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추리/스릴러
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첫회보기
 
8화. 의원님의 딸
작성일 : 20-08-19     조회 : 462     추천 : 1     분량 : 5273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침상에 누운 여자는 척주보조기로 몸을 감싼 채 누워있었다.

 여자의 이름은 돈미란.

 죽은 피살자의 딸이다.

 

 21살인 돈미란은 어머니 최혜영과는 달리 피부가 검은 편이고, 이목구비가 찐한 편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은 유독 겁이 많아 보였다.

 

 상수가 그녀에게 명함을 내밀고 협조를 구하는 사이.

 기태는 병실을 휘둘러보았다.

 

 붉은 벽지와 화려한 침대, 게다가 개인욕실과 응접실까지.

 산속에 위치한 이 병원은 뭐랄까...

 아주 은밀하고 조용한 느낌이 들었다.

 

 기태가 씽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반병원 같지 않군요 여기는. 마치 고급 호텔 같습니다.”

 

 미란은 기태를 힐끔 볼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상수가 미란에게 물었다.

 

  “어머님께 학교에서 있었던 사고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날 일을 상세히 이야기 해주시죠.”

  “어머니께 이미 들었다면서요? 근데 왜 또..."

 

 굵고 선명한 이목구비와는 달리 미란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연약했다.

 말투 끝을 웅얼거리며 끝맺는 건 버릇일까.

 

  "유가족을 인터뷰하는 건 의례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내규에 따라 본인을 직접 만나 확인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기태가 상수를 슬쩍 보았다.

 잉?그런 내규가 있었나?

 상수는 헛기침을 하더니 미란에게 독촉하는 손짓을 했다.

 

  "토요일 밤 11시쯤이었어요. 공부를 마치고 도서관에서 나오는데 입구가 공사 중인 걸 제가 깜박 잊고 그만 발을...”

  "발을 헛딛으신 건가요?"

 

 상수의 질문에 미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태는 미란을 안쓰럽게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저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면 심하게 다칠 수 있는데 큰 일 날 뻔 하셨구만."

  “네...”

  “다행히 어머님께 연락이 닿았다구요?"

  “네...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엄마께 전화를 드렸는데... 때마침 엄마가 별장에 오던 중이라면서 금방 절 데리러 오셨죠.”

  "거참 진짜로 다행입니다. 때마침!! 어머님이 인근에 계셔서요.”

 

 기태가 일부러 때.마.침, 이라는 말을 강조했는데 미란은 힐끔 눈치를 보며 희미하게 말했다.

 

  “네에...”

 

 상수가 미란의 침상에 한발 바싹 다가왔다.

 

  “사모님께서는 가벼운 사고라고 하셨는데요, 그런데 척추보조기까지 하고 계시군요?”

 

 크고 우람한 상수가 바싹 다가와서일까.

 미란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많이 다친 건 아닌데... 의사선생님이 보조기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돈미란 씨가 다니는 학교는 별장 근처인가요?”

  “네.. 여기서 15분쯤.. 걸려요.”

 

 상수가 속사포 질문을 던지는 사이.

 기태는 새로운 흥미거리를 찾으려는 듯 또 다시 병실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고급원목 옷장 앞에 멈춰 섰다.

 

  “여기는 옷장인가요?”

 

 미란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태가 감탄했다.

 

  “병원이 고급져서 그런지 개인옷장도 멋있습니다. 잠깐 열어봐도 되죠?”

  “거기! 별로 볼 것도 없는데...앗.”

 

 미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태는 이미 옷장문을 열었다.

 그런데 옷장 안에 겉옷은 없고 속옷만 걸려 있다.

 기태는 무척이나 당황한 듯 허겁지겁 옷장문을 닫았다.

 

  “아이쿠 이런. 숙녀님 옷장인 걸 깜박하고 제가 함부로 열어버렸네요. 죄송!”

 

 기태가 이마에 손인사를 하며 허리까지 숙였다.

 상수는 미간을 좁히며 기태를 봤다.

 뭔가 부산스레 움직이는 기태의 행동이 미심쩍었다.

 그와 맞물려 미란은 불안스레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기태가 미란에게 다시 다가왔다.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아... 또 뭐죠?”

  “어머니 골프 실력은 어떤가요? 수준급이신것 같던데? 골프에 대해서 아주 해박하시더라구요.”

  “아... 의원님보다 더 잘 치세요.”

 

 기태와 상수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아버지가 아니라 의원님?

 게다가 최혜영이 골프를 잘 친다고?

 그녀는 골프에 문외한이라 했는데?

 

 상수가 물었다.

 

  “돈미란 씨. 평소에도 아버님을 의원님이라고 부르십니까?”

  “네? 아 네. 아뇨!”

 

 미란이 갈팡질팡하자 상수가 날선 눈빛으로 차갑게 물었다.

