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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품절남이 아닌가요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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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사과타령
작성일 : 20-08-31     조회 : 351     추천 : 0     분량 : 5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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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흑 흐흑.”

 

 고개를 푹 숙인 사임이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수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말이지 오만정이 떨어져서 못 봐주겠군."

 

 사임이 고개를 휙 들었다.

 알이 없는 안경속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수남은 미간을 찌푸린 채 사임을 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흔들더니 바지춤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그때였다.

 

 "내가 뭘 어쨌다고 오만정이 떨어진대욧!! 흑 흑흑흑"

 

 사임이 목놓아 통곡까지 한다.

 터진 수도꼭지처럼 울어제끼는 사임을 보며 수남은 어이가 없다.

 

 "당신이 뭔데 나더러 하루종일 질질 끌려다닌대! 내가 뭘 어쨌다구요!"

 “이봐요, 천사임씨. 다 큰 성인이 이게 지금 무슨 행태입니까. 그리고 난 분명히 내가 목격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데이터??? 지금 나 무식하다고 또 무시하는 거죠! 남의 가슴에 대못질 하고도 모자라서 다시 또 잘난 척이나 하구. 아흐흑.”

 “아 진짜 이 폭탄!”

 “폭탄?? 아흑흐흑. 이젠 아예 팍 터져 죽어버리라는 거야 뭐야. 아흐흐흑.”

 

 - 누구야! 누가 우리 사임일 울려!!

 

 달환이 눈을 부라리며 뛰어들었다.

 뒤따라 은정도 들어왔다.

 달환이 눈물콧물 쏟는 사임에게 호다닥 달려갔다.

 

 “천사임! 너 왜 울어! 수남이가 욕했어? 저놈의 자식이 무슨 짓을 했어 응?”

 

 사임은 도리질을 하며 달환 품에 안겼다.

 달환이 수남을 확 쏘아봤다.

 

 “이 짐승!”

 “지지짐승이요? 하. 진짜 어이가 없습니다! 난 그냥 공사구분이나 잘하라고 말한 게 전부라구요!”

 “어쩐지 둘 사이에 뭔가 있다 했어. 팔딱팔딱 싱싱한 알몸 몽타주를 그리질 않나.”

 “성 실장님!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라...”

 “우리? 오모 오모. 휴직하고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니? 대체 우리 사임일 이렇게 울린 이유가 뭐야! 설마 오늘 뻥 차버린 거야? 여기 내 신성한 몽타주실에서?”

 “형님!!! ”

 “앞으로 형님이라고 부르지도 마! 그리고 이따가 정식으로 사과해!"

 

 달환이 사임을 달래며 밖으로 나갔다.

 수남은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은정을 봤다, 그런데.

 

 “수남씨. 이런 사람이었어?"

 "부팀장님!"

 "사임씨한테 가서 사과해.”

 “저 진짜 잘못한 거 없습니다.”

 “사람을 울렸잖아. 정말 슬퍼 보이더라. 그것만으로도 잘못 한 거지.”

 

 * * *

 

 저녁 8시, 경찰청 식구들로 시끌벅적한 닭발집.

 대명, 은정, 달환, 사임, 수남은 세상 어색한 표정으로 둘러앉아 있었다.

 

 “행정관도 새로 들어왔고, 우리 수남이 복귀도 하고. 겸사겸사 인사나 하자고 만든 자립니다.”

 

 대명이 어색한 포문을 열며 사임에게 소주잔을 건넸다.

 

 “천 행정관 반가와요. 이제사 제대로 인사 하네.”

 “... 네.”

 

 사임이 잔을 받았다.

 

 “자자 건배-”

 

 대명을 따라 모두 소주를 완샷 했다.

 사임도 단숨에 잔을 비우고는 시뻘건 닭발을 꾸역꾸역 먹었다.

 

 “천사임씨. 나도 반가워요. 앞으로 잘 지내요 우리.”

 “네. 신은정 부팀장님. 어! 저, 잠시만요.”

 

 사임이 양해를 구하고는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자자. 우리 수남이랑도 오랜만에 꺾어본다. 복귀 축하한다.”

 

 그런데 대명과 잔을 부딪친 수남이 멈칫했다.

 대명, 달환, 은정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수남이 소리나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왜들 이러세요?”

 

 달환이 가시 돋친 목소리로 말했다.

 

 “왜긴. 사과하기로 했잖아, 우리 사임이한테.”

 “사과요? 내가 왜요? 전 잘못한 거 없습니다.”

 “어머머 이 뻔뻔한 짐승.”

