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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클럽
작가 : 쇼센
작품등록일 : 20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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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레퀴엠, 죽음을 부르는 노래
작성일 : 19-09-10     조회 : 307     추천 : 4     분량 : 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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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7시. 희진은 저 멀리 길 건너에 학교가 보이자 숨을 흡하고 들이마셨다. 이 사거리에 서면 심장이 옥죄듯 아파왔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진공상태의 생지옥에 있는 기분. 아직 이른 시간이라 등교하는 학생은 보이지 않았다. 희진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학교로 향하는 걸음을 조금씩 늦추었다.

 -학교 가기 싫어.

 오는 동안 그 생각만 수백 번을 반복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등교를 하기 시작한 것도 그 ‘악마들’의 눈에 최대한 띄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그조차도 별 효과가 없었다. 적어도 그들 손에 독약을 먹고 죽은 학교 수위아저씨의 떠돌이 애묘 ‘얼룩이’처럼 되기는 싫었다. 모두가 보는 등교 길을 그 ‘악마들’은 특히 좋아했다.

  그들이 고양이를 죽이는 것도 끔찍했지만 아이들이 그들을 ‘악마’로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의 고양이 죽이기는 하나의 목적으로 나아가는 치밀한 과정이 있었다. 우선 1단계,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일부러 사다가 일주일을 손으로 먹여주며 따르게 만든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면 고양이는 친근함의 표현으로 그들의 발목에 머리를 부비기 시작한다. 그 기간이 좀 더 걸리는 경계심 많은 녀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녀석이든 끈기 있게 길들였다. 그 과정이 힘들수록 나중의 즐거움이 더욱 기대된다는 듯이. 그리고 2단계, 자신을 따르기 시작하면 그들은 늘 주던 그 간식에 맹독성의 독약을 섞어 먹였다. 그런데 그 시간과 장소가 문제였다. 전교생이 가장 많이 오가는 오전 8시 등교시간에 교문입구 직전의 골목에서 보란 듯이 그 죽음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군중을 모으듯 아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운 나쁘게도 희진은 ‘얼룩이’의 마지막을 목격했다. 떠돌이치고는 잘 먹어서 제법 털에 윤기가 흐르고 애교가 많았던 ‘얼룩이’는 겨우 나흘간 맛 좋은 간식을 얻어먹은 죄로 경련을 일으키며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들은 그 후에도 같은 짓을 몇 번 더 반복했다. 길고양이들이 주요 타겟이었지만 한 번은 목줄을 한 강아지도 있었다. 아직 태어난 지 일 년이 안 돼 보이는 새끼였다.

  그들의 이런 행동에는 3단계 즉, 피날레가 있었다. 재미로 죽이는 잔혹성만이 다가 아니었다. 그 악마들은 죽음을 ‘전시’함으로써 자신의 악행을 완성시켰다.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전 온기가 아직 남았을 때 마치 생명을 조롱하듯 한 팔만 앞으로 쭉 뻗어 엎드리게 해 사체가 슈퍼맨 포즈를 취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된 쪽지가 동물의 앞발 밑에 끼워졌다. 그 쪽지에는 자신들이 다음 타켓으로 삼을 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동물을 죽인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타켓 변경에 대한 알림. 그래서 전교생 모두가 그 동물 사체를 그냥 지나칠 수도 없었다. 그 이름이 혹시 자신의 것이 아닌지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희진은 불행하게도 가장 최근의 새끼고양이 사체에서 함께 발견된 이름의 주인공이었다. 적힌 그날 이후 벌써 한 달째. 악마들의 괴롭힘은 집요하게 다양한 수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희진은 멸시와 폭언, 무차별적 폭력에 시달리면서 정신이 까무룩해질 때마다 ‘그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된 바로 ‘그 날’.

