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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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인생은 지옥간다
작성일 : 20-09-02     조회 : 478     추천 : 2     분량 :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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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힘들었구나’

 ‘아직 할 수 있어요’

 ‘당신은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마포대교 난간에 적혀있는 가슴 따듯한 문장들...

 다 헛소리다.

 이따위 말로 자살을 막을 수 있다면 애초에 여기 오지도 않았다.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두터운 종이뭉치를 들어올렸다.

 <용호쌍판>

 10년간 준비한 영화 시나리오다.

 그런데... 또 엎어졌다!

 막판에 엎어진 영화만 네 번째. 시나리오 개발 중에 엎어진 건 열 개쯤 되려나?

 난 낼 모레면 마흔을 바라보는 영화감독...

 아니, 그냥 루저다.

 시나리오를 한장 한장 강물에 뿌렸다.

 흰 종이가 사방으로 펄럭이다 멀리 흩어졌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고, 난간 위로 다리를 걸쳐 올렸다.

 눈 딱 감고 뛰어내리려는 순간!

 삐리리리리~~~

 갑자기 휴대폰이 울린다. 후배 ‘동훈’이다.

 ‘이 새끼는 왜 결정적인 순간에 전화질이야?’

 마포대교 난간을 양쪽다리에 끼고 앉은 채, 전화를 받았다. 마지막 작별인사 정도는 하는 게 영화인들끼리 예의 아니겠는가.

 [형, 어디야?]

 “마포대교.”

 [왜? 죽으려고?]

 “그... 그걸 니가 어떻게?”

 [죽을 때 죽더라도 치킨은 먹고 죽어.]

 “웬 치킨?”

 [나 치킨 장사 시작했는데, 줸장... 하나도 안 팔려. 연습 삼아 튀겨놓은 거 열 마리 있거든? 이거 형 혼자 다 처먹고 배 터져 죽어라. 기왕 죽는 거 그게 낫겠지?]

 “그... 그래.”

 그러고 보니 저녁도 못 먹었네?

 동훈이가 새삼 고마워졌다.

 천재 시나리오 작가, 신동훈.

 현란한 말빨, 완벽한 구라, 탁월한 임기응변까지 갖춘 완벽한 놈. 딱 한 가지 약점이 있다면, 말만 하고 글은 쓰지 않는다는 거다.

 주둥이만 살았다.

 그래도 그 주둥이 하나로 충무로 현장을 사방으로 누비며 꾸역꾸역 버텨내더니... 드디어 포기했나보다.

 그래, 잘 생각했다. 앞으로 영화 쪽에는 오줌도 싸지 마라.

 그거 인생 망하는 지름길이야. 하......

 

 꼬르륵~~~

 배가 고프다. 이 새끼 왜 안와?

 난 여전히 난간에 걸터앉은 자세로 동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너 어디야?”

 [자유로.]

 “자유로? 거긴 왜?”

 [길을 잘못 들었는데, 유턴하는 데가 어딘지 모르겠네? 아! 김포 지났다. 이제 파주 들어간다.]

 하... 동훈이는 길치다. 게다가 운전도 잘 못한다. 주둥이 나불거리는 거 빼고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매우 희한한 놈이다.

 “그래, 가라. 그대로 쭉 가! 평양까지 그냥 달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나 김일성궁에 치킨 배달하고 올 거니까, 형은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어. 괜히 한강물 퍼마시다 배 터져 죽지 말고. 알았지? 약속!]

 “알았다... 통일되면 다시 만나자.”

 전화를 끊고...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를 웃게 해주는 유일한 녀석.

 이놈도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동훈이를 놔두고 혼자 죽으려니까 미안한 생각도 들고...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죽는다는 게 새삼 억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일단 뭐라도 좀 먹고 생각해보자.’

 홀쭉해진 배를 쓰다듬으며 난간에서 내려오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부우우웅!

 갑자기 천둥같은 굉음과 함께 사방이 진동을 한다.

 '뭐, 뭐야?'

 짐을 가득 실은 화물트럭과 중장비 트럭 십여 대가 쏜살같이 내 옆을 지나가고 있다.

 어어어....

 난간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버텼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생각한 순간!

