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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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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누구 편을 들어야 내 손에 똥을 묻히지 않을까
작성일 : 20-08-27     조회 : 497     추천 : 1     분량 : 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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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에서 들어선 상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공기는 매캐한 담배연기에 찌들어 있었다.

 구석의 장의자에는 널브러진 기태가 누워 있었다.

 어제도 그는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상수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리고 기태의 가슴팍에 지퍼라이터를 툭 떨궜다.

 

  “어잇 깜짝아. 뭐야?"”

 

 기태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

 눈앞에 말끔한 상수가 보였다.

 기태가 지퍼라이터를 집어들고 물었다.

 

  “뭐냐 이게?”

  “맨날 갖고 다니는 500원짜리 싸구려 꼴 보기 싫어서 하나 얻어 왔어요.”

  “오잉?”

 

 기태가 몸을 곧추세우고 히히 웃었다.

 

  “범생아. 그럼 이거 내꺼야? 진짜 나 주는 거야?”

  “갖든지 말든지. 오다 주운 거니까 맘대로 하십쇼.”

 

 기태가 상수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이거 내 생일선물이지? 그치? 맞지? 맞지??”

  “아유 입냄새. 당장 가서 세수하고 와요!”

  “짜식. 은근 속정이 깊단 말야. 히힛. 꼭 내 마누라같아."

 

 상수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마누라는 무슨 얼어죽을.

 바람 핀 여자가 뭐가 좋다고!

 

  “빨리 가서 제대로 씻고 와요."

  "아이고 구찮다. 우선 담배 한대 태우고."

 

 기태가 꺼내든 담배를 상수가 뺏었다.

 

  "씻어요. 영감님 호출입니다!”

  “아... 또 왜?”

  "가보면 알겠죠."

  "야 범생. 너만 갔다오면 안되냐?"

 

 상수가 잇새로 으르렁 거렸다.

 기태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검사실 안에 들어선 순간부터 분위기는 쐐했다.

 기태보다 네 살 아래인 박 검사는 15년 동안 강력사건만 담당했다.

 박 검사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상수와 기태를 노려봤다.

 

  “어이? 변 형은 꼴이 그게 뭐요?”

 

 아니나 다를까 기태에 대한 지적질 시작이다.

 건방진 자식.

 반말인지 아닌지 말꼬리를 흐린다.

 사람 기분 나쁘게 만드는 재주는 아주 탁월하다.

 그래도, 지금은 검찰이 우선이니까.

 더럽고 치사해도 일단 Go.

 

 기태는 재빨리 매무새를 가다듬고 바지를 추켜 올랐다.

 

  “죄송합니다. 급히 오느라.”

 

 박 검사가 싸늘하게 기태를 보다 버럭 물었다.

 

  “대체 둘 중 누구야?”

  “예/네?”

 

 박 검사가 확 쏘아붙였다.

 

  “누가 제 멋대로 유가족 만나 들쑤시고 다니랬어!”

 

 기태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편두통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대체 어느 대가리에서 나온 똥 같은 아디이어냐구 묻잖아!”

 

 기태가 헛기침을 하며 입을 뗐다.

 

  “그게 뭘 딱히 용의선상에 있어서 한 게 아니구요, 유가족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예우? 예우?? 형사가 유가족을 들쑤시고 다니는 게 예우? 미망인한테 찾아가서 전후과정 들었으면 그만이지, 다쳐서 입원중인 딸 병원에는 왜 찾아가셨나?"

 

 흡- 기태가 입을 다물었다.

 사실 피살자의 양딸 미란의 병원 방문은 상수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상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기태는 그 부분을 명확히 짚고자 다시 입을 뗐다.

 

  “저 그게 실은, 딸 병원에 간 이유는...”

  “변 형은 어째 하는 일마다 죄다 그렇게 생각이 없을까?”

  “예? 아니 제가 뭘. 피살자의 유가족에 대한 진술조사는 기본 아닙니까?”

  “돈종률 의원이 보통 피살자요?”

  “보통 피살자가 아니면요? 뭐 각별할 거 있습니까? 제일차적 목표는 살해한 범인을 찾는 것이고 이를 위해 기초 조사로 당연히 유가족 조사를...”

