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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쓰는 남자 야설 쓰는 여자
작가 : 필머
작품등록일 : 202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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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우리 작가님!
작성일 : 20-08-08     조회 : 319     추천 : 2     분량 : 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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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이쿠, 우리 작가님! -

 

 

 지연은 이불로 만든 무덤 속에서 부활하는 좀비처럼 팔을 뻗었다. 한참 동안 시끄럽게 울리는 벨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서였다.

 

 ‘아이 씨...’

 

 공포영화의 귀신 손처럼 더듬거리던 손이 핸드폰을 감지하자마자 무섭게 낚아챘다. 그리고 이불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네”

 

 “예?!”

 

 벌떡 일어난 지연이 탁상시계를 본다.

 

 “아 미쳤어! 정말”

 

 지연이 우당탕 소리를 내며 욕실로 달려갔다. 그녀가 내던지듯이 해서 책상 위에 놓아둔 핸드폰에는 아직 통화 중이라는 표시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여, 여보세요, 지연씨?”

 

 차 안에서 핸즈프리로 통화하던 최종훈 팀장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이어

 

 ‘쏴아아아’

 

 하는 물소리와 함께

 

 ‘아 미쳤어! 정말, 어떻게 이 시간까지 퍼질러 자 최지연 이 잠꾸러기야!’

 

 지연의 목소리가 멀찍이 들려온다.

 

 이어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자 종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나 지연이 넘어지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아니, 왜 팀장님은 바로 회사 안 가고 이리 온 거야? 미안하게 진짜!’

 

 투덜거리며 이번에는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엽네...”

 

 최종훈 팀장은 아차 했다. 본의 아니게 지금껏 지연을 도청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리’

 

 지연에게 걸었던 전화를 끊자마자 ‘대표님’이라고 표시된 발신 메시지가 떴다.

 

 “네, 최종훈입니다.”

 

 조용하게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아, 네 죄송합니다. 지연 씨가 대중교통 타고 갔으면 지각 안 했을 텐데 제가 괜히 데리러 간다고 하는 바람에 늦었네요...”

 

 수화기 너머로 날개 매니지먼트의 대표가 뭐라고 한 모양이지만 종훈은 넉살 좋게 맞받아쳤다.

 

 “네, 다음부터는 야근은 지양하겠습니다. 하하 아직도 서울 지리는 잘 안 외워지네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고운 흰 손이 보였다. 종훈은 지연에게 타라는 손짓을 했다.

 

 “아니, 왜 기다리신 거예요? 먼저 가시지...”

 

 “사장님이 더 쉬고 오라고 했는데, 내가 지연 씨 점수 따게 해주려고 데리고 간다고 했어.”

 

 “으유, 아무튼 대표님은 노총각이라 그런지 여자한테 유독 더 깐깐하게 구는 거 같다니까요? 팀장님 아니었으면 바로 나한테 전화 와서 지연씨, 정신 차립시다. 이랬을껄요? 증말...”

 

 ‘파하하하핫 아, 그래?’

 

 대표의 말투를 흉내 내는 지연을 보고 종훈이 웃음을 터트렸다.

 

 “팀장님 아니었으면 정말 그랬을 거예요. 아무튼 고맙네요! 오늘 점심은 제가 사죠”

 

 분명 피곤했을 텐데도 어느샌가 씩씩한 지연을 보며 종훈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아, 지친다 정말”

 

 나는 현관문을 들어오자마자 현관 벽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멘탈도 체력도 모두 너덜너덜해진 것 같다. 차라리 주짓수 챔피언과 10라운드를 매트에서 구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다.

 

 ‘툭’

 

 나는 지친 나머지 엉덩이를 타일 바닥에 붙이고 신발을 겨우 벗어 저 멀리 던져놓았다.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부상한 병사처럼 전신거울까지 기어갔다.

 

 ‘혹시 귀에서 피 나는 건 아니겠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귀에서 피가 나는지 확인해 본다. 무슨 여자가 혀에 총알이라도 달린 건지 한 마디 한 마디가 총 맞은 것처럼 아픈 거야 진짜.

 

 다행히 피는 나지 않는다.

 

 “아, 진짜 독한 것”

 

 나는 노트북이 있는 심플한 책상까지 기어가 의자를 잡고 겨우 몸을 일으켰다. 업로드 시간에 따라 수시로 순위가 바뀌는 치열한 세상이다.

 

 “어 뭐야?”

 

 오늘의 순위에서 못 보던 작품이 내 순위 위에 올라와 있다.

 

 “19금 현대 판타지? 이거 야설이잖아...”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제목이 뭐, 이래...”