 맨 뒤에서 따라오던 트럭 운전사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으악! 아저씨 안 돼! 눈떠!”

 콰콰쾅!

 ‘망할!’

 트럭은 끝내 난간 옆구리를 받아버렸고, 내 몸은 막 발사된 총알처럼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풍덩!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난 강물 속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악! 차가워!’

 머리에서부터 손가락 발가락까지 얼음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살아야 돼!’

 죽어라고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몸짓과는 반대로!

 내 몸은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시야가 깜깜하고 의식이 흐려진 그때...

 갑자기 발가락이 뜨거워진다.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종아리를 지나 엉덩이를 거쳐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앗! 뜨거! 불지옥이야? 뭐가 이리 뜨거워?’

 그러고 보니, 세상이 온통 빨갛다.

 그리고, 거대한 불기둥 사이로 홀로그램 창이 나타났다.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엥? 지옥이라고? 내가 왜? 도대체 왜?’

 

 둥! 둥! 둥! 둥!

 입이 귀까지 찢어진 악마가 천둥같은 대북을 두드리고. 백두산 천지만한 용암 저수지가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어디선가 쏟아지는 인간들을 닥치는 대로 불태운다. 아... 뜨겁다. 살이 녹고 뼈가 탄다. 여긴, 지옥이 분명하다!

 ‘이건 말이 안 돼... 내가 지옥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 외동아들로 태어나, 일요일엔 빠짐없이 성당에 나갔고, 도둑질한 적도 없고, 누굴 때린 적도 없고, 나쁜 짓이라고는 평생 해본 적 없는 내가 도대체 왜?

 그런데, 모든 의문이 홀로그램 창에 떠오른 한 문장으로 해결되었다.

 ⌜실패한 인생은 지옥 간다⌟

 아! 그런 거였구나?

 나쁜 놈이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인생에 실패한 멍청이가 지옥에 가는 거였구나!

 생각해보니 이게 맞다. 우리가 뭐 하러 태어났나? 각자 원하는 삶을 살고, 꿈을 이루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려고 태어난 거 아닌가?

 그런데, 연애도 한번 못 해보고, 비굴하게 남들 눈치만 보다가, 쓸데없는 망상에 빠져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다 날려버렸으니... 난 지옥에 떨어지는 게 마땅한 죄인이다.

 이 사실을 진즉에 알았더라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터인데... 그나저나 어떤 새끼가 나쁜 짓 하면 지옥 간다고 구라 쳤어?

 으어어억!

 사방에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지옥의 불길 속에 실패한 인생들이 허우적거리고 있다. 물론, 나도 그중에 하나고.

 “살려주세요!”

 불길이 너무 뜨거워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 순간, 공중에 떠있는 홀로그램 창에 내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히며, 이상한 댓글들이 마구 올라왔다.

 -웃기는 놈이네 ㅋㅋㅋ

 -지옥에서 살려달라니? 제정신임?

 -또라이다! ㅍㅎㅎ

 -또 죽여버리잣! 캬캬캬!

 [죄수 ‘조요한’에 대한 악마들의 호기심이 상승합니다]

 [불지옥의 마왕 ‘페이몬’께서 ‘조요한’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이거 뭐야? 지옥에 너튜브가 있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홀로그램 화면만 쳐다보는 그때, 악마들이 삼지창을 바닥에 쿵쿵 내리찍으며 괴성을 질러댔다.

 “불의 자비를!”

 “불의 자비를!”

 “불의 자비를!”

 자비?

 그럼 날 여기서 꺼내주겠다는 건가?

 난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큰 소리로 외쳤다.

 “맞아요! 전 죄가 없어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그 순간, 홀로그램 화면 위로 오색찬란한 폭죽이 터졌다.

 [불지옥의 마왕 ‘페이몬’의 자비가 내려졌습니다]

 [어드벤처풀을 작동합니다]

 쩌어엉-

 고막이 떨어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해골의 입이 열렸다. 난 희망에 가득 찬 눈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잠시 후, 해골의 입에서 시뻘건 용암폭포가 내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으아악!”

 얼굴을 불덩어리로 으깨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어찌나 뜨겁고 아팠던지 불지옥의 불꽃 위를 펄쩍펄쩍 뛰고 말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악마들이 배꼽잡고 웃기 시작했다.

