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로맨스판타지
푸른 잎에 능금
작가 : 목탄
작품등록일 : 2020.8.5
  첫회보기
 
10. 붉어지는 어깨
작성일 : 20-08-30     조회 : 321     추천 : 1     분량 : 7165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밤낮으로 사내들에게 시달린 능금이 서가에 느긋하게 앉아 조는 듯, 마는 듯 앉아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읽지도 않은 책장을 넘긴다. 능금의 곁에 앉아 소란이 바느질에 여념 없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옷이 뜯어졌던가 보다. 서책을 정리하던 모순이 그 모습을 보고 나무란다.

 “일은 나 혼자 하고, 두 사람은 노는 것이야?”

 “나는 능금을 모시는 비자지. 너를 모시는 비자는 아니거든.”

 “뭐야?”

 능금이 졸린 눈을 뜨고는 모순을 올려다본다.

 미색이 아깝구나. 저 고운 얼굴로 저리 매섭게 쏘아볼 일인가.

 “이 힘든 서고 정리를 혼자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거든들, 상궁의 업적에 누가 갈 뿐입니다.”

 “하긴, 그건 그렇겠네.”

 혼자 칭찬 들을 생각을 하니 짜릿한가 보다. 먼지 털이를 든 모순이 총총히 사라진다.

 “정말 저대로 둘 거야?”

 졸고 있는 능금을 흔들며 소란이 묻는다.

 “그럼 어째. 우리보다 신분이 높은 궁녀가 아니냐.”

 “신분이 높으면 뭐해. 까막눈인데.”

 “그러는 넌,”

 “난, 이제 더듬더듬 읽거든,”

 “기특하다.”

 능금이 바느질 중인 소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나저나 요즘 너 살 쪘나보다. 옷이 끼는 것 같아.”

 소란이 능금의 앞섶을 눈으로 훑는다.

 “어째 살이 가슴만 찌는 거 같기도 하고, 키는 안 크고 그러는 경우도 있나.”

 “어, 그러니까, 그게, 너무, 잘 먹어서 그런가 보다, 이러다 키로 가겠지. 뭐. 이참에 네가 좀 늘여주지 않으련?”

 뜨끔한 능금이 말을 더듬는다.

 “그야, 어렵지 않지. 맡겨만 둬.”

 이리 꽁꽁 동여매도 티가 나면, 이젠 어쩌나. 초여름에 누비저고리를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환장하겠구나. 공연히 앞섶을 여미며 능금이 심난해한다.

 “누가 책을 정리했느냐!”

 꼭 필요한 서책이 있어 서고에 들렀던 화홍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봄볕을 맞으며 졸던 능금이 벌떡 일어나고, 바느질을 하던 소란도 엉겁결에 일어선다. 칭찬이라도 들을까 기대에 찬 얼굴로 모순이 나타난다.

 “소인이 하였습니다.”

 “전부 다, 네가 하였느냐.”

 “예.”

 소란이 조마조마 저하를 올려다보는데, 능금은 하품을 베어 물며 읽던 책을 깔별로 꽂는다.

 “그럼 네가 나대신 책을 찾으면 되겠다!”

 세자가 줄줄이 책 제목을 읊는다. 도대체 뭐라고 하시는 겐가.

 “저, 푸른 책등인지, 빨간 책등인지.”

 “고칠 때마다 달라지는 표지로 책을 정리했단 말이냐!”

 평생 책을 가까이한 적 없는 궁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다. 내가 큰 실수를 하였구나.

 “함부로 비현각에 든 죄, 함부로 어지럽힌 죄, 그 모두를 물리라.”

 모순이 울며 엎어진다.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모순의 애걸복걸은 듣지도 아니하고, 성난 세자가 책을 찾아 헤맨다. 보다 못한 능금이 같이 찾아 나선다. 서고 맨 위에서 노란 책등을 발견하고는 능금이 까치발로 올라간다. 안자랄 데는 쑥쑥 자라고, 꼭 자라야 할 데는 이리 안자라는 구나. 자신의 키를 탓하며 위태롭게 사다리에 올라서는데, 손끝에 걸릴 듯 말 듯하다.

