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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쓰는 남자 야설 쓰는 여자
작가 : 필머
작품등록일 : 202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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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카페
작성일 : 20-08-10     조회 : 312     추천 : 1     분량 : 5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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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골 카페 -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가 흐드러진 여름 땡볕 아래서 구릿빛 피부의 재혁이 환한 미소를 드러냈다. 상반되는 흰 치아가 태양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났다.

 

 나는 그 미소에 눈이 멀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흠...’

 

 ‘잘 안되네...’

 

 나는 턱을 괴고 앉았다. 어젯밤 본 로맨스 소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간만에 차려입고 카페를 왔건만, 나에겐 이제 여성스러운 감성이 남아있지 않은 건지 글자 수는 더 늘지 않았다.

 

 ‘휴우’

 

 한 번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적신 아메리카노가 오늘따라 더더욱 쓰게 느껴진다.

 

 ‘나, 언제까지 대물마초라는 작가로 내 모습을 숨기고 살아야 할까?’

 

 아침에 비가 잠깐 왔었다고 했다. 나는 뜬금없이 카페 창가에 말라버린 물 자국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나도 저렇게 말라버렸을까? 눈물도, 기쁨도 사랑의 감정도...’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성적인 기분이다. 그리 싫지 않았다.

 

 ‘띠링’

 

 얼마나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봤을까? 유리문 위에 달린 벨이 소심하게 흔들렸고 확연한 존재감을 가진 누군가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 호감 가는 인상이네’

 

 그를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과 선이 굵은 이목구비, 조각 같은 미남은 아니지만, 어딘가 마냥 장난을 치고 투정을 부려도 씨익 웃으며 받아 줄 것 같은 묘한 인상.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아니요, 적립은 됐어요”

 

 그의 머리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듯 미묘하게 헝클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원래 반곱슬머리이거나...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허술한 머리가 마치 신경 쓴 것 마냥 꽤나 잘 어울린다.

 

 살짝 달라붙는 티셔츠에는 적당히 부푼 가슴과 나마저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근육들이 딱 좋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또 적당히 달라붙은 청바지에 적당한 높이의 끝단, 그리고 또 무난한 스니커즈까지.

 

 모든 게 수수하고 적당했으며 평이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시선이 가고 개성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다가. 그가 내 시선을 느낄까 봐 황급히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왜 자꾸 시선이 가는 거야 진짜?’

 

 나도 모르게 어딘가 들뜨는 듯한 기분, 아주 미약하게나마 빨라진 맥박...

 

 나는 열심히 타자를 쳤지만 한번 어지러이 흩어진 마음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었고 백색 화면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무런 단어와 아무런 글자들이 수놓아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그는 아메리카노를 한 잔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은 후 큼지막한 더플백을 옆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뭔가 시원시원하네...’

 

 그는 사소한 동선 하나하나까지 크고 시원시원했다. 그것이 길쭉한 기럭지와 어우러져 내 시선을 확 끌었다.

 

 그는 큼지막한 더플백의 지퍼를 시원스럽게 연 후 안쪽을 뒤적거렸다.

 

 그가 올려놓은 더플백에선 뭐가 나올까? 운동하느라 마시다 만 이온 음료? 아니면 운동 끝나고 한 번씩 읽어보는 작은 시집?

 

 왜일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 이목을 끈다. 그가 한참을 뒤적거린 후에 꺼낸 것은 자신의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을 저기에 넣고 다니는 사람도 있구나...’

 

 하긴, 들은 적이 있다. 주머니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는 게 편해서 차라리 들고 다닌다는 지인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빨대를 마치 환자의 링거라도 되는 듯이 입에서 놓지 않고 핸드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여자 친구와 메시지라도 주고받는 것일까?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만연했다. 그리고 간간히 실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뭐가 저렇게 웃긴 걸까?

 

 그가 전혀 나를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아서 나는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그는 이번에는 참기 힘든 듯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키득키득 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얼마 안 가 또다시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호기심이 동한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슬쩍 그의 화면을 바라보기로 했다.

