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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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마스터티쳐 오지현
작성일 : 20-08-14     조회 : 476     추천 : 1     분량 : 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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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사입구까지 걸어오는 동안 기태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피살자의 미망인 최혜영.

 그녀와 한 시간 가까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지만 돌아서 나와보니 막상 건진 건 하나도 없었다.

 

 

  '남편을 잃은지 불과 하루도 안되었는데...'

 

 

 그녀는 시종일관 침착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창으로 뚫을 수 없는 물을 허우적 거리다 온 기분이 들었다.

 

 

  '그래. 옛어른들이 그랬지. 이런 기분을... 뭣에라도 홀린 듯한 기분이라고.'

 

 

 기태가 갑자기 미간을 확 찌푸렸다.

 아뿔싸.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 제대로 당한 게 아닐까.

 

 오늘 아침 그녀의 남편은 잔인하게 훼손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런 남편을 두고 세상 어느 여자가 그토록 침착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만인의 존경을 받는 남편.

 충실하고 따뜻한 가장.

 게다가 그 남편은 빈민들의 구세주라 칭송받는 성인 같은 존재였다.

 바로 그런 남편이 어젯밤 잔인하게 살해됐다.

 

 

  '젠장. 내가 본 최혜영의 모습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어.'

 

 

 그토록 비참한 상황에 처한 미망인이라면 누구를 붙잡든 슬픔과 눈물을 보여야 했다.

 형사인 자기 앞에서 혼란스러워 여러 실수를 할 수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자는 시종일관 흔들림이 없었다.

 심지어 기태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서조차 흔들림이 없었다.

 붉은 골프가방이 피살자의 것인지 확인사살 하는 질문에 혜영은 네, 라고 담백하게 답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장면인가.'

 

 

 네. 라니.

 그게 다였다.

 그 어떤 추측이나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짧고 간결한 답.

 

 기태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미망인은 기태를 보기 좋게 넉다운 시켰다.

 

 

  ‘쳇. 나도 이젠 뇌 속에 똥만 가득찼구나. 그 여자의 연기에 홀라당 넘어가버리다니!'

 

 

 그나저나 최혜영이는 그 기품과 우아함 뒤에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걸까.

 

 

  -변 형사님! 변 형사님!!

 

 

 청사에 막 들어선 기태를 보더니 막내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막내 손에는 서류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안 그래도 막 전화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잘됐네요."

  “왜? 뭔데?”

 

 

 막내가 기태에게 들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아까 낮에 선배님께서 문자로 부탁하신 신고내역 알아봤습니다. 여기 보시면... 선배님 말씀대로 지난 주 금요일 밤에 신고 건이 하나 있더라구요.”

 

 

 기태의 눈빛이 번뜩였다.

 혹시나 해서 알아보라 시켰던 것인데 역시나 뭔가가 있었다.

 

 기태는 재빨리 서류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 그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짐승이었다구요!!

 

 

 진술실에서 누군가 울부짖고 있었다.

 기태가 막내에게 누구냐는 눈짓을 했다.

 

 

  "좀전에 상수선배가 데려온 용의잡니다."

  "용의자? 누구?"

  "병원에 입원한 캐디의 남편이라는데요?"

 

 

 기태가 잠시간 양미간을 좁히더니 진술실로 향했다.

 

 

  ***

 

 

 돈종률 의원 사망살인 사건 3시간 전.

 골드 골프장 6번 홀, 밤 8시경.

 피살자 돈종률은 최 이사와 야간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주말인데도 고객이 적어서 골프장은 한산했고 바람도 선선해 골프치기에 딱이었다.

 게다가 방금 전 돈종률은 '보기' 하나 없이 홀 가까이 골프공을 붙였다.

 이대로라면 최 이사와의 내기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들먹거리던 돈 의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제 옆에 선 윤선미 캐디를 힐끔 보았다.

 

 오뚝한 콧날에 작지만 도톰한 입술.

 딸 자식 못지않게 이십 대의 싱그러움이 풍성하게 묻어나는 여자였다.

 

 제 차례가 된 최 이사가 클럽을 들고 폼을 잡자 그 뒤에 선 오지현이 나섰다.

 

 

  “이사님, 조금만 허리를 낮추시고 클럽을 더 뒤로 젖혀보세요.”

  “어. 그래. 이렇게?”

  “예. 아주 좋습니다. 잘 하시네요.”