 “잡았다!”

 순간 사다리가 넘어지고 능금이 떨어진다.

 “괜찮으냐?”

 그리 성을 내었던 것도 잊은 채, 세자가 잠잠히 웃는다. 화홍의 품에 안긴 능금이 눈을 질끈 감는다. 차라리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게 나았으리라.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능금의 보드라운 볼에 얼굴을 대본다.

 “무얼 먹으면 이리 부드러운 것이냐?”

 “그만 내려 주십시오.”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이편을 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홍이 볼을 부빈다.

 “싫다.”

 사내들의 뜨거운 정을 확인한 모순과 소란의 눈이 등잔불처럼 휘둥그레 하다. 저리 아름다운 사내들이 끈적대며 엉켜있는 모습이라니, 둘이 보기엔 너무 아깝구나. 침을 꿀떡 삼키며 서가를 대놓고 훔쳐본다.

 

 “네가 계집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알았다.”

 “뭐?”

 밥을 먹던 능금이 소란의 뜬금없는 소리에 실소한다.

 “사내를 좋아해서 그런 거였어.”

 “야!”

 “말동무로 데려왔다는 것은 핑계고, 사실은 정인이구나.”

 “아니거든!”

 “우린 친구인데, 그리 숨길 필요 없어.”

 차라리 여자라고 밝힐까. 이 아이에게까지 성별을 속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

 “소란,”

 “그래, 누나라고 생각하고 다 얘기해.”

 “내가 만약 여자라면, 어땠을까?”

 “불쌍한 것, 저하를 얼마나 사랑하기에, 그런 생각까지 다 했어!”

 소란이 울먹인다.

 “여자였다면, 저하의 승은을 받고, 후궁이 되었겠지.”

 “후궁?”

 “그래, 동궁전 궁녀들은 모두 저하의 여인 아니냐. 그러니 승은은 입고 후궁이 되는 것이지.”

 사내로 사는 것이 백배 낫겠구나. 후궁이 되어 뒷방에 처박힐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사내가 낫다.”

 “그래, 사내면 어떻고, 계집이면 어떠니, 저하의 사랑만 받으면 될 게 아니냐. 그러니까 힘내.”

 능금이 머위 나물을 입에 넣는다. 저하가 나를 비현각에 둔 것도, 다 그런 연유였구나. 여인임이 들통 나기 전에 어서 이 궁을 탈출해야겠다. 능금이 그만 수저를 물린다.

 “더 뜨지 않고.”

 “아니다. 그만 책을 읽어야겠다.”

 “에고, 책 속으로 숨은 들, 그 마음이 가려지니.”

 너만 가만히 있으면, 충분히 가려진다. 능금이 착잡한 얼굴로 일어선다.

 “방해 말거라.”

 “그래. 푹 빠져라. 나는 빨래를 하고 올 테니.”

 소란을 쫓아내었더니, 모순이 귀찮게 따라붙는다. 신분이 있어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고, 난감하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능금이 입술을 삐죽인다. 나는 덕분에 남색이 됐소.

 “방법을 알려준다면, 다시 책을 정리하겠습니다.”

 글을 모르니까 안 된다고 말하면 분명 상처 받을 텐데, 참 난감하구나.

 “혼자 하기 엔 너무 많은 양이지요. 소란이 돌아오면 다 같이 정리합시다. 그동안은 좀 쉬세요.”

 모순이 고개를 주억인다. 이 아이 덕분에 그리 붙 같이 성을 내던 세자가 오뉴월 나비처럼 팔랑대며 나갔다. 내게도 그리 웃어주던 사내가 있었는데, 내게도 그리 봄볕 같던 사내가 있었는데, 회상에 잠겨있던 모순이 서가에 기대 잠든다.

