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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밥상
작가 : 필방주
작품등록일 : 2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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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목젖 깊이 넣어 먹는 진주냉면!]
작성일 : 20-08-06     조회 : 371     추천 : 1     분량 : 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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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맛을 그리 잘 알아?!”

 

 진주냉면 집 사랑채 문을 열고 자신을 쳐다보는 효명의 말에, 필구는 인상을 구기며 세자의 입성을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잘 생긴 얼굴에 지나치게 오만해 보이는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자의 옆에 앉아 자신을 째려보는 박규수의 눈빛도 필구는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둘 다 아주 잘 생긴 얼굴이었지만, 겸손은커녕 오만방자함이 온 몸에서 퍼져 나왔다. 돈푼깨나 있는 집안의 도령들임이 확실했다.

 

 “보아하니, 귀한 집 도령 같은데 싸래기 밥을 쳐드셨나. 말이 짧네.”

 “뭐라?” 어이없는 얼굴로 효명이 필구를 쳐다보았다.

 “내가 꼴은 이래도 양반인데, 예의는 갖추셔야지.”

 “저, 죽일 놈이 감히!”

 

 효명은 나서려는 정내관을 말린 후 필구와 문보를 사랑채 안으로 들였다.

 

 “미안하오. 내 마음이 급해 무례를 범했소.”

 “됐시다.” 필구가 거드름을 피우며 대답했다.

 “좀 전에 한 말을 들으니, 맛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시오?”

 

 그러자, 문보가 필구보다 먼저 나섰다.

 

 “우리 성님으로 말하자믄, 말로는 조선의 이빨이요, 맛으로는 조선의 혓바닥에, 눈치로는 절간에 가서도 능히 새우젓을 얻어먹는 대단한 양반이시오!”

 “거 절간은 좀 빼라, 임마.” 필구가 너스레를 떨었다.

 “허면, 맛을 설명하면 그게 어떤 음식인지도 알 수 있겠소?”

 “에헴! 내 이날까지 개똥 빼고 다 먹어봤는데, 먹어본 것이라면 그게 뭐든 모조리 기억은 하고 있소만.”

 “그럼, 좀 물어봅시다. 그 맛이........”

 “허, 참. 성미 급한 양반일세.”

 

 효명을 만류하며 필구는 허공을 향해 입맛을 다셨다. 필구의 속내를 눈치 챈 효명이 주인을 불러 냉면을 주문하자, 그제야 필구와 문보의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곧, 냉면이 나왔다.

 얼씨구나~ 문보가 달려들어 쩝쩝대며 냉면을 먹기 시작하자, 필구는 눈을 흘겼다.

 

 “그렇게 먹지 말라 그랬지? 거지새끼도 아니고!”

 “아, 성님 또 왜, 뭐?!”

 “메밀 면은 이로 끊는 것이 아니라 목젖에 깊이 밀어 넣고 끊어 먹는 거다. 그러니 입 안 가득 넣고, 푸짐하게 먹어야 섬세한 메밀의 향을 느낄 수 있는 법!”

 

 필구는 보란 듯 면을 입 안 가득 밀어 넣고 육수까지 한 모금 들이켰다. 오물오물 씹으며 눈을 감고 맛을 느끼던 필구는 이어 눈을 뜨고는 육전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목젖에 메밀 향이 남아있을 때, 요 육전을 요렇게 한 입 씹으면, 평양냉면 못지않은 고기 맛이 입 안에 퍼지지.”

 

 필구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효명과 정내관, 박규수와 문보는 똑같이 따라하며 냉면을 먹었다. 효명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마음에 든 듯 필구는 그제야 효명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아까 물어보려고 했던 맛이 뭐였소?”

 “한양 어딘가에 있다는 국밥집인데, 그 맛이 매운가 싶더니 금방 사라지고, 박하인 듯 호초향이 나고, 분명 고기는 적은데 기름 맛이 풍부하답디다.”

 

 머릿속 맛 사전을 뒤집듯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던 필구는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그것은 곤자소니 넣고 끓인 국밥이오. 요 곤자소니가 소의 대장 골반 안에 붙은 창자 끝부분인데, 기름이 많이 달렸거든. 이놈을 넣고 마지막에 제피 한 꼬집을 딱 넣으면 바로 그런 맛이 나지.”

 “그렇소? 허면, 거기가 어딘지 아시오?”

 “알다마다. 내 가르쳐줄테니 마음 놓으시오.”

 

 그날 밤, 필구가 소개한 영천시장의 국밥집을 찾아간 효명은 국밥을 사들고 서둘러 아버지 순조에게로 갔다. 아들이 준 국밥을 국물까지 말끔히 비운 순조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얼굴 가득 만족한 미소가 드리운 순조는 아버지 정조가 떠오른 듯 눈가가 붉어졌다.

