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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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중심이다!
작성일 : 20-09-02     조회 : 273     추천 : 2     분량 : 4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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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러시는 건지...”

 “여전히 말이 많네?”

 “죄송합니다...”

 난 입을 꾹 다물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써.”

 “뭘요?”

 “아까 니가 말했던 거. 한번 써봐.”

 “왜요?”

 “아니 뭐, 글로 보면 어떤가 싶어서.”

 “그럼 감독님이 쓰시면 되잖아요.”

 봉감독이 나를 힐끗 노려보았다.

 “니가 떠든 걸 내가 받아쓰는 건 아니지 않니? 난 거장이고, 넌 신삥이잖아.”

 “아... 그러네요.”

 난 자세를 고치고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아직도 날 테스트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말한 대로 영화를 만들려고 이러는 건가?

 난 봉감독의 의중을 살피기 위해 살짝 고개를 돌리고 그의 뒷모습을 훔쳐봤다.

 창밖을 보는 봉감독의 동그란 어깨와 불룩한 허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흥, 거장께서 긴장하고 계시는군.

 ‘그럼 진짜를 보여주지.’

 나는 빠르고 우아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영화 <괴수>는 수십 번 봤던 작품이다.

 첫 씬에서부터 마지막 대사까지 속속들이 외우고 있다.

 그냥 기억하는 대로 쓰면 그만이다.

 ‘타닥타닥... 타타탁! 탁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스타카토 리듬으로 춤을 춘다.

 그 리듬에 맞춰 괴수는 한강 변을 뛰어다니고, 겁먹은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댄다.

 노트북 화면 속으로 딸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절규가 들려온다.

 피가 끓는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그리고... 오줌이 마렵다.

 생각해보니 이 건물에 들어온 뒤로 화장실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웬만하면 참아보려 했는데, 방광이 터질 것 같다. 으으...

 난 바지춤을 움켜쥐며 일어섰다.

 “저... 화장실 좀...”

 “밑에 있다.”

 ‘아... 화장실이 아래층에 있구나?’

 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봉감독이 휙! 뒤돌아보았다.

 “책상 밑에 있다고.”

 “네?”

 봉감독이 가리킨 책상 밑에는... 금속 재질의 은빛 항아리가 하나 놓여있었다.

 요강이었다!

 “오늘 그거 다 쓰기 전까지 여기서 못 나간다. 급하면 거기다 싸.”

 “질문 있습니다... 큰 것도 여기다 쌉니까?”

 끄응... 봉감독의 난처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큰 것 작은 것 가리지 말고 모두 요강 하나에...”

 더 들을 것도 없다!

 난 요강 뚜껑을 열고 내 안에 가득 찬 물줄기를 발사했다.

 ‘통통통통통통통~~’

 폭포수가 금속 재질의 요강을 날려버릴 듯 맹렬하게 쏟아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내고 나니, 이마에서 식은땀이 났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요강 뚜껑을 덮었다.

 봉감독이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실하네?”

 “네?”

 “오줌발이 실해. 좋은 감독이 되겠어.”

 봉감독은 다시 시크하게 창밖을 보며 담배를 물었다.

 뭔가 거장의 풍모가 느껴지기도 하고, 괜히 개폼 잡는 것 같기도 하고...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다.

 난 노트북 앞에 앉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음이 안정되니 글은 더 술술 풀렸다.

 잠깐잠깐 디테일한 부분이 생각나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이건 시나리오 완성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이디어를 정리한 트리트먼트니까.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난 마침내 마지막 마침표를 찍었다.

 “다 썼습니다.”

 “벌써?”

 봉감독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뒤돌아보았다.

 “네.”

 “진짜?”

 “못 믿겠으면 한번 읽어보세요.”

 봉감독이 한 발짝 다가오다... 순간 멈칫했다.

 “흐흠... 그럼 가.”

 “가라구요?”

 “어, 빨랑 가.”

 봉감독이 책상 위에 박힌 빨간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지잉! 소리가 울리며 철문이 열렸다.

 난 쭈볏쭈볏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슬쩍 뒤돌아보았다.

 봉감독은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고, 차가운 실내에는 파란 노트북 불빛만이 깜박이고 있다.

 휴...

 알 수 없는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과연 영화 <괴수>는 제대로 만들어지게 될까? 아니면, 내가 또 쓸 데 없는 짓을 한 걸까?’

 허탈하고 아리송한 기분에 휩싸인 채 차가운 감독의 방을 빠져나왔다.

 

 문 앞에서 고양미씨가 음료수 잔을 들고 싱긋 웃는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거 드세요.”

 “감사합니다.”

 고양미씨가 건넨 사이다를 들이키다,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저기, 안에 금속 항아리같은 게 있던데...”

 “아, 요강이요? 걱정 마세요. 제가 치울게요.”

 역시 그런 거구나? 아! 창피해...

 “죄송합니다...”

 난 빨개진 볼을 양손으로 붙잡고 도망치듯... 아니, 그냥 도망을 갔다!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동훈이가 날 보더니 부리나케 뛰어와 속사포같은 주둥이를 놀리기 시작했다.

 “형! 괜찮아? 안에서 뭐했어? 봉감독님은 만났어? 뭐래? 내 얘기는 안 했고?”

 “응, 나 괜찮고, 안에서 오줌 쌌고, 봉감독님 만났고, 니 얘기는 안했... 아니다, 했다. 너 입조심 하래더라.”

 “그랬구나? 그리고 또 뭐했어?”

 “그냥 뭐, 글 썼어.”

 “무슨 글?”

 “몰라! 씨...”

 모든 게 귀찮아졌다.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을 뿐이다.

