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공범자들의 변명
작가 : 이야기
작품등록일 : 2020.8.1
  첫회보기 작품더보기
 
살인사건
작성일 : 20-08-01     조회 : 645     추천 : 6     분량 : 5288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수고 많아요. 한강경찰서 박상인 형사입니다.”

 

 상인이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하자, 대문을 막던 두 명의 경찰들이 길을 터줬다. 상인은 까칠한 수염을 슥 만지고는 대문 앞에 걸린 폴리스 라인을 넘어섰다.

 

 ‘끼이익’

 

 상인이 대문을 조심스레 여니 관리되지 않은 마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당은 한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았는지 바닥 주벽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상인은 주변을 둘러봤다. 한쪽에는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고 벽 곳곳에는 금이 쩍 가기도 했다. 상인의 키 높이만 한 집 또한 언제 한 쪽으로 쓰러질지 모를 정도로 옆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이 모습에 상인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곳에 사람이..'

 

 상인은 갈색 점퍼에 손을 넣으며 혀를 찼다. 하얀 입김이 그의 주변에 일어났다. 상인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시신 냄새가 상인의 코를 때렸다. 상인은 손등으로 코를 막으며 시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신은 바닥을 향해 누워 있었다. 바닥 곳곳에는 굳은 핏자국이 있었으며 바로 옆에는 구더기들이 꿈틀대며 기어가고 있었다.

 

 '시신 상태를 봐서는 죽은 지 꽤 됐군..'

 

 상인은 시신에서 눈을 거두고 주변을 바라봤다. 하얀 마스크를 쓴 두 명의 국립과학수사대 조사관이 이곳저곳을 찍고 있었다. 상인이 말했다.

 

 “휴, 냄새야. 오늘도 열일이십니다.”

 

 “어. 왔어? 오늘도 빨리 왔네?”

 

 국립과학수사대 김재민 팀장은 무덤덤하게 말을 꺼내며 손목시계를 들어올렸다. 상인이 10분 정도 늦었다는 표시였다.

 

 “형님도 참. 제가 그동안 얼마나 늦었다고.. 아시잖아요. 요즘 바쁜 거..”

 

 김 팀장이 눈을 흘기자 상인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알았어요. 미안, 아니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시신을 보니 좀 오래된 것 같은데요.”

 

 “50대 남성으로 추정. 죽은 지 한 달 정도 된 것 같아. 시신이 많이 훼손됐어.”

 

 김 팀장은 누워있는 시신의 사이를 조심스레 들춰봤다. 시신 곳곳에는 상처가 있었고 그 사이로 심하게 썩어 있었다. 김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말을 이었다.

 

 “아주 고통스럽게 죽은 것 같아. 입을 얼마나 꽉 물었는지 이들이 다 갈렸어. 그런데..”

 

 “그런데요?”

 

 “상처들이 그렇게 깊지 않아. 시신이 많이 훼손됐지만, 그 때문에 죽을 만한 이유는 아니었다는 거지. 뭐.. 여기. 여기 봐봐.”

 

 김 팀장은 시신의 배에서 난 실밥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 꿰맨 흔적이 있는데.. 썩지 않은 걸 보니 최근에 꿰맨 흔적이야. 물론 죽기 전에 꿰맨 것인지 죽은 후에 꿰맨 것인지는 확인해봐야겠지만."

 

 상인은 시신의 부위를 유심히 바라봤다. 김 팀장의 말대로 시신의 배에서 꿰맨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주변에는 시퍼런 멍 또한 들어 있었다.

 

 “특이한 상처네요. 신고는 누가 한 거예요?”

 

 “주인집 아주머니. 밀린 월세 받으려 왔다가 이상한 냄새가 나니 바로 신고부터 했다더군.”

 

 “확인도 하지 않고요?”

 

 “문이 안 열렸겠지. 바깥에 접착제로 덕지덕지 발라놓았더라고.”

 

 김 팀장이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문밖 주변에는 하얀색 접착제 자국이 보였다. 창문에도 접착제로 봉인한 흔적이 보였다. 시신의 냄새를 최대한 숨기려는 수법이었다.

 

 “타살 정황이라... 범행 도구는요?”

 

 “흉기로 쓴 게 너무도 많아. 부검해봐야 정확한 원인을 알겠지만, 개인적인 원한이 큰 거 같아. 일단 책상 위에 있는 편지부터 보는 게 도움이 될 거야.”

 

 김 팀장의 말에 상인의 고개는 책상으로 향했다. 컴퓨터로 쓴 편지가 진공 팩에 놓여 있었다. 상인은 가져온 손 장갑을 낀 뒤, 증거품인 편지를 진공 팩에서 조심스레 꺼냈다. 편지를 읽는 내내 박 형사의 눈썹이 들썩댔다.

