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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일록 ~난세의 잠룡~
작가 : 태평
작품등록일 : 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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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선기자타(善騎者墮) (5)
작성일 : 19-01-05     조회 : 347     추천 : 0     분량 : 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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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우수한 부하들을 풀어 사방을 수색하며 진만의 무리가 있을 곳을 찾도록 했다.

  본래 조수문이 이곳으로 온 것 자체가 진만이 이곳으로 대군을 이끌고 재차 공격할 것이라는 예상 아래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때문에 그는 조카이자 이곳 무수성을 담당하고 있는 조응신보다도 더욱 열정적으로 적을 찾고자 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숙부님.”

  싱글거리며 말을 건 조응신을 조수문은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나이가 꽤 차이가 나던 조수문의 형 조수영이 남긴 유일한 아들인 조응신은 나름 무예도 갖추고 있다 보니 금방 추천을 받아 무수성을 사수하는 장수가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조수문 자신이 윤경준에게 부탁을 한 점도 작용했다. 그러나 조카라는 점을 뺀다면 조수문에게 있어 조응신은 마음에 드는 장수는 아니었다. 높은 이들에게 금방 아첨을 하고 무예실력과는 별개로 군을 지휘하고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은 참으로 부족한 인물이었다.

  조수문이 무수성에 도착한 이래로도 조응신은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전부 조수문에게 맡기고 본인은 이렇게 실실 웃으며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난 그저 네놈의 숙부가 아니라 중경의 판관으로 있는 것이다.”

  “아하하하, 지금 이곳엔 저랑 숙부뿐이 아닙니까.”

  그 말대로 현재 이 두 사람은 무수성의 장군방에 단 둘이 있었다. 조수문이 도착하자 조수문이 사용할 방으로 조응신이 마련한 방이었다. 조수문의 앞에는 여러 척후들이 보낸 보고서와 이곳 무수성의 물자와 관련한 문서들이 가득히 쌓여있었다.

  조응신은 그 문서들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으며 실실 웃으며 물었다.

  “어디 잘 되어 가시는지요? 제가 술상이라도 올릴까요? 너무 무리하시…….”

  “됐다. 필요 없다. 네놈도 괜한 것을 즐길 생각지 말고 군사들이나 잘 준비시키기나 해라.”

  “아, 예. 허면 뭐, 필요하신 게…….”

  “없다. 물러가라.”

  딱딱한 조수문의 태도에 조응신은 뻘쭘해 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너무 하시는군요, 숙부님. 엄연히 같은 일가인데 이리도 딱딱히 굴 필요가 있겠습니까.”

  “엄연히 긴급한 사태다. 허튼 소리하려 왔으면 그냥 돌아가거라.”

  “너무 그러시지 마시지요, 숙부. 아, 그러고 보니 부유수께선 잘 계시옵니까? 유수나리께서도 강녕하시겠지요? 아, 그러고 보니 중앙에서 올라온 진압군이 중경에 도착했을 시기이긴 하겠군요. 어허허, 듣자하니 상장군 진간과 우부승지 석지만이 온다고 했는데, 그 두 사람이 아마 창령공의 측근이라지요?”

  딱딱히 구는 조수문 앞에서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윗사람들을 언급하고있자 조수문은 조응신을 째려보며 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시기가 어수선한데 네놈은 출세나 하려고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느냐! 진정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당장 군사들을 정비하고 단련시켜라! 그리하여 공을 세워! 그럴 생각이 없다면 당장 떠나거라!”

  조수문의 꾸짖음에 조응신은 놀라긴 했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물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조수문의 화를 진정시키는 듯 말을 꺼냈다.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숙부님. 그저 너무 무리치 말고 잠시 머리 좀 시키…….”

  “썩 물러가거라! 지금 이 서류에 적힌 물자나 다시금 확인해!”

  “……아, 알겠습니다, 숙부.”

  오히려 더 크게 노하는 조수문의 눈치를 살피며 조응신은 천천히 일어나 방밖으로 나갔다.

  서류에 눈길을 주며 나가는 조응신을 쳐다도 보지 않던 조수문은 조응신이 나가자 방문 쪽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저런 놈이 내 조카라니.”

  분통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가라앉히며 조수문은 다시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허나 조응신 때문에 난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덕분에 서류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그는 근처에 놓인 주전자의 주둥이에 직접 입을 대어 앞에 든 물을 들이켰다.

  분노에 찬 조수문의 꾸중을 듣고 나온 조응신은 밖에서 기다리는 부하들을 마주하자마자 혀를 찼다. 그리곤 조수문이 있는 장군방을 한 번 흘겨보며 말했다.

  “참으로 꽉 막힌 분이야. 게다가 아무리 부유수의 측근이라지만 엄연히 무수성의 성주인 날 이토록 무시하려 들다니. 아니, 도대체 윗분들 안부를 묻는 게 뭐가 그리 큰 문제라고.”

  부하들 앞에서 조수문에 대한 불평을 내뱉는 조응신이었다.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리에는 벌벌 떨던 사람이 정작 자기 친족이며 지원을 온 사람에게는 이리도 뒷담화를 하며 자신의 위치를 운운한다는 사실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긴 하지만 아무도 지적치 않았다. 일부는 조응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보다 어찌되었느냐?”

  조응신은 조수문의 명령에 따라 정찰을 나갔다온 부하에게 물었다.