  “돈종률 의원은 빈민들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단 말이오. 그 유가족이 가장 중요시하는 게 피살자의 명예를 지켜가는 거고. 그건 살인범을 잡는 일보다 최우선이라구 이 양반아!”

 

 기태가 끙, 입술을 깨물었다.

 가진 게 많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피살자와 그의 유가족.

 털어서 먼지 나올 일을 만들지 말라는 압력이었다.

 

  ‘빌어먹을. 아무리 검사 할애비 호출이어도 이건 아니지.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이건 바로잡아야 해.’

 

 기태가 막 항의하려는 찰나.

 침묵하고 있던 상수가 입을 열었다.

 

  “검사님.”

  “그래. 박 상수. 당신은 어때? 뭐 좀 제대로 된 거 건진 거 있어?”

  “보고서에 말씀 드렸다시피 용의자가 추려지고 있습니다.”

 

 박 검사가 눈썹을 추켜 올렸다.

 그러고는 책상 뒤로 걸어가 서류를 신경질적으로 휙휙 넘겼다.

 

  “그 캐디 남편? 그 자는 종교적 신념으로 수술 거부했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며?”

  “예. 그렇습니다. 당일 병원 외부로 외출한 흔적은 없었구요, 추가 조사에서 종교적 신념으로 이전 직장에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사망시각 알리바이는?”

  “병원 옆 건물 장례식장에 있었답니다. 그쪽은 CCTV는 없지만, 사망추정시간에 장례식장 관계자들 몇 명이 그곳에서 목격했습니다.”

  “그럼 그 남편은 범인이 아닌 거잖아.”

  “그렇게 추정됩니다.”

 

 박 검사가 신경질적으로 서류 모서리를 책상에 탁탁 부딪쳤다.

 

  “두 사람 다 ,이 얘기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사회복지단체 협의회에서 돈의원에 대한 49제를 거하게 준비 중이오.”

 

 기태가 콧잔등을 찌푸렸다.

 

  ‘49제? 거하게? 아직 살인범이 누군지 밝혀지지도 않은 마당에, 피살자를 나라의 위인이라도 만들겠다 이거야?’

 

 상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검사님. 보고서에 아직 담지 않은 게 있습니다.”

  “뭐? 그게 뭔데?”

  “피살자의 아내인 최혜영과 양녀인 돈미란이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박 검사가 날카롭게 상수를 응시했다.

 그리고 기태를 확 째려봤다.

 아무래도 상수의 유가족 운운이 기태의 탓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여태 뭐 들었어?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 흘렸어? 전직국회의원에다 빈자들의 성인으로 존경받는 로얄층이야. 이게 뭔 말인지 몰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 거짓말을 한 부분을 간과 할 수 없습니다.”

 

 고집스럽게 말하는 상수.

 박 검사가 차갑게 응시했다.

 

  “유가족이 한 거짓말이 뭔데?”

  “미망인 최혜영은 골프에 문외한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딸 돈미란은 어머니가 수준급의 골프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게 뭐? 살인사건이랑 무슨 상관인데?”

  “검시보고서에 의하면 1차 살해도구는 골프채, 즉 1번 드라이버로 추정됩니다. 그 골프채는 별장에서 두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살인도구이고, 나머지 하나는 최혜영이 사건당일 피살자 돈종률에게 가져다 준 것으로 추정됩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그러면 최혜영이가 그날 사건현장에 있었던 말야?”

  “네.”

  “왜? 뭔 이유로?”

  “유가족 진술에서 최혜영이는 변 형사님께 1번 드라이버라며 엉뚱한 골프채를 보여줬습니다. 골프에 문외한이라면 있을 수 있는 실수지만 딸 돈미란의 진술에 따르면 그녀는 일부러 틀린 골프채로 변 형사님을 속이려 든 겁니다.”

 

 박 검사가 어금니 양쪽을 앙다물고 딱딱, 소리를 냈다.

 

  “변 형. 지금 이 얘기 사실이오?”

 

 기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 검사가 한팔로 턱을 괸 후 상수를 바라보았다.

 

  “계속해봐.”

  “딸 돈미란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어떤?”

  “사건 당일 피살자 사망추정시각에 돈미란은 기이하게도 학교에서 실족해 다쳤습니다.”

