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401 기동조사반
작가 : 칠미리
작품등록일 : 201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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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엉터리 전문가
작성일 : 18-12-31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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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생각해선 안 돼. 스스로 그놈의 입장이 돼보란 말이야. 그 심리를 우리가 역이용하는 거지.”

 

 연북동 목조건물 기동조사반. 경찰근무복을 불량하게 차려입은 장연성이 모자까지 삐딱하게 쓰고선 마치 자신이 ‘프로파일러’라도 된 것처럼 말하고 나서자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며 각자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장연성은 응접실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조두식은 왜 도주했을까.”

 “…….”

 “도주한 조두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그럼 조두식이 바라는 건 과연 뭘까.”

 “아, 진짜!”

 

 계속되는 장연성의 읊조림에 모두가 “집중을 할 수가 없잖아, 집중을……!”이라며 거센 불만을 터뜨렸다. 장연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소파 모서리에 걸터앉자 이번에는 엄기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조두식이라면 아마 어딘가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거야. 겁이 많은 놈이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맞는 말이야. 그럴 경우,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두 가지로 압축할 수가 있지.”

 

 강력반 형사 출신답게 장연성은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숨을 곳이 있는 놈과 그렇지 않은 놈.”

 “으음…….”

 “전자 같은 경우엔 아마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거야. 수색인원도 많이 필요할 거고……. 그런데 후자라면 금방 붙잡혀. 땡전 한 푼 없는 놈이라면 두말 할 것도 없지. 한 가지 걱정스러운 건……,”

 

 안 좋은 예감이라도 하듯 장연성이 잠시 시간을 끌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럴 경우, 나쁜 상황으로 내몰릴 수가 있거든. 예를 들면, 누구를 붙잡고 경찰과 대치를 한다든가…….”

 “설마……, 인질극?”

 “하지만 기동이 네 말대로 심성이 여린 놈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겠지.”

 “아니야, 사람이 상황에 따라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거든. 이거, 큰일이 날 수도 있겠는데.”

 

 엄기동과 장연성이 심각하게 호들갑을 떨고 있는 사이, 서유림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긁으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기, 죄송한데요. 방금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하지 않았나요?”

 “응, 그랬지.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여기까지 유추해낼 수 있던 거잖아.”

 “글쎄요, 그런데 왜 저는 굉장히 일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죠?”

 

 서유림의 질문에 엄기동과 장연성은 코웃음을 쳤다. 그 모습에 서유림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엄기동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야, 서유림. 형이랑 나는 전문가야, 프로라고! 그동안 수많은 범죄 심리를 다뤄온 우리가 너보다도 못하다는 거야?”

 “그럼, 그럼. 내가 그런 놈들은 아주 훤히 꿰고 있지. 아무 걱정 말고 나만 믿으면 된다고. 자, 우리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아, 맞다. 그러니까 먼저 그놈이 숨어 지낼 만한 곳을……”

 “그런데요.”

 

 아, 왜 또! 라는 얼굴로 두 명의 남자가 서유림을 쳐다봤다. 그런 짜증 섞인 얼굴을 향해 서유림은 망설임 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저도 범죄 심리 정도는 수없이 다뤄봤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조두식은 아니잖아요. 조두식 입장에서 보면 제 생각은 다르거든요.”

 

 ·

 

 달리는 차 안, 정확히 말하면 장연성이 근무하고 있는 지구대의 순찰차량이다. 운전은 당연히 장연성이 맡고 있고, 그 옆 조수석에는 엄기동, 그리고 뒷좌석은 서유림과 박문수가 나란히 앉아있다. 사이렌을 힘차게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 글쎄, 그놈은 그럴 배짱도 없는 놈이라니까.”

 “목숨까지 걸면서 도망쳤어. 그만큼 태성에 대한 복수심이 크다는 얘기잖아.”

 

 엄기동과 서유림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운전을 하고 있는 장연성이 룸미러를 통해 이렇게 질문했다.

 

 “그런데 왜 오늘이야?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없잖아. 서 변호사 말대로 그놈이 그렇게 움직인다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게 많을 텐데. 안 그래?”

 “그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한 서유림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람한테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고요.”

 “그러니까 왜?”

 “생각해보세요. 조두식이 도주했다는 사실을 태성 쪽에서 모르고 있어야 접근하기가 훨씬 쉬울 거 아니에요.”

 “그렇지.”

 “오늘이 지나면 조두식의 소식은 뉴스를 통해 전국각지에 퍼지게 될 거란 말이죠. 당연히 태성 쪽에서도 경계할 거고요.”

 “으음.”

 “문수 씨, 최태성 소재파악은 확실한 거 맞지?”

 “네, 그럼요. 벌써 며칠째 용역사무실에서 처박혀서는 코빼기도 안 내비치는 걸요. 확실해요.”

 

 모두가 하나가 되어 서유림에게 동조하고 있는 사이, 어째서인지 엄기동만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 모습을 장연성이 곁눈질했다.

 

 “오줌 마려우면 말해.”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똥 마려?”

 “아,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니라고!”

 

 매몰차게 던진 말에 차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손톱을 깨물어가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 혹시나 우리가 모르는 큰 걱정거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이거 큰일인데. 만약 유림이 말대로 조두식이 그쪽으로 갔다면……, 내 추리가 엉터리라는 소리나 다름없잖아. 내 실수야. 그렇게 큰소리를 치는 게 아니었어. 그럴 수 있다는 여지는 남겨뒀어야 하는 건데…….’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는 사이, 엄기동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 소리를 서유림이 놓칠 리가 없다.

 

 “야, 엄기동. 이제라도 좀 솔직해져봐. 그냥 받아들이라고. 너 지금 상황이 내 생각대로 될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거잖아. 망신 당할까봐 그래?”

