서툴기 그지없었으나 도로시는 마냥 기쁘다는 듯 얌전히 차가운 손안에 머리를 기대었다.

 

 “남쪽마녀를 재우고 오는 길이다.”

 “네? 리프를요? 하지만 리프 방에는 지금 프레이가…….”

 “검은 마법사가 방을 빌려주었다. 버드나무 정령이 포션을 만들면서 같이 보고 있다.”

 “…….”

 

 잠시 할 말을 잃은 도로시가 입을 벌린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재차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리프가 순순히 잤어요?”

 “검은 마법사가 준비해 둔 꿀술을 마시게 했다.”

 “풋….”

 

 순식간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해서 도로시는 살풋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로 이전까지 보고받았던 내용이나 고민되어 처리하지 못한 사안들을 먼저 이야기하며 가벼운 조언을 구하려던 차였다.

 콰아앙!

 해가 서서히 기울어 곧 드리워질 밤을 준비하던 노을빛 평화로운 시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음이었다. 더불어 가장 높은, 가장 안쪽, 가장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성채 꼭대기 층에서 연기가 터져 나오듯 확 피어올랐다. 그것을 먼저 발견하기 무섭게 도로시는 보크의 목에 팔을 감아 매달렸고, 보크는 찰나 그녀와 눈을 마주치더니 그대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방 안쪽에서부터 가득 차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상당해서 들어갈 엄두는커녕 안을 살펴볼 수도 없었다. 이윽고 여러 갈래로 뻗어 나온 가느다란 불기둥을 피해 보크는 고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제 몸을 방패삼아 훌쩍 거리를 두고 멀어져야만 했다.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은 확실해졌다.

 

 “프레이!”

 

 도로시는 여전히 창가에 넘실대는 화염을 향해 반가운 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본인에게는 미처 닿지 못했는지 다시금 불길이 허공을 꿰뚫으며 치솟았다가 잔상처럼 불티를 잔뜩 흩트려놓았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빠르게 주변을 훑어 동태를 살피던 도로시가 허리춤에 찬 검을 바투 쥐었다.

 

 “보크. 바람을 일으켜주세요.”

 “5초가 한계다.”

 “충분해요.”

 

 고개를 끄덕이고선 씩 웃는 도로시를 가만히 내려다보며 침묵하던 보크는 그녀가 제 어깨와 팔뚝을 밟고 설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주었다. 이어서 다시금 불길이 치솟는 창을 향해 다른 팔을 뻗었다. 그리고 불길이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점멸하는 순간에 맞춰 뻗어나간 강한 바람이 매캐한 연기를 뚫어 길을 내주었다. 그와 동시에 도로시의 작은 몸이 마치 총탄처럼 튕겨지면서 바람을 타고 안으로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뒷모습을 겨우 지켜본 보크는 새로이 채워진 연기를 가만히 응시했다가 어디론가 향했다.

 

 ‘고마워요, 보크.’

 

 냉큼 뒤따라 들어올 줄 알았던 보크의 엔진소리가 멀어지자 도로시는 도리어 안도했다. 이유모를 분노에 휩싸인 프레이를 제압하기 위해서 원군을 데리러 갔으리라. 데려올 만한 인물을 정 찾지 못한다면, 억지로 겨우 재웠던 리프라도 깨워야할지 몰랐다. 그만큼 화염의 마녀, 서쪽마녀 프레이는 강했다. 도로시는 저 마저 말아보지 못해 삼켜버릴 듯이 달려드는 화염을 검으로 베어내며 한 발자국씩 떠듬떠듬 뜨거운 열기를 따라 나아갔다.

 

 “도로시님!”

 

 화아악!

 뱀처럼 기척조차 없다가 누군가 그녀를 부르기 무섭게 속도와 강도를 더해 등 뒤를 급습하던 화염줄기가 새카만 무언가에 틀어 막혔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던 도로시는 자신을 감싸듯 드리워진 검은 빛의 장막 같은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방패 정도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기묘한 곡선 혹은 직선 혹은 원 혹은 다각형 혹은 기호 혹은 문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하나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은은한 빛을 뿜는가하면 화염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어둠처럼 느껴져서 도로시는 더욱이 아연해질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다급히 끌어당긴 이는 카인이었다. 그는 볼에 가벼운 화상을 입은 사람치고 여유로운 미소가 여전했다. 표정과는 달리 그가 입고 있는 옷 또한 불씨가 달라붙어 탄 자국과 구멍이 이리저리 뚫려 남루한 행색임은 둘째 치고 퍽 절박해보였다.

 

 “저 좀 살려주세요.”

