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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 황후, 한소제
작가 : 솽솽
작품등록일 : 20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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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국혼(2)
작성일 : 20-08-15     조회 : 255     추천 : 0     분량 : 5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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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이름은 한소제. 맞지?”

 

 부드러운 어조로 난왕이 물었다.

 6척(尺)이 넘는 키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소년이 처음으로 말을 거니까 소제는 당황했다.

 실제로 그가 앞에 서있으니까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오물이라서 냄새가 역해요. 손수건을 버리게 될 거예요.”

 

 손수건을 돌려주려고 하니 난왕이 손바닥으로 막았다.

 

 “예쁜 소저에게서 역한 냄새가 나면 안 되잖아? 이런 손수건이야 얼마든지 많아.”

 “……?”

 “내 이름은 이헌솔이야.”

 “난왕 전하시죠?”

 “날 알아?”

 “알아요. 황제 폐하의 셋째 아드님이신 것도요. 그리고 아직 미혼이라는 것도…….”

 

 소제는 순간 너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자신의 집 식구들 말고 외부인과 말을 나눈 적은 처음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자기도 모르게 들떠서 말이 많아진 거다.

 

 “너무 말이 많았네요.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그런데 전하는 참 보는 눈이 없으시네요. 저에게 예쁜 소저라고 하시다뇨?”

 “왜? 예쁘잖아. 학당에서도 항상 장원을 놓치지 않고, 어려운 한시도 잘 외워. 게다가 덕도 있어 보이고……. 만약 큰 형님과 혼약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당신을 내 신부로 맞이하려고 했을 거야.”

 “네?”

 

 당황해서 커진 눈으로 소제가 반응했다.

 

 “나야말로 너무 말이 많았어. 잊어버려!”

 

 헌솔은 가지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때 받았던 헌솔의 손수건을 소제는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어쩌면 헌솔은 소제의 첫사랑일 것이다.

 그로 인해서 학당에 가는 일이 전보다 훨씬 더 즐거워졌기 때문이었다.

 소제가 옛 추억에 잠겨 손수건을 꺼내 매만졌다. 그 모습을 본 달아가 뭐가 그리도 웃긴지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다.

 

 “아직도 난왕 전하를 생각하세요?”

 “누가?”

 “노비가 모를 줄 알아요? 아가씨의 첫 사랑이시잖아요?”

 “첫 사랑?”

 “네. 난왕 전하가 죽현으로 가시지만 않았어도 두 분이 더 잘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도 안 돼! 그분은 문왕 전하의 동생이야!”

 “하지만 달아는 알아요. 난왕 전하가 아가씨에게 그랬었죠. 죽현으로 가실 때 딱 5년만 기다리라고요. 5년 뒤에 다시 도성으로 돌아오면, 돌아가신 황제 폐하를 설득해 아가씨를 부인으로 맞이한다고 했던 거요.”

 “그냥 해본 말일거야.”

 “조금 기대는 하셨잖아요?”

 “가만히 있으니까 자꾸 얘가 별 말을 다 하네?”

 

 달아의 말에 소제의 뺨이 붉어졌다.

 

 “우리 아가씨, 얼굴이 빨개졌네요? 그리 부끄러우세요?”

 “그만해!”

 “얼굴이 엄청나게 빨개졌어요!”

 “그만!”

 

 달아는 소제를 놀리며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런 달아를 바삐 쫓아다니던 소제가 어느 순간 누군가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우두커니 서서 그녀가 본 건 한껏 어른스러운 용모를 풍기는 한 남자였다.

 

 “오랜만이다.”

 

 자상한 음성에 소제가 놀란 토끼눈으로 물었다.

 

 “난왕 전하?”

 “보고 싶었어.”

 

 대뜸 헌솔이 소제를 부둥켜안았다.

 그리움에 앞서 남녀가 유별하다는 것도 잊고!

 

 “전하, 이러시면 곤란해요.”

 

 소제의 얼굴 전체가 붉게 달아올랐다.

 

 “오 년 만에 보는 친구에게 반가움을 표시한 거야.”

 

 반짝이고 총명해 보이는 눈.

 온화하게 웃을 때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꼬리.

 그리고 남자다운 굵은 목선을 잇는 넓은 어깨.

 헌솔은 5년 전보다 훨씬 멋진 남자가 되어 돌아왔다.

 

 “이번에 도성으로 오신 건 제 혼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죠?”

 “…….”

 

 소제의 물음에 헌솔이 긴 침묵을 이었다. 이 침묵을 깨뜨린 건 달아였다.