 

 “어허. 간만에 미친놈 한 명이 나왔네요. 그럼 장민수라는 아들이 자기 아빠를 죽였다는 건가요? 더욱이 이렇게 편지까지 남겨두고? 이건 완전히 계획적으로 이뤄진 건데요?”

 

 상인은 진공 팩에 편지를 다시 넣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야근 축하해. 박 형사. 일거리가 또 생겼군.”

 

 마스크를 벗은 김 팀장이 씩 웃더니 박 형사의 어깨를 툭 쳤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강력 범죄 3건이 잇달아 일어나 휴식도 취하지 못한 상인이었다. 상인은 인상을 찡그리며 김 팀장을 바라봤다.

 

 “형님, 저 점심도 못 먹었는데.. 밥이나 사줘요. 그래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네놈이나 드세요. 고인 앞에 두고 그러면 못써. 나는 고인 앞에 두고 절대 밥 먹으러 가지 않아. 결과 나오면 연락하지.”

 

 김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곧장 시신과 함께 현장을 떠났다. 홀로 남은 상인은 한숨을 푹 쉬고는 방을 천천히 바라봤다. 단칸방에는 옷장 하나와 컴퓨터 한 대가 전부였다. 한 쪽 벽에는 책들이 난잡하게 쌓여있었다. 고등학교 교과서도 있었고 참고서도 보였다. 그중에서도 유독 사람 손이 많이 탄 책이 상인의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도스도프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었다. 상인은 책을 집어 쓰윽 살펴봤다. 책은 한동안 펼쳐지지 않았는지 먼지부터 흩날렸다. 상인은 한 차례 기침을 하고는 다시 책을 확인했다.

 

 ‘그 사람을 죽여도 죄책감이란 게 과연 들까.’

 

 책 앞 장에 적힌 문구였다. 상인은 굳은 표정을 하고는 자신의 휴대폰으로 이 문구를 찍었다. 상인이 보기에 개인적인 원한이 담긴 문구처럼 보였다. 상인은 반대쪽 벽도 바라봤다. 술병이 나열된 곳이었다. 곳곳에 깨진 술병도 보였다. 술병 안에 담배꽁초가 있는 것도 보였다. 누군가가 방 안에서 종종 담배를 핀 모양이었다.

 

 상인은 닫혀 있는 옷장을 열었다. 곰팡내가 진하게 났다. 그는 냄새를 빼기 위해 한참 동안 허공에 손으로 휘저어야만 했다. 그리고는 옷장에 걸린 옷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상인의 눈에 익숙한 교복이 들어왔다. 인근에 위치한 강서고등학교 교복이었다. 명찰에는 ‘장민수’라고 적혀 있었다. 상인은 교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어 장민수의 얼굴이 담긴 학생증이 나왔다.

 

 '작년에 졸업했고.. 지금은 성인이라...'

 

 상인은 진공 팩에 학생증을 넣고는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하드디스크를 분리하고 진공 팩에 넣었다.

 '돌려보면 뭔가 나오겠지.'

 

 상인은 주변을 더 둘러봤다. 그때 장판 밑에서 무언가가 상인의 발가락에 걸렸다. 상인이 장판을 들자, 곰팡내가 상인의 코를 찔렀다. 상인은 코를 막으며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바닥에는 밥풀부터 시작해 벌레 죽은 것까지 다양하게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색이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상인이 집어 보니, 다름 아닌 사람의 귀였다.

 '장민수.. 이 새끼..'

 

 상인은 순간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상인은 증거팩에 내용물을 조심스레 담고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도 방과 같이 먼지만이 쌓여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특별히 남아 있는 게 없었다. 그때 상인의 눈에 쓰레기통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상인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상하게도 긴장이 된 상인이었다. 그는 조심스레 통을 열어봤다. 다행히 쓰레기통 안에는 텅 비어 있었다. 상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밖으로 나갔다. 방 안과는 전혀 다른 시원한 공기가 상인의 얼굴을 때렸다. 상인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마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직도 이런 집이 있구나. 어렸을 때 이런 집에서 살았는데.’

 

 장민수의 집은 고층 아파트 사이를 두고 다 쓰러져가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이 지역은 금세 재개발이 될 것 같았다.

 

 ‘이 지역에 투자하면 돈 좀 벌겠는데.’

 

 상인은 담배를 깊게 빨아대며 대문 밖으로 나갔다. 상인의 얼굴 주변에는 담배연기가 풀풀 피어올랐다.

 

 ‘꼬르륵’

 

 상인의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상인은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끔 봤다. 시침은 오후 5시를 가리켰다.

 

 “아, 배고파. 뭐 먹지.”

 

 마침 순댓국밥 가게가 상인의 눈에 띄었다. 상인은 주변 이웃들한테 장민수에 대해서 물어볼 겸 그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좁고 허름했다. 테이블은 3개밖에 없었으며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냉장고 위에 걸린 낡은 TV 소리만이 적막을 갈랐다.

