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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 황후, 한소제
작가 : 솽솽
작품등록일 : 20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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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국혼(3)
작성일 : 20-08-15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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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시 후.

 환궁한 장 내관은 용현궁에 들렀다.

 용현궁은 헌예가 집무를 보는 궁으로 궁전 중에서 크기가 가장 크고, 화려함을 자랑했다.

 금박을 입힌 네모기둥에는 승천하는 황금색 용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바닥에는 서역에서 들여온 붉은 융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는 흰 목련 자수가 놓였다.

 천장은 높았고, 사방은 커다란 창문이 달려 따사로운 햇볕이 궁 안 전체에 깔렸다.

 

 햇볕이 스며드는 창문 앞에 서 있던 헌예는 패왕수(선인장)에 물을 주던 중이었다.

 

 “이봐! 어찌 황상께서 이런 일을 하시게 한 것이냐? 다들 벌을 받고 싶은 거야?”

 

 장 내관이 궁인들을 다그쳤다. 그랬더니 헌예가 패왕수에 물을 주던 걸 멈췄다.

 

 “시끄럽게 할 필요 없어. 내가 원해서 한 거였다.”

 “죄송합니다.”

 “병부상서의 집에 갔던 일은 어떻게 됐지?”

 

 헌예가 궁금한 낯으로 물었다.

 

 “칙령은 전달했고, 한 소저도 만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소문대로 얼굴의 절반은 가려서 잘 보지도 못했습니다. 너무 추한 얼굴이라서 보일 수가 없는 것으로 보였어요.”

 “그러한가?”

 “네.”

 

 헌예는 돌아서서 장 내관의 얼굴에 시선을 보냈다.

 

 “장 내관, 내가 못생긴 패왕수를 왜 아끼는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왜 패왕수를 아끼십니까?”

 “자생력 때문이야.”

 “……?”

 “못생긴 것이 아무리 험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잘 살아남거든.”

 “그 말씀은?”

 “한소제도 그랬으면 좋겠어. 이 황궁에서 알아서 끝까지 잘 살아남기를 바라.”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헌예는 화서국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와 혼인을 치르는 것이 저주라고 생각했다.

 단명할 운명을 장수할 운명으로 바꿔주는 행운이라는 말.

 절대 믿지 않았다.

 이는 틀림없는 저주였다.

 

 “병부상서의 따님이시니 한 소저는 잘 버티실 겁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 여자에게는 고통이지 않던가?”

 

 헌예는 사랑에 대해 잘 몰랐다.

 그래도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여자가 얼마나 고통을 느끼는지는 황제의 사랑을 못 받은 비(妃)를 봐와서 알았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황제의 품에 안기지도 못했지만, 황제의 여자라는 이유로 이 황궁 밖을 나가려면 죽는 수밖에 없었다.

 불행하고도 불행한 운명이었다.

 

 “소인, 남녀간의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 뭐라고 황상에게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장 내관은 단지 내관일 뿐이었다.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논할 수가 없었다.

 

 “물어본 것이 아니야. 그냥 혼잣말이었어.”

 “그러셨군요. 하온데 오늘 병부상서의 저택에 난왕 전하가 오셨습니다.”

 “헌솔이?”

 “네.”

 “그럴만도 해.”

 

 헌예도 알고 있었다.

 헌솔이 화왕이 살아있을 적에 가장 많이 요청했던 일이 무엇인지를.

 그는 병부상서의 딸인 한소제의 혼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요청을 계속 해왔다.

 하지만 매번 화왕은 그 요청을 거절했다.

 

 “두 사람의 사이는 연인 같던가?”

 “소인의 생각에는 그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

 

 어려서부터 헌솔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대놓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그가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한 여자였다. 그것도 화서국에서 추녀로 소문난 여자인데도!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장님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괴물이라고 부르는 그 여자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고 싶어하다니!

 

 “헌솔의 눈은 어떻게 된 거 아닐까?”

 “또 혼잣말을 하신 겁니까? 황상.”

 “아니, 이번에는 물어본 것이다.”

 

 헌예가 담담히 말했다.

 

 “또 대답하기가 어렵군요.”

 “하기는 헌솔이 이제까지 뭐가 좋다, 싫다 말했던 적이 없으니까! 그의 취향을 아는 것도 어렵겠어.”

