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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소녀상상연애
작가 : 바코드1001
작품등록일 : 202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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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라우마가 이루어준 동거
작성일 : 20-10-16     조회 : 656     추천 : 0     분량 : 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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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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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프롤로그, 빛을 보지 못하는 그녀의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로 인해 사랑하는 두 남녀가 동거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다.

 

 

  그해여름은 미치게 더웠지만 미치게 신났다. 그래, 행복만 가득했을 여름이었다.

 

 도로이의 첫사랑 정박은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를 꿈꾸는 ‘태권보이’였는데,

 

  “아빠!!! 박이 합격!! 태릉간대!!!”

 

  “오오!!! 우하하!!!! 야, 이거 오늘은 무조건 파티다!!”

 

  “아줌마랑 아저씨 모셔올게요!”

 

 1년 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 입촌을 하게 됐다.

 

 앞으로 1년 간 고된 훈련과 테스트를 통해 올림픽 출전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었지만 그는 분명 해낼 거니까!

 

  “아줌마! 아저씨! 파티! 파티! 빨리요!!!”

 

 집을 뛰쳐나가 앞집 대문을 열자마자 신이 나 외쳤다.

 

 도로이에게 정박은 이미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녀의 집, 1층 거실을 파티용품으로 가득 메웠다.

 

 파티션을 걸고, 손수 쓴 축하 플랜카드도 걸었다.

 

  “후- 후-”

 

  “어이구, 로이야. 너 그러다 볼 터지겠다?”

 

  “헉, 헉..... 아오, 숨 차.”

 

  “저 자식 저거, 운동부족이야. 박이랑 같이 태권도장 다니라니까 말도 안 듣고.”

 

  “아빠!!!”

 

  “뭐?”

 

  “그러게. 나도 진즉에 같이 다닐 걸. 이참에 헬스라도 끊을까?”

 

  “아이고, 됐네요. 아가씨. 하는 일이나 잘 하세요.”

 

 정박의 아빠가 도로이에게 물었다.

 

  “로이 요즘 무슨 일하니?”

 

  “넵! 대학도 못 갔는데 돈이라도 벌어야죠. 저 요즘 제가 만든 인형 인터넷에서 팔라고 준비 중이에요.”

 

  “오오, 대단한데? 로이가 손재주 하난 끝내주잖아? 조만간 대박치겠다!”

 

  “역시 아저씨밖에 없다니까. 두고 봐, 아빠. 내가 반드시 성공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빠 호강 시켜 드릴라니까.”

 

  “어이구야, 호강은 무슨. 얼른 커서 시집이나 가.”

 

  “아.......”

 

 새 풍선을 집어 드는 도로이가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그건 조만간 이뤄질거야, 훗.”

 

 그것에 관해선 믿는 구석이 있단 뜻이었다.

 

 정박의 엄마는 가진 요리 실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우와, 상다리 휘겠다.”

 

  “호호호. 한 입 먹어볼래?”

 

  “당근이죠! 아-”

 

 도로이의 입 안에 맛깔난 채소볶음 한 젓가락을 쏙 집어 넣어주었다.

 

  “음... 으음!!! 대박!! 난 말예요, 아줌마가 왜 식당을 안 하시나 이해를 못하겠어.”

 

  “됐네요. 집에서 살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요, 아가씨?”

 

  “헤헤. 그래도 나중에, 나중에 박이가 금메달 잔뜩 따서 연금 많이 받으면 꼭 하세요? 난 그럼 거기 가서 밥 먹어야지!”

 

 도로이의 집에선 군침 도는 맛있는 냄새며,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오후 내리 흘렀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깜짝 파티를 준비하던 모두는 정박이 올 시간이 되자 집 안에 불을 모두 꺼버렸다.

 

 삑, 삑, 삑, 삑.

 

 도로이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퍽 익숙하게 들렸다.

 

  “저 왔어요. 이럴 거면 그냥 로이네랑 합쳐 사는 게 낫... 뭐야? 왜 이렇게 깜깜해?”

 

 곧바로 거실의 불을 켜려는 정박이었는데,

 

  “짠!!!”

 

  “!!!!!!!!”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전식이 색색의 빛을 밝혔다.