 

 “아버님 얼굴도 기억이 흐릿한데, 이 국밥을 먹고 나니 그 때가 선연하구나. 음식이란 것이 어찌 이리 신기한고. 명약이 따로 없구나.”

 

 순조의 말에 효명의 눈빛도 애잔해졌다.

 

 그 시각, 필구의 초가집에서는 아름답게 성장한 여동생 설이가 기대에 차서 필구를 보고 있었다. 푼주에 메밀 면을 먼저 넣고, 필구는 따로 가져온 국물을 붓고는 품에 싸온 육전까지 국물 위에 맵시 좋게 올려주었다.

 

 “요렇게 따로 가져오면 면도 불지 않고, 국물 맛도 살리지. 어서 먹어 봐라.”

 “같이 드셔요, 오라버니들.”

 “아녀, 어여 먹어. 나는 우리 설이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당께.” 문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아까 두 그릇이나 처먹었냐?”

 “아따, 한 그릇은 꽁으로 먹은 거잖여. 잠깐만, 동치미가 지대로 익었을 것인디, 내 얼른 가져 오께.”

 

 문보가 밖으로 나가자, 필구는 오물오물 맛있게 냉면을 먹는 설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만 해라. 이 오래비가 조선 땅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든 구해줄 것이니.....”

 

 필구에게 설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혈육이었다. 어머니가 설이를 낳고 죽은 후,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갓난쟁이 설이를 업고 열두 살에 한양 땅으로 올라오면서 제대로 먹이지 못한 것이 늘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서른 살의 필구와 12년이나 어린 나이인 올 해 18세의 설이는 자신의 동생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비단 같은 머릿결에 흰 살결, 장미가 물든 듯 생기어린 발그레한 뺨과 작고 붉은 입술이며, 깊고 맑은 눈동자까지. 다만, 지나치게 서책을 좋아하고 의협심이 남달라 한 번 고집을 부리면 말릴 수가 없었다. 기실 필구는 그런 설이의 성격마저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해서, 설이만은 좋은 집에 시집보내고 싶은 것이 강필구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계집이라 하여 그저 그림자처럼 지내기를 바라는 사내보다는 여동생의 기질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깊이 사랑해 줄 좋은 사내를 찾아 주겠노라 필구는 늘 다짐하고 있었다.

 

 다음 날 저녁.

 거문고 소리 담을 넘는 기생집 앞에서 필구와 문보는 양반들 무리에 섞여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다 하인에게 덜미가 잡히자 짐짓 능청을 떨어댔다.

 

 “네 이놈, 김판서 대감과 약조가 있어 왔다. 이거 놓아라!”

 “김판서 대감은 또 누구요? 허튼 소리 말고 가시오.”

 “허허, 우리가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닌데 좀 들어가자.”

 “공술 먹고 토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볼기짝에 불나기 전에 꺼지라고!”

 “어이, 강필구! 오랜만이야.”

 

 때마침 김장헌이 필구에게 다가왔다. 안동김씨의 먼 일가로 거간꾼들의 앞잡이를 하는 자였다.

 필구는 김장헌을 보자 반갑게 다가서며 아는 체를 했다.

 

 “어, 장헌이. 왜 이리 늦었는가? 한참 기다렸네.”

 “누구를? 나를? 왜? 우리가 언제 약조를 했던가?”

 “가세, 어여 들어가세.”

 

 필구는 김장헌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기생집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성님, 나 주막집에서 기다리께.” 따라 들어가지 못한 문보가 필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기생집 사랑방 안에는 거나한 술판이 벌어져있었다.

 기생들을 끼고 둘러앉은 김장헌 일행은 술을 마시며 낄낄댔다. 필구는 요리를 하나하나 맛보며 인상을 썼다. 김장헌이 분위기를 추켜세우며 입을 털었다.

 

 “이 나합부인이 젊은 미남자한테 마음을 뺏겨 수령자리를 주고, 비단이나 그림을 갖다 바치는 놈을 관찰사로 임명했다는 소문이 허다해.”

 “나합? 그게 뭔데?” 필구가 물었다.

 “김대갑이 첩인 나합을 불러다 자네처럼 물어봤지. 사람들이 자네를 나합, 나합하는데 그게 뭔 말이냐 하니!”

 “하니?”

 “아, 글쎄, 이년이 시치미를 뚝 떼고 이러는 게야.”

 

 기대에 찬 일동이 김장헌을 보자, 김장헌은 갑자기 여자목소리를 내며 몸을 배배 꼬았다.

 

 “사내들이 여자를 희롱하길 조개라 하는데, 조개 합자를 써서 제가 나주에서 온 합이라고 놀리는 게지요.”

 

 으하하하하! 술꾼들이 배꼽을 잡자, 김장헌은 능글맞게 꼬막까지 까먹으며 쩝쩝댔다.

 

 “허면, 합부인의 합은 조개가 아니고 무엇인데?” 필구가 물었다.

