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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영화감독
작가 : 신해강정조준
작품등록일 : 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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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의 계약
작성일 : 20-09-02     조회 : 259     추천 : 1     분량 : 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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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르니까 묻지.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뭔데?”

 “너땜에 모든 게 엉망진창이야.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고.”

 역시 그런 거였구나. 내가 지옥을 탈출했기 때문에 과거가 바뀐 거구나. 그걸 바로잡으려고 날 데리러 온 거구나.

 그렇다고 이렇게 또 불지옥에 끌려갈 순 없다. 무슨 핑계를 대서건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한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다면... 그건 내가 어떻게 해볼게. 한사람씩 찾아다니면서 운명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되잖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악마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팍 내쉬었다.

 “니가 도망치는 바람에 불지옥의 유황불이 꺼졌어. 불지옥 인기가 떨어져서 페이몬이 마왕의 지위에서 내려오게 생겼다구.”

 엥? 이건 또 뭔 소리냐?

 “그뿐만이 아냐. 지금 72개 지옥에서 서로 널 차지하겠다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니까!”

 “날... 왜 차지해?”

 그 순간, 악마의 눈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니가 인기가 있으니까! 너같은 스타를 데리고 있어야 지옥의 레벨이 올라가니까! 그래야 마왕의 힘이 더 세지니까!”

 “그게 무슨...”

 “지옥을 탈출한 놈은 여태까지 너 하나밖에 없었어. 넌 지금 72개 지옥을 통틀어 최고의 스타야.”

 헐... 이놈의 인기는 왜 하필 지옥에서 빛을 발하는 거냐?

 “아무튼 페이몬이 너랑 할 얘기가 많대. 그만 가자.”

 악마가 손을 뻗어 날 떨어뜨리려는 순간! 재빨리 소리쳤다.

 “잠깐! 불지옥은 실패한 인생이 가는 데잖아? 난 실패하지 않았어!”

 “뭐?”

 “저번 생은 분명히 실패했었지. 하지만 이번 생은 달라! 시나리오 작가로 계약했고, 곧 감독으로 데뷔도 할거야. 난 지금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성공? 니가...?”

 악마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노려봤다.

 “못 믿겠으면 집으로 데려다줘. 서랍 안에 작가계약서가 있어. 통장 안에 계약금도 그대로 있고.”

 “잠깐만 기다려.”

 악마가 날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목에 걸린 소형카메라로 내 얼굴을 찍었다.

 찰칵!

 카메라에서 오색찬란한 불빛이 나오더니 공중에 홀로그램 화면이 켜졌다. 화면 속으로 내가 봉만오 감독과 작가계약을 맺은 장면부터 강동원을 만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진짜네...”

 악마가 멍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더니 카메라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자 공중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펼쳐졌다. 악마는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해가며 빠른 속도로 문자를 읽기 시작했다.

 “지옥판례 1324조 75항... 생을 두 번 산자의 경우에는... 두개의 인생을 종합평가해서... 음......”

 잠시 후, 악마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아몰랑! 행정법률지옥에 의뢰를 해봐야겠어.”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이 지점에서 뭔가 희망이 보인다.

 불지옥에 갈 이유가 없다면, 굳이 다른 지옥에 갈 이유도 없다.

 이 녀석만 잘 꼬드기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시도해보자.

 “그런데...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었는데...”

 “또 뭔데?”

 “악마치고는 너무 잘생긴 거 아닌가?”

 순간, 녀석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통한거다!’

 악마들은 인기에 환장한 놈들이니까, 분명 칭찬에 약한 거겠지.

 난 일부러 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영화배우를 했으면 스타가 되고도 남았을 얼굴인데... 그 정도면 이미 마왕자리 하나쯤은 차지하고 있어야 되는 거 아냐?”

 “하! 그거 참......”

 악마가 이내 거만한 미소를 지었다.

 “생긴 걸로야 내가 1등이지. 그런데, 지옥의 인기는 외모랑은 상관이 없어.”

 “그럼 뭐가 중요한데?”

