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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품절남이 아닌가요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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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어쩔 수 없어, 바보처럼 또 반복할 수밖에
작성일 : 20-08-13     조회 : 598     추천 : 0     분량 : 5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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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걱. 스걱. 스걱

 

  '뭐야? 대체 누구야?'

 

 턱을 바싹 당긴 수남이 악취라도 맡은 듯 코를 벌룽거렸다.

 

 한국대학교 범죄행동심리학 세미나 수업.

 강의실은 빈자리 하나 없이 여대생들로 빼곡한데 아까부터 들리는 연필소리가 그의 신경을 긁어대고 있었다.

 

 수남은 잠시 싸늘한 표정으로 좌중을 응시했다.

 선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여대생들 눈빛 사이로 고개를 푹 숙인 폭탄머리가 보였다.

 수남은 미간을 좁히며 폭탄머리를 매섭게 노려보다 고개를 휙 돌렸다.

 

  "화면 속 살해현장을 보시죠. 칠십대 국밥집 여주인이 둔기에 맞아 살해된 현장입니다.”

 

 수남이 손에 쥔 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클로즈업 되었다.

 

  “모든 현장에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범죄현장에서 스토리란 그 장소와 맞지 않는 특이점을 말하죠. 자, 모두 화면에 집중해주세요."

 

 수남의 말에 여대생들이 일제히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수남은 손에 쥔 버튼으로 화면을 클로즈업 했다.

 

  "조리도구들을 보시죠. 모두 제자리에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뽀얗게 우러난 잡뼈 국물은 약불에서 끓고 있군요. 바닥 한 가운데 쓰러진 사체의 머리 주변에만 핏물이 고여 있다는 것이 첫 번째 특이점이 될 수 있죠."

 

 수남이 다시 손에 쥔 버튼을 클릭했다.

 

  "지금부터 범인의 육성음성을 들려드리겠습니다."

 

 강의실 안에 긴장과 적막이 흐르자 수남은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 아침 체포된 범인의 실제 육성입니다. 압박면담을 통해 세시간 만에 자백을 받아냈죠."

 

 오/ 대박쓰/ 진짜?/레알?

 

 여대생들이 일제히 웅성거렸다.

 그리고 수남에게 감탄과 찬사의 눈빛을 쏘아댔다.

 단 한명을 빼고는.

 

 스걱. 스걱. 스걱

 

  '아 놔 저 뽀글이.'

 

 수남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순간 삐익- 소리와 함께 영상 속 오디오 음성이 높아졌다.

 놀란 여대생들이 어깨를 움츠리며 귀를 막았다.

 당황한 수남이 서둘러 제 손에 쥔 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삐익 소리가 멈췄다.

 

  "미안합니다. 버튼이 오작동 되는 바람에..?"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던 수남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폭탄머리와 두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상태가 기이했다.

 콧등까지 안경이 흘러내렸지만 그림처럼 굳은 정지자세였다, 마치 주문에 걸린 소금기둥처럼.

 

 수남은 고개를 갸웃했다.

 특이한 행동반응이었다.

 설마 포노포비아?

 

 스걱. 스걱.

 

 하지만 폭탄머리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연필 스캐치를 하기 시작했다.

 

 

 * * *

 

  "으라차차차---"

 

 올해 나이 스물여섯인 천사임.

 헐렁한 트레이닝을 대충 걸친 그녀가 양팔을 위로 힘껏 쳐들고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제 뽀글머리에 노란색 연필을 푹 꽂은 채 강의실을 나섰다.

 

 RRR RRR RRR

 핸드폰 액정을 확인한 사임의 얼굴이 구겨졌다.

 

 '젠장맞을, 허구헌날 독촉만 해대는 개작가가 떴다!'

 

 어떡할까.

 지금 전화를 받고 욕을 먹을까.

 아니면 받지 않고 욕을 먹을까.

 

 지난 삼년간 웹툰을 그려온 사임.

 하지만 말이 공동창작이지 일방적으로 스토리 작가에게 끌려 다니며 욕을 먹는 게 다반사.

 경험상 전화는 안 받고 싶은데 이 인간이 멈출 리 없다.

 받을 때까지 낮이고 새벽이고 전화를 해대겠지.

 

 사임은 단단히 결심을 하고 핸드폰을 받았다.

 그 바람에 옆구리에 끼고 있던 스캐치북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는데.

 

  “아유 진짜. 왜요 왜 왜! 또 뭐요!”