 

 [SSS급 처녀헌터]

 

 천박하다. 내가 사춘기 때 친구들과 몰래 공유했던 작자 미상의 야설 같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이내 마음을 바꿨다.

 

 아니, 근데 뭐라고 나보다 순위가 위에 있는 건데?

 

 ‘딸깍’

 

 묘하게 자존심이 상한 나는 그 글을 클릭해 본다.

 

 “음? 어 잠깐만...”

 

 

 ***

 

 

 ‘띠로리’

 

 도어락이 잠기는 멜로디가 들린 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하아, 진짜 독한 놈...”

 

 나는 태어나 처음 설전으로 밤을 지새웠다. 사내 녀석이 무슨 말을 그렇게 잘하는지 마치 말싸움 잘하는 여자랑 싸우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중간중간 꽤 많은 위기가 있었긴 하지만...

 

 ‘결국, 나의 승리로 끝났지!’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짓고 그 자리에 엎어졌다.

 

 “아, 힘들어”

 

 피곤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이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순위를 지키기 위해선 단 하루도 맘 편히 쉴 수 없다.

 

 나는 그 허여멀건 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진저리를 친 다음 기어가다시피 해서 겨우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 5m 정도 되려나? 현관에서 거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는데 한 십 분은 걸린 것 같다.

 

 플랫폼에 가서 내 랭킹을 본다. 연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최근 독자들에게서 ‘야왕’ 이라는 별명을 얻은 나답게 휴재 공지를 한 이후로 순위권 밖으로 밀려 있던 내 작품이 순식간에 3위로 올라서 있었다.

 

 “설레임 아파트 101동?”

 

 나는 그동안 글을 쓰느라 신경 쓰지 않았던 작품순위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남성향이 작품이 조금 더 우세한 이곳에서 몇 안 되는 로맨스 소설이었다.

 

 ‘딸깍’

 

 나는 호기심에 그 작품을 클릭해 보았다.

 

 

 ***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앞두고 최종훈과 최지연이 우두커니 서 있다.

 

 “좀생이...”

 

 지연은 조금 전 요령 없이 일한다고 대표에게 한 마디 잔소리를 얻어먹은 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먹고 기분 풀어, 그 인간 그래도 안 보이는 곳에서는 은근히 직원 걱정 많이 하는 사람이야.”

 

 “아니, 한 회사의 대표면 대표답게 카리스마 있게 한번 딱! 뭐라 하고 끝내지 구시렁구시렁... 그게 뭐예요?”

 

 지연은 괜히 젓가락으로 반찬 그릇에 담긴 콩자반을 휘휘 저으며 화풀이를 한다.

 

 “자자, 먹고 풀어 대신 오늘은 야근 없잖아.”

 

 종훈이 앞 접시에 잘 익은 김치찌개를 덜어 지연의 앞에 놓아준다.

 

 “팀장은 참 친절하시네요, 친구라면서요? 친구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네. 진짜...”

 

 점잖게 말하는 종훈의 말에 기분이 누그러진 듯, 한 숟갈 떠서 후후 불어댄다.

 

 “노총각이 그렇지 뭐, 나처럼 초연해지거나 아니면 강 대표처럼 까칠해지거나”

 

 ‘후릅’

 

 지연이 뜨거운지 조심스럽게 입에 숟가락을 넣더니 대뜸 종훈에게 말했다.

 

 “우와, 이 집 찌개 완전 맛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옛날부터 자주 오던 맛집인데, 그러고 보니 지연 씨는 한 번도 안 와봤구나?”

 

 갑자기 지연이 종훈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런데요. 팀장님...”

 

 “응?”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는데, 저한테 편하게 말씀하시네요?”

 

 아차 싶었는지 종훈이 손사래를 치며 멋쩍게 웃었다.

 

 “아, 미안해요. 지연씨가 편해서 나도 모르게...”

 

 지연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저보다 한참 오빠신데요. 뭘 저도 그게 더 편해요”

 

 “아아, 그래 그럼 계속 편하게 대해도 될까?”

 

 “그럼요!”

 

 지연은 업무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려는 듯 씩씩하게 공깃밥에 숟가락을 가져갔다.

 

 “아, 여기 찌개 진짜 맛있네, 음 이거 완전 그 각인데요?”

 

 “무슨 각?”

 

 “소주 각이요! 사장님 여기 소주 한 잔이요!”

 

 “응?”

 

 놀란 종훈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부지런한 종업원이 소주 한 병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퇴근했는데 뭐 어때요? 자, 팀장님도 한잔해요!”

 

 “그, 그럴까?”

 

 어정쩡한 자세로 지연이 건네는 소주잔을 받아드는 종훈이었다.