 

 내가 그의 옆을 지나치려는 찰나 그는 나를 의식한 듯 등을 돌려, 내게 화면이 보이지 않게 했다. 아직도 미소는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몹시 궁금했지만.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왜 내가 궁금해하는 건데? 저게 여자친구와 주고받는 메시지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한 건데? 저 사람이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머릿속이 혼란한 가운데, 부끄럽게도 내 이성은 내가 감추고 있었던 원초적인 감정을 끄집어내 내 머릿속에 확실하게 띄워 주었다.

 

 갑자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낯설다.

 

 ‘저 사람이 마음에 든다.’

 

 ‘저 사람이 여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싶다.’

 

 ‘지금 핸드폰 화면으로 그에게 행복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게 어떤 여자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조금 미친 짓 같지만 나는 한 가지 연기를 해 보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내 눈에 비친 그의 등은 무방비였다. 나는 전화기를 꺼내 괜히 귀에 갖다 대었다.

 

 ‘아, 왜 이렇게 안 받는 거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최대한 도도하면서도 살짝 짜증이 난 여자의 얼굴을 연기했다.

 

 [왜 전화했어 초연아?]

 

 ‘아, 왜 안 받는 거야?’

 

 [뭐래? 지금 받았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수아와 통화하며 천천히 그의 등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시선이지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하는 행동이었다.

 

 [무슨 소리야? 너 뭐 어디 아파?]

 

 ‘아니, 그러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여보세요?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수아는 드디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미안 지금은 아무 말이나 하는 거니까 조금만 참아, 나중에 해명해 줄 테니...

 

 ‘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정말...어쩜 웬일이니?’

 

 나는 과장되게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어머 그랬어? 호호 정말이야? 맞아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깐......히끅!’

 

 나는 아무 말이나 수다를 떨면서 서서히 앞으로 다가가다가 그만 놀래 사레 걸린 사람처럼 딸꾹질을 해 버렸다.

 

 "야 정신 차려! 한초연 너 드디어 미쳐버린 거니?

 

 내가 야설 같은 거 쓰면 사람 이상하게 된다고 했지?

 

 여보세요? 작가님, 벌써 어디서 뛰어내린 거 아니죠? 작가님아?"

 

 수화기 너머로 수아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지만, 머릿속에는 단 한마디도 들어오지 못했다.

 

 처음 한 걸음.

 

 설마 했다. 저 멀리서 그가 보는 것이 메신저 채팅창이 아니라 어떤 글을 스크롤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아냈을 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두 번째 한 걸음

 

 그리고 그 설마 했던 화면이 웹 소설이었을 때만 해도 운동을 좋아하는 흔한 남자의 취미라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도 괜찮았다.

 

 세 번째 한 걸음

 

 그가 보는 소설의 문체가 낯이 익었다.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네 번째 한 걸음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고 나오는 작가의 말에 나는 놀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급기야 딸꾹질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번 화는 주인공이 최대한 많은 여자들을 겁탈할 겁니다. 헤헤 앞으로 주인공의 발기력 넘치는 모험을 기대해 주시죠. - 대물마초 - ’

 

 ‘히끅’

 

 딸꾹질이 멈추질 않는다.

 

 수많은 아재들과 동생 놈들의 센 댓글에도 아무렇지 않게 헤실거리며 답변하는 작가 본연의 내 모습이었다면 조금 아무렇지 않았을까?

 

 ‘히끅’

 

 아니다, 이 상황에선 작가인 나 역시도 도망쳤을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대물마초’가 아닌 여자 ‘한초연’이다.

 

 ‘히끅!’

 

 나는 가슴을 약하게 두들기며 뒤로 반걸음 물러섰다. 그가 수많은 ‘키읔’을 올려놓은 채 댓글을 남긴다.

 

 안 돼... 하지 마!

 

 ‘이번 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주인공의 발기 찬(?)활약 기대 하겠습니다. ^^’

 

 나는 그가 남긴 댓글이 알람으로 뜨는 것도 아닌데 괜히 핸드폰을 등 뒤로 감추었다.

 

 ‘휙’

 

 하고 갑자기 그가 뒤로 힐끔 돌아본다.

 

 눈이 마주쳤다.

 

 ‘히끅!’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라 화악 하고 붉어졌다. 동공이 얼마나 커졌는지 순간적으로 안구가 시린 느낌마저 든다.

 

 “아니 저기요!”