 “뭐라고?”

 

 당황하는 엄기동을 보며 장연성은 “아, 그런 거였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문수 또한 쯧쯧쯧, 이렇게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 젓고 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엄기동이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너 뭔가를 착각하나본데,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줄 알아? 나도 다 계산기 두드리고 있었단 말이야.”

 “웃기고 있네.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으면서.”

 “내가 그랬나? 나는 단지 확률적으로 따지려는 거였는데. 당연한 거잖아.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하하, 하하하하!”

 “쉬잇! 다들 저기 좀 봐!”

 

 장연성이 엄기동의 말을 가로막고 턱을 앞으로 내밀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전방을 주시했다. 저 멀리 꼿꼿하게 서있는 두 개의 그림자가 스산한 분위기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거 조두식이 아니야?”

 “글쎄요, 어두워서 잘 안보여요.”

 “틀림없어. 조두식이야. 역시 우리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어.”

 “와~, 형 진짜 얍삽하다.”

 “조용히 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벌레 보듯 자신을 쳐다보는 서유림과 박문수를 뒤로 하고 엄기동은 몸을 앞으로 내밀어 어둠속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 표정이 워낙 진지해서 지금 당장은 아무도 그의 변덕을 문제 삼으려 하지 않았다. 작전성공!

 

 “뭐라고?”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 앞에 있는 놈은 누구야?”

 “누구든 상관없어. 어차피 그놈이 그놈이니까. 어? 움직인다.”

 

 엄기동과 장연성이 짤막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미동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던 두 개의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후의 결전이라도 벌이려는 걸까? 숨 막히는 긴장감이 차 안에까지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때 장연성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어? 저 새끼 저거 칼 꺼내든 것 같은데? 저러다 큰일 나는 거 아니야?”

 “형! 출발, 출발! 사이렌 켜라고! 어서!”

 

 순간, 사이렌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적막한 밤하늘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반짝이는 경광등과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추면서 검기만 하던 그림자도 어느덧 제 색을 띠기 시작했다. 겁먹은 얼굴로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는 조두식의 얼굴은 선명하기만 하다.

 장연성이 “너희들은 여기 가만히 있어.”라는 비장한 말을 남기자 모두가 숨을 죽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바로 코앞까지 모습을 드러낸 조두식. “살려주세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저 놈이, 저 놈이…….” 이렇게 황급히 목숨을 구걸한다. 장연성이 창문을 열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조두식? 너 조두식이 맞아?”

 

 조두식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돌자 장연성은 자신의 큼지막한 몸을 차 밖으로 빼냈다. 그러면서 저 멀리 서있는 남자를 힐끔 쳐다본다. 한기주였다.

 그 모습을 본체만체 하며 장연성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두식의 팔에 수갑을 채울 때까지 장연성은 한기주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언제 이성을 잃고 저 얼굴에 주먹을 날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었다.

 

 “야, 인마! 너 때문에 인마, 내가 밥도 못 먹고 말이야. 에이, 진짜!”

 “…….”

 “하여튼, 너 이제 큰일 났어. 가중처벌 알지? 가중처벌.”

 “선생님, 잠시 만요. 제가 설명을 할게요.”

 “일단 타. 가면서 하라고.”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저 놈도 같이 잡아가라니까요.”

 

 눈치 없이 완강하게 버티고 서있는 조두식을 한 대 후려 패고 싶었지만 장연성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확 그냥! 야 인마, 너 그렇게 쓸데없이 나불거렸다간 법정에서 불리해질 수도 있어요. 그거 몰라?”

 “아, 저 놈이 진짜 범인이라고요!”

 

 진짜 범인?…… 그 말에 장연성은 죽은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순간, 표정이 확 바뀌더니 사나운 얼굴을 한기주에게로 돌린다. 아무래도 더 이상 간과하고 넘어가지만은 않을 모양이다. 그 모습을 차 안에서 지켜보던 엄기동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어? 저 형 왜 저래? 거길 왜 보냐고. 그런 건 계획에 없잖아!”

 “설마……, 그럴 일은 없겠죠?”

 “아, 여기 어디 복면 같은 거 없나? 그거라도 뒤집어쓰고 나가서 뜯어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애당초 경찰차에 복면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바보 아니야.”

 

 3인방의 이런 애타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장연성은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표정이 또 한 번 바뀌면서 장연성은 어느새 친절과 봉사를 슬로건으로 내건 경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언제고 내 손에 뒈질 줄 알아, 라는 속마음을 숨긴 채 건넨 말이었다. 한기주로부터 “네, 괜찮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최대한 자연스럽게 경찰의 본분을 이행한다.

 

 “아, 다행입니다. 원래 이런 놈들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거든요. 본의 아니게 불편을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어쨌거나 탈주범도 이렇게 하루 만에 검거하시지 않았습니까. 대한민국 경찰이 민생치안에 얼마나 힘을 쏟고 있는지 오늘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뭘.”

 “그럼…….”

 

 도도하게 인사를 마친 한기주가 먼저 등을 보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장연성. 뭔가 재미있는 거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아쭈, 요놈 봐라?’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 잠시 후, 장연성은 본격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저, 그런데 선생님?” 이렇게 상대방을 긴장하게 만든다.

 아아, 나 이런 거 한 번 해보고 싶었어. 꼭 형사 콜롬보 같잖아. 이런 들뜬 기분과는 달리 한기주를 바라보는 장연성의 눈빛은 어딘가 날카로웠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뭘…… 말입니까?”

 “아니,”

 

 드디어 나오는 주인공의 결정적인 대사.

 

 “하루 만에 검거했다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여쭤보는 겁니다.”

작가의 말
 

 그랬다고 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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