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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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두 개의 골프채
작성일 : 20-08-03     조회 : 525     추천 : 2     분량 : 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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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소리와 함께 차가 갓길에 멈췄다.

 잠시간 숨을 고르던 상수와 기태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살폈다.

 서로에게 다친 곳이 없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나란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태가 어질어질한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물었다.

 

 

  “대체 방금, 그게 뭐였냐?”

 

 

 뭔지 모르겠다는 듯, 상수가 고개를 젓더니 운전석에서 내렸다.

 뒤따라 내린 기태가 차 옆에 놓인 것을 보고 기함을 토했다.

 

 

  “우왓!! 대체 이게 뭐야! 아니 차도에 이딴 게 왜있는 거냐구!!”

 

 

 기태 못지않게 상수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차선 도로 겅의 중심에 떡하니 이게??

 십년 넘게 무사고 운전을 해온 베스트 드라이버 박상수의 경력에 스크래치를 낼 수밖에 없는 그것은 1미터 높이가 채 안되는 바위였다.

 

 

  “이거 원. 아무리 오프로드처럼 험난한 도로라지만 진짜 너무 한 거 아냐? 도로공사는 뭐하고 있는 거야. 위험하게 이딴 걸 그냥 두고.”

 

 

 구시렁거리는 기태를 뒤로 하고 상수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도로 공사죠. 여기 43번 국도 골드골프장 인근입니다. 바위가 튀어나와 있는데요,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아 신고합니다.”

 

  ‘으이구. 누가 범생 아니랄까봐. 참내.’

 

 

 기태는 어이가 없다는 듯 상수를 봤다.

 통화를 마친 상수가 바위 옆에 찌그러진 제 SUV를 확인했다.

 

 

  “범퍼만 조금 깨졌네요. 운전에는 무리 없을 것 같아요. 일단 갑시다.”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상수가 운전석에 올라 다시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돌아서려던 기태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바위로 다가갔다.

 보면 볼수록 완벽한 장애물이었다.

 마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처럼.

 

 

  ***

 

 

 빽빽 우는 매미 소리가 무더위를 부추기는 정오 무렵.

 골드골프장 9번 홀 벙커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라인 밖에는 하이에나처럼 기사거리를 탐색하는 기자들이 몰려 있었다.

 

 상수가 폴리스 라인 안으로 날렵하게 들어와 감식반 옆에 앉았다.

 한참 뒤에,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기태가 도착했다.

 기태는, 벌써부터 파리가 꼬이는 사체를 보며 인상을 팍 썼다.

 

 

  “제길... 냄새 죽이는군.”

 

 

 감식반원이 픽 웃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선배님 냄새보다는 참을만한데요.”

  “우이씨.”

 

 

 자기를 놀리는 감식반에게 기태가 감자 주먹을 날렸다.

 그 사이 상수는 사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사체는 상의가 벗겨진 채,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신발은 신지 않은 맨발의 상태였고 발바닥에는 피딱지가 붙어 있었다.

 가장 심한 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된 둔부였다.

 

 

  “으응? 특이한 시반인데?”

 

 

 상수가 허리를 깊게 숙이고 사체 목덜미에 얼굴을 더 가까이 대며 중얼거렸다.

 사체의 목에는 보라색 시반과 함께 가로줄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그 바로 위의 턱 부분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특이한 손상이네요. 턱이 왜 이렇죠?”

 

 

 사체의 허리부분을 살피던 감식반이 말했다.

 

 

  “처음에는 뭔가 길고 가느다란 것이 목을 꽉 눌렀을 거고. 피살자가 발버둥을 쳤을 테고 살인범은 피살자의 입을 막았고. 그래서 혀가 부은 채 돌출되어 있는 거고. 그 과정에서 살인범이 살해도구로 다시 입가를 누른 것 같고. 그래서 양 턱뼈가 부서진 것 같아”

 

 

 상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벙커 주 여러 발자국이 뒤섞여 있었다.

 그 발자국을 하나하나 살피던 상수가 감식반에게 손짓을 하며 가리켰다.

 그리고 여러 발자국 중 한 곳을 볼펜으로 짚으며 말했다.

 

 

  “홈이 꽤 많은 족적이네요.”

  “그러네.”

 

 

 감식반이 재빨리 족적본을 떠서 상수에게 넘기자, 상수가 물끄러미 보았다.

 갈매기자 모양의 물결무늬가 족적본 앞부분에서 뒤꿈치까지 쭉 그려져 있었다.

 

 

  “흔한 건 아닌데요?”

  “응. 미끄럼 방지 장치가 발바닥에 붙은 운동화가 이런 모양이 나오는데 이거 아마도 운동선수들이 신는 아쿠아 슈즈 같은데?”

