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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녀 황후, 한소제
작가 : 솽솽
작품등록일 : 20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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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국혼(5)
작성일 : 20-08-15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5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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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금 뒤.

 마차의 달리는 속도가 느려졌다. 이어서 말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더니 마차가 멈췄다.

 

 “히잉!”

 

 궁금한 마음에 마차의 창문 너머를 봤더니 검은 현판에 금색으로 새겨진 황후전이라는 글씨가 눈에 밟혔다.

 

 “황후전에 왔어요.”

 

 달아가 마차에서 내리려는 소제의 손을 잡아줬다.

 그녀의 손을 잡고 내린 소제는 그제야 진짜로 자기가 황궁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여기가 황후전이야?”

 “네. 아가씨. 아니, 황후마마!”

 

 달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제는 더는 그녀를 한수오의 저택에서 부르듯 불러서는 안 됐다.

 

 “우리 둘이 있을 때는 편한 대로 불러.”

 “안 돼요. 노비가 계속 황후마마라고 부르는 데 익숙해질게요.”

 

 소제는 황후전의 주변을 살폈다.

 보아하니 급하게 신방으로 차린 티가 났다.

 신방을 꾸미던 연장들이 아직 치워지지 않은 채로 문 옆에 놓여 있었다.

 헌예는 혼인에 대해 무신경했던 게 틀림없었다.

 

 “황후전인데 어수선하네요? 혼인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정리가 잘 안 된 황후전을 보고 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 이리 맞이해도 상관없어. 혼인이 무사히 끝나기만 바랄 뿐이야.”

 

 소제는 담담한 어조였다.

 사실 혼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기대를 한 게 없었다.

 

 “아무렇지 않으세요?”

 “괜찮아. 그런데 용현궁과 황후전이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어. 폐하가 이곳을 찾는 일이 번거롭게!”

 

 소제는 헌예가 저를 찾는 일이 거의 없기를 바랐다.

 추하다고 하면 멀리할 줄 알았던 헌예였다. 한데 뜻밖에도 어제는 자기 얼굴을 확인하고 하지 않았던가?

 

 “노비가 곧 알아볼게요.”

 “그래. 알아봐. 그리고 궁에서 제일 수다스러운 사람들도 최대한 많이 알아둬.”

 “그건 왜요?”

 

 달아가 궁금해하는 낯으로 말했다.

 

 “내 얼굴이 추하다는 걸 이 황궁 전체에 소문내야지. 아마 소문을 내면 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이 황궁에 쫙 퍼질 거야. 우리는 그다지 손쓸 게 없어. 원래 사람은 보지도 않은 것에 더 관심을 두고, 더 거짓을 보태.”

 “네, 그럴게요.”

 

 소문을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소제의 부탁을 받고 해봤던 적이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소제가 추녀라는 소문을 최근에 마을에 낸 것도 달아, 그녀였다.

 

 

 ***

 

 황궁의 모든 것은 낯설었다.

 소제에게 익숙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도, 물건도 제 것이라고 하지만 남의 것 같았다. 신기한 눈으로 황후전의 일각을 보던 소제가 달아에게 말을 꺼냈다.

 

 “들어가자.”

 “네, 황후마마.”

 

 소제는 황후전에 들어가 침상에 걸터앉았다.

 생각보다 검소하게 방을 꾸며놨다.

 이렇다 할 유명 서예가의 글이나 유명 화백의 그림도 걸어놓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병도 무늬라고는 없는 단순한 육각 모양의 청자였다. 게다가 화병에 꽂힌 꽃은 붉은 장미도 아니고 흰 안개꽃이었다.

 

 “안개꽃?”

 

 소제는 의아해했다. 그러다가 화병 옆에 놓인 패왕수(선인장)에 눈길이 갔다. 붉은 꽃이 핀 패왕수를 본 소제가 말했다.

 

 “패왕수구나?”

 “패왕수요?”

 

 달아가 화병 옆에 즐비하게 놓인 패왕수를 봤다. 황후의 방에 어울리지 않는 화분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갖다 버릴게요. 황후마마.”

 “아니야. 안개꽃도 패왕수도 전부 폐하가 갖다 놓으신 걸 거야.”

 “이걸요?”

 

 달아는 왜 예쁜 꽃들을 놔두고 볼품없는 안개꽃, 패왕수를 갖다 놨는지가 이상했다.

 

 “이상해요. 왜 폐하가 이런 것들을 놔두셨을까요?”

 “내 처지를 파악하라는 거 아니겠니?”

 “네?”

 “안개꽃은 다른 꽃을 더 아름답게 꾸며준다. 결코 자기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지. 아마도 이 황궁의 주인은 내가 될 수 없다는 걸 뜻한 걸 거야.”

 “그러면 패왕수는요?”

 

 달아는 소제의 해석이 궁금해 또 물었다.

 

 “패왕수는…… 사막에 있어도 살아남는 애야. 그러니까 황궁에서 알아서 잘 살아남으라는 뜻이 아닐까?”

