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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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퇴물과 범생
작성일 : 20-07-31     조회 : 927     추천 : 2     분량 :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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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흑같이 깜깜한 비포장 외길.

 현란한 경광등 불빛이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한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덤불이 우거진 저수지 인근에 먼지를 폴폴 날리던 경찰차 서너 대가 멈춰 섰다.

 제일 앞차에서 박상수가 뛰어내렸다.

 서른 둘에 호리호리한 장신인 상수는 무술유단자로 서부경찰청 형사과 경위였다.

 

 상수는 날렵하고 예리한 눈빛으로 어두컴컴한 주변을 탐색했다. 그리고 품에서 권총을 꺼낸 뒤 낡은 슬레이트 지붕집을 가리키며 뒤따라 선 경찰들에게 지시했다.

 

 “저쪽, 이쪽.”

 

 상수의 수신호에 따라 경찰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집 담벼락을 에워쌌다.

 정적에 휩싸인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대문이 열린 마당도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상수는 번뜩이는 눈빛으로 어둠 속 구석구석을 응시했다.

 

 ‘제길.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상수는 애가 타는 심정을 감춘 채 뒤따르는 경찰들에게 주변을 수색하라는 눈짓을 했다. 그러고는 저 혼자 마당 깊숙이 들어섰다.

 

 마당에는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듯 잡초가 허리까지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한가운데 오래된 고목이 서있었다.

 

 탈깍

 

  '으응? 이 소리는?'

 

 라이터 켜는 소리가 분명하다.

 

 상수는 소리 나지 않게 잰걸음으로 고목 옆에 딱 붙어섰다. 일순간이었지만 나무 뒤에서 불빛이 번뜩였다.

 

 ‘제길. 역시 내 예상대로 여기에 있었군! 하필 왜 여기에! 빌어먹을!'

 

 상수는 마구 터져 나오려는 욕을 꾹 참은 채 조심스레 나무 뒤로 돌아갔다. 그 순간 휙 소리와 함께 상수의 팔목을 뭔가가 스쳤다. 하지만 상수가 더 빨랐다. 날렵하게 상대방 일격을 피한 뒤 도리어 상대방의 목을 가격해 제압했다.

 퍽. 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바닥에 엎어졌다. 상수는 재빨리 그의 등을 타고 올라앉아 놈의 손을 뒤로 꺾었다.

 

  “야야야얌마!! 아파! 아프다구!! 나야 나!!”

  “쉿 조용히 해요!”

  “상수야 얌마 너 진짜 이러기야!”

 

 소리를 듣고 경찰들이 달려와 두 사람을 에워싼 사이. 상수는 엄살을 피워대는 상대방의 팔에 수갑을 채우고 단번에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세상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상대방을 노려봤다.

 

 그의 이름은 변기태. 마흔 네 살인 그는 형사과 경위로 별명이 똥장이었다. 벌이는 일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동료들은 모두 그를 퇴물 취급하며 무시했다.

 

 기태와 상수는 지난 3년간 짝지를 이뤄 사건을 함께 조사해왔다. 그런데 기태는 벌이는 일마다 족족 사람 속을 뒤집었다. 그 중 오늘이 단연 최고다.

 상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인간을 선배라고!’

 

 하지만 기태는 뻔뻔하게 엄살을 떤다.

 

  “얌마! 너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냐? 당장 팔 풀어줘. 같은 동료끼리 이게 뭐하는...?”

 

 상수는 들은 척도 않고 막내형사에게 그를 밀어버렸다.

 

  “계속 떠들면 주먹으로 입을 막아버려.”

 

 막내가 놀라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상수는 무시해버렸다. 그리고 권총을 다시 거머쥔 순간, 기태가 다급하게 앞을 막아섰다.

 

  “상수야. 딱 5분만.”

 

 뭔 말도 안되는 소리. 상수가 들은 척도 않자, 기태가 수갑 찬 두 손으로 다급하게 상수 팔을 붙잡았다.

 

  “상수야!”

  “놔요, 이거.”

  “부탁한다, 제발.”

  “계속 이렇게 방해하면 진짜 가만 안둘 겁니다.”

  “얌마! 뭔가 찜찜하다구.”

  “그놈의 찜찜!!”

 

 버럭 소리치던 상수가 얼른 목소리를 낮췄다. 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 선배라는 이 작자가 지껄이는 '찜찜'이라는 이 말은 이제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치밀었다.

 왜? 이 인간이 지껄이는 직감은 번번이 사건을 망쳐왔으니까.