 

 “달아, 난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래. 네 이름이 달아였지?”

 

 헌솔이 달아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히 달아는 소제를 곧잘 따르던 노비였다.

 학당에서도 몇 번 그녀와 마주친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름을 잊었을 리가 없었다.

 

 “네,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너를 어찌 기억 못하겠어? 소제가 가장 아끼는 하녀인 것을!”

 

 헌솔은 달아를 반겼다.

 5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이제 헌솔은 예부상서가 되어 도성으로 돌아왔고, 소제는 곧 화서국의 황후가 될 입장에 놓였다.

 원래 그녀가 헌예의 부인이 되는 건 정해져 있던 일이었다.

 혼약을 한 지가 햇수로 벌써 16년이 되지 않았던가?

 애초에 소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는 헌예의 짝으로 정해져 있었다.

 ‘추녀 황후와 혼례를 치러야 단명하지 않을 운명이라니!’

 

 화서국 황제들의 운명은 가혹했다.

 특히 겉으로 보이는 미에 집중하는 화서국이었다.

 그런데 추녀를 황후로 삼아야 오래 산다는 이상한 이야기는 헌솔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전혀 안 됐다.

 합리적이지 못했다.

 

 “저희 아가씨께서는 곧 혼례를 치를 몸이라서요. 죄송합니다만, 더욱 행동에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달아!”

 

 사람을 면전에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영 아니지 싶었다. 소제가 달아의 팔을 꼬집었다.

 

 “앗!”

 “달아가 실례를 한 것은 죄송해요. 워낙에 솔직해서 돌려서 말할 줄을 모릅니다.”

 

 그녀가 당황한 낯으로 말했다. 그러자 헌솔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틀린 말을 한 게 하나 없잖아. 이제 형님과의 혼례가 가까워졌어. 하지만 본왕은 이 혼인을 물러달라는 부황의 승인도 못 받았지. 부황은 돌아가셨고, 큰 형님과의 혼인은 예정대로 치러치게 됐어.”

 

 앞으로도 헌솔이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이 혼인을 무효로 시키지 못했던 것일 거다.

 지난 5년간 고집이 센 화왕을 설득하려고 별의 별 수를 다 뒀다.

 고위 관리들의 서명을 받아 이 일을 무효로 하는 것이 좋다고 보고를 올리기도 했고, 화왕의 앞에서 왜 헌예와 소제를 혼인시켜서는 안 되는지 장시간 설명하기도 했다. 무릎을 꿇고 간청도 해봤다.

 하지만 화왕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았다.

 

 “불허한다! 헌예의 황후로 맞는 여자는 한소제야. 그 아이를 황후로 맞아들여야 헌예가 단명하지 않아!”

 “부황!”

 “다시는 이 일을 입밖으로 꺼내지 마! 또 그랬다가는 아예 먼 시골 지방으로 보내버리겠다!”

 헌솔은 여태까지 화왕에게 부탁을 해본 일이 없었다. 언제나 다른 형제에게 양보만 해왔다.

 특히 헌예는 앞으로 황위를 이을 것이기에 그가 원하는 건 모두 내줬다.

 

 “형님은 소제를 사랑하지도 않아요!”

 

 헌솔이 강하게 반박했다.

 

 “황후를 맞이할 때 사랑해서 혼인하는 경우도 있다더냐?”

 “하지만, 형님은 소제를 황후로 데려와도 냉대할 겁니다. 형님의 눈에 안 들어올 거예요.”

 

 헌솔은 소제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소제를 먼저 만난 것도 저였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 것도 자기가 먼저였다. 더군다나 헌예는 사랑을 모르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에게 소제를 보낼 수 없었다.

 

 “소제가 아니더라도 화서국의 황후라면 겪어야 할 고통이야.”

 “꼭 소제가 아니더라도 되는 거잖아요?”

 “화서국에서 추녀를 찾는 게 어디 쉬운 일인줄 아느냐?”

 

 화왕은 말이 통하지 않았다.

 

 “부황!”

 “듣기 싫다!”

 

 화왕은 언제나 쇠철처럼 강건했다.

 헌솔이 공격적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그 역시도 강수를 뒀다. 급기야 마지막에는 화왕은 헌솔을 외딴 섬에서 홀로 5년간 지내라고 분부를 내렸다.

 옛 추억을 떠올리던 그가 아직도 원망이 남은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부황은 유언에도 너와 형님의 혼인을 빨리 시키라고 말씀하셨지.”

 “황명은 어길 수가 없어요.”

