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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일록 ~난세의 잠룡~
작가 : 태평
작품등록일 : 2018.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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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누란지위(累卵之危) (8)
작성일 : 19-02-17     조회 : 332     추천 : 0     분량 : 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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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봐야 일개 개인에 불가합니다. 아무리 법보의 힘이 대단한들 그 한계는 있는 법이고, 그 수 역시 많지는 않습니다. 저들의 역량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이 전쟁의 전부는 아닌 법이지요. 그리고 설령 저들이 그만한 법보나 힘을 지녔다고 한들 우리 중앙군에 비하면 미약합니다.”

  역시 김창헌의 부하인 중랑장 김창필이 말했다. 그의 왼쪽 손등에 그려진 삼각형 모양의 문신을 힐끗 본 박주문은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그렇긴 하오만…….”

  “그보다 이젠 어떡하지요?”

  나가떨어졌던 지호가 일어나서 다시금 귀수검으로 괴수들을 소환한 뒤 나래와 윤필주와 격돌하는 장면을 보며 낭장 소유빈이 중얼거렸다.

  “저래서야 진격이고 뭐고……. 이러다가 무수성 구원은 실패가 아닌지…….”

  “뭐라?”

  “아, 죄송합니다.”

  김창필의 힐난에 깜짝 놀란 소유빈이 손을 내저으며 사과했다. 장군 김수문은 혀를 차며 김창헌에게 물었다.

  “어찌할까요? 정말 이렇게 시간만 끌다간 무수성은 구원치 못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방어시설이 잘 정비되었고 그곳을 지키는 조수문이라는 자가 높은 역량을 가졌다곤 해도 그 작은 성으로 대군을 막아내는 데엔 한계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만일 무수성을 공격하는 적들 중 법보를 쓰는 자가 있기라도 한다면…….”

  “위험하겠지. 그 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담담히 지호와 나래, 개수와 윤필주가 서로 맞서는 장면을 보며 김창헌이 담담히 말했다.

  현재 김창헌이 이끄는 군은 나래와 윤필주가 나서서 상대 측의 법보 사용자들을 상대로 팽팽히 맞서고 있고, 이미 초반에 전투에서 승리를 하여 사기 면에서는 우세한 입장이었다. 그 이외의 면에서는 비등비등하거나 살짝 불리한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패배의 원인이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 데에는 앞으로의 전투들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이 불안감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도 난감하고, 불확실한 감 같은 걸 이유로 들어봐야 부하들이 납득하고 따르지 않을 것이기에 김창헌은 말하지 않았다. 그 불안감의 원인에는 같이 온 석지만과 이곳 중경의 인사들이라는 것 역시 말하지 않았다.

  이러한 불안감 등을 고려한다면 그에게 있어 무수성 구원은 오히려 앞날의 일을 대처하는데 방해하는 헛짓이 된다. 물론 무수성이 가지는 전략적 가치는 중요하다. 허나 그 전략적 가치와 지금 그가 갖는 불안감, 이 둘을 저울질 한 김창헌이 선택한 게 후자일 뿐이다.

  허나 그렇다고 무수성 구원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이 역시 그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장애물이 될 게 분명했다. 때문에 그는 무수성 구원을 진행하되 눈앞의 적을 명분삼아 소극적인 행동을 보인 것이었다.

  “제가 나설까요? 중경의 병사들과 장수들이 무능한 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적을 뚫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지금과 같이 한시가 급한 때일수록 힘을 숨기고 보존하기보다는 거세고 재빠르게 몰아붙이는 게 정답이라고 봅니다.”

  김수문은 들고 있던 칼집에서 칼을 뽑으려는 시늉을 보이며 나서고자 했다. 확실히 그의 실력이라면 분명 저들을 무너뜨릴 수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순간일 것이 김창헌의 판단이었다.

  안 그래도 무수성 구원에 괜한 병력 소비를 피하고픈 김창헌은 김수문의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군의 병력보존과 함께 전력누출이 일어나는 것도 썩 좋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김수문을 제지했다.

  “부원수.”

  “그만두게, 김 장군. 분명 그대가 나서면 유리해지겠지. 허나 적들의 전력이 지금 싸우고 있는 저 둘 외에 더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무수성 구원 이후를 생각해본다면 적극적인 공세는 뒤로 미루는 것이 좋을 것이야.”

  “그렇긴 합니다만…….”

  “안 그래도 적의 취약점을 파악하고자 생각 중이다. 그것만 파악한다면 단박에 적들을 무너뜨리고 무수성으로 진격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내 김 장군을 선봉에 세워 공세를 필 것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게.”

  상관의 만류, 그것도 납득할 만한 제지에 김수문은 다시금 칼집에 칼을 꽂아 넣으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김수문이 물러서는 동안 전투가 벌어진 쪽에선 어느 정도 상황이 마쳐지고 있었다. 하늘을 울리고 땅을 뒤흔들 정도로 4명이 법보를 사용해 맞붙은 싸움은 각자의 기력의 한계가 옴에 따라 슬슬 끝나갈 기미가 보이고 있었다.