 

 

 폼을 교정 받은 최 이사가 기분 좋게 웃으며 샷을 날렸다.

 골프공은 보기 좋게 포물선을 그리며 홀 가까이 떨어졌다.

 

 

  “나이스 샷!”

 

 

 최 이사의 뒤에 선 김 캐디와 골프티쳐 오지현이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그 순간 윤 선미는 흠칫 놀라 굳었다.

 어느 새 바싹 다가온 종률이 순식간에 제 허리에 팔을 감은 것이다.

 

 

  “왜 이러세욧!”

 

 

 선미가 작게 소리치며 종률을 밀어내려는 순간, 종률은 더 바싹 붙어 선미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선미는 자신도 모르게 꺅 비명을 질렀다.

 최 이사와 김 캐디, 오지현이 동시에 돌아봤다.

 그런데 종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뻔뻔하게 물러나며 말했다.

 

 

  “갑자기 왜 그래, 윤캐디?”

 

 

 윤선미는 입술을 깨물며 원망스레 그를 보았다.

 오지현은 직감적으로 돈종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오지현은 주먹을 꽉 쥐고 돈종률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놈을 패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선미가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자자, 서두릅시다 최 이사. 다음 홀로 가야죠.”

 

 

 종률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옮겼다.

 그때까지도 큰 사달 없이 게임은 진행되는 듯 싶었다.

 

 어느 새 8시50분.

 라운딩을 시작한지 두 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최 이사와 김 캐디가 골프채를 고르는 사이,

 돈종률이 다시 선미에게 다가와 뭐라고 귀엣말을 했다.

 선미는 흠칫 굳으며 뒤로 물러났다.

 돈종률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껄껄 웃으며 폼을 잡았다.

 윤선미는 그 모습을 원망스레 보며 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잠시 후.

 뭔가를 고민하던 윤선미가 최 이사를 담당하던 김 캐디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김 캐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최 이사에게 정중히 뭔가를 부탁했다.

 

 

  “그래. 난 뭐 별 상관 없으니까 알아서들 해.”

 

 

 최 이사가 흔쾌히 동의를 하자, 윤선미가 김 캐디와 가방을 바꿔 들었다.

 그리고 윤선미는 다음 홀로 이동하는 최 이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오지현에게 폼 교정을 받던 돈종률이 눈알을 굴리며 버럭 소리쳤던 것이다.

 

 

  “야야야! 뭐하는 짓이야!”

 

 

 김 캐디가 나섰다.

 

 

  “의원님. 최 이사님께서 윤 캐디와 해보고 싶다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윤 캐디와 자리를 바꿨습니다.”

 

 

 어느 새 최 이사를 따라 7번 홀로 저만치 걸어가고 있는 윤선미.

 돈종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종률은 최 이사 옆에 선 윤선미를 잠시간 노려보더니 갑자기 골프채를 휙 휘둘렀다.

 골프공이 야구공처럼 직선으로 날아갔고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터졌다.

 

 꺄악------------!

 

 적막한 골프장 안에 끔찍한 비명이 울렸다.

 지현은 사색이 되어 앞으로 내달렸다.

 

 

  “선미야!!!”

 

 

 제 얼굴을 움켜 쥔 채 쓰러져 발버둥 치는 선미를 지현이 달려가 감싸 안았다.

 그녀의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었다.

 지현은 선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제 점퍼를 벗어 선미의 얼굴을 감쌌다.

 

 

  “쥐뿔도 없는 것들이 어디서 감히 쇼를 하고 있어.”

 

 

 돈종률이었다.

 느긋하게 골프채를 휘두르며 걸어온 그는 고통에 발버둥치는 선미를 벌레 보듯 말하더니, 하얗게 질려 있는 김 캐디에게 버럭 소리쳤다.

 

 

  “야! 뭐하고 있어. 빨리 공이나 주어와!”

 

 

 김 캐디는 울먹이며 피 묻은 공을 바라봤다.

 그 순간.

 선미를 감싸 안고 있던 오지현이 벌떡 일어나 돈종률에게 주먹을 날렸다.

 한방에 나가 떨어진 돈종률은 황당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돌았어! 너 내가 누군지 몰라!”

 

 

 하지만 이미 꼭지가 돌아버린 지현은 돈종률을 타고 올라 연방 주먹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 짐승 같은 놈! 죽어라! 죽어! 죽어버려 개**야!!!”

