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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일록 ~난세의 잠룡~
작가 : 태평
작품등록일 : 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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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선기자타(善騎者墮) (6)
작성일 : 19-01-06     조회 : 335     추천 : 0     분량 : 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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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저나 감독관으로 온 우부승선 말이네. 도대체 그 자는 왜 온 건가?”

  “아, 그 자 말인가.”

  박경의 물음에 진간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래 석지만은 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자가 아닌가. 군공은 물론 군사와 관련하여 어떠한 재능이 있다고 들은 바가 없네. 물론 내가 금경을 떠난 사이에 달라졌을 수도 있긴 하네만. 그래도 이런 군사 업무에 포함될 만한 인물인지 의문이 드는군.”

  이렇게 말은 하지만 박경은 대강 석지만이 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중경에 있는 자신에 대한 감시와 확인.

  그것이 분명하다고 박경은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친족이고 과거에 협력했던 사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난세에서 중경과 같이 중요한 지역에 자리한 인물을 의심하지 않고 넘기긴 힘들 터이니 말이다.

  “나도 잘 모르겠네. 창령공께서 강행하셔서 말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조정의 인사는 사실상 창령공의 의지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가.”

  한숨을 내쉬는 진간의 얼굴은 그리 편치는 않았다.

  “이번 진압군 편성도 마찬가지고 말이지.”

  진간의 그 말을 통해 창령공의 뜻이 분명하다는 것과 자신의 예상이 맞을 거라 여기는 박경은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차를 마셨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이야. 자네 딸은 잘 있는가? 어렸을 땐 워낙 소심하던 애가 어느새 누구도 못 말리는 말갈량이가 되었지. 지금도 그러한가?”

  급하게 주제를 바꿔 진간은 박인하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박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전하다고 할 수 있지. 아니, 오히려 금경 때보다 더 심해졌네. 그나마 사람들 손길이 미치는 금경을 벗어나니 아예 천방지축이야. 나 역시 공사로 바쁘다보니 신경을 쓰기 어렵고 말이야.”

  “어허, 아무리 바빠도 가정에 소홀해도 되겠는가. 게다가 자네……, 미안하군.”

  헛기침을 하며 말을 마는 진간이 도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 했는지 박경은 잘 알았다. 다름 아닌 죽은 박경의 아내를 말하는 것이었다.

  “아……, 자네도 말이지. 이제 슬슬 재가(齋家)를 하는 것도…….”

  “그만하지. 내 아무리 외롭다할지라도 죽은 아내를 그리 쉽게 잊고 다른 여자를 만날 마음은 들지 않네.”

  멋쩍어 하며 차를 홀짝이는 진간이었으나 박경은 그런 진간의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물론 진간의 말대로 재혼을 할 생각은 없으나 적어도 자신을 위해 그런 말을 해준다는 건 고맙게 여길 일이었다.

  “그래도 자네의 딸을 생각해본다면…….”

  “그만하지. 그보다 곧 있으면 출전할 테인가?”

  이번엔 박경이 주제를 바꿔서 물었다. 진지함이 서린 이 주제에 진간은 표정을 굳히며 답했다.

  “그래야지.”

  “승산은 있고?”

  “있다 없다를 논할 입장인가, 내가. 솔직히 말해서 창령공의 강행으로 출전하여 1만의 병력을 이끌고 왔지만 이긴다는 보장은 없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진만이라는 자가 이끄는 무리는 무려 5만에 달하는 병력이 있다는 말이 들려. 전국의 유랑민과 향주(響州) 지역의 토호들의 협력을 받아낸 것 같더군. 조정 입장에서야 체면차 석지만이 말한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하지만 실제론 위급하다는 건 잘 아는 입장들이야.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그래서 창령공이 대장군 김창헌을 보낸 셈이군.”

  “그렇지. 본래라면 위험일이긴 해도 공로를 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대규모 군사를 지휘하는 일인 만큼 김창헌을 보낼 생각은 없었겠지. 김창헌 같이 조정에 비판적인 인물이 군사를 이끌고 나갔다가 반기를 들면 큰 일 아닌가.”

  그 말 대로였다. 역사상에도 조정에 비판적인 이가 군사력을 쥐고 있을 때, 나라가 어지러운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키는 건 종종 있어왔던 일이다. 실제로 진만의 무리 중에는 조정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가 휘하 군사들을 이끌고 투항한 장수들도 있었다.

  더구나 김창헌은 충분히 반란을 일으킬 만한 깜냥과 기질도 지닌 인물이었다. 군사적 역량도 역량이지만 아니다 싶을 때는 과격한 행보를 종종 보인 인물로, 아슬아슬하게 반란으로 의심될 행동도 보인 적인 있었다. 이는 진간이 직접 말한 것처럼 금경의 많은 사람들, 특히 조정의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인식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부원수로 보냈다는 건 창령공 스스로가 이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진 않는다는 증거였다.

  아울러 박경은 석지만이 왜 감독관으로서 진압군의 일원으로 온 다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나이는 어려도 창령공에게 충성스런 인물인 그를 감독관으로 같이 보내어 진압군이 반란으로 나갈 여지를 차단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더불어 조정에 비판적이지 않은 진간을 원수로 삼은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이 분명했다.

  “그랬군.”

  “그렇게 편성한 것도 좋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란 거네.”