 

 거기다 샐쭉 덧붙이는 요구에 도로시는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도 잠시, 도로시는 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로잡으려 달라붙는 불길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서 카인을 향해 쏘아지는 불꽃 그 자체의 화살을 베었다. 이를 앙다문 그녀가 이 사단의 발단을 찾아 주변을 신속히 훑었음에도 불길과 재, 연기 말고는 확보된 시야가 없었다. 그런 도로시의 의도를 일찍이 알아챈 카인은 쥐고 있던 검은 지팡이를 빙글 돌려 휘둘렀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 순간 지팡이는 분명 더 길어졌다. 그리고 뾰족한 끝에서부터 도로시를 감쌌던 장막이 펼쳐졌다. 검은 빛으로 이루어진 장막이 그녀를 화마에서 막아주었을 때와는 조금 다르게 한 방향의 불길을 모조리 흡수했다.

 

 “프레이님은 저쪽이에요!”

 “오즈마에게 고한다!”

 

 금방이라도 조각나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장막이 게걸스레 불을 먹어치워 약간이나마 흐려진 불길 너머로 두 눈을 부릅뜬 프레이가 보였다. 그 형태를 의식하자마자 도로시가 한 손을 뻗었다. 검을 쥔 손으로는 여전히 옆에서 달라붙으려는 불꽃을 흐트러트리며 그녀는 어렵지 않게 정신을 집중하는가 싶더니 전음보다 더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서쪽마녀 프레이를 구속하라!”

 

 도로시의 등에서 초록빛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세계가 번쩍 초록빛으로 물드는 착각이 들었다. 적어도 카인은 그리 느꼈다. 그래서 홀린 듯이 산란하는 초록빛을 향해 허공 높이 두 손을 뻗었다. 그것이 실수였다.

 쐐애액!

 삽시간에 성난 화마가 제 주인이 선 자리로 도망치며 사그라지는 순간, 도로시도 그리고 카인도 오즈마라는 마법이 만들어낸 따뜻한 안정의 빛에 마음을 놓은 그 순간이었다. 프레이가 마지막으로 이를 갈며 뽑아 던진 화염의 단검이 카인을 향해 날아갔다. 정확히 카인의 머리와 가슴, 양 손을 노리고, 기다란 불길을 만들어내며 날아간 단검이 그 목표를 완수했다.

 

 “카인님!”

 

 폭음이 들렸다. 가까스로 잦아들었던 연기가 폭발했다. 카인이 선 지점으로부터 거대한 불덩이 다시 타올랐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에 호흡마저 잊어버린 도로시가 벌어진 턱을 덜덜 떨었다. 꾸역꾸역 다잡아 엮어놓았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모양새로 그녀는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스스로 활활 타오르는 화염구가 안에서부터 절반으로 쩍 갈라진 건 그때였다.

 

 “이야아…,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나 진짜 죽을 뻔 했어.”

 “호들갑 떨지 마라.”

 

 허공에서 불티도 남기지 못해 날아가 버린 그 곳에서 카인이 걸어 나왔다. 그리고 엘이 퍽 귀찮다는 모양새로 검을 검집에 갈무리했다. 바로 어제, 처음 이 세계에 드러났을 때처럼 믿겨지지 않는 상황을 멍하니 응시하며 어느덧 눈물까지 흘리던 도로시를 향해 카인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빙그레 미소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괜찮으세요, 도로시님?”

 

 고개를 끄덕였는지 가만있었는지 자각조차 없는 상태로 도로시는 카인과 엘을 계속해서 번갈아 보았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또 하나 믿기 힘든 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엘의 뒤에서부터 쏜살처럼 튀어나와 도로시에게 머리를 콩 박으며 입가와 볼, 코를 정신없이 부비는 늑대 정확히는 늑대형태 환수의 존재였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렸을 때부터 쭉 같이 자라온 제 단짝이 분명했다. 바로 어제 함께 돌아오지 못해 행방불명되었던, 감히 수색대를 보낼 엄두도, 스스로 찾으러 갈 여유조차 내지 못했던 형제였다. 이 모든 게 꿈이어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토토?!”

 “꾸우웅, 꾸웅, 꾸우우웅.”

 

 환수는커녕 맹수, 심지어 개나 다름없이 낑낑 앓으며 짝꿍을 찾은 환수는 그리워했던 만큼 잔뜩 기뻐했다. 기껏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다 준 엘란츠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재회를 만끽하는 환수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카인이 불쑥 물었다.

 

 “내 생각보다 더 늦었네?”

 “네 생각보다 많이 다쳐있어서 열쇠를 쓸 수가 없었다.”

 “어쩐지…….”

 

 어깨를 으쓱이며 엘란츠를 살펴보던 카인은 문득 저보다 한참 더 장대한 기골의 정상을 노리고 손을 뻗었다. 그리하여 다다른 부스스한 백금발 머리칼 사이를 살살 쓰다듬으며 씩 웃어주었다.

 

 “고생했어.”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피곤한 기색 만연한 엘란츠는 카인을 지그시 노려보는가 싶더니 그대로 시선을 옮겨 밧줄 형태의 초록빛에 꼼짝할 수 없도록 몸이 묶인 프레이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 짧은 눈짓을 바로 읽은 카인은 한결 안심한 미소가 스며든 눈가를 가늘게 좁혔다.

 

 “이제야 다 모였네.”

 

 

작가의 말
 

 힐링에는 나만의 털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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