 “아, 답답하기는! 원래 합이라 함은, 삼정승에게 붙이는 존칭인데 나주에서 온 기생 년의 세가 삼정승에 못지 않다해 장안에서 그리 부르지. 안동김씨들이 벼슬을 팔 때 첩을 시켜 뇌물을 받으니, 나합이 득세하는 게지”

 “썩을 놈의 나라. 김씨들도 모자라 첩년들 치마폭에 놀아나는구먼.”

 “그 덕에 우리가 이 술을 먹는 거야. 오늘 술자리는 김한필의 첩년에게서 나온 떡고물이라네.”

 “어디서 나온들 어떤가. 우리는 그저 거간이나 해주고 공술이나 먹으면 땡이지.”

 

 사내들이 김장헌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네들. 김한필의 첩년이 요새 뭘 밝히는지 아시는가?”

 

 “뭔데, 뭔데?” 일동이 그의 입을 쳐다보자, 벌떡 일어난 김장헌은 “이히히힝!” 말울음 소리를 내며 말 타는 시늉을 했다.

 

 “제주도 토종말에 환장하다는구먼.”

 

 으하하하하하하! 술꾼들이 배꼽을 잡고 넘어갔다. 필구는 이것저것 요리를 맛보다 인상을 구기고 있다가, 이마에 사마귀가 난 사내가 굴비를 먹으려 하자 서둘러 말렸다.

 

 “어허, 그거 먹지 말게.”

 “왜 그러나?”

 “냄새가 구린 것이 잘못 먹었다간 피똥 싸다 뒤지겠네.”

 “이리 실하고 좋은데, 냄새는 무슨......”

 “에헤이, 그 냥반 참! 속고만 살았나.”

 

 필구는 굴비 쟁첩을 가져다 배를 갈랐다. 기름 자르르한 겉보기와 달리 굴비의 아가미에 구더기가 박혀 있자, 사마귀 사내가 깜짝 놀라 필구를 쳐다보며 술을 따라주었다.

 

 “자네 덕에 배탈을 면했네. 내 술 한잔 받으시게.”

 “오호라~ 차디 찬 얼음 바람을 뚫고 고개를 드는데! 시퍼런 하늘 마냥 기개가 봄 향기를 뿜어내는 것이 연분홍 진달래구나.”

 “어찌 아셨소? 이것이 진달래로 담근 두견주요.”

 

 곁에 앉은 기생이 놀라 필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맞은편의 기생이 나서며 소고기 한 점을 필구에게 건넸다.

 

 “이 소고기는 어떠오?”

 “킁킁..... 귀하게 키운 암소로구나. 꼴만 먹인 것이 아니라, 용한 약재도 먹였는데...... 그것이 고삼은 아니고, 어디 보자...... 옳거니! 황기로구나.”

 “귀신이네. 이게 수원에서 황기를 먹여 키운 암소 고기요.”

 “그건 그렇고, 오늘 요리장이 앓아눕기라도 했더냐?” 필구가 기생에게 물었다.

 “그건 또 어찌 아셨소?”

 “술상 꼬락서니하고는! 쯔쯔, 귀한 것도 잘못 먹으면 말짱 도루묵인데.... 메밀전병에 우렁무침은 같이 먹으면 배탈이 나는데 한 상에 올리질 않나. 갈비찜은 짜고, 도라지는 뭉글거리고, 이 생채 봐라. 이게 생채냐? 숙채지. 허니, 요리장이 자리를 비운 것이 아니겠느냐?”

 

 필구의 말에 일동이 감탄사를 내뱉자, 김장헌이 끼어들었다.

 

 “자네도 참! 껍데기만 양반인 잔반주제에 그놈의 혓바닥은 왕이 따로 없구만.”

 “이보게, 장헌이. 임금도 하루 세끼 먹고 똥 싸는 건 매한가지야. 밥을 먹고 맛을 느끼는 것은 입 달린 짐승이면 다 똑같은 거지, 먹고 사는 거에 뭐 별 거 있는 줄 아나?!”

 

 필구의 말에 또 다시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저 놈이 아주 왕 노릇을 하는구나!”

 

 필구네가 술을 마시는 바로 옆방에서는 효명세자와 박규수, 세자의 친위부대장인 무관 목이가 술상을 앞에 두고 있었다. 기골이 크고 반듯하게 생긴 목이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효명이 오직 그의 기예만을 보고 무관으로 발탁해 호위무사로 만들어 준 사내였다. 그렇기에 목이는 효명에게 깊은 충심을 가지고 있었다. 옆방에서 떠드는 필구의 말을 들으며 효명은 기가 막혀 피식 웃었다.

 

 “규수, 내 저놈의 혓바닥을 꼭 가져다 써야겠네.”

 “저 자의 미각이 보통은 아닌 것은 확실한 듯 하옵니다.”

 “허면, 지금 칠까요, 저하?” 목이가 묻자 효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크게 만들어 괜한 소문이 돌게 하면 아니 됩니다. 제게 방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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