  또 다시 한숨을 내쉬는 진간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져 있었다.

  “적은 5만이 된다고 하는데, 정작 이쪽은 1만. 이것도 간신히 추려낸 거네. 자네도 중앙군의 사정을 모르진 않겠으나 그 뒤에도 여러 재정상 문제가 겹쳐서 말이지. 자네에게만 말하자면 지금 이끌고 온 저 중앙군 1만이 현재 중앙에서 추려낼 수 있는 최대한의 병력이네.”

  “그렇담, 도대체 지금 금경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창령공의 가병(家兵)이지. 창령공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병들이 도성을 대신 수호하고 있네. 현재 금경의 운명은 창령공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야.”

  허탈함과 함께 자괴감이 섞인 한숨이 또 진간의 입에서 나왔다. 중경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밝은 모습인 진간이었으나 속내는 이렇게 무력감에 휩싸인 상태였던 것이다.

  “고생이 많군.”

  진심으로 진간을 동정하며 박경이 말했다.

 

  “정말 고생이 많군.”

  박경과 진간이 박경의 집의 박경의 방에서 나누는 대화를 자신의 방에서 엿들으며 박인하가 말했다. 분명 진간과 똑같은 문장이지만 전혀 동정심이나 안타까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박인하의 곁에 서서 같이 듣고 있는 별이 당장이라도 나가서 이 대화를 듣지 않았으면 하는 헛된 바람을 하는 동안 오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나라꼴이 엉망인 건 알겠습니다만, 도대체 중앙군이 무슨 수를 하면 이토록 무너지게 된답니까? 한낱 도깨비인 제가 지적할 일은 아니라 보지만, 인간들의 나라는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그 수도를 지키는 중앙군만큼은 멀쩡하지 않던가요?”

  “안타깝게도 지금 이 나라꼴이 웬만한 상황이 아니거든.”

  어깨를 으쓱하면 박인하가 답했다.

  참고로 이들이 박인하의 방에서 박경의 방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데에는 박인하가 설치한 부적 때문이었다. 박인하는 박경의 방에 하기 싫다는 별을 강제로 시켜서 도청용 부적을 설치하여 이렇게 듣고 있는 것이었다. 덕분에 무거운 정치적 일에 엮이기 싫은 별로선 어찌되었건 자신이 한 일이 더해져서 심적 부담만 느는 중이었다.

  “…정…말……나……그만…두고 시……싶어….”

  거의 울 것 같은 별을 두고 박인하와 오무는 대화를 나누었다.

  “결국 석지만이 온 이유가 진경후와 대장군 김창헌을 감시하는 거라고 할 수 있군요. 게다가 지금 온 군사 대부분이 중앙군의 대부분이고 말이죠.”

  “요약하자면 그렇지. 더불어 이번 토벌에서 실패하면 김 대장군에게 죄를 뒤짚어 씌우려는 걸 테고 말이야. 아, 물론 그 경우 진 상장군과 석지만도 벌을 받겠지만 창령공 같은 사람에겐 자신의 측근이고 뭐고 전부 장기짝이니 쓸모없음 그냥 버리는 식으로 버리겠지.”

  “냉정하군요.”

  오무의 반응에 박인하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정치라는 거겠지.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고 말이야. 동서고금 막론하여 권력자라는 건 그런 생물이야. 그게 어떤 위치에 있든 말이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말이야.”

  냉소적인 반응과 함께 박인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박경과 진간의 대화를 전해주는 부적을 툭툭 치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무대에 과연 이들이 얼마만큼의 역할을 해주느냐 라는 거. 그게 가장 중요해. 개인적으론 그 김창헌이라는 분이 참으로 기대가 되는데 말이지.”

  “도대체 당신이 원하는 무대라는 게 뭔가요? 혼돈(混沌)?”

  오무의 질문에 박인하는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어떤 의미로 정답이긴 한데, 완전한 정답이라고 할 수 없네. 비율로 치자면 닭고기에서 닭다리, 날개, 가슴살, 닭발, 껍질을 말한 것이라고 할까?”

  “그거 전부 아닌가요?”

  “아니지. 머리가 남았지. 참고로 난 닭고기 중에서 닭머리 쪽을 좋아해. 어쨌건 무대라는 건 결국 어떠한 결말로 이어진다는 거야. 혼돈(混沌)이라는 거는 그저 과정상 발생할 수 있는 것에 불가해. 중요한 건 결말이거든.”

  손가락을 까닥까닥 흔들며 중요한 얘기임을 강조하는 박인하를 보며 오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결말이요?”

  “응, 결말.”

  “……어, 어떤 결말……이…야……?”

  엄청 불길한 조짐을 느끼며 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리고 그 불길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박인하는 환한 미소로 별을 바라보며 답했다.

  “나도 몰라. 내가 원하는 결말이 있고, 가능성 있다 여기는 결말은 있지만 그건 굳이 말을 해줄 생각은 아직 없어. 물론 언니에게도 말이지. 하지만 그 결말이야말로 이렇게 준비한 무대가 완성되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지.”

  “설마 그 결말이란 걸 아예 생각지 않은 건 아니겠죠?”

  오무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던진 질문에 박인하는 가볍게 웃을 뿐 답하지 않았다. 박인하의 웃음에 오무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고 별은 불길한 마음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 결말이란 건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바이지.”

  그리고 갑작스레 등장한 한 남자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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