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현대물
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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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의 승부사
작성일 : 20-09-02     조회 : 258     추천 : 1     분량 : 4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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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동훈이가 잽싸게 계약서를 가져갔다.

 “오우! 프리 단계에서는 주 5일 근무네요?”

 “네, 감독님이 남들 쉴 때 일하면 열 받는다고 하셔서.”

 “이야! 파격적이네!”

 동훈이가 주머니에서 도장을 꺼내 찍으려고 한다.

 “이리 줘봐.”

 난 재빨리 계약서를 빼앗아서 찬찬히 훑어보았다.

 연출부 막내 계약서다.

 촬영 전에는 월 100만원, 촬영 들어가면 200만원. 거기에 식대, 교통비는 따로 지급된다. 10년 전 기준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게 다가 아니다.

 “저기, 계약서가 좀 잘못된 것 같은데요.”

 “네? 무슨 문제라도...”

 “전 각본 계약을 원합니다.”

 “각본이요?”

 당연하다.

 어차피 <괴수>는 내가 쓴 내용대로 만들어질 거고, 이 영화의 스코어는 천만이 넘을 거니까. 고로, 내 타이틀은 천만 관객의 마음을 훔친 흥행작가여야 한다. 그래야 감독 데뷔가 수월해진다.

 안병태 실장이 뭔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뚱하게 쳐다봤다.

 “요한씨, 뭔가 착각을 하신 것 같은데...”

 “전 이 영화의 작가입니다. 못 믿겠으면 감독님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난 안병태 실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 단호한 태도에 놀랐는지, 안실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뭐... 알겠습니다. 감독님 모셔오죠.”

 안실장이 나가자, 동훈이가 내 어깨를 밀치며 소리쳤다.

 “미쳤어? 무슨 각본?”

 “넌 가만있어. 내가 정리할 거니까.”

 “형이나 가만히 계셔. 괜히 다 된 밥상 엎어지면...”

 “닥치고 찌그러져 있으라고!”

 동훈이가 충격을 받은 눈으로 나를 멍하니 바라봤다.

 하긴, 이런 모습은 처음일 거다. 그저 우유부단한 동네 바보 형으로만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난 예전의 조요한이 아니다. 지옥의 뜨거운 맛을 보고 영화판으로 돌아온 승부사다.

 두려울 게 없다.

 잠시 후, 봉만오 감독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신삥이 거장을 오라 가라 하네?”

 “죄송합니다. 각본 계약 때문에...”

 “각본? 무슨?”

 “어제 제가 쓴 거 보셨잖아요.”

 “그건 줄거리잖아. 장편 시나리오 써본 적이나 있냐?”

 흥, 10년 동안 골방에 처박혀 시나리오만 썼다!

 “잘 써드릴게요. 맡겨주세요.”

 하! 봉감독이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좋아, 그럼 한 달 안에 초고 뽑을 수 있어?”

 “사흘이면 충분합니다.”

 “사흘?”

 “네, 사흘이요.”

 봉감독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 역시 눈에 힘을 주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렇게 잠시 눈싸움이 이어졌다.

 [‘봉만오’가 흥분하고 있습니다.]

 [‘봉만오’가 이 상황을 재밌어하고 있습니다.]

 ‘이게 재밌다고?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니군.’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질 무렵...

 봉감독이 고개를 휙! 돌렸다.

 “안실장, 문어대가리 어딨어?”

 “사무실에 계십니다.”

 “알았어, 이놈 잘 지키고 있어.”

 봉감독이 나가자, 회의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동훈이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이고, 안실장도 사태파악이 안 된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다.

 잠시 후, 봉감독과 함께 반짝반짝 대머리의 60대 남자가 들어왔다.

 문어준, ‘태백 영화사’의 대표다.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기로 소문 난 영화판의 귀신, 만드는 영화마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인정받는 업계의 승부사.

 난 허리를 최대한 구부려 그에게 존경을 표했다.

 “안녕하십니까? 조요한이라고 합니다.”

 “내 눈 똑바로 봐.”

 “네? 왜요?”

 “나 무당눈깔이야. 딱 보면 어떤 놈인지 감이 와.”

 문대표가 눈을 부릅뜨며 날 쳐다봤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눈싸움이 취민가? 어쨌건 환영하는 바다. 문어준 대표의 캐릭터를 파악하면 협상이 훨씬 쉬울테니...’

 나는 그의 쭉 찢어진 눈을 노려봤다.

 하나, 둘, 셋...

 이런!

 4초가 되기 전에 문어준 대표가 먼저 눈을 감아버렸다.

 문대표는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닦으며 말했다.

 “어린놈이 겁이 없네. 사이코패스냐?”

 “아뇨.”

 “근데 왜 무리수를 둬?”

 난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저는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이 배 밖으로 소풍 나갔구만.”

 문어준 대표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좋아, 얼마면 돼?”

 잉? 이게 무슨 말이지? 진짜로 계약하겠다는 건가?

 그때, 봉감독이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뭘 눈알을 굴려? 그냥 받고 싶은 돈을 얘기해.”

 “그게......”

 이렇게 다짜고짜 돈 얘기부터 하는 경우는 첨이다. 보통은 회사에서 먼저 금액을 제시하고,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들어 계약금을 깎아내린다. 그게 아니면 돈 얘기는 아예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일부터 시키는 경우도 많고.

 ‘얼마를 불러야 계약이 가능한 걸까?’

 난 어리둥절한 눈으로 문어준 대표를 쳐다봤다.

 문대표는 이런 내 속마음을 간파했다는 듯 눈을 흘겨뜨며 씩 웃었다.

 그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문어준’에 관한 캐릭터 일람을 발동합니다.]