  “기이하게도, 라니? 사망추정시각이랑 사고시간이 겹쳤다고 무조건 우연이 아니라는 건가? 추정은 빼고 팩트만 이야기 해.”

  “네. 양모인 최혜영은 딸이 가벼운 부상만 당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의료진에게 확인한 결과 돈미란의 부상정도는 심각했습니다. ”

 

 박 검사가 이번에는 양 옆으로 목운동을 했다.

 점점 상황이 복잡해져 마음에 안드는 눈치였다.

 

  “돈미란의 진료기록은 확보했어?”

  “네. 딸 돈미란에게서는 사건 당일 심각한 자궁출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발바닥에 유리파편이 박혀 있었구요.”

 

 박 검사가 책상에 던져둔 사건보고서를 넘겼다.

 그리고는 흠,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사건보고서에는 피살자의 1차 살해현장인 별장 침실 사진이 있었는데, 그 바닥에 깨진 유리파편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검사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은지 이제 잘 아실 겁니다. 돈미란은 사건당일에”

  “잠깐.”

 

 박 검사가 손을 들어 상수를 제지했다.

 그리고 뚜벅뚜벅 창가로 다가가 청사 마당을 내려다봤다.

 마당에는 검찰청을 드나드는 기자들이 보였다.

 박 검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텐데.’

 

 상수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유가족 최혜영과 돈미란에 대한 수사권을 발동해주십쇼, 검사님.”

 

 등 돌리고 서있던 박 검사가 뒤돌아섰다.

 그리고 상수를 스쳐 기태에게 다가왔다.

 

  “변 형사, 당신도 그래요?”

 

 박 검사의 정중한 태도에 기태는 끙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자신에게 하대하고 무례하게 굴지만 15년이나 강력사건을 다뤄온 만큼 연륜과 능력이 있는 검사였다.

 기태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글쎄요.”

  “글쎄요??”

  “당장 수사권 발동은 아니라고 봅니다.”

  “왜죠?”

  “뭔가 다른 게 있습니다.”

 

 상수가 기태를 휙 째려봤다.

 간신히 검사를 설득 중인데 또 초를 친다!

 

 박 검사가 가늘게 뜬 눈으로 기태를 응시했다.

 

  “뭔가 다른 거요? 이를 테면?”

  “상식이하의 행동패턴이요.”

  “최혜영이? 아니면 딸 돈미란이?”

  “돈미란은 사실상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상수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자신이 당한 사고에 대해 거짓말을 했어요! 피살자가 죽은 침실에 있었던 게 그 딸이 맞습니다!”

  “잠깐.”

 

 박 검사가 검지를 들어 상수를 또 제지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박 형사 추정이고. 아직까지 피살자의 침실에 함께 있던 여자가 양녀라는 증거는 없어. 여자와 관련된 DNA나 혈흔도 나오지 않았지.”

  “그러니까 조사를 하자는 겁니다, 검사님. DNA확보를 위해서도 시급합니다.”

  “잠깐 있어보라니까. 자, 변 형. 당신 말대로 양녀인 돈미란은 거짓말을 안했다면, 그러면 당신도 결국 최혜영이를 의심하는 거 아닙니까?”

  “미망인 최혜영은 거짓말을 거짓말하고 있습니다. 상식이하의 패턴을 보이면서요.”

 

 상수가 답답하다는 듯 버럭 소리쳤다.

 

  “제길! 거짓말을 거짓말 하다뇨!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겁니까? 또 그놈의 직감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겁니까?”

  “직감 아니다, 범생.”

 

 박 검사가 날카롭게 물었다.

 

  “변 형 말은 그러니까, 최혜영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척 했단 말입니까?”

 

 기태가 빙긋 웃었다.

 

  “그렇습니다. 최혜영은 자신의 거짓말을 우리가 눈치 챌 만큼 해주고 있습니다.”

 

 상수가 씩씩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궤변을! 검사님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당장 최혜영이랑 돈미란을 데려오게 해주십시오!”

 

 박 검사는 팔짱을 낀 채 잠시 바닥을 내려다봤다.

 퇴물이지만 유능한 형사였던 변기태.

 의욕 넘치며 확신에 차있는 박상수.

 누구 편을 들어야 내 손에 똥을 묻히지 않을까.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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