 얼굴이 미색이나, 피부가 거칠구나. 필시 영양이 부족한 탓일 게다. 잠들어있는 모순을 찬찬히 살피던 능금의 미간이 구겨진다. 이리 말랐는데도 배는 둥그스레하구나. 회충이라도 있는 것인가. 조심스레 모순의 배를 살피던 능금이 뭔가를 알아채고는 경악한다.

 

 “책이나 흩어놓으라고 그곳에 보낸 줄 아느냐?”

 “송구합니다.”

 “이름 석 자도 제대로 못 쓰는 것이 감히 동궁의 서책을 만졌단 말이냐.”

 모순이 바닥에 엎드려 벌벌 떤다.

 “머리가 나쁘면 눈치라도 좋아야지. 사내 후리는 재주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너를 왜 비현각에 보냈겠느냐?”

 “허나, 마마님”

 “닥치거라. 궁녀가 사가의 사내와 정분이 나면 어찌되는 지 너도 모르지 않을 터, 너도 죽고, 네 사내도 죽는다.”

 “살려주십시오.”

 “누구를? 너를? 아니면 네 사내를? 그것도 아니면 네 복중 태아를?”

 모순이 무릎걸음으로 기어 중전의 치맛자락을 붙든다.

 “살려만 주신다면, 모든 다 하겠습니다.”

 “뻔뻔하기가 그지없구나. 허나 그런 너도 쓸 데가 있으니, 이번 일만 잘 처리한다면 소원대로 해주마.”

 바람이 불러 모순의 부푼 배가 드러난다. 이리 나오도록 눈치를 못 채길 바랐다니, 그 또한 내 욕심이었다.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태중 아이가 힘차게 발차기를 한다.

 “너라도 꼭 살리마. 너라도,”

 

 어린 생각시 하나가 끙끙대며 물동이를 이고 간다. 물이 넘쳐 저고리가 젖고, 치맛자락이 젖는다. 어째 떠가는 물보다 흘리는 물이 더 많은 것 같다. 뒤 따르던 능금이 보다 못해 생각시의 정수리에서 물동이를 뺏는다.

 “가는 길이 같으니, 잠시 들어드리리다.”

 물동이를 번쩍이고는 능금이 성큼성큼 걷는다. 비오는 날 생쥐 꼴로 서서는 생각시가 능금을 우러러본다. 동궁전에 저리 자상한 사내가 있었단 말인가.

 서둘러 다기를 들고 가던 궁녀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다기 그릇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제대로 자빠진 궁녀의 무릎에 피가 흐른다. 하필 물동이를 들어다주고 돌아가던 능금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온다.

 “그리 주우면 다친다오.”

 깨진 다기를 손수 주워주고, 도포자락을 찢어 피나는 무릎까지 감싸준다. 동네 아이 대하듯 다정히 대한 것인데, 궁녀의 얼굴이 발그레 익는다.

 사내라고는 내시뿐인 동궁에서 능금이 친절이 과하게 먹혀든다.

 가지에 걸린 옷가지를 내려주고, 떨어진 부채를 주워주고, 머리에 붙은 덤불을 떼어주었건만, 발정난 개처럼 껄떡거린 꼴이 되었다.

 궐 밖 빨래터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궁녀들이 능금을 입에 올리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그 무거운 물동이를 턱하니 들어주는 게 아니겠어요.”

 “것뿐이냐. 깨진 다기도 주워주고, 손수 다리도 동여매여 주셨다.”

 “생긴 것도 말랑하셔선 그리 다정하시니.”

 “혹여 생각 없는 것들이 달려들지도 모르니, 우리가 번이라도 설까?”

 “여기서 정합시다. 아무도 침 바르지 않는 걸로.”

 “좋다. 공공재로 정해서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자.”

 남 주는 꼴은 못 보겠다는 심사인데, 마침 빨래를 인 소란이 빨래터로 들어선다.

 “능금님의 옷이냐?”

 “예. 그렇습니다.”