 

  “태권보이의 태릉 입성을 축하합니다!!!”

 

 펑! 펑! 펑!

 

 모두의 손에서 일제히 터지는 폭죽소리에 정박은 한 번 더 놀랐다.

 

  “아... 진짜....”

 

 물밀 듯이 밀려드는 감동에 고개를 툭 떨구기까지.

 

  “어머, 너 우니?”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울어도 돼! 자랑스런 우리 아들! 펑펑 울어버려!”

 

  “그럼, 그럼. 우리 박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사내새끼가 고작 태릉 간 거 가지고 운다고?! 징그러!”

 

 도로이의 빈정거림에 빼꼼 고개를 들어 보이는 정박이었다.

 

  “뭐... 라고!! 야, 도로시!”

 

  “으악!!!”

 

 넓은 거실을 뱅 돌아 1층 마당으로 도망쳐버린 도로이였다.

 

  “히익!!!”

 

 아무리 발이 빨라도 태권보이의 손바닥 안이었다.

 

 도로이를 뒤에서 꽉 안아 붙잡은 정박이 그녀의 볼을 쭉 잡아 늘렸다.

 

  “다시 한 번 말해봐, 요 입이 방금 뭐라고 했냐, 어?”

 

  “아! 아파! 아줌마 얘가 내 볼따구 찢을라 그래요!!!”

 

 그 당시 유행하던 장난감 중에 ‘만득이’라는 게 있었는데,

 

  “엄마, 엄마. 이거 봐. 도로시 얼굴 만득이가 따로 없어. 완전 잘 늘어나.”

 

 양껏 잡아 늘린 도로이의 얼굴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는 정박이었다.

 

  “호호호!”

 

  “하하하!”

 

  “허허허! 이야, 내 딸이지만 진짜... 겁나 웃기다!! 껄껄껄!!!”

 

  “아아!!! (아빠!!!)”

 

 정박은 그녀의 등에 매달리듯 딱 붙어선 한 바탕 웃음이 터져버린 거실로 다시 들어섰다.

 

  “무거워! 좀 떨어지지?!”

 

  “싫은데?”

 

  “그만들 투닥 대고 얼른 와서 앉아. 엄마가 오늘 특별히 솜씨 좀 발휘 해 봤지롱!”

 

 롱이라니, 정박의 엄마도 참 그 나이에 순수함만은 잃지 않은 소녀 같은 분이었다.

 

 거실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테이블이 너무 작아 그걸 치우고 넓은 상판을 깔았다.

 

 도로이의 말처럼 상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이 한 가득 차려져 있었다.

 

  “자, 자. 한 잔씩들 받으시고.”

 

 정박의 아빠가 모두의 잔에 와인을 채우고,

 

  “우리 박이. 태릉 간 건 축하했으니까 이번엔 내년 올림픽 출전과 금메달을 기원하며 건배!”

 

 그의 미래를 향해 축배를 외쳤다.

 

  “건배!!!”

 

  “감사합니다!!! 반드시 금메달! 따내겠습니답!!!”

 

 거하게 원샷을 한 정박이 불쑥 도로이의 아빠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뭐야? 야, 너 왜 이래?”

 

  “어머, 몰라 묻니? 뻔 하잖아.”

 

  “네?”

 

  “드디어 때가 왔네. 로이야, 아저씨가 미리 말하는데...”

 

 정박의 아빠가 로이의 귓가에 속삭였다.

 

  “난 너... 엄청 좋다!”

 

  “!!!!!! 에에?!”

 

  “후-읍!”

 

 크게 숨을 들이 킨 정박이 눈빛을 총명하게 빛내며 말했다.

 

  “도로시 아니, 도로이, 저 주십시오! 아버님! 아무리 생각해봐도 평생 걸쳐 로이 지킬 남자가 저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야! 니가 뭔데!!........”

 

 말은 그래도 도로이의 얼굴은 새빨간 사과가 따로 없었다.

 

  “어머, 얘 얼굴 빨개진 거 봐. 호호.”

 

  “새아가, 그런 반응 너무 새삼스럽다.”

 

  “아저씨! 아줌마!!”

 

 놀려대는 예비 시부모들에 민망해진 도로이였다.

 

  “에잇, 먹고 죽자. 그냥.”