 

 <문어준>

 역할 : 제작자

 아이디어 : ★★★

 실행력 : ★★★★★★★

 리더쉽 : ★★★★★

 특성 : 느긋한 승부사.

 약점 : 엉뚱함, 무모함, 허술함.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흐음... 강한 상대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좋아, 그럼 일단 질러보자.

 “3천만 원이요.”

 “흥! 시작부터 세게 나오시는데?”

 문어준 대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봤다.

 ‘너무 많이 불렀나? 조금 줄일까?’

 라는 고민이 드는 찰나, 봉감독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3천 받고 3천 더.”

 “야! 봉감독, 넌 빠져.”

 “하긴, 초보들 판에 타짜가 끼면 안 되지. 니가 알아서 해라.”

 엥? 이건 뭐냐? 무슨 도박판도 아니고...

 “아닙니다. 전 3천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흐음... 그래? 그럼 내일 당장 3천만 원 입금하겠네.”

 허얼... 3천만 원을 한방에?

 “대신! 사흘 안에 내가 만족할만한 시나리오를 써와야 돼.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위약금을 물게 될 거야.”

 “위약금이요?”

 “계약금의 두 배, 6천만 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콜?”

 아...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봉감독이 그런 나를 보며 놀리듯 말했다.

 “뭘 6천 갖고 쫄아? 난 빚만 20억인데.”

 “네?”

 “승부를 걸었으면 끝장을 봐! 그래야 훌륭한 감독이 되는거야.”

 “하... 하지만...”

 세상에 만족할만한 시나리오가 어디 있는가? 토씨 하나라도 걸고 넘어지면...

 이런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문대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쫄리면 뒤지시던가.”

 “콜...”

 이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순간, 문어준 대표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도 나름 긴장했었나 보다.

 “흥, 재미있는 놈이군. 좋아, 내 방으로 와.”

 어쨌건 첫 번째 배팅은 성공이다.

 이제 두 번째 레이스의 시간!

 “대표님,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응? 무슨?”

 난 고개를 돌려 동훈이를 가리켰다.

 “이 친구랑 같이 하게 해주십쇼.”

 순간, 동훈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고, 봉감독은 기가 차다는 듯 웃었고, 문대표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왜?”

 “얘가 재능이 많아서요. 같이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봉감독이 내 뒤통수를 빡! 때렸다.

 “얌마!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진 지 백 년이 넘었어. 너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이 바닥에서 성공 못 해.”

 나도 안다. 의리 지키다가 망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아뇨, 전 이런 식으로 성공할 겁니다.”

 그 순간, 나를 바라보는 동훈이의 표정이란...

 이미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입은 울먹울먹...

 코는 훌쩍훌쩍...

 눈가에는 이슬까지 맺혀있었다.

 “형... 바삭해...”

 문대표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꼭 젊었을 때 나를 보는 것 같구만. 좋아, 받아들이지.”

 “감사합니다.”

 “그럼 두 사람이니까 위약금은 네 배야. 콜?”

 “네... 네 배요?”

 그럼 얼마지? 위약금이 무려... 2억 4천?

 그때, 봉감독이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쳤다.

 “묻고 떠블로 가!”

 “네?”

 “그냥 질러. 계약금 1억씩 달라고 해! 영화는 도박이야!”

 문대표가 책상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났다.

 “넌 빠지라고!”

 “아, 미안. 너무 흥미진진해서...”

 문대표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말 거야?”

 “그... 그게...”

 아! 혼란스럽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그때, 동훈이가 조용히 대답했다.

 “난 다이...”

 “응?”

 “전 그냥 연출부만 할게요.”

 그러자, 봉감독이 의아한 표정으로 동훈이를 쳐다봤다.

 “연출부? 뭔 소리야?”

 “여기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있던데요?”

 “그건 요한이 꺼고.”

 “그럼 저는...?”

 “넌 닭이나 튀겨. 바삭하게.”

 동훈이가 뜨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난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동훈이랑 공동각본으로 계약하겠습니다.”

 “형, 안 돼!”

 동훈이가 경악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봉감독이 동훈이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앉혔다.

 “내가 사채업자 소개시켜줄게. 니 정도 몸뚱이면 1억은 땡길 수 있어.”

 그리하여...

 나와 동훈이는 ‘신체포기각서’를 담보로, 영화 <괴수>의 공동각본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우리 영화 인생의 첫 번째 레이스가 시작된 것이다.

 

 ***

 

 탁탁탁! 탁탁탁탁!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야생마처럼 맹렬하게 달리고 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집에 와서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중이다.

 “형, 키보드 사운드 좀 줄여줄래? 시끄러워서 잠이 안 오네?”

 방바닥을 뒹굴거리던 동훈이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야! 어쩌려고 그래? 너도 좀 써!”

 “내일 쓸게. 오늘은 피곤하다.”

 이런 게으른 새끼, 너 그러다 지옥 간다!

 그때, 지잉~ 소리와 함께, 휴대폰으로 문자가 들어왔다.

 <태백영화사로부터 30,000,000원이 입금 되었습니다>

 난 숫자에 적힌 동그라미를 세 보았다.

 맞다! 3천만원이다!

 동훈이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의 휴대폰을 뚫어져라 보고있다.

 “헐... 벌써!”

 회사에서 우리 두 사람에게 동시에 입금을 한 것이다.

 “우와!”

 그 순간, 동훈이와 난 위약금 따위는 잊어버린 채, 돈을 벌었다는 기쁨에 빠져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쾅! 쾅! 쾅!

 그때, 밖에서 누군가 현관문을 세게 두들겨댔다.

 밤중에 누구지?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나?

 “누구세요?”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가보니...

 거대한 짐승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눈을 번뜩였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헉! 이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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