 “그렇습니다.”

 

 헌예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왜 헌솔이 그녀를 원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었다.

 

 “가마 행차를 없앴다는 것은 별 말이 없었나?”

 “황명에 감히 누가 이의를 달겠습니까?”

 “그렇지.”

 “하늘에 제사를 올리시는 건 어떻게 할까요?”

 “모두 간소하게 해.”

 

 자기 혼인이었지만 헌예는 남의 혼인을 이야기하듯 관심 없는 얼굴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모비를 뵈러 가겠다!”

 

 헌예는 신 태후를 만나기 위해 태후전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신목향.

 신 태후는 화왕이 가장 사랑했던 여자로 헌예의 생모였다.

 하지만 그녀가 황후의 자리에 올랐을 때 많은 고위 관리들이 반대를 했다.

 

 “미인은 나라를 망칩니다!”

 “미인 황후가 나라를 망칩니다!”

 

 우연의 일치인 것인지 나라에 불행이 닥칠 때마다 그 모든 것은 제 어머니의 탓이었다.

 미인이 나라를 망친다!

 미인 황후가 황제의 명(命)을 단축한다!

 다 바보스러운 소리로 들렸다.

 

 “모비!”

 “황상!”

 

 청옥으로 된 탁자 앞에 앉은 그녀는 멀리서 봐도 외모가 빛났다.

 마흔 살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린 외모에 눈에는 생기가 가득했다. 그 눈을 보면 아직도 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커다란 눈이었다.

 

 “모비, 건강은 괜찮으십니까?”

 

 헌예는 신 태후가 걱정됐다.

 화왕의 장례를 치르고도 ‘황제를 잡아먹은 여자’, ‘나라를 망칠 여자’라는 이상한 꼬리표가 신 태후를 따라다녔다.

 

 “두통이 좀 있을 뿐입니다.”

 “태의를 불러 살피게 할까요?”

 “심각한 것은 아니에요.”

 

 헌예는 신 태후만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화왕은 그녀를 사랑하고 아꼈지만, 결국에는 단명을 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미인인 황후를 얻으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말이 증명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부황은 잘 보내드린 거죠?”

 

 국상을 치를 때도 신 태후는 대중 앞으로 나서지를 못했다.

 분명히 황제의 죽음을 두고 여러 말들이 나올 것이기에!

 

 “모비도 직접 부황을 보셔야죠.”

 “사람들이 욕할 거예요.”

 “죽은 남편을 보내는 것입니다. 감히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부황을 뵐 면목이 없는 사람입니다.”

 

 신 태후는 슬픈 얼굴이었다.

 그녀의 슬픔을 무엇에 비할 수가 있을까?

 세상을 다 잃은 표정도 이보다는 덜 슬퍼보일 것이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급히 즉위식을 치렀습니다. 더군다나 상을 치른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 혼례를 치렀어요. 이럴 때 관리 중에서 황상께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황제가 하는 일에 이유없이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머리가 달렸다면 이번 혼례를 서두른 이유를 모를 리가 없을 겁니다.”

 

 헌예는 냉정하게 말했다.

 이번 혼례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강행된 일이었다.

 한소제가 태어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헌예와 그녀의 혼약이 맺어졌다.

 그 혼약이 10년 이상 지나서 갑자기 화왕이 세상을 떴다.

 그리고 헌예가 황제에 올랐다.

 황후의 자리를 오래 비울 수가 없었기에 그는 급히 황후를 맞게 된 거였다.

 

 “부황을 원망하나요?”

 

 신 태후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물었다.

 

 “원망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원망을 하려거든 이 모후를 원망하세요. 내가 아니었다면 부황도 그리 일찍 돌아가시지 않았을 겁니다.”

 “모비의 탓이 아닙니다. 그냥 우연의 일치예요!”

 

 헌예는 신 태후가 답답할 따름이었다.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그녀 때문에 속상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고 싶어도 이미 화서국 내에서는 남편을 잡아먹은 여자라는 소문이 돌겠죠.”

 

 신 태후가 느끼는 마음의 고통이 전해졌다.

 언제나 신 태후는 조심했다.

 가뜩이나 조심할 것이 많은 황실에서 그녀는 숨만 쉬고 산다는 게 맞는다고 할 정도로 조심성이 많았다.

