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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과 결혼의 상관관계
작가 : 백자
작품등록일 : 202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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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그녀의 사정
작성일 : 20-09-14     조회 : 485     추천 : 0     분량 : 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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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비온은 아무리 기다려도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지금쯤이면 일 끝났을 텐데....’

 

 밤 11시, 비온은 한 달 뒤면 결혼할 예비 신랑 성우의 전화를 집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비온이 연락해 봤지만 성우의 전화는 계속 꺼져 있다.

 

 ‘핸드폰 충전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쁠 리가.’

 

 비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뒤늦은 웨딩 사진 촬영이 있던 날.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바쁜 비온과 대기업 회사원으로 일이 많은 성우는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더 미룰 수 없는 웨딩 사진 촬영을 위해 특별히 휴가를 냈다.

 

 낮에는 간만에 단장을 곱게 하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신랑 신부인 것 마냥 사진을 찍었다.

 

 몸은 좀 피곤하더라도, 촬영을 끝낸 뒤에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었다.

 

 촬영 막바지, 성우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 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오늘 내내 촬영에 집중하지 못하던 성우는 걸려온 전화를 받자마자 굳은 얼굴로 비온에게 말했다.

 

 “비온, 미안한데 오늘 저녁은 같이 못 먹겠다. 부장이 갑자기 호출해서 회사로 들어가 봐야겠어.”

 

 “아......”

 

 비온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비온도 평소 갑작스런 사건사고가 터지면 취재현장에 급하게 나가느라 약속을 깬 적이 부지기수. 그래서 애써 괜찮은 양 미소 지었다.

 

 “그래요. 그럼 그 레스토랑은 담에.”

 

 “미안해. 일 끝나는 대로 연락할게. 저녁은 못해도 술이라도 한 잔 하자.”

 

 하지만 급하게 사라진 성우에게선 아무 연락도 없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기고 말았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절친 미라와 함께 사는 오피스텔로 돌아왔더니 미리 주문했던 청첩장 묶음이 배달돼 있었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고급스런 청첩장 500장.

 

 부담스럽게 많은 숫자였다.

 

 비온이 청첩장을 건넬 사람은 돌아가신 부모님 자리에 서 주실 이모와 이모부, 친척 몇, 직장 동료 몇과 학창시절 친구 몇 뿐.

 

 수십 장이면 될 청첩장을 수백 장이나, 그것도 과하게 화려한 걸로 찍은 건 전적으로 시어머니 이문희 여사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 여사는 작은 결혼식을 치르고 싶다는 비온에게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다.

 

 “비온이 넌 부모가 안 계시니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남들 결혼식 하객 부르는 만큼은 불러야 하는 거야. 안 그래도 너무 기우는 결혼인데, 너 때문에 식까지 초라하게 치러야 하니?”

 

 이 여사는 비온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환기시켰다.

 

 이미 결혼식장부터 예단, 혼수까지 모든 결혼 준비를 자신의 뜻대로 관철시키며 과도한 요구로 비온을 괴롭히기도 했다.

 

 비온은 이 여사가 주는 지독한 모멸감에 결혼을 깨고 싶었지만, 성우는 끈질기게 비온을 달랬다.

 

 성우의 중재로 수천만원 예단 요구를 줄이고 또 줄이긴 했지만, 비온은 이 결혼이 도대체 누굴 위한 건가 하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 결혼식까지 딱 한 달만 참자. 한 달만.’

 

 그 뒤론 시댁 사람들은 안 보고 살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꾸역꾸역 버텼다.

 

 하지만 요즘 성우를 보면 비온은 묘한 불안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성우를 알고 지낸 지 7년이었다. 1년 위 대학 선배인 성우는 신입생 비온에게 먼저 다가왔고, 오랜 기간 가까운 선후배로 지내다 작년에 갑자기 비온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연인이 됐다.

 

 성우는 반년 전에는 청혼까지 해왔다. 공무원인 아버지 퇴직 전 결혼은 해야 한다면서.

 

 원래 비온은 부모님이 안 계신 자신을 기꺼이 받아줄 집안은 없을 거라 생각해 평생 결혼은 안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든 걸 안고 가겠다는 성우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가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비온은 요즘 성우가 변한 것 같다고 느꼈다. 예전보다 차갑고, 딴 생각을 하는 듯한 시간이 많아졌다.