 내 상태를 파악했는지, 동훈이도 입을 다물고 졸래졸래 따라왔다.

 말없이 종로거리를 걸으며 오늘 봉감독님이 했던 말들을 되새겨보았다.

 ‘영화에 최선은 없다. 다만 한발 더 나아갈 뿐.’

 ‘입조심 해라.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

 ‘오줌발이 실해야 좋은 감독 된다.’

 다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명언들이다.

 설사 연출부로 취직을 못 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난 오늘 봉만오 감독을 만났고, 그와 단둘이 한 공간에 있었고, 또 많은 것을 배우지 않았는가?

 삐리리리~~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난 무시하며 계속 길을 걸었다.

 “왜 안 받아?”

 “귀찮아.”

 “그럼 소주나 마시러 갈까?”

 “돈 없어.”

 “소주를 돈으로 마시나? 신용으로 마시는 거지. 외상걸면 돼. 헤헤...”

 “흥, 그러시던가.”

 난 동훈이와 어깨동무를 하고 힘차게 광장시장 파전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또 전화가 온다. 같은 번호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나 무시하니?”

 “누구세요?”

 “오호라! 그새 목소리도 까먹으셨다?”

 “봉만오... 감독님?”

 순간, 동훈이가 깜짝 놀라며 내 휴대폰에 귀를 가져다댔다. 난 동훈이의 머리를 밀치며 봉감독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네, 감독님. 무슨 일로...”

 “너 임마! 글을 이따위로 쓰면 어떡하냐?”

 “아... 죄송합니다. 너무 급하게 쓰느라...”

 “계약하자.”

 “네? 계약이요?”

 “넌 천재야. 내일 도장 들고 사무실로 와.”

 뚝! 전화가 끊겼다.

 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아 동훈이 얼굴만 멀뚱하게 쳐다봤다.

 “계약? 형, 봉감독님이 방금 계약하자고 한 거 맞지?”

 “응, 그렇게 들은 것 같애.”

 꺄호!

 동훈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내 등을 마구 두들겨팼다.

 하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갑자기 종로거리의 가로등이 한꺼번에 밝아지며, 세상이 온통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눈앞이 빨개지며 혼란스러운 문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요한’의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조요한’의 능력이 깨어납니다.]

 [‘조요한’의 캐릭터 일람이 발동합니다.]

 팟!

 환한 빛이 쏟아지며 상태창이 켜졌다.

 

 <조요한>

 역할 : 영화감독

 아이디어 : ★

 스토리텔링 : ★

 연출력 : ★

 리더쉽 : ★

 잠재력 : ☆☆☆☆☆☆☆

 특성 : 아직 잠재력이 깨어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약점 : 우유부단함, 똥고집, 과대망상.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우면 세상을 바꿔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푸훗!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약점이... 우유부단한 똥고집에 과대망상이라니. 이건 실패한 영화감독의 전형이 아닌가? 난 결국 타고난 루저가 아니던가?

 하지만, 놀라운 건 그 다음의 문장이었다.

 ‘세상을 바꿔버릴 가능성’

 나 한사람 때문에 세상이 바뀐다고?

 하긴, 내가 지옥을 탈출한 순간부터 이미 세상은 변했을지도 모른다. 인생에 실패한 루저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결국 세상 전체가 바뀌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 지금부터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그때, 옆에 있던 동훈이가 흥분에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나도 같이 계약하는 거야?”

 ‘아!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입에서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응, 그렇겠지.”

 우와아아!

 동훈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이런! 너무 자신감이 넘쳤나보다. 입에서 하고 싶은 말이 맘대로 튀어나온다.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말할까?

 하지만, 흥분해서 날뛰는 동훈이를 보니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도 봉만오 감독 밑에서 일을 하게 되면, 잠재력이 깨어나지 않을까?’

 흐음...

 같이 일하면 좋겠는데...

 

 ***

 

 드디어 계약하러 가는 날이다.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돼야 정상인데... 걱정부터 앞선다.

 내 옆에 있는 놈 때문이다.

 “형, 계약서에 도장 함부로 찍으면 안 돼. 꼼꼼히 따져보고, 면밀하게 살펴보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았어...”

 “알긴 뭘 알아? 물러 터져가지고는. 형은 도대체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동훈이가 어깨에 힘을 팍! 주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녀석의 들뜬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봉감독님이 나하고만 계약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동훈이가 많이 실망할 텐데...’

 이런 내 걱정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동훈이는 마냥 싱글벙글이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가 유난히 느리다. 휴......

 

 ***

 

 “제작실장 안병태라고 합니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안실장이 명함을 내밀었다.

 “감독님이 요한씨 칭찬 많이 하셨어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하하...”

 안병태 실장과 악수를 하는데, 동훈이가 끼어들었다.

 “저는요? 감독님이 제 얘기는 안 했어요?”

 “네? 아... 했어요. 치킨이 바삭하다고......”

 “치킨?”

 동훈이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진다.

 “내가 닭띠인 건 어떻게 아셨을까? 그리고 바삭하다는 건... 아! 이거 은유네. 좋아하는 사람한테 보통 바삭하다고 표현하잖아. 그지?”

 “응, 나도 너 바삭해.”

 “진짜? 나도 형 엄청 바삭해. 하하하!”

 갑자기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안병태 실장이 썩은 미소를 지으며 서류파일을 열었다.

 “하하... 계약섭니다. 한번 검토해 보시죠.”

 아! 역시나 계약서는 한 장이다.

 나하고만 계약하는 것이다.

 옆에서 기대어린 눈으로 웃고있는 동훈이를 보니, 불안이 밀려왔다.

 ‘이걸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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