 

 

 ***

 

 

 나는 아까 전부터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이 작가 진짜 글 잘 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잘 꼴리게 만든 야설일 뿐이겠지만 글 쓰는 처지에서 봤을 때 이 사람은 정말 글을 잘 쓴다.

 

 “아 글 쓰는 거 완전 내 스타일인데!”

 

 머릿속에서 대번에 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시골 오두막에서 텃밭을 가꾸며 소일거리를 하다가 담배 한 대 태우고 글을 쓰는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노작가의 모습이었다.

 

 그는 무심하게 글을 쓰지만, 사실은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묘사가 극도로 절제된 문체가 이미 몸을 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글에 열광한다. 이것은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줄 아는데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달인의 문체...

 

 “어떻게 19금 야설이 이렇게 탄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을 수가 있지?”

 

 나는 혼잣말로 계속 감탄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어느새 34화, 35화, 36화...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속으로 빠져들었다.

 

 “후아...”

 

 야한 묘사는 또 어떻게 그렇게 끈적하게 잘 쓰는지, 마치 섹스의 신이 이 세상에 강림해 사람들에게 이것이 남녀 간의 섹스다. 라고 강연을 하는 것 같았다.

 

 시간은 벌써 새벽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 글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존경스럽다 정말... 어떻게 이런 작가가...”

 

 나는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내 머릿속에 완성된 이 ‘대물마초’라는 작가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정립되기 시작했다.

 

 무심하고 차분한 눈, 입에 물고 있는 담배, 자신은 담담하게 쓰고 있지만, 그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은 당장이라도 바지를 내리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은 묘사, 그리고 또 애타게 만드는 아슬아슬함과 전개까지...

 

 이것은 마치...

 

 야한 소설을 쓰고 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았다.

 

 나는 그렇게 ‘대물마초’라는 작가의 팬이 되었다.

 

 

 ***

 

 

 “어머, 어머 어떡해?”

 

 “우와 미친년 저거 저 여우 짓 하는 것 좀 봐!”

 

 “아악! 남주 미쳤어 어떡해!”

 

 나는 어느새 꺅꺅거리며 소설에 흠뻑 빠져들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헉! 미친 대박!!”

 

 방심할 만하면 또다시 충격적인 전개가 이어진다. 마냥 달달하기만 하다가 한 번씩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는데 도저히 스크롤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미친 듯이 스크롤을 내렸다.

 

 34화, 35화, 36화...

 

 어느새 나는 손가락을 입에 물고 정신없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작가가 있을 수 있지? 아, 이 언니랑 만나서 한번 글에 관해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다 정말...”

 

 나는 그녀(?)의 글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이 사람은 분명히 뜬다. 나는 드디어 최신화까지 다 읽고 작가의 모습에 대해서 상상해 본다.

 

 치렁치렁한 긴 생머리를 한쪽으로 넘기고 도도하게 앉아 길고 고운 손가락을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습, 누가 보면 세계적 피아니스트 같은 멋진 작가님.

 

 공적인 자리에서도 교양있게 웃으며 왠지 미녀일 것 같은 그런 작가 언니를 떠올렸다. 왜 하필 언니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꾸만 그렇게 상상이 되었다.

 

  “아 진짜 글 너무 잘 쓴다. 나 이 작가님 팬 할래...”

 

 나는 정신없이 ‘좋아요’를 눌렀다. 도도하게 두드리는 한 글자 한 글자에 수많은 여심이 녹다 못해 까맣게 타버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팬 사인회 가서 이렇게 말하겠지?

 

 ‘호호호, 저는 그저 여러분에게 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위해 고민했을 뿐이랍니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 한 사람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탄생해 버렸다.

 

 이 사람은 천재다. 이 사람은 마치...

 

 심심풀이로 로맨스 소설을 쓰러 한국에 온 애거서 크리스티 같다...

 

 

 ***

 

 

 도심의 변두리에 있는 ‘국화빌라’의 밤이 깊었다. 바로 옆에 있는 야산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을 향해 각종 날벌레가 계속해서 날아들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날벌레들은 5층과 6층에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보고 광란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6층의 남자와 5층 여자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상념이 어지러이 돌아다녔다.

 

 마치 창밖의 수많은 날벌레처럼.

 

 남자와 여자는 오늘도 잠들지 못했다.

 

 

 

 

 

 

작가의 말
 

 제가 인기작가라면 인기작가의 삶을 좀 더 디테일하게 쓸수 있었을 텐데, 하는 묘한 아쉬움이 남네요

 묘사하는데 많이 뭉뚱거려썼습니다 ^^

 

 이제 애증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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