 “어디, 나 좀 만져보자.”

 “언니만 손이요? 나도 좀 만져봅시다.”

 “자자, 싸우지들 마시고, 하나씩 빨면 될 게 아닙니까.”

 소란이 인심 좋게 능금의 빨래를 나누어준다. 밀린 빨래는 팽개친 채 능금의 옷만 주물러대는 구나.

 “밤새 글을 읽으신다지?”

 “워낙 서책을 좋아하셔서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하셨구나.”

 “암요. 부족한 게 없으시죠. 다만 요즘 누가 훼방을 놓는 바람에, 일복이 터지셨죠.”

 “누가, 뭘 어쨌단 말이냐?”

 “멀쩡히 잘 해놓은 서가를 엉망으로 해놓지를 않나, 꼬리를 살살 쳐서는 종복처럼 부리질 않나,”

 “대체 누가!”

 능금이 사수대장격인 상궁이 발딱 일어선다.

 “교태전에서 왔다던데, 모순이라던가.”

 “모순!”

 눈웃음으로 온갖 내시를 다 홀린 그 모순 말인가. 이 년이 꼬리를 쳐. 군기 좀 잡아야겠구나.

 빨래가 떠내려가는 것도 모르고, 궁녀들의 뒤 담화가 시작된다.

 “좀 과했나?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함지박을 인 소란이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진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맞다.

 오후 내내 모순이 보이지 않는다. 책 정리를 하자고 해놓고 내뺀 겐가. 혼자 끙끙대며 책 정리를 하는 능금, 괘씸하다가도 문뜩 걱정이다. 그 배로 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해가 저물었으니, 처소에 든 것인가.

 마침 쑥개떡을 들고 소란이 나타난다.

 “김 상궁 마마께서 주셨어”

 “출출했던 터인데 잘됐다. 모순도 같이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안 보인다.”

 “모순? 아마도 마마님들이 군기 좀 잡고 있을 걸?”

 “군기? 그게 무슨 말이냐?”

 “이 비현각을 어지럽히고, 너를 곤경에 처하게 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 할 것 아니야.”

 “뭐! 대체 거기가 어디야!”

 능금이 행랑채 창고로 내달린다. 어찌 저하가 벌하지 않은 것을 너희가 벌하려 하느냐. 감히 누가 누구를 벌할 수 있단 말이냐.

 능금이 창고 문을 벌컥 연다. 들보에 묶여 매를 맞고 있던 모순을 능금이 끌어안는다. 날아오던 채찍이 능금의 등을 휘감는다.

 “이 무슨 짓이오!”

 “이 계집이 비현각을 어지럽혔다 하여.”

 상궁이 쩔쩔맨다. 능금이 들보에 묶인 손을 풀어주고, 도포를 벗어 모순의 어깨에 덮어준다.

 “저하께서도 벌하시지 않았는데, 그대들이 벌하는 것이오. 그대들도 다치고, 나도 다친다는 걸 모르는 것이오.”

 사건에 가담한 궁녀들이 모두 무릎을 꿇는다.

 “용서해주십시오.”

 “우리는, 서로 적이 되어선 안 되오.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어야 하오.”

 능금이 엎드린 궁녀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운다. 궁녀들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다.

 “다시는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되오.”

 “염려 마십시오. 다시는 능금님이 난처해하실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대들만 믿겠소.”

 기방도령이 기녀 달래듯이 하는 구나. 능금이 모순을 데리고 창고를 나선다. 남겨진 궁녀들이 사정없이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는 한숨을 내쉰다.

 “저리 선하시다니. 천상에서 오신 선남이 틀림없다.”

 선남은 무슨, 모순을 감싼 일로 원한을 질까 전전긍긍 아부를 떨어댄 게 분명하다. 창고를 나온 능금이 한숨을 내쉰다.

 “괜찮으십니까?”

 “예.”

 “저 때문에 맞으셨군요.”