  “아쿠아 슈즈요?”

  “응. 물속에서 신을 수 있는 운동화.”

  “음...”

  “아. 그리고 사체 머리 쪽에서 여자 구두 자국도 하나 건졌어.”

 

 

 감식반이 또 다른 족적본을 내밀자, 기태가 슬금슬금 다가와 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감식반은 기태를 무시하고는 여자구두 족적본 마저도 상수에게 넘겼다.

 손이 무색해진 기태는 코를 씰룩이며 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든 말든 상수는 여자구두 족적본을 한참 들여다봤다.

 사이즈 230 정도. 구두굽에 특이한 문양이 있는 것 같았다.

 

 

  "여자 구두 굽에 문양이 있는 것 같은데요?"

  "브랜드 있는 회사는 로고를 종종 넣기도 해."

 

 

 상수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또 물었다.

 

 

  “사인은요? 정확히 뭘로 보는 겁니까?”

  “일단 질식사. 그 밖의 것은 부검해봐야지.”

 

 

 상수와 감식반은 심각하게 사체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태는 조금 짜증이 나는 듯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어이 범생. 대충 하고 해장가자.”

 

 

 하지만 상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피살자의 턱뼈를 박살 낸 살인도구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가느다랗고 기다란 무언가가 대체 뭘까? 이곳이 골프장이니까..?’

 

 

 기태가 미간을 찌푸리며 제 머리를 통통 쳤다.

 

 

  “아이구 머리야. 누구 아스피린 가진 사람?”

 

  "젠장맞을."

 

 

 상수가 벌떡 일어나 짜증을 냈다.

 아까부터 딴짓만 해대는 기태 때문에 사건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만년경위만 하다 늙어 죽을꺼유? 아침부터 징계 먹고도 정신을 못 차리면 어떡해요! 술 좀 작작 마셔요!”

 

 

 기태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얌마. 공휴일에 내 맘대로 술도 못 마시냐? 일요일 아침부터 이러고 있는 거, 이거 노동청 신고감이라구. 아무리 공직자여도 이건 부당 노동이구 거 뭐냐 인권...”

  “으유!”

 

 

 상수가 눈을 부라리자 기태가 입을 다물었다.

 

 

  ‘저 자식은 뻑 하면 신경질이야.’

 

 

 기태는 지금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쑤셔 죽을 지경이었다.

 당장이라도 허허로워 울렁이는 제 속에 뭔가를 때려 넣지 않으면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상수는 제 숙취는 아랑곳 않고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사체에 목을 매고 있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돈종률 국회의원의 사체다.

 

 평소 기태는 고위공직자들을 혐오했지만 돈 의원만큼은 예외로 두었다.

 전직 국회의원인 그는 매년 수억의 빈민구제금을 기부해왔다.

 최근에는 지난 십수년동안 겨울마다 빈민가에 연탄과 쌀을 보내온 익명의 기부자로 밝혀지기도 했다.

 

 현장을 뜨려던 상수가 멈칫 돌아섰다.

 피똥이 덕지덕지 맺힌 사체의 발바닥에 다시 시선이 꽂힌 것이다.

 감식반원이 유리조각을 빼내며 말했다.

 

 

  “발바닥에서 유리조각만 수십 개 뺐어.”

  “그래요? 맨발로 유리가 박힌 채 여기서 죽었지만... 그렇다면 여기가... 사건현장이 아닌건가.”

 

 

 상수가 턱을 쓸며 생각에 잠긴 사이, 기어이 기태가 버럭 소리쳤다.

 

 

  “에잇. 해장국 안 먹을라믄 관둬라! 나 혼자 먹을 테니까!”

 

 

 기태가 씩씩 대며 가버리자 상수는 어이가 없어 그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어떻게 형사라는 작자가 살인사건보다 제 뱃속 허기가 더 먼저인지.

 한심했다.

 감식반이 쯔쯔, 혀를 차며 일어났다.

 

 

  “퇴물 선배 때문에 박 경위가 사서 고생이네. 표창 받은 걸로 팀장님께 딜 좀 해보지 그래? 짝 좀 바꿔달라고.”

 

 

 상수는 답하지 않고, 감식용 장갑을 휙 벗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착잡한 표정을 애써 누르며 폴리스 라인 밖으로 나갔다.

 

 

  ***

 

 

 골프장 뒤에 이런 곳이 있다니 별세계다.

 으리으리한 고급 별장 마당에 선 상수와 기태는 깜짝 놀랐다.

 

 

  “이야. 죽인다. 죽여. 아래 강에, 뒤에 산에, 앞에 골프장에... 천국이구만.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러게 돈이 있어야 자선을 베푼다고 하지 않냐? 야, 범생! 너랑 나도 이 정도 가졌으면 불쌍한 인간들한테 때때마다 퍽퍽 인심 쓰지 않겄냐?”