 “스펙타클! 잔인하고 더럽고 무시무시하고... 암튼 소름 돋게 만들어야 돼. 그래야 인기가 올라가.”

 아! 그런 거였어?

 내가 불지옥에서 탈출한 장면이 그렇게 잔인하고 더럽고 무시무시했단 말이지?

 “스펙타클이라... 그럼 내가 그쪽 인기를 높여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뭐? 어떻게?”

 악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그래, 지금이다!’

 난 녀석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상태창이 켜졌다.

 

 <카이저>

 역할 : 지옥의 심부름꾼(악마서열 128위)

 공격력 : ★★

 방어력 : ★

 스피드 : ★★★

 마력 : ★★★

 특성 : 지옥 최고의 아가리 파이터. 흥분하면 미친 듯이 욕을 쏟아내는데, 이 분야에서는 따를 자가 없음.

 약점 : 나르시스트. 지독한 잘난 척 대마왕. 그것 때문에 인기가 떨어졌는데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음.

 

 ‘아가리 파이터?’

 흥! 이 녀석도 입만 살았군.

 이런 놈 다루는 법은 내가 또 잘 알지.

 그때, 녀석이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눈썹을 크게 꿈틀거렸다.

 “어서 말해! 인기를 높일 방법이 뭐냐구?”

 “그건 뭐...”

 난 일부러 뜸을 들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카이저, 심부름꾼으로 사는 게 지겹지 않나?”

 순간, 녀석의 귀가 길쭉해지며 얼굴 전체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앗! 내 이름을 어떻게...?”

 “그건 중요한 게 아냐. 네가 지금 마왕과 심부름꾼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제 본론이다. 잘 들어라, 이 녀석아.

 “카이저, 마왕이 되고 싶지 않아?”

 “뭐?”

 “페이몬 따위도 불지옥의 마왕노릇을 하는데, 니가 뭐가 부족해서 그따위 심부름꾼 노릇이나 하고있냔 말야?”

 카이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정곡을 찔린 거다.

 “하급악마, 카이저! 나와 계약하자. 그럼 내가 너를 지옥 제일의 마왕으로 만들어주겠다.”

 이 방법밖에 없다.

 인기에 환장하는 녀석의 욕망을 자극해서 내 편으로 만드는 것.

 놈의 가슴 속에 잠들어있는 꿈을 일깨워서 현실감각을 잃게 하는 것.

 “하하하하! 미친 놈... 하찮은 인간 주제에 악마와 계약을 하겠다고? 니가 완전히 정신이 나갔구나!”

 “당연한 거 아냐?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불지옥을 탈출했겠어?”

 뚝! 녀석이 웃음을 그쳤다.

 “맞아. 그건 그래... 좋아, 계획을 말해봐. 날 어떻게 마왕으로 만들건데?”

 계획? 아직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 못했는데...

 “나 영화감독이야! 그것도 스펙타클 전문가. 내가 널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들게. 가장 잔인하고 더럽고 무시무시한 영화. 그래서 난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고, 넌 지옥 최고의 인기배우가 돼서 결국 마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거지. 어때? 근사하지 않아?”

 내 순발력에 나도 놀랐다.

 이토록 가슴 뜨거운 논리를 순식간에 펼쳐 내다니...

 역시나 카이저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흐음... 그럼 되겠네. 완벽한 계획이야.”

 “그렇지? 그럼 어서 계약을...”

 그 순간, 녀석이 손을 뻗었다.

 “어엇!”

 터억!

 카이저가 내 목을 움켜쥐며 살기 띤 눈을 번뜩였다.

 “나와 함께 지옥에 가서 영화를 만드는 거야. 온몸이 찢어발겨지는 스펙타클한 공포영화. 흐흐흐...”

 “아니, 그게 아니라...”

 “지옥의 영화감독, 조요한. 넌 이제 내꺼다. 크하하하!”

 녀석이 날 들어올렸다.

 난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강력한 힘이 내 숨통을 더 강하게 옥죄었다.

 카이저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옥에서 만나자.”