 

 “돈미란 씨. 정확히 답을 해주시죠.”

 

 미란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기태를 보았다.

 기태는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상수의 어깨를 장난스럽게 툭 쳤다.

 

  “넘마 또 왜 이렇게 빡빡하게 그래. 아가씨가 긴장했잖아.”

  “하지만”

  “아버지를 존경하다보면 의원님 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거지 뭘 또 그렇게 따지고 들어.”

 

 상수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기태는 미란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윙크를 했다.

 

  "그럼 실례했습니다."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물러나던 상수가 침대 발치에 멈춰섰다.

 이불 밖으로 나온 미란의 두 발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상수의 눈길을 의식한 것일까.

 미란이 꾸물꾸물 이불 속으로 발을 숨겼다.

 상수가 뒤돌아 다시 물었다.

 

  “발을 다치셨습니까?”

  “네에? 아 네... 넘어질 때 발가락도 좀 다쳤거든요.”

  “발가락 부상인데 발전체를 붕대로 감으셨군요?”

  “그 그건... 저도 잘... 의사선생님이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셔서...”

 

 상수가 인상을 팍 쓰며 미란을 쳐다봤다.

 그러자 미란은 흠칫 놀라며 굳었다.

 기태가 다시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상수에게 말했다.

 

  “자자 범생. 그만하고 가자. 환자분이 우리 때문에 피곤하겠어.”

 

 

  ***

 

 운전 중인 상수가 조수석의 기태를 힐끔 살폈다.

 병원에서 나온 뒤, 기태는 뭔가 생각이 많아 보였다.

 

  “담당 간호사 말이 발바닥에 유리파편이 박혀 있었답니다.”

  “으음. 그래?”

 

 상수의 설명에도 기태는 웬지 시큰둥하다.

 

  “그리고 척추보조기를 착용한 이유가 자궁출혈이 심해서였답니다.”

 

 기태가 후-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끼었다.

 몹시 심란판 표정이었다.

 

  “최혜영은 딸의 사고가 대수롭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자기 딸과 만나는 걸 바라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 아마 그럴 지도..."

  “내일 아침 당장 최혜영이 만나서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것부터 파헤쳐보죠. 수준급인 골프실력을 왜 숨겼는지, 그리고 딸의 사고는 왜 경미하다고 했는지.”

  “글쎄...”

  “글쎄 라뇨? 지금 우리가 본 상황이 무슨 의미인지 선배도 짐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짐작?”

  “사건 당일 피살자와 별장에 함께 있던 여자가 바로 저 딸입니다.”

  “딸이 왜? 그 아가씨가 거길 왜 가?”

 

 상수는 짜증이 치밀었다.

 돈미란이 피살자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기태는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피살자가 입양한 양녀였다.

 그리고 돈미란의 발바닥에서 유리파편이 나왔다.

 피살자가 살해된 1차 현장인 침실에는 전등이 깨져 유리파편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상황은 자명한데도 기태는 아까부터 너무 덤덤했다.

 

 기태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발바닥 유리파편 만으로 돈미란이 별장에 있었다고 단정하는 건 좀 아니지. 그리고 피살자가 양녀를 불러다 파렴치한 짓을 할리 없잖아?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천사로 추앙받고 있는 분인데?”

 

 상수가 얼굴을 구겼다.

 피살자의 명예를 존중해달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기태가 은근히 비꼬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럼 유가족은 왜 거짓말을 하는 거죠? 딸뿐만 아니라 양어머니까지 뭔가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그 옷장 봤잖아요. 속옷 밖에 없었어요. 피살자는 양녀를 데려다 폭행했고 그걸 양모인 최혜영이 목격한 겁니다. 그 현장을 본 순간 돌아버린 최혜영은 가지고 갔던 골프채로 팍! 내리친 거죠.”

 

 어디까지나 빌어먹을 추정이었지만 상수는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치자. 그럼 최혜영인 살해도구인 그 골프채를 왜 별장에 두고 왔을까?”

  “일부러 놓고 온 게 아니라 깜박한 거죠. 대다수 범인들이 그렇듯이.”

  “그래? 침실에서 싸움이 시작됐는데 골프장까지 도망간 피살자를 쫓아가 그 골프채로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별장에 다시 되돌아와 깜박 두고 왔다? 이거 뭔가 찜찜하잖아?”

 

 상수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선배가 그랬잖습니까. 최혜영이 선배에게 보여준 골프채는 1번 드라이버가 아니라 분명히 다른 거였다구요! 아무튼 그 여자가 범인예요.”

 

 기태가 한숨을 내쉬며 애처롭게 말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 급할수록 돌아가랬다고 난 이 찜찜함이 마음에 안 들어.”

  “또 징계 받고 싶습니까?”