 

 “사장님. 장사 하세요?”

 

 상인의 말에 닫힌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노파가 방 안에서 나왔다. 이곳에 살면서 장사를 하는 듯 했다. 노파는 반갑게 상인을 맞이했다.

 

 “그러믄요, 뭐 드릴까.”

 

 “순댓국밥 하나 주세요.”

 

 노파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슬리퍼를 주섬주섬 신고는 준비된 김치와 깍두기를 건넸다. 상인은 젓가락을 들고 깍두기부터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저씨가 많이 배고팠나 봐.”

 

 노파는 미소를 지었다.

 

 “아 점심을 못 먹어서요. 그나저나 깍두기 맛있네요.”

 

 “천천히 많이 먹어요. 부족하면 밥 더 줄게.”

 

 순댓국밥은 금세 나왔다. 하얀 김이 국밥에서 모락모락 피어 올라왔다. 박 형사는 국물을 한 번 떠먹은 뒤, 밥을 말아 허겁지겁 입으로 넣었다. 노파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입에는 맞아요?”

 

 “네. 맛있어요. 국물이 깊어요.”

 

 상인은 국물을 떠먹으며 답했다.

 

 “그 아이도 아저씨처럼 잘 먹었는데 말이야...”

 

 “누구 아이요?”

 

 “저 윗집, 죽은 그 놈의 아들 말이야.”

 

 노파는 장민수를 말하고 있었다. 상인은 장민수를 잘 아느냐고 물었다.

 

 “그러믄요. 불쌍한 아이였죠. 매일 지아비한테 맞고 살았거든. 배고파서 밥도 못 먹고 돌아다녀서, 내가 종종 국밥을 먹이곤 했지.”

 

 “최근에 이상한 행동을 하던가요?”

 

 “아무렴. 최근에 멀리 떠난다고 나한테 돈을 주고 갔어요. 그동안 고맙다고 말이야. 아이고 근데 그 아이가 지아비를 죽인 게 맞는 거죠? 사람들이 막 손가락질하더라고.”

 

 “뭐, 그렇다고 해요. 사실 저도 잘 몰라요.”

 

 노파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한숨을 쉬었다.

 

 “지아비가 나온다고 좋아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좋아했다고요? 평소에 맞으면서 생활했다면서요.”

 

 상인의 말에 노파는 누가 들을까 싶어 목소리를 낮춰 얘기했다.

 

 “그려, 그 아이 아비가 글쎄 지 아내를 죽여서 교도소에 갔었거든. 그래도 아이는 지아비 출소한 날만 기다렸지. 나한테도 몇 번 말했는걸.”

 

 “죽인다고 하던가요?”

 

 노파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니. 아니. 그 얘기는 안 했어. 그냥 기다린다고만 했었거든. 빨리 보고 싶다고만 했어.”

 

 노파의 말에 상인은 장민수의 편지를 떠올렸다. 상인은 국밥을 한 입 더 떠먹은 뒤 TV를 바라봤다. 마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TV소리 좀 켜주세요.”

 

 노파는 리모컨으로 TV소리를 켰다. 정치, 사회 뉴스가 연이어 지나가자, 노파는 쏟아지는 뉴스 소식에 끌끌 댔다. 상인은 늘 접했던 뉴스라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밥만 조용히 먹을 뿐이었다. 그때 외신 뉴스가 흘러나왔다.

 

 “프랑스 파리 인근 지역 한 공원에서 엽기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행방불명된 10살 초등학생 아이가 현지시각인 6일 살해당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발견 당시 아이의 시신은 토막 난 상태였습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프랑스 당국은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72 납골당 12/1 245 0
71 작전 11/27 241 0
70 마을 11/25 228 1
69 기습 11/22 241 2
68 주장 10/19 271 1
67 의문의 신부 10/6 287 1
66 잠행② 9/30 287 1
65 잠행① 9/30 283 1
64 만남③ 9/30 293 1
63 만남② 9/28 308 1
62 만남① 9/27 298 1
61 판결 9/26 305 1
60 갈등 9/25 302 1
59 생방송 9/24 308 1
58 건배 (1) 9/23 369 1
57 또 다른 단서 9/21 341 1
56 정 반장의 행적 9/20 318 1
55 반전 9/18 319 1
54 살인공판③ 9/17 330 1
53 살인공판② 9/17 325 1
52 CCTV 9/16 340 1
51 의혹 9/15 325 1
50 살인공판① 9/14 332 2
49 과거④ 9/13 338 3
48 과거③ 9/11 336 4
47 과거② 9/11 348 4
46 과거① 9/10 368 4
45 대화② 9/10 356 4
44 대화① 9/9 368 4
43 재회 9/9 361 4
 
 1  2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