 “아까부터 왜 절 자꾸 짐승 취급 하세요? 음흉한 너구리네 폭탄이네 저 여자 뒷담화 깔 때는 언제고.”

 “내가 우리 사임일? 언제 언제? 증거 있어? 있어??”

 

 달환이 얼굴이 벌게져 꽥꽥거리자 수남은 짜증이 확 치밀었다.

 땀내 폴폴나는 필드형사들이 모이는 이런 서민스런 술자리는 딱 질색이었다.

 그런데 천사임이 닭발을 먹고싶다는 바람에 이곳에 온 것이다.

 게다가 사과? 내가 왜?

 

 “수남씨.”

 

 은정이 엄한 표정으로 부르자, 수남은 도리질했다.

 

 “상황을 모르셔서 그럽니다. 저는 진짜 잘못한 거 없습니다.”

 

 대명이 수남의 빈 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밖에 천 행정관 좀 봐라. 작고 여리여리하고 안돼 보이지 않냐? 이제 막 행정관 시작인데 물설고 사람 설고 얼마나 힘들겠어. 우리처럼 동기가 여럿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성 실장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신참한테 선임은 암적인 존재지. 겉모습만 보지 말고 맥락을 보려고 해봐. 니 특기잖아.”

 “그놈의 맥락을 보다가 이렇게 됐거든요. 남의 일에 신경 쓰는 게 아닌데.”

 “씨이- 우리 사임이한테 사과해.”

 

 그새 혀가 꼬인 달환이 수남에게 뭔가를 툭 던졌다.

 오이다!

 

 수남의 눈에 불길이 화르르 타올랐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치는 게 아닌가!

 

 - 어이 정 경위! 넘마, 낮에 신입행정관 울렸다며? 휴직하면서 반성 좀 하나했더니. 또또 여인네들 심장에 못질을 해대냐?

 

 옆 테이블 강력계 형사였다.

 이제보니 술집에 모인 형사들이 일제히 한몫 끼어들고 싶은 눈치였다.

 팔짱을 낀 수남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곱게 술이나 먹고들 가지? 사람 신경 긁지말고."

 - 정 경위 너 그러는 거 아냐. 좀 잘 생겼다고 다 용서 되는 거 아니다.

 - 맞아 맞아. 천사임 행정관 착하고 귀엽드만. 네 누드 그림도 쓱쓱 끄려주고.”

 

 수남이 입 바람을 후- 불었다.

 그리고 얼음처럼 싸늘한 눈길로 형사들을 쏘아봤다.

 

 턱- !

 뭐야 또?

 

 이번에는 수남의 얼굴에 상추가 날아들었다.

 수남이 달환에게 팩 소리쳤다.

 

 “성 실장님! 왜 이러십니까 정말!”

 “울 짜임이한테 싸과해!”

 “성 실장... 아유! 됐습니다!"

 

 수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 *

 

 - 사임씨. 그런 상황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힘든 거예요. 사임씨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구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죠. 그러니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마요.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 사임씨는 지금 그대로도 아름다운 사람예요, 알죠?

 

 핸드폰을 끊은 사임이 수줍게 하늘을 봤다.

 지금 그대로도 내가 이쁘대. 히힛.

 

 "뭐가 그리 좋으신가?"

 

 사임이 화들짝 놀라 돌아섰다.

 수남이 큰 키를 숙이고 사임의 얼굴을 뚫어지게 봤다.

 

 “뭘... 왜 그렇게 봐요?”

 “소주 한 잔에 이렇게 빨개지나?”

 “... 내가 뭘요!”

 “낮에 전화는 독촉전화고, 밤에 전화는... 애인이신가?”

 “괜히 또 시비 걸지 마요!”

 “아까 말예요.”

 

 허리를 편 수남이 먼 산을 보며 어색하게 포문을 열었다.

 

 “아까 뭐요?”

 “울릴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 타이밍에 적절한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 무슨 타이밍요?”

 “낮에 경찰서에서 그 난리를”

 “... 경찰서요?”

 

 수남이 잠시 망설였다.

 어머니 일로 시달리는 사임을 봤다고 말할까 말까.

 

 “무슨 말예요? 경찰서 뭐요?”

 

 수남은 속으로 도리질 했다.

 자기 치부를 들키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쨌든 그쪽 울릴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쪽 비난한 것도 아니고. 뭐 어쨌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사임이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수남을 봤다.

 

 “... 무슨 사과가 그래요?”

 

 수남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딴에는 배려해주고자 했는데 사임의 말투가 영 거슬렸다.

 

 “이 정도면, 된 거 아닌가.”

 “아뇨. 사과 하려면 정식으로 해주세요. 일전 청장님께 정식채용 부당하다고 한 것부터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가만. 이제보니 날 그런 놈으로 봤군.