 

 ‘성우씨도 나랑 시어머니 사이를 중재하느라 지치긴 했겠지.’

 

 비온은 성우를 다독이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특별히 받은 휴가 날이니 갑자기 큰 사건사고가 터져도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다.

 

 비온은 성우와 허심탄회하게 술 한 잔 걸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런 와중에 부담스러운 청첩장까지 도착했으니, 얼른 이 많은 청첩장을 성우에게 넘겨버리고도 싶었다.

 

 비온은 결국 성우가 사는 원룸으로 향했다.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오겠지.’

 

 성우의 원룸은 비온이 미라와 함께 사는 오피스텔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였다.

 

 결혼한 뒤엔 신혼집이 될 곳이기도 했다.

 

 건물 앞에 도착해 힐끗 올려다 보니 성우네 원룸의 불은 꺼져 있었다.

 

 한숨을 쉰 비온은 이미 아는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르고 원룸에 들어섰다.

 

 그러나 몇 걸음 못 가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어둠 속에서도, 원룸 저 편 침대 위에 몸을 겹치고 있다가 후다닥 떨어지는 두 남녀의 실루엣이 보였기 때문이다.

 

 “비, 비온...?”

 

 당황한 목소리긴 했으나 남자는 성우가 맞았다. 그는 상의를 벗은 채였다.

 

 충격에 휩싸인 비온 앞에서, 침대 위에 있던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얇은 슬립만 입고 있던 여자는 비온을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뗐다.

 

 “...성우씨, 저 여자구나? 성우씨 예비 신부?”

 

 ‘예비 신부’ 앞에서, 낯선 여자는 놀라울 정도로 당당했다.

 

 “...오히려 이렇게라도 확실히 알게 된 게 나을 지도. 성우씨, 얼른 가서 정리하고 와.”

 

 뭐? 정리?

 

 비온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와중에 성우는 그 여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정리하고 올게. 곧 돌아올 테니 기다려.”

 

 뭐? 정리하고 올게?

 

 “......하아.”

 

 비온의 입에선 탄식만 흘러나왔다.

 

 “비온, 일단 밖으로 나가자.”

 

 겉옷만 걸친 성우는 비온을 억지로 원룸 밖으로 잡아 끌었다.

 

 속절 없이 끌려나온 비온 앞에서, 성우는 먼 산 바라보듯 다른 곳을 보며 입을 열었다.

 

 “비온, 이렇게 돼서 미안하긴 하지만.”

 

 성우는 기어코 하려던 말을 했다.

 

 “우리 결혼, 없던 일로 하자.”

 

 “.......”

 

 그 순간 비온은 정신 마저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아까 못 볼 장면을 본 순간부터 이렇게 되리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온 몸에서 힘이 풀렸다.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버텼다.

 

 지금 이 순간 바보 같은 모습은 보이기 싫어서.

 

 하지만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이미 떨리고 있었다.

 

 “...그, 그걸 말이라고 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어머니께 말해서 예단비는 전액 돌려줄게. 혼수 주문해놓은 것도 다 취소해. 결혼식장 취소 등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하아.”

 

 어이가 없다 못해 이제는 분노가 치밀었다.

 

 “...말하는 꼴을 보니 결혼 파토 낼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나 보네? 오늘 나한테 걸리지 않았어도?”

 

 “...그래.”

 

 “그런데도 오늘 웨딩 촬영까지 했다? 뒤로는 신혼집이 될 곳에서 다른 여자랑 그런 짓이나 하면서? 사람의 탈을 쓰고 어쩜 이럴 수 있어?”

 

 극도의 배신감에 휩싸인 비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7년을 알고 지내온 사람이었다.

 

 뜨거운 사랑은 아니라도, 잔잔한 사랑이라고는 생각했다.

 

 대학생 때 부모를 잃고 혼자 걸어온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줬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철저하게 기만 당했다는 사실은 비온의 마음을 짓이기고 후벼팠다.

 

 “...대체, 어떻게, 언제부터... 변명이라도 해 봐. 나에게 적어도 미안함이라는 게 남아있다면.”

 

 비온은 이렇게 질척거리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싶었다. 저 뻔뻔한 얼굴이 어디까지 가는지.