 -꼴뚜기냐? ㅋㅋㅋ

 -리액션 화끈하넹. 캬캬캬!

 -화로구이 용암세트 불맛탱 존맛탱~~~

 으으으...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인생에 실패한 건 내 책임이라고 치자.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변태 새디스트 악마들의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다니... 이건 너무 억울하잖아!

 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구치는 울분을 쏟아내고 말았다.

 “나 돌아갈래!”

 그 순간, 사방이 조용해졌다.

 깔깔 웃으며 춤을 추던 악마들이 동작을 멈추고 동시에 날 쳐다봤다.

 아! 뭔가 또 잘못한 것 같다. 그냥 입 다물고 있을 걸...

 “죄... 죄송...”

 그때, 홀로그램 창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돌아가세요]

 “네? 진짜요? 어디로 가면 돼요?”

 [하수구로]

 “하수구...?”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옥문을 지키던 털북숭이 악마가 삼지창으로 나를 꾹 찍어서 들어올렸다.

 “너 같은 쓰레기는 지옥에 있을 자격도 없다. 가장 더러운 하수구 밑바닥으로 썩 꺼져라!”

 악마가 나를 어디론가 휙! 던져버렸다.

 “으아악!”

 

 풍덩!

 시커먼 하수구 늪 속에서 지옥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주변에는 용암에 타다 만 백골들이 더러운 액체 속에서 녹아내리고 있다.

 [‘조요한’의 영혼소멸 프로그램을 작동합니다.]

 아! 이렇게 영혼까지 사라지는 건가?

 난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하수구를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그때, 뭔가가 내 팔을 꽉 깨물었다.

 “아악!”

 끈적끈적한 액체를 헤치며 겨우 팔을 들어보니, 피라냐같이 생긴 거대한 물고기가 내 팔을 뜯어먹고 있었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지만 고통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내 영혼이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있지 않은가?

 “실패한 인생도 소중한 인생이라고!”

 난 억눌렸던 분노를 손아귀에 담아 녀석의 아가미에 힘껏 주먹을 쑤셔 넣었다.

 꾸에엑-

 괴물 물고기가 날카로운 이빨로 내 팔을 씹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의 굵은 가시를 통째로 뽑아버렸다.

 콰직!

 물고기가 이내 축 늘어지며 팔에서 떨어져나갔다.

 난 뾰족한 가시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다 덤벼! 이 괴물 새끼들아!”

 그 순간, 홀로그램 화면에 글이 마구 올라왔다.

 [악마들이 ‘조요한’의 의지에 감탄합니다.]

 [72개 지옥에서 악마들이 몰려옵니다.]

 [불지옥의 인기가 급상승합니다.]

 [불지옥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그리고, 수천 개의 붉은 불빛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악마들의 눈동자다.

 동시에 수십 마리의 괴물 물고기들이 온몸을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불지옥의 마왕 ‘페이몬’께서 ‘조요한’의 투지를 궁금해합니다.]

 [72개 지옥의 채널이 열렸습니다.]

 [헬튜브 라이브가 시작됩니다.]

 헬튜브 라이브라고?

 내 영혼이 뜯어 먹히는 모습을 라이브로 구경하고 싶단 말이지?

 좋아, 그럼 더 재밌는 걸 보여주지.

 “으아악!”

 난 미친놈처럼 발광하며 가시로 수면 위를 마구 내리쳤다.

 첨벙첨벙-

 하수구의 검은 액체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날 지켜보던 붉은 눈동자들에게도 오물이 튀었다.

 그러자 악마의 눈동자들이 방향을 잃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꺼져! 이 더러운 악마들아!”

 난 가시를 휘둘러 반짝이는 눈동자를 힘껏 때렸다.

 파직!

 그 순간, 붉은 눈동자가 불꽃을 일으키며 내 왼쪽 눈에 박히고 말았다.

 “으아악!”

 불꼬챙이로 쑤시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때, 사방이 온통 붉은 색으로 보이며 상태창이 떠올랐다.

 [‘케르베로스’의 눈동자가 ‘조요한’과 합체되었습니다.]

 [‘케르베로스’의 시선이 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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