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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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범생의 비밀
작성일 : 20-08-15     조회 : 470     추천 : 1     분량 : 5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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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막힐 정도로 습한 여름.

 상수의 눈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국밥이 놓여 있었다.

 

 

  ‘이 여름에 국밥이라니...’

 

 

 상수는 지금 환장할 지경이었다.

 오지현은 절대 범인이 아니라고, 기태가 단언했기 때문이다.

 

 

  “야... 이열치열. 죽인다 죽여.”

 

 

 맞은편 기태가 후루룹 쩝쩝 소리를 내며 국밥을 그릇째 들이켰다.

 상수가 노려보든 말든.

 

 

  “이야기 좀 제대로 해봐요. 오지현이 왜 범인이 아니라고 단언한 겁니까?”

  “먹고 하자니까.”

  “듣고 먹겠습니다.”

  “아이 짜식. 누가 범생 아니랄까봐 더럽게 따지네.”

 

 

 기태가 투덜거렸지만, 상수는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직감이니 뭐니 그딴 시답지 않은 이야기면 안 듣겠습니다.”

  “직감 아냐.”

  “뭡니까 그럼?”

  “오지현이 손톱.”

  “아까부터 그놈의 손톱 타령은. 지금 나 놀리는 겁니까!”

  “오지현이 종교.”

  “... 종교?”

  “그래 종교.”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기태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담배꽁초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걸 상수가 확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식당에서는 금연인 거 몰라요?”

  “에이 진짜! 입에 물고만 있을라고 한 거다 왜!”

  “입에 물고만 있을 거라면서 라이터는 왜 뒤적거립니까!”

  “에이 증말. 안 펴! 더러워서 안 핀다구!”

  “다 관두고. 종교! 그거나 얘기해 봐요. 오지현이 알리바이가 종교랑 뭔 상관이 있는데요?”

 

 

 기태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야 범생. 내가 군에 있을 때 죽어라 말 안 듣는 고문관이 있었거든. 근데 그 새끼 종교가 참 별났어. 손톱도 자르면 안 된다, 머리카락도 자르면 안 된다. 처음엔 좀 유별난가 했지.”

 

 

 상수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서두는 짧게 하고 본론만 하죠!”

 

 

 그러거나 말거나 기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근데 그 고문관이 몇 달 뒤 지뢰를 밟아 다리가 날아갔는데 수술을 거부하더란 말야.”

 

 

 상수가 가늘게 뜬 눈으로 기태를 잠시 응시했다.

 

 

  “그럼 지금 선배 말은, 오지현이가 자기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아내의 수술을 피했다 이겁니까?”

  “그렇지. 윤선미도 같은 종교였을 수도 있고.”

  “하지만 윤선미는 결국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이. 병원 CCTV에는 새벽 1시에 오지현이 잡혔고, 그때 보호자 동의를 얻어 수술에 들어갔지. 고로 오지현이는 살인범이 아니다 이거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죄다 선배 추측이잖아요. 그놈이 확실해요. 동기가 분명하다구요.”

  “동기야 있을 수 있지. 제 와이프를 피살자가 추행하려 했으니까."

  "그건 오지현의 일방적 주장입니다. 팩트는 피살자의 운전기사가 윤선미를 납치한 신고가 있다는 건데, 오지현은 이걸 오해했을 겁니다. 피살자가 데려간 것으로요."

 

 

 기태가 미묘하게 웃었다.

 

 

  "운전기사가 죽은 돈의원이 시킨 대로 했다면?"

  "피살자 돈의원의 평판을 무시해서는 안되죠. 범죄전력은 커녕 빈민들의 수호자로 추앙받고 있는 분입니다. 게다가 골프장 관계자 그 누구도 피살자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더더욱 오지현이 죽였을 리가 없잖아?"

  “오지현이가 일방적으로 오해했다면 가능할 수 있죠.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제 아내가 골프공에 맞은 건 사실이니까요."

 

 

 기태가 훗훗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지현인 범인 아냐."

  "그걸 어떻게 확신합니까?”

  “시간과 거리. 눈 다친 마누라가 서울 종합병원까지 실려 갔어. 병원에 도착한 건 밤 10시가 넘어서였지. 그리고 입원절차 밟고 수술 결정된 게 11시 30분이야. 그전까지 오지현은 분명히 병원에서 목격이 됐어.”