  [야 너! 빨리 안 보내! 미쳤어? 죽고 싶어? 너 때문에 마감 못하면 네 인생을 갈가리 말아서 쌈 싸먹고 남은 뼈다귀는... (블라블라)]

 

 응응 그래 그래.

 한줌도 안되는 나를 쌈싸서 쳐드시던지 말던지.

 그저나나 한 살이나 어린놈이 야 너, 를 입에 달고 산다.

 내 너를 아작 내고 싶다 당장. 돈만 아니면.

 

  “보낼게요 지금 보낸다구요.”

  [야 너! 대가리가 안 돌아가냐! 베드 씬 몇 개가 뭐 이렇게 오래 걸려!]

  “여보세요 개작 아니 작가님. 아무리 애로지만 그렇게 막 그리는 게 아녜요. 그림체마다 독특한 철학과 나름의 신념이. 여보세요? 여보세요?”

 

 후우~ 또 끊었다.

 개작가의 주 특기다, 지 할 말만 하고 개무시 하는 거.

 개작 이놈, 나야말로 널 쌈 싸먹고 남은 뼈다귀를 아그작 씹어먹고 싶다구!

 

 사임이 입바람으로 훅 머리를 불었다.

 그리고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봤다.

 하늘이 너무 푸른 건지 눈이 시린 건지 모르겠다.

 

 프로파일러의 꿈은 개뿔.

 성인 웹툰 몇 장면을 그려주면서 헬조선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용을 쓰는 내 신세.

 

 휘리릭-

 미처 줍지 못한 사임의 스케치 노트가 바람에 쫘르르 펼쳐지자 사임은 당황했다.

 사임이 얼른 손을 뻗으려는 찰나, 길다란 그림자가 앞을 막아섰다.

 

  "이게 뭡니까?"

 

 정수남이다.

 사임은 바닥을 향해 재빨리 손을 뻗었다.

 하지만 정수남이 더 빨랐다.

 어느 새 그의 손에 사임의 스케치 노트가 들려 있었다.

 수남은 무서운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당신, 이 남자와 무슨 관계지?"

 

 

 * * *

 

 

 전공 상관 없이 여대생들 특강신청이 줄을 잇는다더니.

 그래. 인정은 하고 봐야겠다.

 

 널뛰기를 해도 좋을 쩍벌어깨에 깔끔하게 떨어진 슬립피트의 슈트.

 키 190에 육박하는 피지컬에, 고급 수제 양복을 맵시 있게 차려 입은 냉미남.

 경찰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프로파일러로 활동중인 이 남자는소문에 의하면 대기업의 황태자기이도 했다.

 

 넋이 빠져 멍하니 그를 보던 사임이 화들짝 놀랐다.

 테이블 위에 놓인 스케치를 뚫어지게 보던 수남이 고개를 든 것이다.

 

 달그락-

 긴장한 사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손에 든 커피잔도 달달 떨렸다.

 수남의 시선이 계속 자신에게 머물자 사임은 낼름 커피를 들이켰다.

 

  "아 뜨거."

 

 수남이 한쪽 눈을 치켜올렸다.

 사임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왜 저렇게 보는 거야. 설마 내 입술이 퉁퉁 부어오른 거 아냐?거울을 볼 수도 없고 미치겠네 증말.'

 

  "그러니까 당신 말은"

 

 수남이 입을 열자 사임이 긴장한 채 그를 응시했다.

 강의실에서는 미처 몰랐는데, 이 남자 목소리도 죽음이다.

 깊은 동굴속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당신 말은, 이 그림속 남자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라는 거죠?"

  "네."

  "좀 전에 내 강의실에서 우연히 이 그림을 그렸을 뿐이라는 거죠?"

  "네. 맞아요."

 

 사임이 재차 고개를 끄덕이자 수남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사내답게 탄탄하고 긴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강의실에서 내가 보여준 영상에서, 범인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어요. 아무리 살인범이라도 얼굴을 공개하는 건 법적인 다툼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범인의 얼굴 윤곽조차 알아보기 어렵도록 만들었는데 그런데...? "

 

 말을 멈춘 채 진중하게 사임을 응시하는 수남.

 그 눈빛이 너무 압도적이고 직설적이어서 사임의 숨이 턱 막혔다.

 설마 그 말이 나올까? 이 남자의 입에서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그리죠?"

 

 역시나.

 사임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스마트 해 보이는 이 남자도 결국 남들처럼 똑같은 질문을 해오는구나.

 지난 십년간 사임이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 질문을.

 

 수남은 다시 몸을 앞으로 쑥 내밀고 물었다.