 “정말 그런 뜻으로 폐하가 두신 걸까요?”

 혼인을 치른 첫날부터 앞으로 헌예가 소제를 멀리할 거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많았다. 이에 달아는 마음이 속상했다.

 

 “폐하는 진짜 다정하지 못한 분이세요. 이리 곱게 화장도 하셨는데…… 맞다! 오늘 화장을 해준 분 기억하세요?”

 “화장사가 왜?”

 “현에서 제일 화장 솜씨가 좋은 화장사래요. 예쁜 얼굴도 못생기게 만드는 흉터도 그릴 수 있다던데요?”

 “그래?”

 

 오늘 아침에 집에서 나오기 전에 화장을 도와준 여자를 떠올렸다. 그녀는 향분(香粉)을 제 얼굴에 발라주며 이렇게 말했다.

 

 “제 평생 이런 화장은 처음 해봅니다. 면사를 쓴 채로 화장을 부탁하는 신부는 화장사 20년 경력에 처음 봐요!”

 

 화장사는 기가 막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럴 거야. 너무 예쁘게 해줄 것은 없네.”

 “하지만 한 소저, 오늘은 혼례식이에요. 그것도 황제 폐하와의 혼례식 날이죠. 누구보다 예쁘셔야죠? 소인은 미녀도 괴물로 만들 수 있고, 괴물도 미녀를 만드는 특수한 화장술을 압니다.”

 

 분명히 화장사는 자신만만한 소리로 말했다.

 화장을 하는 솜씨를 보면 빈 말은 아닌 듯했다.

 

 “달아야. 부채질 좀 해줘. 역시 혼례복은 무겁고 불편해.”

 “네.”

 

 달아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큰 부채 하나를 가져와 그녀의 곁에서 부채질했다.

 

 “시원하세요?”

 “응! 달아야, 그건 그렇고 다음 예식은 뭐랬지?”

 “음…… 아마도 하늘에 제(祭, 제사)를 올리는 걸 거예요.”

 

 제사를 올리는 것이라면 황후전에 헌예가 사람을 보낼 거다.

 

 “제를 올리고 난 뒤에는?”

 “당연히 폐하와 동침을 하셔야죠? 안 그래도 제가 궁에 오기 전에 절에 가서 부적을 구해왔어요. 한 방에 아드님을 낳을 수 있게요.”

 

 달아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말했다. 그러더니 옷속에서 주섬주섬 뭐를 꺼냈다.

 

 “이거요.”

 

 지익!

 

 노란 부적을 전해주자, 소제는 그것을 반으로 찢었다.

 

 “아가씨, 아니다! 황후마마! 왜 그걸 찢으세요? 얼마나 귀한 건데요!”

 

 울상이 되어 달아가 찢어진 부적을 도로 가져왔다.

 그 부적을 구하는데 달아는 돈을 많이 썼다.

 새벽에 천계사라는 절에 가서 겨우 구해온 부적이었다. 한데 그런 배경도 모르고 소제는 너무 쉽게 찢었다.

 

 “폐하와 동침을 하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니? 그랬다가는 내 얼굴을 보여야 할 거 아니야?”

 “하지만!”

 “황후니까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달아는 여전히 울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폐하의 아이를 갖지 않을 거야.”

 “쉿! 누가 듣겠어요!”

 

 달아는 눈이 커진 채로 어쩔 줄 몰라 했다.

 황후가 황제의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말을 하는 건 위험한 발언이었다. 이는 아내가 지켜야 할 미덕을 해치는 일이었다.

 

 “이곳에는 너와 나 둘뿐이야. 아무도 못 들었어.”

 “그래도 자식을 보지 못하시면!”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달아가 말했다.

 황궁에서 지켜야 할 여자의 덕행은 민가에서 지켜야 할 것보다 배로 많았다.

 특히 자식을 낳아 후대를 보는 건 황궁에서 제일 중요하게 봤다.

 만약에 황후에게 자식이 없다면?

 부덕하다고 해서 어떤 벌을 내릴지 모를 일이었다. 이를 달아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폐하가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

 “아니야. 다행히도 폐하는 내게 관심이 없어 보여. 아이가 없다고 해서 내 탓만으로 돌리기는 힘들 거야.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다.”

 “뭐가요?”

 

 소제는 어제의 일이 생각났다.

 자기 얼굴을 보기 위해 헌예가 팔을 뻗어 면사를 치우려고 했던 일이 파편처럼 머릿속에 박혔다.

 

 “폐하는 내가 추녀라는 걸 믿지 않는 것 같아.”

 “그러면 어쩌죠?”

 

 달아가 걱정하는 어투로 물었다.

 

 “오늘 아침에 내 화장을 해준 화장사를 또 궁으로 부를 수 있을까?”

 “네, 당연히 황후마마의 부름이라면 언제든지 올 거예요. 그런데 화장사 아보는 또 왜요?”

 “내게 다 생각이 있어.”

 

 소제는 아보의 화장술을 이용해서 제 얼굴에 일부러 징그러운 흉터를 그릴 생각이었다.