 

 “...민정씨를 만난 건 몇 달 안 됐어. 결혼식 준비하며 어머니와 너 사이에서 중재하느라 힘들 때 위로해준 사람이고.”

 

 위로? 나와 결혼을 준비하며 다른 여자에게 위로를 받아?

 

 “당신, 참 끝까지 잔인하네.”

 

 비온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잇새로 전해지는 저릿한 아픔은 그냥 삼켰다.

 

 문득 비온의 머릿속엔 성우가 입에 올렸던 이름이 다시 스쳐지나갔다.

 

 민정?

 

 몇 달 전 성우는 투덜대며 말했었다. 회사 오너의 차녀가 바로 자신과 같은 직급으로 같은 부서로 들어왔다고. 그 여자 이름이 지금 들은 이름과 같았다.

 

 “혹시, 저 여자가 당신이 잘 보여야한다던 회사 오너의 차녀?”

 

 “......그래.”

 

 “하. 남자판 신데렐라라도 돼서 재벌가 사위라도 돼 보겠다는 건가?”

 

 “...앞으로 일은 모르지. 하지만 일단 그녀 덕에 내 눈에 다른 세상이 들어온 건 사실이야. 그동안 꿈꾸지 못하던 그런 상류층의 삶. 적어도 어머니에게 못 났단 소리는 안 들을 사람이고.”

 

 뭐? 못 났단 소리? 나를 지칭하는 거?

 

 이제 비온은 귀를 막고 싶어졌다.

 

 “그래. 이제 헛소리는 들을 만큼 들었네. 우리 남은 인생, 서로 마주치지도 말자. 제발.”

 

 싸늘하게 내뱉은 비온은 몸을 휙, 돌렸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뒤를 돌아 성우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짜악.

 

 성우의 뺨에 날아온 비온의 매운 일격이었다.

 

 비온의 손자국이 남은 성우의 뺨은 순식간에 붉으죽죽해졌다.

 

 “야! 너 미쳤어?”

 

 성우는 뺨을 매만지며 소리를 빽 질렀다.

 

 “너 성격이 이렇게 지랄 맞으니까....”

 

 “너, 내가 이 정도로 끝내주는 걸 고맙게 여겨. 너 같은 놈한테 더 손대는 것 자체가 끔찍해서 참는 거니까.”

 

 휙 돌아선 비온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난 괜찮을 거야.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은 금방 잊을 거야.

 

 하지만 성우의 원룸 건물을 벗어나자마자 비온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성우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무릎을 꿇고 청혼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뭐? 평생 사랑하겠다고? 고작 몇 개월도 못 지킬 그런 헛소리를...’

 

 비온은 눈물을 닦으면서 실소했다. 그러다 청첩장 묶음이 든 쇼핑백이 아직 자신의 손목에 걸려 있는 걸 발견했다.

 

 ‘에잇! 이 따위 거!’

 

 비온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길가 쓰레기통에 쇼핑백을 쳐 넣었다.

 

 “그래, 결혼 무덤에 들어가기 전에 저 인간이 저런 말종인 거 알아서 다행인 거야. 그럼, 그렇고 말고.”

 

 말은 그리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비온은 뿌해진 눈을 비비며 한없이 걸었다.

 

 과거의 스스로가 한없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잃은 뒤 드디어 의지할 듬직한 남자가 생겼다며 마냥 기뻐했던 멍청이.

 

 그와 평생을 함께 하며, 그를 위해서라면 그를 닮은 아이도 낳아보겠다고 생각하던 천치.

 

 자조하던 비온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다, 미라에게 우는 꼴을 보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독한 알코올에 마음이나 달래자.

 

 요 앞 포장마차로 갈 곳을 정한 비온은 급하게 몸을 틀었다.

 

 그러나 골목길을 돌아서던 순간, 비온은 경직됐다.

 

 검은 색 세단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피하기엔 늦었다.

 

 “아악!”

 

 비온은 자신의 몸이 차에 부딪쳐 튕겨나가는 걸 느꼈다.

 

 몸이 붕 떠오른 순간, 이게 마지막임을 직감했다.

 

 먼저 떠나갔던 부모님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엄마 아빠, 저도 이제, 두 분이 계신 곳으로 가요...’

 

 비온의 시야는, 순식간에 암전되었다.

 

작가의 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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