 

  "당신 범인과 무슨 관곕니까? 친인척인가? 진술과정을 몰래 엿듣고 변호조력을 해주려는 겁니까?"

  "예? 변호조력이요? 그런 거 절대로 아녜요! 맹세하는데 저는 이 사람 몰라요! 정말예요!"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그립니까? 그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모르는 사람도 그릴 수 있어요 저는."

  "그러니까 어떻게요?"

  "그게... 그게..."

  "누군가를 그리기 위해서는 봐야합니다. 눈으로 봐야만 그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을 어떻게 그리죠?"

 

 나는 다르다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걸 사임은 꾹 참았다.

 백날 말해봐야 소용 없으니까.

 

  "눈으로 봐야만 그릴 수 있다는 건 그쪽 편견이죠."

  “그럼 지금 당신 말은 눈으로 보지 않고 그릴 수 있다?”

  “그래요! 시각 장애인 화가도 있거든요."

  "이야기가 샛길로 새는 군요. 내 질문의 의미는 그게 아닙니다."

  "알아요. 잘 안다구요 무슨 질문인지. 지난 십년간 수도 없이 들어왔던 질문이니까요!"

 

 맙소사. 바보처럼 또 흥분했어.

 사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목소리를 높인 자신이 한심했다.

 

  '천사임. 새삼스럽게 왜 이래. 지난 십년 간 충분히 겪었잖아! 어차피 네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 이젠 그걸 인정할 때도 됐잖아!'

 

 수남이 좀더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봐요. 당신이 그린 이 남자는 오늘 아침 체포된 살인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이 남자를 그렸는지 나를 합리적으로 납득시켜야 합니다."

  “왜 내가 당신을 설득해야 하는 데요? 차라리 그냥 남들처럼 절 믿지 마세요. 그럼 그만이잖아요!"

  "난 남들과 다릅니다. 난 이 범인을 분석하고 자백을 받은 수사관입니다."

  "그게 뭐요!"

 

 수남이 인상을 팍 썼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이봐요. 지금 이 사안은 대단히 심각합니다. 왜냐면 당신이 국밥집 주인 여자를 죽인 범인의 얼굴을 너무나도 똑같이 그렸기 때문이죠!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요? 당신이 그린 이 그림 속 남자는 오늘 아침 잡은 범인의 얼굴과 판박이라구요!”

 

 사임이 훅-놀랐다.

 역시 그거였어.

 이번에 그린 그림도 범인의 얼굴과 정확히 일치한 거야.

 

 수남이 이번에는 두 눈썹을 치켜세우며 사임을 노려봤다.

 

  “좀전에 내 강의에서 나는 범인의 목소리만 들려줬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지금 범인의 얼굴을 그렸다구요. 대체 이 범인과 무슨 관곕니까!”

  "말 못하겠다면 날 체포라도 할 건가요?”

  “그럴 사안이라면 그렇게 할 겁니다.”

 

 사임은 꼴깍 침을 삼켰다.

 어쩌자고 이 그림을 그린 걸까.

 물밀듯이 후회가 밀려왔다.

 

 사임의 표정을 주시하던 수남이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며 침착하게 말했다.

 

  “체포 되고 싶지 않다면 합리적으로 내게 설명해보세요. 당신과 범인이 무슨 관계인지."

  "정말 모르는 사람예요 난! 그냥 그렸을 뿐이라구요."

  "어떻게요? 도대체 어떻게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을 그 어떤 몽타주보다 더 정확히 그려낼 수가 있죠?"

  "... ..."

  "범인과 무슨 관곕니까!"

  "지금 날 심문하는 거예요?"

  "정말 제대로 심문 받고 싶어요? 경찰서로 임의동행 할까요?"

  "싫어요!"

  "그럼 말해 봐요. 왜 당신이 스케치북에 살인범의 얼굴을 정확히 그렸는지를!"

  "나는 보지 않아도 그릴 수 있으니까요!"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말해보라니까요!"

 

 수남의 강도 높은 압박에 사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서울경찰청에서 가장 유능하다는 프로파일러 정수남.

 그 명성에 걸맞게 사임을 사정없이 몰아친다.

 

  '어쩔 수 없어, 바보처럼 또 반복할 수밖에.'

 

  "말해 봐요. 답을 들을 때까지 나는 물러나지 않습니다."

  "나는"

  "네."

  "나는"

 

 

 - 다음에 계속

작가의 말
 

 작년에 쓰다가 중단했던 작품을 다시 수정해서, 들고 왔습니다.

 보다 긴장감있는 로맨틱 스릴러!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려요!

 

 - 최극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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