 희진은 그 날 그 순간에 ‘샐러맨더’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하드코어 록밴드 ‘샐러맨더’는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드문 국내 비주얼계 록밴드로 음악팬들 안에서 일정한 마니아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다. 희진은 샐러맨드의 멤버 중에서도 리더인 ‘화타’를 특히 좋아했다. 희진에게는 그들의 음악을 쉬는 시간에 남몰래 들으며 흥얼거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그 날 그것이 ‘악마들’의 눈에 띄고 만 것이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운이 나빴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희진이 휴대폰 어플로‘샐러맨더’의 곡을 듣고 있을 때, 어슬렁거리며 희진의 옆을 지나던 ‘악마’의 시선이 하필 자신의 휴대폰 액정에 와서 오래도록 멈춘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 때 마침 액정 위에는 샐러맨더의 상징이자 신곡의 앨범자켓인 섬뜩한 도마뱀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게 ‘악마’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단지 그것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었다.

 “야, 이 썅년아! 기분 드럽게 뭘 쳐듣는 거야, 씨발!”

 처음 시작은 간단한 시비에 불과했다. 그런데 희진은 크게 키운 볼륨 때문에 악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때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샐러맨더의 연말 라이브 콘서트 현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희진의 모른 척에 악마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고, 희진이 좀 더 이어폰의 볼륨을 올리려는 순간 악마의 손바닥이 자신을 허공을 갈랐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희진은 뺨을 맞고 의자에서 나동그라졌다. 오른쪽 뺨이 타오르듯 뜨거워졌다. 고개를 들기도 전에 이어폰이 거칠게 뽑혀져 길게 날아갔다.

 “씨발년아 내 목소리가 안 들려?”

 날아가는 이어폰과 함께 샐러맨더의 황홀한 베이스 연주가 공연의 엔딩처럼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끼익 하고 뒷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마치 신호인듯 교실의 아이들은 일제히 자리에 앉은 채 교과서에 얼굴을 박았다. 아, 이제 ‘나’로구나. 희진은 직감적으로 이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눈을 질끈 감자 얼굴 위로 거침없는 발길질이 폭우가 치듯 쏟아졌다. 코뼈가 시큰하더니 뜨근한 것이 입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희진의 이름이 유난히 작은 새끼고양이 사체 밑에 또렷이 적혀 있었다.

 

 정식 타겟이 된 첫날 희진은 조퇴를 해야 했다.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은 악마들의 폭력이 체육시간 옥상의 사각지대에서 40분 가량 계속되었고, 희진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겨우 계단을 기듯이 내려와 그대로 조퇴를 했다. 옆구리를 붙잡고 겨우 서 있는 희진이 생리통이 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자 담임은 별 말없이 조퇴를 허가해 주었다. 걷기도 힘들어서 택시를 타고 돌아온 희진은 집에 와 저녁내내 끙끙 앓았다. 뼈가 부러졌는지 팔목이 퉁퉁 붓기 시작했지만 희진은 그대로 정신을 잃듯 잠에 빠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사를 하는 부모님은 자정이 넘어 귀가해 희진의 몸 상태를 신경쓸 틈이 없었다. 다음 날 희진에게는 등교거부를 할 만한 배짱도 없어서 학교에 가야했다. 악마들은 조퇴한 희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번에는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희진을 끌고갔다. 학교에 나오지 않거나 일찍 조퇴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면서 희진의 굴욕적인 모습을 연출한 동영상을 찍어 들이밀었다. 희진은 이 지옥같은 시간을 버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언젠가 타겟을 바꾸리라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희진은 최대한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아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등교하는 시간을 피해 일찍 등교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등교시간의 괴롭힘은 없었지만 점심시간이나 하굣길에는 무차별 폭력을 피할 길이 없었다. 샐러맨더의 음악도 귓가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타겟 일주일째가 되는 이른 등굣길. 희진은 그 때는 감히 내뱉지 못했던 말을 토하듯 읊조렸다.