 “아닙니다. 책을 엉망으로 한 것도, 저들에게 밉보인 것도 전부 저인 걸요. 교태전 상궁이라는 자만에 제가 오만을 부렸나봅니다. 동궁전이면 동궁전 나름의 법도가 있는데 말이지요.”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 쥔 모순이 울먹인다. 여럿이 둘러싸고 때렸으니 무서웠으리라. 능금이 모순의 손을 감싸 쥔다.

 “이 곳에 있는 동안은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능금의 말에 왈칵 눈물을 쏟는 모순, 그리하지 마시옵소서. 저는 당신을 해치러 온 사람입니다. 이리 다정케 하지도 마시고, 이리 지키려하지도 마시옵소서. 그저 미워하고, 원망하시옵소서.

 “누가 너를 이리 때렸느냐.”

 저고리에 묻은 핏자국을 만지며 화홍이 묻는다. 서가에 책을 꽂던 능금이 흠칫 놀란다. 피가 난 줄은 몰랐구나.

 “때리다니요. 나뭇가지에 스친 것뿐입니다.”

 “누군들, 너를 때리면 가만있지 않으리.”

 “나무라도 불살라 태우실 겁니까.”

 “그래.”

 “그럴 시간에 약이나 주십시오.”

 내가 이리 쓰라린데 모순은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아플 게다. 고요히 책을 읽기에 요 며칠 너무 소란스러웠구나. 책 정리를 마치는 대로 독서에 매진하여야겠다. 책 꽂는데 골몰하느라, 내시가 들었다가 가는 것도 알지 못한다.

 “저고리를 벗어라.”

 “예?”

 “약을 발라야 할 게 아니냐.”

 “제가 알아서 바르겠습니다.”

 “닿지도 않는 곳을 어찌 바를 셈이냐?”

 “소란더러 발라달라고 하면 됩니다.”

 “네가 여인인 것은 알고?”

 그건 미처 생각지 못했다. 공연히 약을 달라고 해서 일이 이리 되었구나. 망설이는 사이 화홍이 능금의 저고리를 푼다.

 “저하…”

 “고작 약 하나 바르는 것으로, 이리 쩔쩔 맬 것이냐.”

 화홍이 부드러운 손길로 약을 바른다. 나뭇가지에 스친 것치고는 상처가 깊다. 이 가녀린 어깨로 넌 누굴 지키려하는 것이냐. 화홍이 능금의 동그란 어깨를 감싸 안는다. 솜털이 보송보송 난 목덜미에 이내 입술을 맞추는 화홍. 능금의 목덜미가 붉어진다.

 “입을 맞출 때마다 넌 붉어지는 구나.”

 이리 붉고 탐스러운 과일이 있다면, 평생 곁에 두고 보아도 좋으리. 화폭도 좋고, 내 품도 좋으리.

 “흉 지지 마라.”

 그 흉에 호호 입김을 불어주는 데 눈치 없이 문이 열리고 부사가 들어온다. 능금이 화들짝 놀라 서고 뒤편으로 숨는다.

 “여기가 너희 집 사랑채냐?”

 “비현각이 내 놀이터인 것인 맞지.”

 “이놈, 당장이라도 변방에 유배를 보내리!”

 “워워, 내가 기녀 옷 벗기는 데 들기라도 했냐? 왜 이리 까칠해.”

 아예 틀린 말도 아닌지라, 화홍이 씩씩대며 서있다.

 “왜 왔어!”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이 생겨서.”

 “여기가 세책점이라도 되는 가보다.”

 “세책점보다 낫지. 여긴 공짜잖아.”

 분이 풀리지 않은 화홍이 서가에 벌렁 누워 아무 책이나 얼굴에 덮는다. 배동만 아니면 진즉에 유배 보내는 건데. 저 망할 자식.

 

작가의 말
 

 

 벌써 10화가 되었군요.

 앞으로는 더 자주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완성되어있는 글을 너무 꼼지락 올렸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맨위로맨아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