  “예, 확인한 결과 대량의 적이 포진되어 있는 건 확인했습니다. 그 수는 잘 알 수는 없으나 전에 조수란 놈이 이끌고 온 숫자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확인한 1만 여명의 병력보다 더욱 많아보였습니다.”

  “얼마나?”

  “두세 배는 족히 되어 보였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겁에 질린 조응신이었지만 일단 내색치 않아 보이며 측근인 별장 만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무리겠죠.”

  만수는 조응신의 물음에 즉답했다. 만수의 대답에 여타 장수들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전에 조수가 이끌고 온 병력도 무수성의 병력보다 많았다. 현재 조수문이 지원병을 이끌고 왔다곤 하지만 고작 5백 명이었다. 다 합쳐 1,500명의 병력으론 결코 적을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허면……. 으음…….”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조응신은 일단 척후를 나갔던 부하에게 일렀다.

  “가서 보고는 전하도록 해라.”

  “존명.”

  서둘러 장군방으로 들어가는 부하를 두고 조응신은 다른 부하들과 함께 성주방으로 향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만수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은 다들 서로를 보며 어찌해야할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길 수 있을지.”

  “중앙에서 보낸 병력은 고작 1만입니다. 솔직히 무수성은 물론이고 중경까지 지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차라리 성의 물자를 버리고 물러나는 게 상책일겁니다.”

  “그렇습니다. 이건 계란으로 바위를 상대하는 격입니다.”

  이길 수 없다는 입장에 선 부하들의 의견을 듣는 조응신도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어찌해야할지 그로선 감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싸우자니 이길 수 없고, 물러서자니 갈 곳이 없다. 한낱 이런 작은 성의 성주인 그가 이 성을 버리고 떠난들 좋은 대접을 받을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성을 버리고 떠났다며 배척을 받거나 큰 벌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 이전에 지금 지원으로 온 조수문의 손에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걱정에 찬 그에게 한 부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성주님, 차라리 저들에게……. 아닙니다.”

  말을 꺼내다 만 부하에게 조응신은 말을 재촉했다.

  “말 해보거라.”

  “아, 아닙니다.”

  “어허,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말을 꺼내보라지 않느냐.”

  잠시 망설이던 그 부하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입에 담았다.

  “차라리……, 항복을 하심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다른 부하들은 그 부하를 꾸짖거나 힐난했다. 허나 그들이 퍼붓는 비난은 그저 의례적인 비난에 불가했다. 조응신 역시 특별히 그 부하를 꾸짖지 않고 이런 말만 할 뿐이었다.

  “함부로 그런 말을 꺼내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성주님.”

  그리곤 성주방에 들어선 조응신은 잠시 생각에 잠기며 의견을 낸 부하를 슬쩍 바라보았다. 겁에 질리긴 했지만 크게 위축되지 않은 그 부하를 보며 조응신은 말없이 계속 생각에 잠겼다.

  조수문 역시 장군방에서 보고를 받은 뒤 생각에 잠겼다. 그 역시 무수성이 불리하다는 현실은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그는 패배한다거나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라에 충성해야 한다는 생각, 무장으로서 적을 상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다짐, 그리고 자신을 믿어준 중경부유수 윤경준에 대한 고마움이 그로 하여금 투지를 불사르게 만들었다.

  “좋아.”

  그는 급한 대로 손에 잡힌 종이에 급히 상황을 적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럴 때는 전령보단 전서구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조수문은 전서구들을 모아놓은 새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수문이 날린 전서구가 중경으로 날아가기 시작한 시각에 중경에선 무수성으로 출발할 병력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아직 중경으로 도착해서 한숨을 돌리며 피로를 풀기엔 부족하기는 했지만 상황이 급박하다는 판단한 김창헌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비록 처음 확인한 1만의 병력보다 훨씬 수가 많다는 보고는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김창헌은 이미 충분히 적의 위험성을 높게 판단하고 병력을 당장이라도 움직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중앙에서 이끌고 온 병력만이 아니라 중경의 병력을 더한 뒤, 중경 인근에서 일반 백성들 중 건장한 이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박경이 윤경준과 논의를 한 뒤 어느 정도 모으기 시작했던 만큼 병력을 모으는 건 순조로이 이뤄지고 있었다.

  김창헌의 주도로 병력이 모이고 무수성으로 출전할 준비가 이뤄지는 동안 진간은 박경에게 찾아가 차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래도 되는가?”

  박경의 물음에 진간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미 부원수가 열심히 병력을 준비하고 있지 않은가. 대장군 김창헌은 상당한 준걸(俊傑)이오, 호걸(豪傑)이네. 그러니 무엇이 걱정인가. 그대도 금경에 있을 시절에 저 자의 역량은 봐오지 않았던가.”

  “그렇긴 하지. 그 때는 아직 낭장이었던가. 그 사이에 벌써 대장군이라니. 참으로 빠르군.”

  “뭐, 거기엔 그만큼 인재가 없다는 것도 있겠지.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다만 제아무리 창령공도 김 대장군의 역량을 무시하지도 못하더군. 여타 측근들도 있음에도 자신에게 비판적인 저 자를 대장군 자리에 올리다니 말이네.”

  “오히려 그렇기에 창령공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이겠지.”

  차 맛을 씁쓸하게 느끼며 박경은 희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런 박경의 마음을 이해하는 진간은 박경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같이 그 역시 차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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