 

  “그놈의 빌어먹을 감 따위, 나한테 또 써먹을 생각 말고 비켜욧”

 

 상수는 그를 거칠게 밀어버렸다. 그리고 절망적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기태의 시선을 물리치고 그대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기동대가 우르르 뒤따라 갔다.

 

 운동화를 신은 채 그대로 거실에 들어선 상수는 숨소리를 죽인 채 한 발 한 발 안방으로 다가갔다.

 방안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수는 흑표범처럼 날렵하게 방문 틈에 얼굴을 댔다. 방 안에는 예상대로 세 사람이 있었다.

 구치소에서 도망친 20대의 김만철과 그의 부모.

 

  “만철아. 제발... 아들아, 안돼!!”

 

 방문을 등지고 선 아들 김만철을 만류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고통이 묻어나고 있었다.

 

  “마마만철아. 앞으로 절대로 안 때리마. 내가 잘할께. 내 너한테 친아들처럼 잘할께. 제발, 살려줘!!!”

 

 만철의 양아버지. 50대 후반인 그는 속옷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가 만철의 발목을 와락 붙잡았다.

 

  “만철아, 제발 사사살려줘!!”

  “아 씨... 나더러 어쩌라고 대체!!!”

 

 절규하듯 천장을 향해 소리치던 김만철의 한 손에서 뭔가 번뜩였다.

 망치다!

 

 문 틈으로 지켜보던 상수의 눈에 날이 섰다.

 방안의 만철이 한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분명히 망치였고 그는 지금 제 양아버지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철이 제 발목을 붙잡고 있는 양아버지 앞에 갑자기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내가 감방 가있는 동안 우리 엄마한테 잘해줘! 안 그러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탈옥해서 이걸루”

 

 쾅-! 소리와 함께 방문이 활짝 젖혀지고 상수를 비롯한 기동대가 우르르 뛰어 들어왔다.

 상수는 재빨리 김만철의 머리에 권총을 갖다 댔다.

 

  “꼼짝 마 김만철! 연쇄 살해혐의로 너를 체포한다!”

 

 김만철은 방바닥에 시선을 내리꽂은 채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그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가쁘게 숨을 내쉬던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씨이. 5분만 달라고 했잖아. 더도 말고 딱 5분.”

  “그 망치에서 당장 손 떼!”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 내 발로 간다고 기다려 달랬잖아!!”

  “김만철! 말 들어! 당장 그 망치에서 손 떼!”

  “다 필요 없어, 새끼야!!”

 

 몸을 발딱 일으켜 세운 만철이 망치를 높이 들어올렸다. 하지만 퍽, 소리와 함께 상수가 만철의 허리를 가격하자 만천은 옆구리를 움켜쥐며 바닥에 엎어졌다.

 동시에 타탓 소리와 함께 방안의 형광등이 터져버렸다.

 암흑으로 변한 방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뭔가에 맞아 나가떨어진 소리, 아들 앞에서 절망하는 여인의 비명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이내 철컥, 소리와 함께 플래시 빛이 일제히 커졌다.

 어느 새 만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 상수가 거칠게 그를 잡아끌며 소리쳤다.

 

  “일어나, 새끼야!”

 

 입가에 핏물을 묻힌 채 만철은 상수에게 끌려가면서도 계속 방안을 돌아봤다.

 양아버지가 제 엄마를 품에 끌어안고 히죽 웃고 있었다.

 가녀린 새처럼 겁먹은 눈망울의 어머니.

 만철은 갑자기 현관 앞에서 상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탁합니다. 형사님! 우리 집에 일주일, 아니 삼일만이라도 경찰 좀 있게 해주세요. 예? 이렇게 부탁합니다, 형사님!”

 

 상수는 다시 거칠게 만철을 일으켜 세우며 소리쳤다.

 

  “경찰이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울 엄마 죽어요!”

  “새끼야, 쇼 하지 마! 너 없으면 네 부모님 두 분 다, 다리 쭉 뻗고 주무실 거다!”

  “형사님!”

 

 상수가 만철의 애원을 무시한 채 경찰차에 그를 밀어 넣었다.

 뒷좌석에 앉은 만철은 창문 밖으로 애타게 제 집을 바라보았다.

 

 고목 뒤에 서있던 기태는 차 안의 만철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

 

 관자놀이가 쪼개질 것만 같다.

 기태는 주머니에서 두통약 몇 알을 꺼내 급하게 삼켰다.

 하지만 숙취로 인한 두통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어젯밤도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냉장고 뒤에 밀어둔 소주병을 다시 꺼내 밤새도록 들이켰다.