 치졸하게 권력을 이용해 불공정 인사에 관여하는 인간으로?

 

 사실 수남은 청장에게 사임의 적극채용을 주장했었다.

 인간의 목소리에 대한 그녀의 분석이 꽤 유용하다는 점도 어필했다.

 

 수남은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을 오해하는데 타고난 선수군. 대화는 여기서 종결합시다."

 “아뇨! 정식으로 저한테 말해주세요. 미안하다구요.”

 

 수남이 싸늘하게 말했다.

 

 “여기까지 합시다, 라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아니요. 미안해요, 라고 제대로 말해주세요.”

 “그걸 꼭 들어야 하나?”

 “네! 꼭 들어야겠어요. 정수남씨 좀 전에 말한 타이밍 어쩌구 저쩌구 그건 다 변명이잖아요.”

 “천사임 씨. 후회할 일 만들지 않는게 좋아.”

 “후회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해야죠! 사과라는 그릇에는 반드시 담아야 할 게 있다구요!”

 

 수남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이 여자, 왜 이렇게 '사과'에 집요한 거야?

 

 “진심이요!"

 "뭐어?"

 "사과는 상대방 마음을 헤아리는 거예요.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거, 그거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거라구요. 변명하고는 다르다구요.”

 

 수남이 사임에게 불쑥 다가왔다.

 그리고 사임의 코 앞에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눈앞에 훅 다가온 선명한 남자의 얼굴에 사임은 화들짝 놀랐다.

 

 "정작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은 천사임 당신이 아니라 나야."

 "내가... 뭘! 설마 비겁하게 그 몽타주 때문에 아직도 이러는 거예요?"

 "아니!!"

 

 수남이 잇새로 으르렁 거리며 사임에게 바싹 다가왔다.

 그리고 사임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잡았다.

 

 "당신 때문에 여자를 놓쳤어!"

 "에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 때문에 여자를 놓치다니?

 

 수남이 사임의 양팔을 더욱 꽉 잡았다.

 

 "기억 안나? 당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사임이 도리질을 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다는 거야!

 

 수남이 다시 사임의 양팔을 꽉 쥐었다.

 거칠고 딱딱한 손아귀에 눌려 사임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수남은 벌개진 눈빛으로 무섭게 경고했다.

 

 "더이상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 천사임!"

 

 사임이 몸을 뒤틀며 수남을 밀어냈다.

 

 "대체 왜 이래요! 이거 놔요. 아파요!"

 

 그런데 수남이 갑자기 휘청, 하며 제 머리를 짚었다.

 사임이 놀라 수남의 팔을 잡았다.

 

 "이봐요? 괜찮아요? 어지러워요?"

 

 수남이 잠시 사임을 응시했다.

 사임도 수남의 눈을 응시했다.

 좀전까지는 붉은 빛이 감돌아 미친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새 수남은 차분한 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수남이 사임의 팔을 물리치고 정색하며 말했다.

 

 “천사임씨. 나도 당신 때문에 손해 본 게 있습니다. 그러니 사과 따위 바라지 말아요."

 

 갑자기 사임은 기가 막혔다.

 

 “... 참... 그러네요.”

 “뭐가 말입니까?”

 “그 말이 그렇게 어려워요? 누구한테 진심으로 미안해본 적도 없죠?”

 

 수남이 다시 일렁이는 눈빛으로 사임을 쏘아봤다.

 하지만 사임은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겠죠. 매사에 정확하고 확실한 사람이니까, 실수 같은 거 안한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하고요. 공사구분 못할 때도 있어요. 그걸 구분 못할 만큼 힘든 날도 있는 거라구요. 나한텐 오늘이 그런 날이었어요. 이만 가볼게요.”

 

 사임은 꾸벅 인사하고 돌아섰다.

 

 * * *

 

 새벽.

 사무실에 앉은 수남은 뚫어지게 유리보드를 응시했다.

 

 [윤숙자/ 교통사고/천사임...]

 

 대체 천사임의 정체는 뭘까.

 사실 수남은 저 어리숙한 여자의 정체가 궁금해 청장에게 채용을 적극 권했다.

 가까이서 그녀를 지켜보고 싶었다.

 

 사라진 약혼녀처럼 6개월 전 자신 앞에 나타난 천사임.

 그리고 반년 만에 복귀한 직장에 인턴으로 나타난 천사임.

 게다가 윤숙자를 추적하는 순간 교통사고까지.

 분명히 뭔가가 있다.

 우연도 세번이면 필연이니까.

 

 툭!

 수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밤중에 무슨 소리지?'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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