  "11시30분에서 1시 사이 오지현을 병원에서 본 사람이 없어요."

  “아까 부검결과 나온 검시보고서 사망추정시간은 11시에서 12시 사이야.”

 

 

 상수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주장했다.

 

 

  “다시 말하지만, 11시 반 이후 오지현이를 병원에서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 그럼. 11시30분에 병원을 나서서 골드 골프장 별장까지 갔다 쳐. 하지만 서울 종합병원에서 반대편 외곽 끝에 있는 골드골프장까지는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1시간이 걸려. 더 문제는 뭔 줄 알아? 오지현이는 자기 차를 골프장에 두고 갔었어. 아내 윤선미가 구급차에 실려 갈 때 함께 타고 갔거든.”

  “병원에는 대기 중인 택시가 많습니다. 오지현이가 택시를 탔다면 30분 전후로 골드골프장까지 달려갈 수 있어요. 외곽을 빠르게 달렸다면 한 시간 안에 별장에 도착했을 거라구요.”

 

 

 기태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코웃음을 쳤다.

 

 

  “범생. 네 말에 모순이 있다는 걸 왜 인정 못하는 거야. 설사 12시30분에 아슬아슬하게 별장에 도착했다 치자.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 피살자를 살인하는 데까지는 적어도 이십분 이상 소요될 거야.”

  “그래서 뭐요!”

  “뭐긴 뭐야. 피살자 시체는 최초 살해현장인 별장에 있지 않았어. 피살자 발바닥을 생각해봐. 맨발에 피투성이였다구. 피살자는 도망쳤던 거야. 별장에서 도망 나와 골프장 9번 홀까지.”

 

 

 상수가 끙 단숨을 내쉬었다.

 기태가 매우 논리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별장에서 거기까지 맨발로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십분 이상 소요된다. 게다가 모래밭인 그 꼭대기까지 비대한 돈 의원이 맨발로 달려간다면 이십분은 더 걸렸을 거야. 이제 알겠어? 범생이 넌 계속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걸.”

 

 

 상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가 어쨌든 다 선배의 추론이잖아요. 오지현에게 종교가 없다면요? 그렇다면 오지현은 제일 용의자가 분명한 겁니다.”

  “범생. 용의자 선생에 일단 둘 수야 있지. 하지만 좀 차근차근 하자구. 분명히 뭔가가 있어. 아내 일로 즉석에서 흥분하는 오지현의 단순한 성격상, 그는 저렇게 치밀한 살해범이 될 수가 없어. 천천히 생각해야 해, 범인의 윤곽을.”

 

 

 상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태가 습관적으로 내뱉는 직감에 대한 이야기는 늘 두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었으니까.

 

 

  “김만철 사건 잊었어요? 연쇄살인범인 놈의 말에 뭔가 있을 거라 믿고 선배가 집으로 데려갔다가 하마터면 노부부를 죽게 만들 뻔 했잖아요. 나는 뭔가 있을 거라는 선배의 직감 안 믿습니다.”

  “상수야... 사건에는 숨겨진 스토리가 있을 수 있어. 일반인이라면 모르지만 적어도 형사라면 의심스러운 건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

  “난 됐습니다. 선배는 천천히 다른 용의자를 찾아보던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요. 그놈의 직감 때문에 또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상수야...”

 

 

 갑자기 상수가 뒤춤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액정을 확인한 상수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상수가 무거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박상수 입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전화를 끊은 상수가 점퍼를 챙겨들었다.

 기태가 오징어처럼 인상을 쓰며 물었다.

 

 

  “병원?”

 

 

 상수가 무겁게 말했다.

 

 

  “전화 할게요. 좀 이따 봐요.”

  “알았으니까 가봐. 대기하고 있을게 오버.”

 

 

 상수가 대충 손인사를 하고 나갔다.

 기태는 그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오징어처럼 얼굴을 구겼다.

 

 

  “자식. 어깨는 왜 또 바닥까지 쳐져서. 이래서 내가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고 살 수가 없다. 후...”

 

 

 기태가 씁쓸한 표정으로 한 손을 들어올렸다.

 

 

  “아줌마. 여기 소주 좀 줘요.”

 

 

  ***

 

 

 대형 병원의 중환자실.

 보호막이 쳐진 침상 밖에서 상수는 잠시간 서있었다.

 이 앞에 서면 늘 숨이 가빠왔다.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온몸에 땀이 차올랐다.