 

 

  ***

 

 

 진술을 하던 오지현이 마구 날뛰고 있었다.

 어젯밤 일어난 일을 말하던 그는 지금 바로 눈앞에 돈종률이 있는 것처럼 흥분하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상수와 형사들이 그를 제지하고 끌어다 자리에 앉혔다.

 오지현은 이가 갈리는 듯 여전히 씩씩대며 ‘짐승! 짐승!’이라는 소리를 반복했다.

 기태는 진술실 문턱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피살자가 머문 별장까지 다시 찾아가 그를 죽인 건가? 아내가 수술하는 사이 대기자 보호실에 있었다는 거짓 알리바이를 대면서 말이지!”

  “아닙니다! 아니라구요!”

  “뭐가 아니야! 동기가 분명하잖아!”

  “라운딩 중에 그 작자에게 주먹질은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구요!”

  “당신 마누라가 피살자한테 성희롱당한 걸 목격하고도 그대로 참았다구? 말이 안 되잖아! 네 입으로 피살자는 짐승 같은 놈이라며. 네 마누라를 희롱하고 일부러 눈에 골프공까지 맞춘 자를 그대로 뒀단 말야?”

 

 

 오지현은 책상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제길. 안 그래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입니다!”

  “거짓말.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어. 피살자는 사람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야. 골프장 그 어떤 관계자도 피살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은 한번도 없다고 진술했어! 심지어 어젯밤 함께 라운딩을 담당했던 김 캐디조차도!”

 

 

 오지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절망적인 표정이었다.

 

 

  "죽은 망자의 명예를 실추시키면서까지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오지현! 왜 돈종률 의원을 죽였지? 말해 당장! 대체 병원에서 사라진 그 시간에 무슨 짓을 한거야!'

 

 

 상수의 압박이 이어지자 지현은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이제껏 지켜보고 있던 기태가 오지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지현의 손톱을 가리키며 물었다.

 

 

  “골프채를 다루는 데 거치적거리지 않습니까? 손질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상수는 황당한 표정으로 기태를 봤다.

 자백을 받아내려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웬 손톱타령?

 그런데 오지현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기태는 상수에게 서류를 쥐어주고 오지현에게 물었다.

 

 

  “오지현 씨. 지난주 금요일 밤에 경찰서에 신고를 했죠?”

  “... ...”

  “오지현 씨. 그날 밤 당신 와이프 윤선미 씨가 강제로 납치되었다는 신고를 했죠?”

 

 

 서류를 보던 상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수가 오지현 앞에 서류를 내던지며 말했다.

 

 

  “오지현! 여기 신고내용에는 피살자 돈종률 의원의 운전수가 지난 주 금요일 밤에 당신 아내 윤선미를 강제로 데려갔다고 적혀있어. 밤늦도록 아내가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서 신고를 했군! 이래도 잡아뗄 거야!”

  “... ...”

  “당신은 이미 지난주부터 아내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토요일 밤 피살자가 아내에게 추행을 했다고 했지만, 그 이전부터 이미 계획적인 살인을 계획한 거지! 그렇지!”

 

 

 오지현이 갑자기 초조한 듯 두 손을 꼭 움켜쥐었다.

 기태는 다시 한번 지현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열 손가락 모두 여자처럼 손톱이 길었다.

 

 

  “그, 그 신고는... 아무튼 지난 주 금요일 밤에 아내는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고도 취소했습니다.”

 

 

 누가 들어도 오지현의 변명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 기태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오지현에게 물었다.

 

 

  “오지현 씨. 종교가 뭡니까?”

 

 

 상수가 또 다시 황당한 표정으로 기태를 봤다.

 

 

  ‘낮술을 쳐 드셨나. 대체 왜 자꾸 이상한 질문을 해대는 거야!’

 

 

 그런데 이번에도 오지현은 몹시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그런 지현을 보며 기태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을 이어갔다.

 

 

  “다친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긴 갔는데 수술을 하라니 몹시 곤혹스러웠죠?”

  “... ...”

 

 

 상수는 짜증이 확 치밀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여기서 대체 왜 이런 뜬금없는 소리를 해대냔 말이다.

 

 

 “선배. 지금 대체 뭔 소리예요!”

 

 

 기태는 한숨을 내쉬는 오지현을 보더니 상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나와, 범생. 오지현 알리바이를 내가 말해줄게.”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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