 

 

 상수가 기태의 말에 대꾸 않고 안으로 들어가자 기태는 쯥 소리를 내며 뒤따라 들어갔다.

 별장 안 1층 침실에는 이미 현장 감식반이 도착해 감식 중이었다.

 

 상수는 감식반이 바닥의 혈흔과 침대, 테이블, 골프채를 감식 하는 것을 눈으로 훑었다.

 그 중 바닥에 쓰러진 스탠드와 유리조각이 눈에 거슬렸다.

 뒤따라 들어선 기태가 권투선수처럼 허공에 슉슉 훅을 날렸다.

 

 

  “간밤에 요란하게 붙었나본데?”

 

 

 상수는 여전히 기태를 무시한 채 구겨진 침대 시트와 베개 두 개를 보았다.

 

 

  “혼자가 아니었군.”

 

 

 다른 감식반원이 상수에게 다가와 골프채를 건네자 상수의 눈빛의 번뜩였다.

 

 

  ‘가늘고 기다란 것.’

 

 

 방금 전 골프장 벙커에서 다른 감식반원이 추측했던 살인흉기와 딱 맞아 떨어졌다.

 

 

  “이게 살인 흉기인가요?”

  “네. 그렇게 추정됩니다. 피살자의 지문이 다량 발견되었고요, 그 외 다른 지문도 섞여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이거야, 범생.”

 

 

 어느 새 다른 골프채를 손에 든 기태가, 누가 만류할 새도 주지 않고 들고 있던 골프채를 허공에 휙 휘둘렀다.

 깜짝 놀란 형사들이 모두 놀라 몸을 숙인 순간 퍽 소리와 함께 협탁 위 화병이 박살나고 말았다!

 기태가 휘두른 골프채에 정통으로 맞아버린 것이다.

 흡. 기태는 몹시 당황했다.

 

 

  “아이구.. 미안! 이게 생각보다 너무 무겁네. 방향 잡기가 영.. 헤헷.”

 

 

 다들 기 막혀 하는 사이, 상수가 무섭게 눈을 치뜨고 기태에게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리고 기태가 휘두른 골프채를 확 뺏었다.

 

 

  “이거 어서 났습니까!”

  “으응? 어서 나긴? 바깥 거실에 세워져 있던데?”

  “거실 어디예요?”

  “신발장 옆에 잘 세워져 있었지, 장식품처럼.”

 

 

 상수가 입술을 질끈 깨물자 기태는 잔뜩 긴장했다.

 상수는 현장을 훼손하거나 오염시키는 일을 가장 혐오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 깨트린 화병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듯싶었다.

 

 

  “야야 범생. 지지진정 해.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그런데 상수는 기태의 말은 듣지도 않고 휙 돌아섰다.

 그리고 감식반이 건네준 골프채와 기태의 골프채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기태가 거실에서 가져온 골프채에는 희미한 핏자국이 묻어 있다!

 상수가 감식반원에게 그 골프채를 내주었다.

 

 

  “혈흔이 있네요. 지문 채취 좀 해주세요.”

  “예.”

 

 

 감식반원이 루미놀 시약을 뿌리고 지문을 채취하는 사이, 상수가 그에게 물었다.

 

 

  “근데 원래 골프채는 다 이렇게 모양이 같습니까?”

  “아뇨. 거리마다 다른 걸 써야 하기 때문에 모양이 모두 다릅니다. 그런데 이건 둘 다 1번 드라이버네요.”

 

 

 기태가 눈을 빛내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드라이버? 나사 박는 거?”

  “헙.”

 

 

 감식반원은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간신히 참은 채, 기태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상수는 여전히 골프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같은 골프채가 두 개나 있는 거죠?”

  “이상하긴 하네요. 똑같은 1번 드라이버가 두 개나 있다니. 골프가방은 한 채뿐이었거든요.”

  “그래요?”

 

 

 상수가 눈빛을 번뜩였다.

 두 개의 같은 골프채.

 하나는 깨끗했고, 다른 하나는 혈흔이 명백한 골프채.

 

 

  ‘왜 두 개의 골프채가 보란 듯이 여기에 있을까.’

 

 

 상수가 두 개의 골프채를 보며 정신이 팔린 사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기태는 침대 아래 놓인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이미 감식반원들이 한바탕 뒤집어 놓았고, 쓰레기 더미 사이에 티백과 검은 스타킹이 보였다.

 

 

  ‘응? 스타킹이 왜 이 방에?’

 

 

 기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돈 의원은 어제 별장을 혼자 빌렸다고 했다.

 이 별장은 매일 아침 청소부가 청소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여자 스타킹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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