 -아, 다시 그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홍대에서 샐러맨더의 라이브 콘서트가 있던 그날은 마치 하늘에 오를 것처럼 천국의 달콤함을 맛봤었다. 희진이 콘서트 때의 열기를 떠올리자 마법처럼 그날의 음악이 귓가를 맴돌기 시작했다. 희진은 멍하니 그저 이게 환청이라도 좋다고 생각했다. 샐러맨더의 신곡 ‘레퀴엠’은 그렇게 멀리서 가까이 다가오듯 점점 뚜렷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음습하고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사운드에 희진은 오소소 전율이 일었다. 화려한 베이스 연주소리가 라이브 현장처럼 잡힐 듯이 또렷했다. 학교가 끔찍이 싫다 못해 자신의 머리가 이상해졌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희진은 풀풀 웃고 말았다. 이미 자신을 휘감기 시작한 ‘레퀴엠’의 멜로디에 점점 정신은 아득해지고 자신도 모르는 새 희진의 다리가 굳은 듯이 멈추었다. 혈관을 타고 급속히 짜릿한 감각이 지나갔다. 폭발하는 것처럼 솟구치는 아드레날린. 희진은 급기야 눈앞에서 환상을 보기 시작했다.

  ‘레퀴엠’의 곡조에 맞춰 격렬하게 지휘를 하는 듯한 한 남자와 그를 향해 일제히 타오르는 불꽃같은 함성의 군중들이 보였다. 저 사람이 누구였더라. 얼마 전에 본 적이 있는 광경이고, 익숙한 얼굴이었다. 길거리에서도 그의 얼굴이 붙어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처음 봤을 때 날카로운 눈매가 독사, 아니 그야말로 화사(花蛇, salamander)와 같다고 생각했었지. 희진은 남자의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아 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그녀의 이미 동공은 초점을 잃고 풀려 있었다.

 “안식의 기도를… 거룩한 것을 숭배하라… 전사에게는 죽음의 영광을…”

 희진의 입이 이제는 멋대로 노래를 따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엔 멈췄던 다리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희진은 이제 아예 영화관 1열에 앉아서 마주한 커다란 스크린처럼 시야를 압도하는 환각에 넋을 놓을 지경이 되었다. 독사와 같은 남자와 환호하는 군중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꿈일까 싶어질 때 고막이 찢어질 듯 커다란 군중의 함성이 아예 샐러맨더의 노래를 뚫고 나와 전신을 울리기 시작했다.

 - 기호 1번! 강민국!! 민중의 전사 강민국!!

 그래! 강민국. 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그리고 독사와 같던 그 얼굴. 희진이 그 자의 얼굴을 떠올리기 무섭게 다시 군중의 함성이 음악처럼 짜릿하게 온 몸을 장악해갔다. “강민국… 강민국…!!!” “워워워 전사에게는 죽음의 영광을…” 함성과 샐러맨더의 곡이 교묘하게 맞물리며 새로운 곡이 들려오고 있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교향곡처럼 부풀어오르는 음계들. 그리고 그 때 희진의 몸이 갑자기 붕 하고 떠올랐다. 혈관을 타고 흐르던 아드레날린이 떠오른 몸을 따라 긴 궤적을 그리며 솟구쳤다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윽고 밀려드는 어마어마한 고통. 희진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땅에 떨어졌다. 저 멀리서 누군가의 놀란 발걸음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봐! 학생, 괜찮아? 정신 차려! 학생! 학생!!”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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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좋은개살구 19-11-08 23:48
 
아우.. 완전 잔인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실감납니다...
  ┖
쇼센 19-11-12 15:12
 
네 아이들이 점점 잔인해지는 것은 어른들과 이 사회에 원인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실은 더 잔인하겠지요....감사합니다^^
Ellie808 19-12-07 17:22
 
딸을 가진 엄마로써 어떻게 도움을 줄수있울까 잠시 생각을하게되네요. 촌동네라서 대도시보다는 덜하지만 여기도 학교폭력이 심하다는걸 들었어요..
다행히도 하와이는 백인 우월주의가 덜해서... 트럼프대통령돼서 다른 미주지역에서는 정말 곤욕을 치뤘다는걸 많이봤는데 쇼센님 말에 백퍼 동의하여 글 올려봐요
  ┖
쇼센 19-12-09 23:24
 
아이들의 학교는 어른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아이들의 세상은 정말로 잔인하고 가혹하더라구요. 큰 책임감과 함께 슬픔을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의 세상이 어떻게 하면 안전해질까요?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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