  이미 땅 이곳저곳에서 힘의 충돌로 인한 구덩이들이 파여 있거나 갈라져 있었고, 한창 싸움을 벌인 4명도 몸 이곳저곳에 자잘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이들도 서로 더 이상의 싸움이 무리란 것을 알고 슬슬 물러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래도 한 방 먹이고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에 지호가 괴수 하나를 소환해 윤필주에게 돌격시켰다. 윤필주가 자신에게 돌격해온 괴수를 두 번의 주먹질로 깨뜨리는 동안 지호는 재빠르게 아군 측으로 물러났다.

  지호가 물러나기 시작함과 동시에 개수는 숨을 가다듬고 개무양종을 흔들었다. 이와 함께 거대한 종소리와 함께 폭풍이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나래나 윤필주를 향해 가지 않았다. 이번이 오늘 마지막으로 법보를 쓸 수 있는 기회라 여긴 개수는 중경에서의 구원군을 막는다는 본래 목적을 위해 눈앞의 땅에다가 법보의 힘을 날린 것이다.

  개무양종의 힘으로 양군의 사이의 땅이 엉망이 되는 동안 윤필주는 나래를 번쩍 들어 퇴각했다. 나래로선 기분 나쁘긴 했지만 다리를 다친 탓에 어쩔 수 없었다.

  4명이 각자 진영으로 퇴각하자 김창헌은 낭장 소유빈과 중랑장 김창필을 쳐다보았다. 분명 싸움의 여파로, 특히 마지막에 개수로 인해 땅이 엉망이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 장애가 될 일은 아니었다. 특히 이 둘 앞에선 말이다.

  “두 사람이 아무래도 나서야겠어.”

  “맡겨만 주십시오, 부원수.”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소 낭장이 땅을 대강 정리해주게. 그리고 김 중랑장은 기마병으로 적을 급습하게. 단, 깊이 들어가지는 말게. 저들의 전력이 완전히 확인되지는 않았으니 말이야. 그러니 내 신호를 줄 터이니, 퇴각을 알리는 나팔이 울리면 즉각 물러서야 할 것이야.”

  ““존명!””

  소극적인 공세를 통해 전력을 아끼고자 했지만 그렇다고 너무 소극적으로 있어선 오히려 싸움을 피하려 했다며 책망을 받을 수 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안 그래도 석지만과 같이 눈에 쌍심지를 키고 꼬투리를 잡으려 하는 인물이 있는 만큼 세심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아울러 비록 물러나긴 했지만 김수문과 같이 전투에 나온 이상 제대로 싸우고자 하는 장수들의 심정을 헤아리어 그들의 불만을 덜어줄 필요도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할 거라 여긴 김창헌은 김수문에게 아직 때가 아니라는 눈짓을 보내면서 출격하는 군사들을 지켜보았다.

  금경에서 상당한 도술을 익힌 술사 출신의 소유빈이 술사들을 이끌고 나아가 두 장의 부적을 날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엉망이 되었던 땅이 들썩이더니 진만군 진영으로 무탈하게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냈다. 그 길을 타고 김창필이 이끄는 기마부대 돌격해 들어갔다.

  설마 했던 적의 공격에 놀란 진만군은 방패병과 장창병을 앞세워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단방에 방어선이 뚫린 진만군은 혼란에 빠져 허우적대며 기마부대의 창에 꿰뚫려 쓰러져갔다.

  그러나 이내 그들은 한발짝 물러서면 전열을 정비하며 기마병의 공격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과연 호락호락하지는 않군요.”

  “훈련은 우리 중앙군보다 부족할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오합지졸의 잡병은 아니네. 저런 이들이 숫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총공격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김수문이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김창헌은 퇴각을 알리는 나팔을 울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후방의 불안감도 경계해야할 일이지만 눈앞의 적도 무시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앞날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전력을 좀 더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김창헌은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속으로 무수성이 좀 더 오래 버텨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의 바람을 저버리고 무수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공성전이 발생한지 단 이틀만에 성이 함락된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항복한 것이다.

  성의 수비를 지휘하던 조수문이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화살에 맞아 절명한 뒤, 대신 지휘를 맡은 조응신의 지시에 따라 성에 백기(白旗)를 내건 것이다.

  일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한 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내 제압이 되었고, 그렇게 무수성은 진만군 아래에 들어오게 되었다.

  막상 활약할 기회를 놓쳤다며 투덜거리는 버들을 두고 성 안으로 병사들과 함께 진입한 장무량은 무릎을 꿇고 자신들을 받아들이는 조응신을 쳐다보았다. 그의 곁에는 역시 이 무수성의 일각을 담당하던 부하장수들이 함께 무릎을 꿇고 있었다.

  “중랑장 조응신, 앞서 말한 바대로 항복을 청하오니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와서 거절할 게 없는 장무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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