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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 벙커
작가 : 강냉구
작품등록일 : 20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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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 02
작성일 : 19-09-07     조회 : 215     추천 : 0     분량 : 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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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계가 째깍 거렸고 공기가 탁했다. 시간이 적막하게 흘러간다. 내 귀로 들리는 거라곤 Z와 나의 숨소리뿐이다.

  유연한 Z의 숨소리와 달리 내 숨소리는 무척이나 탁했다. 목 안에 매실 씨앗이 걸려있는 느낌이다.

 

  땀이 흘렸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취조실에서 나도 모르게 땀이 흘렸다. 그 땀은 내 이마를 타고 흘러 눈 안으로 들어갔다.

  눈에 땀이 들어가 눈이 따갑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손으로 눈을 문질렀다.

 

  “휴지 줄까?”

 

  Z가 내게 물었다.

 

  Z의 말에 나는 Z를 쳐다봤다. 그리고 Z에게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필요 없어.” 내 말에 Z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지럽다.

 

  공기가 탁해서 그런가? 가슴이 답답해서 그런가? 너무 답답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금방이라도 토를 할 것만 같다. 멀미를 하는 건가. 나는 커다란 손으로 답답한 가슴을 쓰다듬었다.

 

  “왜. 어디 불편해?”

 

  Z는 나를 걱정했다. 같잖은 걱정이었다. 어울리지도 않았고 Z의 걱정 따위는 내게 필요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거지?”

 

  Z가 물었다.

 

  나는 생각했다. 저 놈의 얼굴에 침을 뱉으리. 하지만 뱉지 않았다.

 

  “지금 나를 취조하는 거야?”

  “이미 하고 있어.”

 

  Z는 내게 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현실을 깨닫게 해줄 뿐이다.

 

  “실험이야.”

  “뭐? 실험?”

  “그래. 실험. 넌 내 실험 속 생쥐 한 마리에 불과해.”

 

  생쥐에 비유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렇다면…… “의찬은. 그 남자도 네 실험 속 생쥐 한 마리에 불과한 존재인가? 같은 경찰이라며.”내 말에 Z의 눈이 흔들렸다. 그 다음 무슨 말을 내뱉을 거지? 나는 Z의 입에서 나올 말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의찬이는 쥐를 자처했지.”

  “자처해?”

  “모두가 이 실험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 잘 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의찬이는 달랐어. 욕심도 야망도 아주 컸지. 나는 3년이나 봐온 의찬이의 욕심과 야망을 벙커 속에서 처음 보게 됐고.”

  “그럼 의찬도 나처럼 벙커에서 지낸 거야?”

 

  어느새 나는 Z의 말에 빠져들었고 내 자신을 망각해버렸다.

 

  “벙커라……. 그래, 지냈다면 지냈지. 그것도 아주 잘. 벙커에서 본 모습들이 본모습인 거처럼.”

 

  나는 의찬이 신기하다. 나가려고 발버둥 쳤던 벙커였는데…….

 

  “의찬이 끝까지 살아남길 바랐겠네.”

  “그런 의찬을 네가 죽여버렸지.”

 

  Z는 내 깊은 곳을 찔러버렸다.

 

  “어쩔 수 없었어. 그곳에서 살인은 정당방위였어. 다 네가 죽이도록 시킨 거니까.”

  “그래. 하지만 네가 벙커에서 정당방위로 사람을 죽였다고 해도 네 죄명은 씻겨 지지 않겠지. 유현호.”

 

  나는 웃음이 나왔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될지 몰라서 웃었다. Z는 나를 보고 미간을 구겼다. 분명 저 밖에서 날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도 Z처럼 미간을 구기겠지.

  종이 짝 마냥 너덜너덜해 질 거다.

 

  나는 Z와 눈싸움을 했다.

  누가 먼저 눈을 감을까. Z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Z가 먼저 눈을 감았다. 이게 뭐라고 난 희열에 차올랐다.

 

  Z는 22구경 권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그런 Z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 눈싸움을 했냐는 듯 나는 Z를 쳐다봤다.

  Z의 표정은 아주 여유로웠다. 팔짱을 끼기까지 한다. 나를 아주 거만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마치 자신 아래에 내가 있다는 듯이.

 

  “난 너에게 선택권을 줄 거야.”

 

  Z가 말했다.

 

  “예순 세 번째 사형수로 죽을 날만 기다리며 살든지. 지금 네 생을 마감하든지. 선택은 네 자유야. 무엇이 되든 간에 네가 죽는 건 똑같으니까.”

 

  다시 한 번 Z가 말했다.

 

  나는 Z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미친 새끼야!”

 

  나는 Z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여전히 Z는 침착하고, 나는 고통에 일그러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Z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취조실 안은 침묵이 이어갔다.

 

  “이제부턴 네가 정하는 거야.”

 

  침묵을 깨는 건 Z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Z를 쳐다봤다.

 

  “이 총에는 탄알이 딱 하나 들었어.”

 

  나는 Z의 말에 놀란 듯 눈이 커졌다. Z는 나의 행동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총은 이미 Z를 떠난 지 오래 이고, Z는 내가 자신을 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아무 행동을 하지 않자 Z는 천천히 취조실을 빠져 나갔다.

 

  저 유리문 밖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겠지. 나를 보며 온갖 이상한 말들을 꺼내놓겠지. 나는 그 말들을 죄다 이해하지 못 하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기조차 싫었다. 나는 그냥…… 벙커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총을 들었다.

 

  지금 다시 이 총을 보니 내가 여자를 죽였던 총과 똑같았다.

  그때 총알이 한 알 정도 남았었던 거 같은데…… Z는 내가 뭘 할지 무슨 선택을 할지 다 알고 있었다. 이것 또한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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