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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벙커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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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 01
작성일 : 19-09-02     조회 : 217     추천 : 0     분량 : 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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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을 굶었다. 이틀을 굶은 탓에 몸에 힘이 나지 않았다. 힘이 없어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 했지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두 손을 옭아맨 은색의 수갑을 쳐다봤다. 은색의 빛이 내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았다. 태양처럼 눈이 부시다.

  여기에도 폐쇄회로가 있다. 고개를 돌려 천장을 둘러봤다. 폐쇄회로가 딱 하나 있었고, 하나뿐인 폐쇄회로가 또 다시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먹어.”

  한 남자가 취조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앞에 따뜻한 국밥을 건넸다. 나는 그 국밥을 보자마자 수저를 들어 뜨거움도 잊은 채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국밥을 건넨 남자는 내 앞에 앉아 나를 쳐다봤다. 나는 국밥에 정신 팔려 남자의 표정을 살펴보지 못했다.

  “천천히 먹어. 거지새끼도 아니고…….”

  나는 남자의 말에 먹던 걸 멈추고 수저를 내려놨다. 그리고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내가 체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먹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왜. 밥맛 떨어지디?”

  남자는 조수석에 앉고 있던 경찰 보다 더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난 네 얼굴만 보면 밥맛이 떨어지던데.”

  남자는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남자를 무시하고 수저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국밥은 천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한 그릇 더 주세요.”

  남자에게 말했다.

  난 어느새 국물까지 비워냈다. 평소 같았으면 배가 부르다고 그만 먹었을 텐데, 위장의 반도 못 채운 기분이다.

  “허…….”

  내 말이 어이가 없는지 남자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눈매가 매섭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의 매서운 눈매는 나를 쫓았다.

  “앉아있어.”

  남자가 내게 말했다. 남자의 말은 부탁도 아닌 명령이었다.

  나는 그런 남자의 말에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로 앉아있었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수갑이 손목을 점점 더 옭아맨다.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내가 ‘앉아있어.’라는 명령을 한 뒤 다른 말도 없이 취조실을 나갔다. 나는 끝까지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남자가 나가자마자 고개를 들어 폐쇄회로를 쳐다봤다. 고개가 넘어갈 거 같다.

  이렇게 넘어가서 머리가 깨져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뭐하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넘어가려던 몸이 재빠르게 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내 눈은 내 몸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Z였다.

  난 재빠르게 Z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Z는 침착했다. 내가 아무것도 못 할 거란 걸 알기에 Z는 아주 침착했다.

  “그만 해. 유현호.”

  Z는 내게 유현호라고 했다. 착각 하는 건가……? 나랑 닮은 사람이 있는 건가…….

  “유현호.”

  Z는 다시 한 번 내게 유현호라고 했다. 마치 내 이름이 최희준이 아닌 유현호인 거처럼.

  “무슨 개소리 하는 거야.”

  멱살을 풀지 않은 채로 Z에게 물었다.

  “넌 최희준이 아니라 유현호야. 그리고 네 인생은 모두 거짓이지.”

  난 미간이 구겨졌다. Z의 말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가 한 짓에 대한 대가야.”

  Z가 말했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 좀 해줘. 생각했다. 입으로 내뱉지 못했다. 이해하게 된다면 더 끔찍할 게 뻔 하기 때문이다.

  “넌 아주 많은 사람을 죽였어.”

  Z가 말했다.

  Z의 말에 내 모든 신경 세포가 잠에서 깬 듯 말 하나 하나에 모든 신경 세포를 곤두 세웠다. Z는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고, Z의 멱살을 잡은 나의 손은 천천히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곧 풀릴 거야.”

  “뭐?”

  “그리고 생각나게 될 거야. 모든 사실들이 전부 다.”

  Z는 자신이 말하기보다 내가 모든 사실들을 깨닫기를 바랐다.

  나는 Z의 멱살을 잡은 손을 놓았다.

  Z는 옷매무새를 다듬기 시작했고, 나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쳐다봤다. 아직까지 모든 일들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끔찍할 사실 일까봐 겁이 나기 시작했다.

  손목이 벌겋다.

  눈이 아프다. 눈이 빠져버릴 것만 같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양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잠에서 깼다. 나는 아주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게 나의 다음 이야기였으면 했다. 이 모든 게 내 꿈의 일부였으면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 손목을 조여 오는 고통이 느껴졌고, 숨이 막히는 고통이 나를 집어 삼켜버렸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다. 벙커에서의 시간 보다 더 오랜 시간. 그리고 터널 속에서 보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났다.

  아무도 없던 취조실에서 난 오랜 시간 동안 괴로워했다.

  문소리가 들렸다.

  Z였다.

  Z는 얇은 파일을 가져왔다. 저게 도대체 뭘까. 혹시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가 적힌 사건…… 사건 파일들일까.

  Z는 내 맞은편에 앉았고, 나와는 달리 아주 편하게 다리를 올리고, 팔짱을 끼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Z를 삐딱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Z는 그런 내가 재미있는지 실소를 내뱉었다. 그러더니 허벅이 위에 놓인 사건 파일을 들어 종이를 한 장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넌 대단하네.”

  Z는 혼잣말로 곱씹었지만 이 좁은 취조실에선 Z의 숨소리조차도 선명하게 들린다.

  “네가 죽인 사람이 박원해 의원의 부인 송해숙 딸 박현아 그리고 손녀 이영아.”

  “도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내가 죽인 사람은 B-114랑 M구역 남자 그리고 D구역 남자들이야. 정당한 살인이라고.”

  내가 말했다.

  나는 내 입에서 정당한 살인 이라는 말이 나올 줄 몰랐다. 내가 뱉은 말에 내가 놀라는 아주 우스운 꼴이 돼버렸다.

  “그리고 그 외 죽든 말든 상관없는 범죄자들과 우리 자랑스러운 경찰 한의찬 경위.”

  “의찬……? 의찬이라고 했어?”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 남자. D-003.”

  “허…….”

  헛웃음이 나왔다. 어이가 없었다.

  “네가 죽인 범죄자들은 필요 없어. 어차피 어떤 방식으로든 죽게 될 사람이니까.”

  “내가 끝까지 남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

  “아니. 하지만 난 네가 끝까지 살아남길 바랐지.”

  “무슨…….”

  “네 그 끔찍한 살인 때문에 이 실험이 시작됐으니까.”

  “실험? 그 실험이 뭔데.”

  내가 물었다.

  Z는 언제든지 내가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 당황한 얼굴을 보이지도 않았고 아주 침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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