 

  ‘지긋지긋하네. 마누라처럼.’

 

 흣흣.-

 기태가 허망하게 웃었다.

 

  ‘제발 그 일 좀 그만 두면 안 돼? 불안해서 못 살겠다구!’

  ‘당신이 가족을 위해 해준 게 뭐 있어! 언제 제대로 월급 한번 다 갖다 준적 있어? 대체 왜 남들 사정까지 봐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왜 우리 딸이 그 고통을 감수해야 해!’

 

 흐흣.

 기태는 다시 씁쓸하게 웃으며 남은 두통약을 입 속에 모두 털어 넣었다.

 

 마누라와 딸 생각만 하면 서글퍼지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들이 준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가한 고통 때문이었고 이 편두통은 그로 인해 얻게 된 정당한 벌일지도 모른다.

 

 짝. 짝. 짝.

 

 경찰청 강당 안에서 박수소리가 들렸다.

 일요일 아침이지만 오늘은 형사과 경찰들이 모두 정복을 입고 강당에 모였다.

 경찰청장이 직접 표창식을 진행하기 때문이었다.

 활짝 열린 강당 문밖에는 기자들이 몰려와 앞 다투어 보도를 하고 있었다.

 

 [망치살인마 김만철이 지난밤 자정 서울외곽 자택에서 긴급 체포됐습니다. 지난 6개월간 양원리 일대에서 세 건의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유유히 사라졌던 김만철이 어젯밤 경찰청 기동대에 의해 자신의 집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김만철은 자신의 부친마저 살해하려다 실패한 희대의 패륜아가 되었습니다.]

 

 복도 끝에 떨어져 서있던 기태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강당 안을 슬쩍 보았다.

 제복 차림의 상수와 경찰 세 명이 청장에게 표창을 받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 시끌벅적했던 경찰청 복도도 조용해지고 있었다.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던 상수가 당당하게 걸어와 기태 앞에 멈춰 섰다.

 

 기태는 추래한 몰골로 담배를 물고 서있었다.

 상수가 그 담배를 확 빼앗더니 담배를 꺾어버렸다.

 

  “청사에서 금연인 거 몰라요?”

  “풉. 그걸 모를 놈이 세상에 어딨냐.”

  “알면서도 대체 왜 이럽니까.”

 

 기태는 답하지 않고 다시 주머니에서 꽁초를 꺼내 물었다.

 상수는 한심하다는 듯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감사실에 또 불려갔다면서요?”

 

 기태는 피식 웃으며 상수의 가슴에 달린 경위 빼지를 툭 쳤다.

 

  “축하해, 범생.”

  “축하라는 말이 나옵니까?”

 

 기태는 다시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자, 살인사건이래.”

 

 

  ***

 

 

 서울외곽을 달리는 차 안의 분위기는 적막했다.

 운전 중인 상수와 조수석의 기태는 침묵한 채 앞만 보고 있었다.

 기태가 헛기침을 하며 라디오를 켰다.

 

 [오늘아침 골드골프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돈종률씨는 전직 국회의원이자 빈민구제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빈자들의 성자로 불려왔습니다...]

 

 상수가 기태를 힐끗 보자,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바로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골드골프장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감식반이 골드골프장에 나가서 감식 중이야. 피살자 돈종률 의원은, 오늘 아침 8시쯤 골프장 관계자가 최초 로 발견했고. 벙커 한가운데 하늘자로 뻗어서 죽어 있었다더군.”

 

 상수가 여유롭게 운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태가 다시 말을 이었다.

 

  “피살자 돈종률 의원은, 현직 의원은 아니고 전직의원이고."

  "예. 압니다."

  "아무튼 피살자는 아내와 대학생 딸이 있고. 일단은 사체현장 먼저 살펴보고 나서...?"

 

 갑자기 기태가 뭔가를 손으로 다급하게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허헛!! 박상수 저저저!!!"

 

 놀란 상수가 핸들을 훅 꺾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차는 요란한 스키드 마크를 그리며 도로 한가운데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 다음에 계속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최극입니다.

 오랜만에 미스터리 작품을 또 하나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1화~3화까지 현재 수정을 진행하고 있는 점 양해를 바랍니다.

 

 - 최극 Dream

나나 20-09-05 19:19
 
1화만 읽었는데도 선작을 누를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잘 읽겠습니다^^
  ┖
최극 20-09-13 00:10
 
나나님, 소중한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작 체크하신 마음이 잘 유지되도록 재미나게 엮어보겠습니다.

- 최극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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