 휘익!

 카이저는 나를 난간 너머로 던져버렸다.

 “으아악!”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뭐라도 붙잡아보려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 순간,

 타악!

 손에 뭔가가 잡혔다.

 “악!”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위를 올려다보니... 내 왼손이 카이저의 목에 걸린 카메라를 붙잡고 있다.

 “이거 안 놔?”

 카이저가 카메라를 두 손으로 잡은 채 당황한 표정으로 쩔쩔 맨다.

 ‘그래, 이 카메라에 뭔가 있는거야.’

 난 오른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재빨리 카메라를 낚아채버렸다.

 “야!”

 카이저의 얼굴이 순식간에 사색으로 변해버렸다.

 난 카메라를 던져버리는 척 팔을 크게 휘둘렀다.

 “안 돼!”

 녀석이 경악을 하며 손을 뻗었다.

 “왜 안 돼지?”

 “그... 그건......”

 카이저는 겁먹은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3초 안에 대답하지 않으면 이 카메라를 부숴버리겠어. 3, 2, 1...”

 “그 카메라는 내 분신이야! 그 안에 내 모든 능력이 담겨 있다구!”

 분신? 그렇게 소중한거면 더 은밀하게 다뤘어야지, 이 멍청아!

 “흥, 이 카메라가 부서지면 너도 소멸되는 거구나?”

 “그... 그래. 제발 돌려줘.”

 “일단 나부터 제자리에 돌려놔.”

 카이저가 손을 뻗자, 에너지 파장이 날 휘감아 다리 위로 올려놓았다.

 난 녀석을 노려보며 카메라를 난간 아래로 늘어뜨렸다. 여차하면 던져버리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날 조금이라도 해치려고 하면...”

 “진정해, 그럴 일은 없을거야.”

 카이저는 잔뜩 긴장한 채 카메라만 쳐다보고 있다.

 ‘좋아, 이제 협상의 시간이다.’

 난 일부러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지옥 따위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 하지만 이곳에서 영화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지옥에 가더라도 다시 탈출할거야.”

 “그래서 뭐? 빨랑 원하는 걸 얘기해!”

 난 진지한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며 말했다.

 “영화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줘.”

 “뭘 하면 되는데?”

 “네가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끄응... 카이저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보란 듯 카메라를 공중에 대고 빙빙 돌렸다.

 “싫으면 같이 뒤지시던가.”

 “알았어! 기다려!”

 잠시 후, 카이저가 품안에서 두루마리 종이와 깃털 펜을 꺼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어보자. 날 진짜 마왕으로 만들어줄 수 있어?”

 “최대한 노력해보지.”

 “뭐야? 아까랑은 얘기가 다르잖아!”

 “영화라는 게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냐. 너도 그만큼 노력을 해야 된다구.”

 녀석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알겠어, 여기에다 원하는 조건을 써.”

 “오케이,”

 난 두루마리에 계약서를 쓰기 시작했다.

 

 ⌜‘갑’ 조요한은 영화감독의 꿈을 이룬 후에 ‘을’ 카이저에게 카메라를 돌려준다. ‘을’은 ‘갑’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룰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최대한 돕는다.⌟

 

 난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카이저에게 건넸다.

 “잠깐! 왜 네가 갑이지?”

 “원래 더 센 놈이 갑이야.”

 “치사한 놈...”

 카이저는 슥슥 서명을 하고는 계약서를 공중으로 던졌다.

 신기하게도 계약서는 카메라 렌즈 속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카메라는 각별히 조심히 다뤄야 돼. 조금이라도 상처가 생기면...”

 “나 영화하는 사람이야. 카메라는 목숨이나 다름없어.”

 카이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필요할 땐 셔터를 눌러. 그럼 시간이 멈출거야.”

 그 말을 끝으로 카이저는 먼지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동차들이 소음을 내며 빠르게 지나가고, 비둘기가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머리 위를 날아갔다.

 휴...... 긴 한숨이 쏟아졌다.

 난 그렇게 지옥의 입구에서 또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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