 

 

 결심을 굳힌 상수가 보호막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상 위에 누워있는 제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영수는 에크모 호흡으로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영수의 심장은 죽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같은 병명으로.

 

 하얗고 마른 영수의 얼굴은 죽은 아버지와 똑같았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도 이렇게 비쩍 말라가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어릴 적 형제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재가해 연을 끊었다.

 이제 상수에게 남은 핏줄은 동생 영수 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고작 스물아홉인데 왜 이런 거지같은 병에 걸려서!’

 

 

 1년 전 영수가 이 병으로 쓰러졌을 때 상수는 하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물려줄 게 없어서 이딴 병을 물려주고 간 거냐고.

 동생을 왜 고통 속에 빠뜨렸냐고.

 하지만 정작 고통의 도가니에서 헤매는 이는 자신이었다.

 

 

 ‘이별... 생각조차 하기 싫다.'

 

 

 엄마를 떠나보냈고, 아버지를 잃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은 사지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잠시 한 순간 아픈 것이 아니라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그 고통을 또 맛보고 싶지 않았다.

 영수가 떠나버리고 자신만 혼자 남은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상수는 뼈밖에 남지 않은 영수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제발. 숨이라도 쉬어, 임마. 이 형이 제대로 된 심장 구할 때까지 팔딱팔딱 부지런히 숨 쉬란 말야. 범인 많이 잡아서 수술비 만들 때까지 버텨, 새끼야!”

 

 

 뜨거운 눈물이 두 눈에 차올랐다.

 상수는 팔목으로 눈물을 훔쳤다.

 세상이 너무 버거웠다.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와 수술비...

 매번 숨죽이며 대기 중인 비상연락...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둠의 쳇바퀴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

 

 

 상수의 차가 한밤중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기태가, 걱정스레 상수를 보았다.

 

 

  “영수는 어때?”

 

 

 상수는 묵묵히 운전만 했다.

 기태는 속으로 끙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와 비슷한 반응을 보니 다행히 한고비를 또 넘긴 듯싶었다.

 

 

  “상수야. 오지현이는 말이야.”

  “알아요, 범인 아닌거.”

  “으응?”

  “신발이요.”

 

 

 기태가 무슨 소리냐는 듯 몸을 앞으로 쑥 내밀며 상수를 봤다.

 

 

  “신발?”

  “오지현이 신고 있던 신발은 벙커에서 발견된 아쿠아 슈즈 발자국과 달라요.”

  “아. 그렇지.”

  “사이즈도 다릅니다. 오지현인 260. 범인은 280쯤. 추정된 키와 체구도 전혀 맞지 않아요. 오지현인 몸매가 다부지긴 하지만 키가 작죠. 범인은 신발 사이즈로 추정해보면 최소 185를 넘어섭니다.”

 

 

 흠. 역시.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수는 매의 눈과 늑대의 감각을 가진 특출 난 형사였다.

 오지현을 막무가내로 범인으로 몰아갈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역시 동생 때문인가?’

 

 

 기태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절반도 갚지 못한 병원비, 그게 문제다.

 상수가 성과에 급급한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선배.”

  “왜?”

  “또 마셨어요 술?”

 

 

 뜨끔한 기태가 얼른 손으로 입을 가리고 냄새를 맡아봤다.

 

 

  ‘젠장. 소주 두 병 깠더니 냄새가 장난 아니네.’

 

 

 상수가 차갑게 일렁이는 눈빛으로 기태를 쏘아봤다.

 

 

  “술 마셨냐구요!”

 

 

 기태가 확 발뺌했다.

 

 

  “내가?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근무 중에 술은 무슨!”

 

 

 하지만 상수는 그런 기태를 한심하게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얌마. 진짜 안 마셨어. 좀 전에 국밥 먹고 이를 안 닦아서 그래. 입냄새야 입냄새. 홀아비 입냄새.”

 

 

 갑자기 차가 끽 멈췄다.

 식겁한 기태가 상수를 봤다.

 

 

  “얌마. 너 또 왜 차를 세우고 그래? 여기서 또 한판 붙자 뭐 이거야?”

 

 

 상수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려요, 다 왔어요.”

 

 

 그제야 기태가 주변을 둘러봤다.

 이런 산속에 병원이 있을 줄이야.

 기태는 고개를 갸웃하며 차에서 내렸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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