 

 소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말했다.

 

 “합리적이지 않아. 어떡해야 널 황후가 되지 못하게 할까?”

 “황명을 어기는 건 불효이고, 불충입니다.”

 “넌 이 혼례가 치르고 싶은거야?”

 “그런 물음은…….”

 

 소제는 말을 머뭇거렸다.

 

 “대답해 봐!”

 

 헌솔이 소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소제는 어깨가 으스러질 듯 아팠다. 대답을 강요하는 그에게 소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전하, 부디 그만하세요. 아가씨가 놀라셨어요!”

 

 달아는 헌솔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곡히 청했다. 그는 이성을 잃은 듯한 표정이었다.

 

 “말해!”

 “난왕 전하, 난왕 전하!”

 

 달아가 몇 번이고 부르는 소리에 겨우 헌솔이 정신을 차렸다.

 

 “미안하다. 불합리한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화가 나! 너조차도 구해줄 수 없는 내 미력함에 속상해.”

 “모든 게 전하의 탓은 아니예요. 이건 운…….”

 “운명이라고?”

 

 소제의 말이 끝맺기도 전에 날이 선 음성으로 헌솔이 대답했다.

 

 “추녀와 혼인을 해야 장수하는 운명 같은 게 어디있다는 거야? 다 거짓이야! 거짓!”

 “하지만 화서국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그렇다면 이번은 형님의 운명을 시험해 볼 차례인가?”

 “네?”

 

 헌솔이 소제의 한쪽 어깨를 제 커다란 손아귀로 감쌌다.

 

 “네 얼굴을 알아.”

 “……?”

 “선녀가 따로 없지. 넌 아마도 화서국에서 제일 가는 미인일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소제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헌솔이 제 얼굴을 본 적이 있다는 걸까?

 

 “전하?”

 “내가 보는 건 너의 겉이 아니야. 네 속은 이 세상의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워. 이런 미인이라면 내 형님에게는 아깝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정말로 헌솔은 자신의 얼굴을 본 적이 있어서 하는 말인지, 아닌지 궁금증만 생기게 했다.

 

 그 순간.

 소제는 어쩌면 헌솔이 잠룡(潛龍, 왕위에 오르지 않고 잠시 피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였다.

 

 “하하! 이제 따님께서 황후가 되시면 병부상서께서도 한 입지를 하시게 될 겁니다.”

 “장 내관, 그리 생각하십니까?”

 

 마당에 나온 장 내관과 수오의 음성이 들렸다.

 그때 두 사람은 취한 상태라서 얼굴은 붉고,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사실 나라의 힘은 병부에 있지 않습니까? 병력을 안 키우고, 예부에서 학자들이나 키우는 것이 말이 되나요?”

 “장 내관, 좀 취하셨군요.”

 “우리 이제 솔직해져요. 한 대인도 병부를 지지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장 내관은 수오의 마음을 한번 떠봤다.

 

 “저야 황제 폐하의 뜻에 따를 뿐이죠.”

 “솔직하지 못하시네요?”

 

 장 내관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그가 나중에 헌솔을 알아봤다.

 

 “아니, 난왕 전하가 아니세요?”

 

 한 걸음에 그는 헌솔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오래간만이군. 장 내관.”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장 내관은 자신의 입에서 나는 술 냄새를 없애려고 소매로 입을 가렸다. 그러곤 머리를 숙였다.

 

 “술도 하고, 장 내관도 기분이 좋겠군?”

 “아닙니다. 전하.”

 “오늘은 폐하의 칙령을 전하러 온 거겠지?”

 “네, 그렇습니다.”

 “칙령을 거절하면 어찌 될까?”

 

 헌솔이 장 내관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을 걸었다.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세요.”

 

 자지러질 듯 놀란 얼굴로 장 내관이 손사래를 쳤다.

 

 “그냥 농담한 거야.”

 

 아무래도 헌솔은 아직은 소제를 헌예에게 보내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 듯했다.

 아직은!

 

 “그러면 소인은 환궁하겠습니다.”

 “궁에서 또 봐.”

 “네.”

 

 장 내관은 뒤로 물러났다.

 

 ‘난왕 전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야?’

 

 그는 헌솔의 생각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원래 어려서부터 헌솔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서재에 틀어박혀서 사흘 밤낮으로 책을 읽는가 하면, 국운을 두고 점성술을 치는 것이 어리석다는 말도하고는 했다.

 워낙에 다른 왕자들과는 달라서 그는 일찍이 ‘별종’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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