 

 ‘우당탕’

 

 그는 나를 발견하곤 놀랬는지 급하게 일어나다가 갑자기 바닥에 엎어졌다.

 

 “난 몰라...”

 

 나는 그대로 카페를 도망치듯 나왔다.

 

 

 ***

 

 

 “아 오늘 아·아 엄청 땡기는 구먼”

 

 나는 오늘도 도장에서 실컷 땀을 흘리고 나서 더플백을 아무렇게나 둘러멘 채 자주 가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 人’

 

 현대식 건물에 간간히 한국 전통적인 요소를 배치해놓은 인테리어의 이 카페는 그리 크진 않지만 오밀조밀한 각종 인테리어 소품들과, 아늑한 분위기 그리고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 오는 정숙함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나는 늘 그렇듯이 익숙하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가장 좋은 자리를 둘러보았다. 그때 한 여인이 내 시선에 들어왔다.

 

 ‘아, 예쁘다...’

 

 그때 버스정류장에서 시선을 빼앗겼던 그 여자다.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칠흑같은 머리는 살짝 웨이브 져서 어깨를 가리고 있었고 선한 눈매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화사하게 칠해진 볼 터치는 내 마음마저 설레게 만드는 듯했다.

 

 ‘꿀꺽’

 

 나는 괜히 커피를 기다리며 그녀를 몰래 훔쳐보았다. 죄책감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학생인가?’

 

 그녀는 노트북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여기는 학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그녀의 옷차림은 대학생들의 싱그러움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어딘가 학생들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로 봐선 젊고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으로 보인다. 파스텔 톤의 원피스에 샌들 구두를 신고 앉아있는 모습은 우아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커피 나왔습니다!”

 

 “아 예예”

 

 나는 그 말에 놀라며 일부러 그녀의 대각선 옆자리로 향했다. 그녀를 조금 더 지켜보기 위해서다.

 

 더플백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조금 전까지 여기에 머물다간 느낌, 지금 그녀는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마른 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설마 내 시선을 느낀 건가?’

 

 나는 그녀가 기분 나빠 했을 거라는 생각에 멋쩍어져 괜히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읽다 만 ‘SSS급 처녀헌터’가 생각났다.

 

 나는 방금 전의 무안한 기분을 빨리 잊기 위해 오히려 더 집중해 그 글을 읽었다.

 

 그런데 왜 하필 내 옆으로 지나가는 거야?

 

 아, 화장실! 가는구나. 나는 내 옆으로 지나가는 그녀에게 읽고 있는 소설을 들킬까 봐 일부러 몸을 틀었다.

 

 다행이다. 방어에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녀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또 소설에 빠져버렸다. 이 작가의 글은 방심하면 수렁에 빠지듯이 정신없이 읽게 된다.

 

 그렇게 정신을 잃어버린 내가 미친놈처럼 혼자 낄낄거린 뒤에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남긴 직후

 

 나는 등 뒤가 왠지 서늘했다.

 

 기분이 묘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뒤로 획 돌아보았다.

 

 ‘히끅’

 

 그녀의 놀란 표정이 대번에 느껴졌다.

 

 아, 망했다. 내가 읽는 걸 본 모양이다. 개 변태라고 생각하겠지? 억울하다. 무지무지 억울하다.

 

 나는 순간적으로 외쳤다.

 

 “아, 아니 저기요!”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게 다 걸리는 군, 나는 ‘그게 아니라요!’라는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의자 다리에 발목이 걸려 엎어졌다.

 

 그녀는 놀랐는지 몸을 획 돌려 순식간에 카페 밖으로 달려 나가버렸다.

 

 ‘현재진 이 바보 같은 놈’

 

 나는 창피함도 잊고 내 머리를 스스로 콩하고 쥐어박았다.

 

 그때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에 있던, 노트북... 그녀는 당황했는지 그대로 뛰쳐나가 버린 것이다.

 

 

 ***

 

 

 ‘아, 내 노트북!’

 

 나는 당황해서 온몸을 더듬어봤다. 모두 놔두고 왔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다시 저길 들어가야 하나...’

 

 

 

 

 

 

작가의 말
 

 항상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 작품에 초연이 통화하는 부분이 헷갈릴 것 같아 약간 수정을 하였습니다.

 또한 대사가 살짝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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