 

 와인 병을 들어 잔에다 콸콸 따라내더니,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로이의 아빠는 근엄하게 앉아 곰곰이 생각하는 척, 코끝을 긁고 있었다.

 

 꿀꺽, 긴장한 정박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좋다, 그래! 박이 너 가져라!”

 

  “풉!!!!! 켁! 켁!”

 

 목을 넘어가던 와인을 그대로 뿜어버린 도로이의 옆에서 정박이 벌떡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넙죽 허리를 숙이는 꼴을 흘겨보는 도로이가 아빠를 향해 외쳤다.

 

  “아빠! 아무리 그래도 딸내미를 가져라! 가 뭐야, 가져라가! 내가 무슨 물건이야?!”

 

  “아아, 그 쪽이 불만인 거야? 그럼 데려가~ 로 바꾸지 뭐.”

 

  “앗싸! 와, 나 심장 터질 뻔.”

 

 주변에 뿜어버린 와인을 닦아내는 로이의 손을 덥석 잡아다 제 심장에 대는 정박이었다.

 

  “장난 아니지? 막 뛰지?”

 

  “흥!”

 

 그의 손을 뿌리친 로이가 말했다.

 

  “결혼 전까지 노터치. 건드리지 마. 나 혼전순결 지향해.”

 

  “야! 그건 좀!...... 아.. 하하...”

 

 저도 모르게 버럭 하다, 부모들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와인을 들이켰다.

 

  “결혼 승낙 받자마자 너무들 간다? 근데 로이야, 아줌마는 손주 빨리 보고 싶어.”

 

  “어? 아, 어... 그게.... 하하, 아줌마도 참.. 별 소릴 다하셔....”

 

  “맘 바뀌었냐?”

 

  “시끄러.”

 

  “내 아들이지만 참...”

 

 정박의 아빠가 도로이의 아빠에게 물었다.

 

  “너 진짜 괘찮겠냐?”

 

  “내 딸이 죽고 못 사는데 별 수 있나, 뭐.”

 

  “아빠!”

 

  “단,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따와. 따오면 로이 주마.”

 

  “그건 걱정하지 마십쇼! 아버님!”

 

  “하! 금메달?! 은동이도 딸까 말까면서 무슨.”

 

  “어쭈?”

 

 도로이의 얼굴을 가지고 또 만득이 놀이를 하는 정박이었다.

 

  “악담하는 입이 요 입이지, 어?!”

 

  “아, 진짜!... 그 왜 너보다 잘한다는 니 절친도 있잖아?”

 

  “절친? 누... 야, 나진호 내 절친 아니거든?”

 

  “뻥 치시네? 걔 얘기 할 때마다 눈이 그냥 반짝반짝하면서.”

 

  “아니라고, 아니라고!... 게다가...”

 

 뭔 서운한 일이 있는지, 불현 듯 정박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걔 이번에 태릉 못 가게 됐어.”

 

  “어머, 왜?”

 

  “그냥... 아니, 실력은 충분한데 고등학교 때 발목 다쳤던 데가 계속 말썽이었나 봐요.”

 

  “저런... 그 친구도 꽤 하던데. 아들, 너도 부상 조심해. 그 어깨도 매일 마사지해주고.”

 

  “옙.”

 

 ‘나진호’라는 정박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도로이의 아빠가 물었다.

 

  “그 나진호 라는 친구가 그 친군가? 고등학교 때 그?”

 

  “네. 체전 때 비겼던 애요.”

 

  “시합 중에 여자한테 한 눈 팔다 그랬지, 아마? 그 정신으로 금메달은 무슨 놈의 금메달?”

 

  “너 오늘 좀 맞자!”

 

  “꺅!!!!”

 

  “일로 와!!! 도로시!!!”

 

 예비 신혼부부들의 잡기 놀이가 벌어진 도로이의 집은 그날 자정이 넘어 설 때까지 화목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래. 그해여름 그날까진 정말이지 미친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행복해 뛰고, 또 뛰었더랬다.