 아보의 화장술이 정말 뛰어나다면 어쩌면 헌예를 속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단 한 번!

 한 번만 흉터가 있는 얼굴을 헌예에게 들키면 됐다.

 

 ***

 

 그 시간.

 용현궁 안에서 헌예는 전날에 각 현의 책임자에게서 올라온 진정서를 살피던 중이었다.

 요즘 진정서가 산처럼 쌓였다.

 대부분은 화왕이 죽은 뒤에 바로 자기가 혼인을 치른 것을 옳지 못하다고 원망했다.

 아니면 미인인 신 태후가 황후 자리에 앉아 나라의 운명을 망쳐놨으니 엄히 벌해야 한다는 공문이었다.

 진정서를 보던 헌예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떻게 감히 이런 글을 올려! 내 모친에게 벌을 주라는 소리가 어찌 나온다는 것이냐!”

 

 불합리했다.

 태후전에서 숨만 쉬고 사는 게 다라고 봐도 무방한 신 태후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

 죄다 헛소리로 느껴졌다.

 

 “폐하, 노여움을 거두소서! 오늘은 폐하의 혼례가 있는 기쁜 날입니다.”

 

 헌예의 옆에 있던 장 내관이 말했다.

 

 “하? 모친을 벌해? 미인 황후가 나라를 망쳐? 나라의 국정을 논하는 관리라는 사람들이 이리도 멍청한 소리를 해대고 있어!”

 

 날카로운 음성으로 헌예가 외쳤다.

 그의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폐하, 오늘 한 소저를 비(妃)로 맞았습니다. 예식을 위해 황후전으로 가보셔야죠?”

 

 장 내관이 공문을 살피던 헌예를 재촉했다.

 

 “황후마마가 내내 폐하를 기다리실 겁니다. 하늘에 제를 올리고 정식 부부가 됐음을 백성에게도 알리셔야죠?”

 “…….”

 

 옆에서 자꾸 말을 거는 장 내관도 헌예가 느끼기에는 성가실 뿐이었다.

 

 “예부 사람들도 재단에서 아까부터 준비하고 기다릴 겁니다. 폐하! 그러니 이제 제발!”

 “오늘따라 시끄럽군.”

 “죄송합니다. 하오나!”

 

 장 내관이 헌예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숙였다.

 

 “……하오나 혼롓날에도 폐하가 황후마마를 홀대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폐하의 상황이 더 곤란해지실 겁니다. 안 그래도 이 일로 관리들 사이에서 말이 많습니다. 화왕 폐하가 승하하신 지 얼마 안 돼서 혼례를 치르는 건 부덕한 일이라고요.”

 “부황의 유언이었어.”

 

 헌예도 이런 급한 혼례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 화왕의 명령이었고, 유언이었다.

 만일 유언만 없었더라면 헌예는 서둘러 16년간 혼약을 이어오던 소제와 혼인을 빨리 치르지 않았을 거다.

 되도록 혼인을 늦추고자 시간을 벌 생각을 했으리라!

 

 “황후는 추녀로 맞이하셔도 후궁은 얼마든지 미녀로 두시면 됩니다. 그러면 폐하가 단명하는 운수도 바뀝니다.”

 “장 내관은 아직도 그 이야기를 믿나?”

 “그것이…….”

 

 장 내관이 확답을 못 하고 말끝을 흐렸다.

 헌예는 미인 황후를 맞이하면 황제가 단명한다는 것을 조금도 믿을 수 없었다. 정말 그런 것인지 확인되지도 않았거니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미인 황후와 혼인해서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요절(夭折, 젊은 나이에 죽음)한 황제의 수는 몇이나 되지? 미인과 혼인하면 죽을 확률이 몇이나 돼?”

 “소인, 미련하여 그 답을 알지 못합니다.”

 

 장 내관은 당황한 낯으로 말하더니 넙죽 바닥에 엎드렸다.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두고 본황에게 그리 말을 해!”

 “죄송합니다. 황상!”

 

 오늘따라 헌예의 기분이 저기압이었다. 이는 원하지 않는 혼인을 치러서인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헌예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관리들의 공문도 한몫했을 거였다.

 

 “미인 황후를 두면 단명하는 황제의 운명이라고? 그런 거 믿고 싶지 않다! 나중에 황궁 서고에 가서 사서를 확인해 볼 것이다. 정말로 부황 외에도 미인 황후를 얻어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죽은 선황(先皇, 선 황제)이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야!”

 

 헌예가 주먹을 쥐고, 노기를 띤 눈으로 외쳤다.

 그는 황궁에 왜 그런 말이 돌기 시작했고, 황제가 추녀 황후를 얻어야만 하는지 그 배경을 조사해 볼 참이었다.

 분명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돌았을 때는 누군가 이 일에 관여한 자가 있을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자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할 거다.

 왜 그런 헛소문을 황궁에 냈는지!

 

 ‘우습군! 참으로 쓸모없는 머리로만 채워진 황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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