 황제의 총애를 받아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추녀와 혼인하지 않으면 단명하는 운명? 그걸 모비는 믿으십니까?”

 

 헌예는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미인이 아닌 여자와 혼인을 해야 단명하는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보지 않았습니까? 화왕이 서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이게 다 누구 때문이겠어요?”

 

 신 태후는 화왕이 죽은 게 제 탓이라는 말이었다.

 

 “지병이 심해지신 것 뿐입니다.”

 

 헌예는 화왕의 죽음을 두고 신 태후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다.

 

 “신탁대로 된 거예요.”

 “신탁! 그 놈의 신탁! 이제는 염증이 납니다!”

 이제는 이골이 나서 헌예는 인상을 찡그렸다.

 

 ‘모비는 부황이 돌아가시고 나서 더욱 마음이 약해졌어.’

 

 헌예는 그리 생각했다.

 화왕이 있을 때만 해도 그가 신 태후의 방패가 돼주고 우산이 돼줬지만, 이제 황궁에는 화왕이 없었다.

 신 태후를 도울 세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의 정식 부인.

 다음 황제의 어머니여도 신세가 처량해졌다.

 헌예는 미인 황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황제의 목숨을 단축한다는 그 신탁! 그 신탁을 저주했다.

 만약에 그런 신탁만 없었다면 신 태후가 죄인처럼 살았을까?

 

 “그래도 황상의 부인이 될 아이는 미인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황상은 오래 살 거예요. 장수해서 화서국에 부와 번영을 가져올 겁니다!”

 

 신 태후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의 생각은 그럴지 몰라도 본인인 헌예의 생각은 달랐다.

 

 “추녀 황후를 들이는 것이 더 사는 길이라고 행복해야 할까요?”

 “……!”

 

 헌예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에서 신 태후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혼인은 축복받아야 할 기쁜 행사였다.

 그런데 혼인으로 인해 헌예는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황상!”

 “황후가 입궁하고 나면 본황은 그 사람을 다시는 보지 않을 생각입니다.”

 

 헌예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말했다.

 그의 생각은 당장은 바꾸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마음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각이었기에!

 

 “이 혼인은 황상에게도, 황상에게 시집올 병부상서의 딸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군요. 참으로 슬프네요.”

 

 신 태후가 둥근 찻잔에 수증기가 나는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헌예의 앞으로 찻잔을 밀어줬다.

 

 “듣자니 한 소저(小姐, 아가씨)가 외모가 박색인 것 빼고는 못 하는 게 거의 없다더군요. 잘 배워서 인성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래도 황상이 마음을 주기가 어려울까요?”

 “어쩌면 사랑할 수도 있겠죠. 어쩌면요.”

 

 헌예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황상이 한 소저의 겉만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많은 것을 봤으면 해요. 두 사람은 아주 젊어요.”

 

 신 태후는 헌예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유일한 소원이 있다면 이 혼인을 무사히 치르고, 헌예가 단명하지 않는 거였다.

 

 “황후를 맞이하는 것이니 나라에는 큰 경사입니다. 그러니까 황상도 부디 좋게 생각해요.”

 “…….”

 

 탁!

 

 헌예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것이 정말 좋게 생각할 일일까요? 만약에 한 소저가 얼굴도 추하고, 마음도 추한 사람이라면 이혼을 할 것입니다.”

 “황상! 안 될 말이에요!”

 

 신 태후가 깜짝 놀란 낯으로 외쳤다.

 그녀는 헌예가 단명하고 죽을 운명을 바꿀 ‘행운’이었다.

 만일 소제와 혼인을 치러도 금방 이혼을 한다면, 헌예의 운명은 예정대로 단명하게 되리라!

 

 “차는 잘 마셨습니다. 이만 물러갑니다.”

 “황상!”

 

 신 태후가 헌예를 쫓아오려고 하자 그 앞을 장 내관이 막아섰다. 머리를 숙인 장 내관이 이리 말했다.

 

 “태후마마, 황상께도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고, 빨리 진행됐어요. 이해해주십시오.”

 “장 내관이 우리 헌예를 잘 돌봐줘요.”

 “네. 태후마마.”

 

 그들이 태후전을 나간 뒤에 신 태후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소저와 헌예의 앞날이 순탄치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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