 

 상수가 갑자기 차를 멈추고 갓길에 세웠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그날 김만철이 집에 놈을 왜 데려갔습니까! 잡았으면 바로 청으로 끌고 왔어야죠! 그러면 선배도 표창 받았을 것 아닙니까! 왜 내가 잡게 만들어서 날 불편하게 하냐구요!”

 

 기태는 끙 한숨을 내쉬었다.

 상수가 정작 왜 화가 났는지, 기태는 잘 알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선배의 공을 가로챈 느낌이 들 것이다.

 원리원칙주의자인 상수는 지금 그게 제일 힘들고 속상한 것이다.

 

  “상수야. 네가 불편할 게 뭐있냐. 하마터면 그놈이 제 부모를 죽일 뻔 했어. 그 놈 말에 놀아난 내 잘못을 네 덕에 덮고 넘어간 거잖아.”

  “젠장! 그렇게 좀 말하지 말라구요! 뭐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그렇게 굴지 좀 말란 말입니다!”

  “내가 무슨 남을 위해 산다고 그래. 내가 틀렸고 네가 맞았어. 김만철 그 자식이 날 감쪽같이 속인 거야.”

 

 더는 듣기 싫다는 듯 상수가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기태는 한숨을 내쉬며 앞을 응시했다.

 김만철에게 수갑을 채운 채 시골길을 걷던 장면이 떠올랐다.

 

  ***

 

 수갑을 채운 만철은 기태에게 계속 졸라대고 있었다.

 

  “형사님.. 제발 몇 분만 기다려주십쇼.”

  “이 자식이! 내가 널 어떻게 잡았는데 아까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구 있어!”

  “내가 죽인 죄 값 그대로 받고 교수형 당하겠습니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제발 제 소원 좀 들어주세요 제발!!”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해 임마!”

 

 그때였다.

 살인마 김만철이 별안간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수갑을 찬 두 손으로 기태의 바짓가랑이를 꽉 잡았다.

 

  “부탁입니다. 형사님! 제 어머니를 위해서.. 어머니를.. 형사님도 잘 아시잖아요!”

  “얌마. 내가 뭘 안다고 그래?”

  “우리 엄마요! 엄마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며 살아왔는지 아시잖아요!”

  “이 자식이 증말.”

  “잠깐이면 됩니다. 제발 잠깐만 집에 들렸다 가자구요! 가서 딱 한마디만 하고 올께요!”

 

 기태가 난감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김만철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두 분 행복하게 살라고! 이 못난 아들 잊으라고 꼭 말씀드려야 돼요! 문 앞에서 기다려 주세요, 형사님! 잠깐만 들를게요. 아주 잠깐만요.... 저 어차피 죽을 목숨... 마지막 선물로... 제발 부탁입니다.”

 

  ***

 

  “그 자식이 도끼로 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할 줄 난 몰랐다. 그러니까 범생 네 탓 아니야. 나한테 성과를 빚졌다고 생각하지 마. 내가 짤리지 않은 게 어딘데. 나야말로 너한테 빚만 지고 사는 비루한 쫌팽이야."

 

 상수가 무겁게 물었다.

 

  “왜... 이렇게 사는 겁니까?”

 

 기태가 고개를 돌려 상수를 바라봤다.

 상수가 물기어린 맑은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똑똑하고 존경받던 선배였잖아요. 대체 왜! 왜 이렇게 한심하게 사는 겁니까? 나한테 뭘 숨기는 거냐구요!"

 

 - 다음에 계속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네이버 베리그에서 연재 중입니다. 10/10 888 0
22 22화. 진실. 따위. 10/3 483 0
21 21화. 정교한 그물 9/30 457 0
20 20화. 짐승의 시간 9/29 428 0
19 19화. 파양된 아이 9/28 449 0
18 18화. 퇴물의 고백 9/24 474 0
17 17화. 첫 단추부터 틀렸다. 9/23 472 0
16 16화. 선택기억 9/20 438 0
15 15화. 제가 살인자입니까 9/18 447 0
14 14화. 변수 9/15 442 0
13 13화. 거짓말에 소질이 없군요 9/13 436 0
12 12화. 제가 남편을 죽였습니다. 9/3 457 1
11 11화. 오늘부로 이 사건에서 빠져. 8/31 460 1
10 10화. 누구 편을 들어야 내 손에 똥을 묻히지 … 8/27 497 1
9 9화. 퇴물의 비밀 8/24 482 1
8 8화. 의원님의 딸 8/19 463 1
7 7화. 범생의 비밀 8/15 454 1
6 6화. 마스터티쳐 오지현 8/14 475 1
5 5화. 우아한 미망인 8/13 482 1
4 4화. 수상한 부부 8/12 499 1
3 3화. 마스터 장 (2) 8/5 571 2
2 2화. 두 개의 골프채 8/3 515 2
1 1화. 퇴물과 범생 (2) 7/31 92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