 

 

 

 ♥☆♥☆♥☆

 

  2008년 여름, 43번국도 위에서 참혹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용의차량인 대형트럭의 운전기사는 사고현장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피해차량에 탑승했던 일가족 4명 중 3명이 사망하고, 1명은 중상으로 현재까지 의식불명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가 아닐 수 없는데요. 사고 현장인 43번 국도에 나가 있는............”

 

 현장을 비추는 뉴스도 차마 보지 못했고, 볼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도로이는 대학병원 안치실 앞에 서 있었다.

 

 아니, 삼촌 ‘수찬’에게 기대 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는 게 맞겠지.

 

  “사망하신 도영찬씨와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아... 전 동생이구요. 여기 이 아이가... 형의 딸입니다.”

 

 형사가 다가와 사건경위며 이후 조치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뭐 하나 들릴 리가 있나.

 

  “..............”

 

 그녀는 그저 멍했고, 멀찍이 복도 끝에서 그녀를 훔쳐보는 한 남자의 눈동자가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 아래서 흔들림을 멈추지 않는 갈색의 눈동자가 읊조렸다.

 

  “.... 미안해.......”

 

 형사의 안내를 받아 아빠가 있는 안치실로 한 걸음, 한 걸음 겨우 발길을 내딛는 도로이를 보는데,

 

  “흑.... 으흐흑.... 미안해.. 미안.....”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다.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며 미안하단 말만 읊조리는 그는 정박의 친구 ‘나진호’였다.

 

 콰앙!!!

 

 갑자기 안치실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도로이가 뛰쳐나왔다.

 

  “!!!!!!!.......”

 

 그대로 진호가 숨어 있는 복도 끝을 향해 달려오는데,

 

  “!!!!!!!!!!!!!”

 

  ‘왜 저래?......’

 

 뭘 봤는지, 문득 멈춰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도로이였다.

 

  “아...... 아................”

 

  “어?!!! 저,”

 

  “로이야!!!!!!!!!”

 

 옅은 신음을 뱉다 기절해버린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는데,

 

  ‘헙!’

 

 숨소리라도 들릴까 입을 틀어막고 숨어버린 나진호였다.

 

 기절한 로이에게 달려 온 수찬과 형사를 피해 복도 끝에 있는 계단 아래 몸을 숨기기까지.

 

  ‘미안해.......’

 

 그날, 그렇게 숨어버린 걸 일생에 걸쳐 후회하고, 후회할 줄 알았다면.

 

 다가가지 못한 걸 뼈에 사무치게 자책할 줄 알았다면 달라졌겠지, 모든 것이.

 

  ‘아빠... 아저씨...... 아줌마... 정박... 박아.........’

 

 2008년 여름의 끝자락에 도로이는 보았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아빠와 소년소녀처럼 순수하고, 따뜻했던 첫사랑의 부모님을.

 

 그리고 ‘그것’이 찾아왔다.

 

 트라우마 [ trauma ]

 

 ‘상처’라는 의미의 그것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며, 그 이미지가 장기 기억된다했다.

 

 장기 기억, 도로이는 그날 본 ‘이미지’를 12년 째 기억하고 있다.

 

 가끔 보기도 한다.

 

 환한 ‘백열등’ 아래서면 그들이 보인다.

 

  ‘아빠.... 아저씨, 아줌마....... 박이는 안 돼요. 그러니까...... 오지 마세요.’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옆엔 늘 그가 있다.

 

  “나 아니면 누가 널 돌봐? 같이 살자, 이제. 이제부터 내가 너 지킬게.”

 

 참혹했던 현장에서 살아남은 정박은 3개월이란 긴 시간을 잠만 잤고, 또 6개월을 재활치료란 명목으로 병원에 있었다.

 

 그리고 돌아왔다,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던 그 집으로.

 

 도로이의 곁으로.

 

  “그냥 살기 뭐하면 결혼해도 되고.”

 

  “....... 싫어. 연애도 못 했는데 결혼은 무슨.”

 

  “그럼 그냥 혼전 동거하는 셈 치자.”

 

  “....... 너네 집으로 가.”

 

  “그건 안 되겠다. 내가 지금 네 옆이 아니고는..... 살 수가 없을 거 같아서. 지킨다곤 했는데... 사실은 내가 살고 싶어서. 나 좀 살려주라, 도로이.”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두 남녀는 그로부터 12년 째, 애매한 동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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